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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춘코리아 021] ‘마케팅’에서 ‘노자’까지

[포춘코리아 연재] 안병민의 경영수다

*포춘코리아 2018년도 7월호에 실린 연재기획 <안병민의 경영수다> 칼럼입니다.

경영마케팅을 연구하는 안병민 열린비즈랩 대표가 '노자'를 이야기한다. 전략 차원의 경영이 아닌, 철학을 갖춘 경영이 되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노자에게  배운 '변화를 끌어안는 유연한 혁신'은 이 시대 경영에 필수적인 덕목이다. (편집자 주)


요즘은 ‘노자’에 빠져 삽니다. 2,500년 전 철학자 노자 말입니다. ‘경영마케팅을 하는 사람이 뜬금없이 웬 노자?’ 하며 궁금해하실 분들도 계실 겁니다. 저도 전혀 상관없는 분야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4차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격변의 비즈니스 환경을 노자철학의 프레임으로 들여다보니 신기하게도 그 전개와 대응의 방향이 어슴프레하나마 보입니다. 마케팅에서 시작되어 노자에까지 이르게 된 저의 개인적인 지적 여정을 이렇게 공유하고자 하는 이유입니다.


모 대기업 광고회사 마케팅전략연구소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게 햇수로 벌써 20여년 전입니다. 그때만 해도 마케팅은 고객을 ‘설득’하여 궁극적으로는 우리 제품을 ‘구매’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제게 있어 마케팅은 고객의 인식을 바꾸는 전략적 프레임을 기획하는 일이었고, 고객의 행동을 이끌어내는 설득적 영상과 문구를 포함한 일련의 캠페인을 만들어내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렇게 마케팅 업무를 해오다 운명처럼 만난 게 <마켓3.0>이라는 책이었습니다. 마케팅에서 ‘영성’을 얘기했던, 필립 코틀러의 이 책은 잊고 살았던 ‘고객가치’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워준 한 줄기 ‘빛’이었습니다. 마케팅은 더 이상 일방적인 ‘고객설득’과 매출을 올리기 위한 ‘고객공략’의 개념이 아니었습니다. 시장의 변화와 함께 마케팅의 무게중심 또한 ‘진정성’으로 옮겨갔습니다. 그 깨달음의 과정에서 나온 게 제 첫번째 책 <마케팅리스타트>입니다. 마케팅은 진정성을 바탕으로 고객의 영혼을 감동시키는 것이라는, 마케팅은 고객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라는, 마케팅은 고객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한 삶의 철학이라는, 마케팅은 내 삶의 이유와 목적을 찾아가는 수양의 과정이라는, 그래서 마케팅은 삶 그 자체라는 얘기를 하고 싶어 썼던 책입니다.

bit.ly/마케팅리스타트


‘진정성’이라는, 마케팅에 대한 새로운 키워드를 따라가다 만나게 된 다음 화두가 ‘리더십’이었습니다. 리더십 역시 공부를 하다 보니 그동안 알고 있던 리더십은 완전히 잘못된 리더십이었습니다. 카리스마 넘치는 유능한 리더가 나를 따르라며 깃발을 흔드는 리더십 말입니다. 진짜 리더십은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지시하고 명령하고 통제하는 리더십이 아니라 가치지향적 변혁의 스토리를 몸소 실천함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드는 리더십이 진짜 리더십이었습니다. 남의 눈에 보이기 위해 진정성을 연기하는 가짜 리더와 누가 보든 안 보든 스스로에게 진실한 진짜 리더를 구분해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윤정구 교수님의 저서 <진성리더십>은 저에게 리더십의 본질을 알려주고 벼려준 훌륭한 길잡이였는데요. 전혀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던 마케팅과 리더십은 ‘고객’과 ‘폴로우어’라는 단어로 이어지는 동일선상의 개념이었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진실함으로 내 일과 삶의 목적을 묵묵히 수행해나가는 그 과정이 고객과 폴로우어의 마음을 움직이는 겁니다. 마케팅과 리더십을 이어주는, ‘진정성’이라는 연결고리의 발견은 실로 황홀한 체험이었습니다. 두 번째로 썼던 책 <경영일탈>은 그런 과정에서 탄생한, 세상에 없는 경영을 하는 기업 ‘여행박사’ 신창연 창업주의 리더십과 여행박사의 조직문화에 대한 경영크로키입니다.

bit.ly/경영일탈


마케팅과 리더십에 이어 맞닥뜨린 게 ‘혁신’입니다. 세상은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변합니다. 게다가 그 변화의 속도는 이제 음속을 넘어 광속입니다. 그러니 어제의 이론으로 오늘을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어제의 성공방식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겁니다. 수많은 글로벌 기업들의 몰락을 보면서, 또 듣도 보도 못한 신생기업의 급부상을 보면서 혁신의 중요성을 절감했습니다. 바야흐로 바뀌지 않으면 죽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실패를 경험하고서도 문제가 없다고 자위하면 바꿀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습니다.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혁신의 출발점입니다. 하지만 많은 기업들이 그 인정에 인색합니다. 그러고는 어제의 성공방정식을 전가의 보도처럼 다시 꺼내듭니다. 하지만 처방이 잘못되었습니다. ‘역량파괴적 환경변화’가 상시화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그들은 ‘성공의 덫(Success Trap)’에 걸려 허우적거리다 순식간에 몰락합니다.


그래서 찾아낸 혁신의 열쇳말이 ‘자기인식’과 ‘자기부정’입니다. 냉철한 자기인식과 고통스러운 자기부정이 없으면 혁신은 요원합니다. 핵심은 ‘무위(無爲)’입니다. 노자, 하면 항상 따라나오는 그 무위 말입니다. 노자를 공부하다 보니 무위는 아무 것도 안 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무소유(無所有)’란 말이 아무 것도 갖지 말고 청빈하게 살라는 말이 아닌 것처럼 무위도 그랬습니다. 노자는, 보편성이 강조될수록 그 자체가 하나의 ‘기준’이 된다고 보았습니다. ‘기준’은 곧 ‘구분’이고 ‘구분’은 곧 ‘배제’입니다. 다시 말해 기준과 방향을 정해두고 그 가치를 추종할수록 세상은 획일화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특정 이념과 기준에 따라 세상을 ‘봐야 하는 대로’ 보지 말고 세상을 ‘보이는 대로’ 품어 안으라는 게 바로 노자가 말하는 무위입니다. 제게 또 다른 ‘빛’으로 다가왔던 개념입니다.


변화를 끌어안는 유연한 혁신과 ‘없음이 곧 유용함’이라는 창의성의 철학적 원류가 노자에 다 들어있었습니다. 채우고 쌓음으로써 개별성을 ‘극복’하자는 공자철학이 산업화 시대에 잘 맞았다면 작금의 기하급수적 변화의 시기에는 비우고 내려놓음으로써 개별성을 ‘회복’하자는 노자철학이 훨씬 더 유효함을 깨달은 겁니다.


비즈니스 차원을 넘어 개인의 ‘행복’ 추구에 있어서도 노자는 무척이나 유용합니다. 내가 주인 되어 내 삶을 주체적으로 살라고 역설하는 노자의 얘기는 ‘거피취차(去彼取此)’라는 표현에 압축적으로 담겨있습니다. ‘저것’이 아니라 ‘이것’을 취하라는 얘기입니다. 요컨대 ‘현재’에 충실하라는 가르침입니다. 나는 나의 삶을 다시한번 살기를 바랄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라는 니체 철학과도 맞닿아 있는 대목입니다. 오지도 않은 미래를 위해 현재의 나를 소외시키면 행복은 물 건너 갑니다. 그래서 ‘내 일과 삶의 행복경영 처방전’이라는 주제로 쓰고 있는 저의 세 번째 책 <그래서 캐주얼>에서도 노자는 중요한 텍스트입니다.


마케팅에서 시작한 지적 여행이 이렇게 리더십과 변화혁신, 창의성을 징검다리 삼아 노자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일을 넘어 개인의 삶에 이르기까지 결국 모든 게 다 이렇게 이어져 있습니다. 이질적인 개념들의 낯선 연결과 새로운 조합에서 선현의 통찰을 읽어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은 잡설입니다만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칼럼 제호도 ‘안병민의 경영수다’입니다. 앞뒤없이 늘어놓은 저의 한바탕 수다에서 ‘혁신리더 노자’와 그 경영통찰을 찾아내셨다면 그걸로 저는 충분히 행복합니다. 단언컨대, 이제 '경영'은 '전략'을 넘어 '철학'입니다. 시선의 높이를 높여야 하는 건 그래서입니다. ⓒ보통마케터안병민


*글쓴이 안병민 대표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헬싱키경제대학원 MBA를 마쳤다. (주)대홍기획 마케팅전략연구소,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주) 마케팅본부를 거쳐 (주)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 관리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경영혁신•마케팅•리더십에 대한 연구•강의와 자문•집필 활동에 열심이다. 저서로 <마케팅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많다>, 감수서로 <샤오미처럼>이 있다. <열린마케팅스쿨>과 <혁신리더 노자스쿨>도 운영 중이다. fb.com/minop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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