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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의 이사

by 보싸

오늘은 온 가족이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세종시에 다녀왔다.

처가 부모님께서 그제 이사를 가셔서 정리도 도울 겸 온 가족이 출동한 것이다.

집을 나설 때 우리 동네는 밤새 눈이 왔는지 비가 왔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화창하게 개어있었다.

마음도 가벼웠고 기분도 상쾌했다.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재잘거리고 아내와 나는 앞으로 닥쳐올 A.I시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참으로 의미 있고 유쾌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세종시에 점점 가까워질수록 아내와 나는 말수가 줄었고, 우리의 마음처럼 하늘은 무거워졌다. 밤새 눈이 내린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있었다.

부모님 댁에 도착한 우리는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아내는 수납공간을 맡아 정리를 돕고 나는 거실과 작은 방에 블라인드와 커튼을 달았다. 사실 별것도 아닌 일인데 나도 나이를 먹었다고 힘이 드는 꼴이 우스웠다.


내일 아이들의 개학과 입학준비를 핑계로 오래 머물지는 못하고 서둘러 출발했다. 2시간 반이 걸려 돌아오는 길은 화창하게 개어 있었고, 우리의 마음도 한결 가벼워져 있었다. 아침에 갈 때만 해도, 그동안 가까운 거리에 사셔서 그나마 우리가 들여다보고 신경써드릴 수 있었는데(오히려 부모님이 우리를 신경 써주셨지만), 이제 그렇게 우리가 신경써드릴 수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세종시에 살고 있는 처남이 우리보다 더 부모님을 살뜰히 챙길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어찌 되었든, 부모님께서 많이 고민하고 결정하신 일이니, 우리는 두 분의 결정을 존중하고 행복하시기를 기도하는 것 밖에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아내의 말에 의하면 장모님은 원래 그 동네에서 오래전부터 살고 싶어 하셨다고 하고, 정말 서울에 계실 때보다 한결 밝아지신 얼굴을 보니 그것도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 이유가 되었다. 이렇게 여유될 때 한 번씩 찾아뵙고 자주 연락드리고 그러면 되지 않을까.


작년부터 우리 부부가 기대고 의지하던 것들이 저마다의 이유로 하나씩 멀어짐을 느낀다. 그때마다 이제는 우리 가족이 인간적으로 의지하던 관계들로부터 건강하게 독립하고 새로운 시작을 해야 될 때임을 깨닫고 아내와 함께 서로를 위로하고 다독이며 마음을 다잡는다.

아내와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사탕 달라고 종알거리는 아이들을 뒤에 태우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

집에 가까워 올 수록 하늘은 더 화창했고, 막히던 도로는 점점 쾌적해졌다.


지금은 잠시 안갯속을 더듬고 있는 우리의 앞날도 그렇게 화창하고 쾌적하기를.




*밤에 글을 쓰면 꼭 이렇게 감상에 젖어서 생각이 많아진다. 그래도 빼먹지 않은 나를 칭찬하며, 내일은 다시 '아침'에 '10분만'쓰기를 굳게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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