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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보통 Feb 10. 2021

아버님과 오므라이스

코로나가 만든 이산가족

작년 설날과 추석에 이어 다가오는 설 명절에도 우리 부부는 시댁 출입 금지 명령을 받았다. 

이로써 아버님을 찾아뵌지도 일 년 반 가량이 지났다.

어머님과는 따로 몇 차례 외식을 하기도 하고, 지난 연말엔 병원에 동행해드린 적도 있었으나, 아버님은 집 앞 까지 가서 발 끝 조차 뵙지를 못고 돌아온 것이다.

코로나가 이렇게 장기화될 줄 모르고 "어머님, 저희 이번 설에는 집에 가도 돼요?"라고 묻는 나에게 어머님께서는 "아빠가 위험하다고 오지 말라네. 그냥 너희끼리 맛있는 거 먹고 쉬어."라고 하셨다.

아들의 결혼 전까지 제사 한 번에 설, 추석까지 연간 총 세 번의 상을 차리시던 어머님께서는 며느리가 생기자마자 제사를 없애시더니 그다음 해에는 설이나 추석 중 한차례만 상을 차리기로 하셨다. 덕분에 나는 일 년에 딱 한 번의 차례상을 차리는데, 그마저도 전은 다 사서 하시니 내가 맡은 음식은 상에 올릴 나물 세 가지 만드는 정도였다.

서 씨 집안 장손으로 태어나신 친정아버지 덕분에 자라는 내내 엄마를 도와 수많은 상을 차렸던지라 내게 차례상 차리는 일은 그다지 어려운 문제도 아니었다. 그런데 전을 사다 하신다니 어쩐지 약간의 서운함까지 드는 게 아닌가?

명절은 자고로 기름 냄새 폴폴 풍기며 갓 부쳐낸 전 하나 손으로 덥석 집어 먹는 맛 아닌가? 

어쨌든 차례상 차리는 일은 이렇게 간소화됐지만 내게는 다른 미션이 남아있었다. 그것은 1박 2일간 식구들과 먹을 끼니의 메뉴를 결정하는 일.

늘 드시던 어머님 음식이 아닌 며느리가 해드리는 반주 겸 식사 메뉴는 아버님의 명절 재미 중 하나가 됐다.

불고기 버섯전골, 고추잡채, 해물 청경채 볶음 같은 메뉴들은 아버님의 입맛을 저격하기에 충분했다.

저녁마다 한두 잔씩 반주를 즐기시는 아버님은 아들 며느리가 방문하는 날이면 술 한 병을 다 비워내고는 하셨다. 양주나 소주도 즐겨 드시지만, 우리가 가는 날에는 꼭 와인을 오픈하셨다. 와인을 드시면 남편과 내가 함께 술잔을 기울여 드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요령 없던 초보 새댁 시절에는 재료만 준비해 가거나, 어머님 냉장고에 있던 재료들로 조합해 상을 차렸지만 어느 해부터는 편하게 내 부엌에서 미리 반찬을 해가고, 메인 메뉴도 밀 키트처럼 준비를 싹 마쳐 가져 갔다. 양념까지 다 해가니 조리 시간도 짧고 편했다. 시부모님께서는 내게 '요리사 며느리'라고 하셨다. 평소 남편과 아버님은 서로 간에 일절 간섭 없이 사는 무뚝뚝한 부자 사이지만, 명절날 저녁 식탁에 앉아 함께 술잔을 기울이는 시간은 하나의 명절 풍습이 됐다.


처음 1~2년간 내게도 시아버지라는 존재는 어렵게 다가왔다. 남편이 아버님께 무뚝뚝한 아들이다 보니 나도 선뜻 다가서기가 더 힘들었던 것 같다.

나는 어머님 옆에 앉아 간혹 오가는 대화에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고 또 아주 간혹 날아오는 가벼운 질문에 짧게 대답을 하는 게 다였다. 아버님과 남편은 조용히 한두 마디 대화를 나눴고, 그나마 믿고 있던 아주버님은 빠르게 식사를 마치시고는 방으로 사라지셨다. 나는 조용히 밥을 먹고는 어머님이 일어나시면 바로 따라 일어나 뒷정리와 설거지를 도왔다. 내 모습은 마치 언제 까불거릴지 눈치 보며 새 집에 적응 중인 새끼 강아지 같았다.

그렇게 몇 차례의 명절을 지내다 보니 슬슬 아버님과의 대화에 한두 마디 거들게 됐고, 술잔도 함께 기울이게 됐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어느 추석 날, 나는 한 건축물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한창 디자인 가구에 관심이 생기던 시기라 건축가 출신의 디자이너들이 많다는 사실이 흥미로워 이 분야의 전문가인 아버님께 이야기를 꺼냈다.

아버님은 정년퇴직 때까지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대학에서 건축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셨던 분이셨고, 며느리가 건넨 의외의 화두에 상당히 반가운 기색을 비추셨다.

식구들 그 누구도 아버님과 건축이나 가구에 관한 대화를 나눈 적이 없으셨던 아버님은 며느리의 입에서 조 콜롬보, 알바 알토 같은 유명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활짝 웃으시며 대화를 이어가셨다.

르 코르뷔지에 이야기는 재직 시절 다녀오신 유럽 건축물 투어와 LC4 라운지체어의 편안함에 사로잡히셨던 경험담까지 이어졌다. 전공자가 아닌 내 눈높이에 맞춰 쉽고 재밌게 설명해주셨다. 아버님이 이렇게 신나게 대화하시는 모습은 어머님도 오랜만에 보셨다고 했다.

그날, 결혼 후 처음으로 아버님과 나 사이에 교집합이 생긴 기분이었다. 


다음 날, 짐을 다 꾸린 나는 다시 주방으로 향했다. 점심을 만들어 두고 가면 어머님도 조금 편하실 거란 생각에 냉장고 속 자투리 채소와 달걀을 꺼내와 오므라이스를 만들었다.

케첩을 뿌린 옛날식 오므라이스였다. 집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전화 너머 맛있게 잘 드셨다는 오므라이스 후기가 전달됐다. 

코로나 전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그날도 나는 집에 가져갈 짐을 꾸리고 있었다. 그때 아버님께서 오시더니 넌지시 "가기 전에 그때 해준 오므라이스 좀 만들어 주고 갈 수 있나?"라고 물어오셨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며느리에게 사소한 부탁도 안 하시는 분께서 오므라이스를 부탁하시다니! 나는 반가운 마음으로 "당연하죠 아버님! 해드리고 갈게요"라고 대답했다.

어머님께서 애들 가야 하는데 무슨 소리냐고 만류하셨지만, 어차피 친정 모임까지 시간이 남는다고 둘러대고 서둘러 재료를 꺼냈다. 

기름 두른 팬에 잘게 다진 각종 야채와 통조림 햄을 넣고 볶다가 밥을 넣고 잘 섞은 다음 소금, 후추 그리고 케첩을 넣어 섞었다. 다른 팬에는 달걀물을 만들어 반쯤 익히고, 볶아 둔 밥을 넣어 모양을 잡은 다음 뒤집어 주면 완성되는 간단한 조리법. 나는 팬 위에 뚜껑을 덮어두고 드실 때 케첩만 뿌려서 드시라고 말씀드렸다. 아버님은 집으로 향하는 내 손에 용돈을 쥐어주셨다. 한사코 마다하는걸 아시니 "음식 하느라 고생했으니 용돈 해라."라고 건네시던 멘트는 "이걸로 호두 간식 사줘라."로 바뀌어 있었다. 참 우습게도 "네 돈 아니고 호두 돈이다"하시니 "감사합니다." 하고 넙죽 받아 오게 됐다.


코로나 이후 한사코 방문을 말리시는 바람에 긴 시간 얼굴 조차 보여드리지 못했지만, 다음 명절에는 꼭 방문해서 아들 며느리와 맛있는 시간을 보내게 해 드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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