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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show)’하는 CEO가 보고 싶다

[국제신문 연재] 화요경제 칼럼

국제신문 2022년 1월 4일자에 실린 <화요경제 항산항심> 연재칼럼입니다.


[방구석5분혁신=안병민] “안녕하세요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여러분들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우리 임직원들, 그리고 협력사 직원 여러분들,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말씀 전합니다.”  


대표의 인사말로 시작되는 영상. 이야기가 이어진다. 코로나로 인해 할 수 없는 게 너무나 많아진 시대, 우리가 새롭게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잔다. 새해에는 고객들이 우리를 찾아야 하는 이유를 찾아내고, 부족한 부분을 새롭게 채워나가자는 당부다. 끝이 아니다. 내년에도 건강하고 복 많이 받으시라는 마지막 인사와 함께 피아노 소리가 울려퍼진다. 대표가 직접 연주하는 송년 테마의 노래 ‘작별’이다. 


전 직원 송년 인사를 위해 A기업의 B대표가 본인의 방에서 직접 촬영한 영상이다. 특별한 조명도 없다. 화려한 효과도 없다. 그저 혼자서 스마트폰 카메라 앞에 앉아 이야기를 하고 연주를 한다. 2분이 채 안 되는 길이의 소박한 영상이다. 하지만 짧은 길이와 달리 여운은 길다. 진정성이 느껴져서다. 


오전 다르고, 오후 다른 요즘이다. 디지털이 만들어낸 변화 때문이다. 여기에 코로나19까지 더해졌다. 문명의 표준이 바뀔 수 밖에. 기업 풍경도 변화의 물결에서 예외일 수 없다. 수직적 위계를 넘어 수평적 네트워크를 향해 질주하는 세상 속에서 CEO의 소통 방식도 바뀌고 있다. 


어느 조직이든 소통은 핵심화두이다. 소통 없이는 성과도 없어서다. 하지만 간과해선 안 될 게 있다. 상대에게 다가가는 게 소통이지, 상대더러 오라는 건 강요이자 폭력이라는 점. 리더의 소통도 마찬가지다.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나의 메시지를 일방적으로 내뱉는 건 소통이 아니다. 그들에게 맞춤하는 그들의 방법으로 세심하게 다가가야 한다. 소통은 사람의 마음을 여는 일이라서다. 


텍스트로 소통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아니다. 이미지로 소통한다. 더 이상 사람들은 정보를 ‘읽지(read)’ 않는다. 정보를 ‘본다(see)’. 인포그래픽이 부상하는 이유다. 인포그래픽은 디자인 요소를 활용하여 정보를 시각적인 이미지로 전달하는 그래픽을 가리킨다. 정보에 강렬한 임팩트를 더해 줄 수 있어 정보 홍수 시대, 그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기술이 발전하니 영상의 제작과 유통 또한 쉬워졌다. 젊은 세대들을 중심으로 이미지와 영상을 기반으로 한 정보 생산과 소비가 일상화된 배경이다. 



A기업 B대표의 소통은 그래서 인상적이다. 대표이사 취임 때의 전 직원 인사 방식도 영상이었다. 고객 판매 접점에 있는 유통기업이었기에 전 직원이 한 자리에 모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다른 CEO라면 전사 메일로 뿌리고 말았을 취임사 내용. 면대면 소통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B대표는 차선을 골랐다.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스마트폰 셀프 영상을 찍었다. 


영상 속 그는, 이번에 새로 부임하게 된 CEO라며, 여러분과 함께 우리 회사의 미래가치를 높이고 싶다며,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조직문화를 만들겠다 약속한다. 그러면서 초등학교 5학년 때 직접 썼던 본인의 일기장을 꺼내 읽으며 인생 첫 번째의 쇼핑 추억을 이야기한다. 그런 특별한 시간과 가슴 설레는 공간을 우리의 고객에게도 제공하고 싶다 얘기하며, 함께 더 좋은 일터를 만들어보자 말하며 영상은 마무리된다. 


취임 100일 때도 집무실에서 라이브방송을 통해 직원들과 소통했다. 유통업계 화두인 라이브 커머스 방식이었다. 직접 집무실 곳곳을 비추며 전 직원들과 일상을 공유하고, 실시간으로 질문을 받아 그에 대해 답변했다. 


그런 쇼 좀 한다고 무슨 성과가 나겠냐고? 모르는 소리. 급격하게 변화하는 경영 환경 속에서 민첩한 대응을 강조하는 애자일경영이 부상하고 있다. 애자일경영의 핵심은 유연함이다. 유연함은 변화에 대한 포용에서 나온다. 


그걸 보여줄 수 있는 제대로 된 ‘진짜 쇼(Show)’가 필요한 시점이다. 조직의 목적과 조직의 방향을 조직 구성원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보여주는 진정성 가득한 쇼. 조직 구성원들을 감동시켜 조직의 행복한 혁신을 빚어내는 쇼. 이런 쇼를 하는 CEO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중요한 건 소통의 방식이 아니다. 소통에 대한 리더의 철학과 마인드의 변화다. 리더가 바뀌어야 조직이 바뀌어서다. ⓒ혁신가이드안병민


*글쓴이 안병민 대표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하고, 헬싱키경제대학교(HSE) MBA를 마쳤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 마케팅전략연구소, 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의 마케팅본부를 거쳐 경영직무·리더십 교육회사 휴넷의 마케팅 이사(CMO)로서 ‘고객행복경영’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이자 [방구석5분혁신](bit.ly/5booninno)의 혁신크리에이터로서 경영혁신·마케팅·리더십에 대한 연구·강의와 자문·집필에 열심이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 일탈>, <그래서 캐주얼>, <숨은 혁신 찾기>, <사장을 위한 노자>, 감수서로 <샤오미처럼>, <주소가 바꿀 미래사회와 산업>이 있다. 다양한 칼럼과 강의를 통해 "경영은 내 일의 목적과 내 삶의 이유를 실재화하는 혁신의 과정"이라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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