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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로 출근하는 사람들

[방구석5분혁신=안병민] 한강공원, 벚꽃이 흐드러지게 폈다. 간만에 나선 산책길. 중학생 딸내미도 함께다. 강을 따라 걷다 보니 유람선이 보인다. 배를 타자고 조르는 딸아이를 이길 재간이 없다. 살랑이는 강바람이 온 몸을 감싸안는다. 한동안 배를 타고 강을 오르내리니 허기가 진다. 한강공원에선 라면이 진리. 즉석라면과 음료수를 사서 편의점 앞 테이블에 앉았다. 공부 얘기를 안 해서일까, 아빠를 따라 나온 딸아이 얼굴이 밝다. 으응? 비 오는 날 아니냐고? 맞다. 오늘 하늘은 궂다. 빗방울도 굵다. 하지만 상관 없다. 딸내미와의 한강데이트는 가상세계에서 하고 있는 거니까. 우린 지금 제페토가 빚어놓은 ‘한강공원’ 가상세계에 와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메타버스가 화두다. 메타버스는 가상, 초월이라는 의미의 ‘메타(meta)’와 우주라는 단어(universe)의 ‘버스(verse)’가 합쳐진 말이다. 요컨대, 디지털 기술로 만들어진 가상세계다. 예전 ‘도토리’로 꾸미던 내 홈피를 떠올리면 쉽다. 나를 대신하는 아바타의 모습으로 사람들을 만나 일상을 즐기는 또 다른 공간. 거기가 메타버스다. 


제페토는 네이버제트에서 출시한 메타버스 플랫폼이다. 내 사진을 기초로 한 아바타를 생성하여 다양한 제페토월드 공간을 체험할 수 있다. 예컨대 유령의 집, 무릉도원, 한강공원 같은 곳들이다. 교실도 있다. 코로나 때문에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이 여기 제페토 교실에 모여 수다를 떤다. 아이돌그룹 블랙핑크가 작년 가을, 제페토의 가상세계에서 열었던 팬사인회에는 무려 4,600만명의 이용자들이 몰렸다. 블랙핑크 아바타가 입었던 옷과 액세서리도 엄청난 매출을 기록했다. 


‘모여봐요 동물의 숲(모동숲)’은 닌텐도가 운영하는 메타버스 플랫폼이다. 나만의 섬을 개척하며 일상을 꾸려나가는 콘셉트다. 친구의 섬에 놀러갈 수도 있다. 지난 미국 대선 때 조 바이든 후보는 '모동숲'에 선거캠프를 차렸다. 디지털에 익숙한 MZ세대를 겨냥한 선거 캠페인이었다. 지난 3월, 미국 뉴욕 증시에 상장한 메타버스 대표기업 로블록스의 주가는 4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우리 돈으로 45조원이다. 메타버스 플랫폼의 가치다. 

이제 사람들은 메타버스 교실에서 수업을 듣고, 메타버스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고, 메타버스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메타버스 공연장에서 콘서트를 즐긴다. 그 옛날 모든 길이 로마로 통했듯, 디지털 시대의 모든 길은 메타버스로 통한다. 


연속성. 메타버스의 주요 특징 중 하나다. 메타버스에서의 경험은 심리스(seamless), 즉 끊김이 없다. 하나의 공간에서 쇼핑도 하고, 사람도 사귀고, 콘텐츠도 즐긴다. 개별 사이트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로그인을 반복해야 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경험이다. 디지털 공간내에서만 심리스한 게 아니다. 현실세계와도 매끄럽게 연결된다. 


이를테면, 메타버스에서 판매되는 아바타용 티셔츠는 오프라인에서도 똑같이 판매된다. 메타버스 속 내 아바타와 현실세계의 내가 같은 디자인의 옷을 입는 거다. 메타버스와 현실세계의 연결고리는 또 있다. 누구든 내가 디자인한 패션 아이템을 메타버스 공간에서 팔 수 있다. 게임도 만들어 팔 수 있다. 메타버스에서 번 돈을 현금으로 환전할 수 있으니 메타버스는 자연스레 내 일터가 된다. 돈을 쓰기만 하는 곳이 아니라 돈을 벌 수도 있는 곳. 그러니 '메타버스로 출근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그래봐야 결국 애들 게임 아니야?” 과거의 틀에다 현실을 욱여넣기 바쁜 사람들에게, 메타버스는 여전히 시덥잖은 게임일 뿐이다. 해(日)와 달(月)을 구분하여 떼어놓던,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다. 융합과 복합의 세상이다. 해와 달을 함께 품어안아 밝은 지혜(明)를 만들어내는 통찰의 시선이 필요하다. 메타버스는 현실세계와 유리된 몰(沒)가치적 공간이 아니다. 현실세계와 끊김없이 조응하는 디지털 신세계다. 무한한 기회가 매장되어 있는 디지털 신대륙이다. 


2030년이면 메타버스 관련 시장 규모가 1,700조원이 될 거란다. 글로벌 회계·컨설팅 기업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의 전망이다. 조만간 우리의 일상이 될 메타버스. 나는 지금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그 답을 찾기 위해 오늘은 ‘오션크루즈’를 타고 ‘비치타운’에 가 볼 생각이다. 물론 메타버스 속에서다. ⓒ혁신가이드안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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