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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싸 Aug 23. 2023

현재 위치에 안주하세요.

(성장을 멈추지 마세요)

 예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동료로 만난 개발자 친구가 있다. 원래 디자이너였던 그 친구(K)는 디자이너로서는 답이 없다는 것을 진작 깨닫고(정말 현명한 친구다), Unity라는 프로그램을 공부해서 개발자로 전직에 성공했다. 그리고 지금은 많은 이들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어 본인의 능력을 마음껏 뽐내고 있다. 디자인 베이스의 개발자라니… 군침이 도는 스펙이다.


 내가 다른 개발자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프로그램 상에서 보이는 텍스트의 자간 때문에 싸울 때의 일이다. '일부'개발자들은 정말 어이없게 송출되어 레이아웃을 다 박살 내는 텍스트를 보고 어떻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지 이해가 잘 안 가는데(당시에 내가 우리 회사 개발자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안돼요”와, “이게 대체 왜 중요한 건데요?”이다), 결국 안된다고 버티는 개발자의 완강한 태도에 질려 내가 디자인을 수정해야겠다고 포기하려던 그때,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던 K가 뒤에서 홀연히 나타나 친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대로 만들어야죠.”


그리고는 그 개발자의 자리에서 잠시 무언가를 하는 듯싶더니 내가 원하는 레이아웃으로 보이도록 금방 뚝딱 해결해 주었다. 아, 갑자기 보고 싶네.

 K는 어떻게 그것을 그렇게 쉽게 해결한 것일까? 다른 개발자들이 프로그램의 구동에만 관심을 갖고 그에 대한 공부만 할 때, K는 디자인적으로 완성도 있게 보이는 것도 개발의 일환이라는 생각으로 남들이 안보는 부분까지 공부를 하고 연구했던 결과이다.

 지금 K는 이미 개발자로서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왔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새로운 것을 공부하고 연구하며 스스로의 가치를 올리고 있다(심지어는 운동도 열심히 해서 몸도 장난이 아니다). 그로 인해 보다 나은 환경의 회사로 보다 좋은 대우를 받으며 이직하는 것이 그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스스로 느끼기에 이 정도면 만족한다고 스스로의 성장을 멈추고 현실에 안주했더라면 그 친구에게 그런 새로운 기회들이 생길 수 있었을까?


 비슷한 예로 또 다른 친구(Y)의 이야기가 있다. Y는 반대로 예전에 개발을 했던 이력이 있고, 후에 나와 함께 디자인을 공부했다. 디자인을 할 때도 이성적이고 구조적인 작업에 매력을 느끼던 Y는 IT전문 출판사의 편집디자이너가 되었다. 그리고 거의 10년 차가 된 지금은 회사에서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되어 있다. 그 친구는 회사에서 어떻게 인정을 받았을까? 근면? 성실? 그런 태도의 문제는 오히려 스스로가 '인식하고' 노력하면 쉽게 갖출 수 있다(모든 태도의 교정은 문제의 인식에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실력이다. 그리고, 남들은 하지 못하는 자신만의 스킬, 그것이 있어야 한다.


 Y의 주 업무는 편집디자인. 수 백 페이지 분량의 IT단행본을 조판하는 일이다(간혹 1,000페이지가 넘는 것도 있다). 편집디자인, 특히 단행본 디자인은 처음에 한번 모양새를 정해 놓으면, 나머지는 그 모양새를 유지하며 본문의 내용을 판에 앉히고 수정하는 반복적인 작업이다. 처음 그 일을 시작하고 Y는 자신이 만든 책이 서점에 깔리고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는 것에 고무되어 많은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만드는 족족 서점에 깔리고 별로 새로울 것 없는 피드백이 쌓이다 보니, 이제는 별로 감흥도 없어졌다고 한다. 그때 Y는 새로운 미션을 스스로 만들어 냈다.


 “반복해서 하는 이 일을 어떻게 하면 더 빠르고 쉽게 할 수 있을까?”    


 직장인이라면 위와 같은 생각을 한 번씩은 하기 마련이다. 회사의 일이라는 것이, 창조적인 일보다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도 의외로 많으니까. 그래서 인터넷도 뒤져보고 수업도 듣고 하면서 자신의 업무스킬을 높여보려고 애를 쓴다. 대개의 경우 자신이 필요로 하는 정도의 스킬을 얻게 되면 거기서 만족하고, 덕분에 벌게 된 시간에 충실하게 월급루팡의 임무를 수행한다(지금 나처럼). 하지만 Y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Y가 주로 쓰는 프로그램은 어도비에서 나온 편집프로그램 ‘인디자인’이다. 인디자인에는 ‘GREP’이라는 기능이 있는데, 반복되는 작업을 명령어 입력을 통해 자동화로 해결해 주는 기능이다. 나는 그전에 몇 권의 단행본과 분기별로 발행되는 정기간행물 디자인을 하면서 인디자인을 밥먹듯이 썼지만, 이 친구에게 설명을 듣기 전까지 그런 기능이 있는지 조차 모르고 살아왔다. 그야말로 맨밥만 퍼먹고 반찬은 안 먹고 있었던 것이다.


 Y는 처음에 책 내지 디자인 틀을 잡고, 그것을 모두 코드로 풀어 프로그래밍 명령어로 줄줄줄 만든 뒤 엔터 한 번을 딱 친다(그때의 엔터는 유독 경쾌하다). 그러면 내가 며칠 동안 밤새서 했을 작업이 거짓말 안 하고 몇 분 만에 뚝딱 만들어진다. 처음에 그 광경을 보았을 때 나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건, 설명을 들어도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도통 모르겠다는 것이다. 공부와 연구라는 고난의 과정을 기꺼이 달려온 이 친구만이 따먹을 수 있는 달콤한 열매였다.


 Y는 GREP에 대해서 스스로 공부하고 끝까지 팠다. 그리고는 결국 안그라픽스라는 출판사에서 관련 책도 썼고, 강의도 꽤 많이 했다. 회사에서는 세네 명의 디자이너가 달라붙어야 할 일을 이 친구 혼자서 탁탁 쳐대니 이 친구를 신뢰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나도 이 친구에게 영감을 받아 지금 회사에서 꽤 많은 부분을 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에 할애했고, 그 결과 나는 더 이상 회사에서 야근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뿐, 나는 이 친구처럼 그 이상으로 파지 못하고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냥 예전보다 조금은 여유로운 직장생활을 누리는 것에 대한 목표를 이룬 것에 만족하고 안주했다.


 말이 나온 김에, 또 한 사람의 예를 들어보겠다. 주변에 이렇게 훌륭한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왜 이러고 있나, 나도 참 어떤 면으로는 대단하다는 생각에 마음이 우쭐해진다. 어쨌든, 또 한 사람은 ‘아는 형님(A)’이다.  

 A는 도시 공학 박사님으로, 모 대학의 교수로 재직하다가 몇 해 전에 공기업으로 이직한 이력을 갖고 있다. 당시에 그 조직의 수장인 센터장이 있어서 대표의 직무를 수행하고 있었고, A는 여러 부서중 한 곳의 부서장을 맡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후임자 선임도 없이 센터장이 퇴임을 해서 그 자리가 공석이 되었다. 그러자 A와 같은 위치의 부서장들이 많이 있었지만, A가 본인의 업무뿐만 아니라 센터장의 업무까지 대행하게 되었다. 덕분에 당시 A는 물리적으로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A는 계속 후임 센터장 선임에 대한 의견을 이사회에 피력했다. 하지만, 딱히 센터장이 없어도 잘 돌아가는 조직을 보며 이사회는 후임자 선임에 대해 별 필요성을 못 느껴했다고 한다. A가 얼마큼 성실하고 완벽하게 그 일을 해내었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결국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던 A는 퇴사 의사를 내비쳤고,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이사회에서 부랴부랴 센터장 선임 공고를 냈다. 그리고 어떻게 됐을까?


 “일개 부서장한테 센터장 일을 시켜? 그럼 내가 센터장 할 거야.”


 A는 그런 마음으로 누가 나보다 잘할 수 있겠냐며 센터장 공고에 지원을 했고, 내부에서도 이보다 더 적임자를 어떻게 찾겠냐며 결국 A가 공식적인 채용절차를 걸쳐 후임 센터장이 되었다. 이제 현장 실무 업무에서 벗어나 센터장의 업무만을 집중해서 할 수 있게 되었다. 책상 하나를 쓰던 부서장에서 단숨에 넓은 방 하나를 혼자 쓰는 센터장의 대우를 누리게 된 것은 물론이다. 그 조직에서 부서장과 센터장은 채용기준과 절차가 다르기 때문에 부서장으로 들어온 사람이 센터장으로 승진할 수는 없다. A는 조직의 유리천장을 통쾌한 방식으로 박살내고 올라간 조직 내의 유일한 사람이 되었다.

 실력. A는 실력이 있었다. 그렇기에 그 조직에서 인정받아 대행의 역할로 미리 업무를 준비할 수 있었고 승진의 계단으로는 오를 수 없었던 자리에 누구보다도 앞서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현재 위치에 만족하지 말고 항상 공부하고 스스로를 성장시켜라.”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말이고, 많은 이들이 그렇게 살겠다고 다짐한다. (나 스스로도 다짐만 300번은 한 것 같다.) 나는 이제껏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당시 환경에 만족을 하고 산 적이 별로 없었다. 버는 돈이 적어서, 일이 마음에 안 들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서, 직장상사가 싫어서, 워라밸이 엉망이라서 등등등… 덕분에 나는 항상 그 상황을 탈출하고자 본업 외의 다른 것들을 생각하고 작전을 짜보았다. 하지만 항상 조급함에 쫓겨 압박감에 스스로를 목 졸랐을 뿐,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고 시작해서 제대로 마무리를 하고 성과를 내 본 일이 별로 없다. 그냥 벌려놓기만 하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현재의 삶에 안주하고 살아온 것이다.


 위에 언급한 세 사람의 공통점은, 모두가 현재 자신의 상황에 안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먼저 이야기한 K는 용기를 내어 자신의 길을 바꾸었고, 두 번째 이야기한 Y는 자신의 길을 보다 잘 달릴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야기한 A는 성실한 태도와 실력으로 인정받아 자신의 길의 몇 단계를 단숨에 뛰어넘었다.

 모두가 그 과정에서 고통도 있었을 것이고, 회의도 있었을 것이다. 두려움과 불안함도 물론 있었을 것이다. 우리도 이제는 막연히 불안해만 하지 말고, 그 불안함을 성장의 동력으로 삼고 열심히 달려보자. 뻥튀기 기계 속의 옥수수 알갱이들처럼, 계속 열을 가하다 보면 언젠가는 임계점에 이르러 우리도 뻥 터질 날이 올 것이다. 하지만 확실한 한 가지는 불을 때지 않으면 절대로 터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 이상 환경의 핑계를 대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정통 흙수저로서, 꿈이고 뭐고 항상 오늘을 먹고살기에 급급했던 2,30대를 보냈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생기고는 더 그랬다. 세상은 멀리 내다보고 내일을 준비하라고 하는데, 당장 이번 달 생활비와 전세대출 이자를 낼 일이 깜깜한 시간이 대부분이었다(물론 지금도!). 하지만 내가 살아오면서 깨달은 것은, 누구나 자신만의 핑곗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다들 열심히 산다. 성공했다고 보이는 사람들은 더욱 열심히 산다.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앉아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열심히 살았을 때, 그것들이 모두 밑거름이 되어 언젠가는 빛나는 열매를 맺게 된다.

 나라고, 당신이라고 안 그럴 것 같은가? 그럼 일단 한번 그렇게, 후회 없이 열심히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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