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실전MBA] 연재칼럼
[방구석5분혁신=안병민] 불로장생.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많은 사람들의 꿈이요 염원이다. 이 꿈은 인간의 그것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기업들에게도 장수는 꿈이다. 두산, 신한은행(옛 조흥은행 합병), 동화약품, 우리은행(옛 상업은행 합병).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이는 이들 회사는 공통점이 있다. 창업 100년을 훌쩍 넘긴 장수 기업이라는 사실이다. 십 일 붉은 꽃 없고, 십 년 가는 권세 없다 했다. 권좌의 주인공은 치세(治世), 즉 태평성대가 아니라 난세(亂世)에 바뀐다.
바야흐로 시장 내 승자와 패자가 명확하게 갈리는 격동기. 1위가 추락하고, 2등이 1등이 되고, 대형 M&A(인수·합병)가 성사되는 등 격동기에는 시장이 요동을 친다. 새로운 영웅이 격동기에 나오는 이유다. 호황산업에서도 패자가 나오고, 사양산업에서도 승자가 나오는 게 비즈니스 생태계다. 비즈니스 리더는 이런 격동기를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100년 이상, 화학 기반의 카메라 필름과 현상 분야 전 과정에서 고객과의 강력한 접점을 보유하고 있던 ‘폴라로이드’는 디지털 카메라의 출현으로 성장 곡선이 꺾였다. "제록스 해주세요"라고 해도 '복사해 달라'는 의미로 받아 들여질 정도로 탄탄했던 굴지의 대기업, ‘제록스’도 마찬가지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이라는 시대 조류와 원격 프린트 기술이 복사기 시장을 빠르게 재편했다. 제록스도 프린트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정작 프린터 시장의 판도를 바꿔놓은 건 ‘휴렛패커드’였다.
GM, 크라이슬러, 코닥, 노키아, 소니, AIG, 리먼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초절정 우량 기업들의 몰락 또한 많은 사람에게 충격이었다. 이 들의 몰락 원인은 단순히 금융 위기가 아니었다.
간접적 원인은 게임의 룰을 바꾸는 '역량파괴적 환경 변화(Competence-Destroying Change)'였고, 직접적 원인은 이런 변화에 대한 조직의 안일한 대응이었다.
중요한 건 기업문화다. "지금도 괜찮은데 왜 일을 만들어?" 조직의 이 한마디에 아이디어는 눈 녹듯 사라지고 만다. 훌륭한 리더는 이런 격동기 속에서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그 아이디어에 물을 주며 싹을 틔운다. 격변의 파도를 헤치고 ‘그레이트 컴퍼니(Great Company)’를 만든다. 혁신의 조직문화와 그런 조직문화를 빚어내는 리더십이 중요한 이유다. 그렇다면 훌륭한 리더가 갖추어야 할 핵심역량은 무엇일까?
먼저 조직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열정이다. 적어도 한 조직의 리더라면 자신의 조직을 진심으로 사랑해야 한다. 격동기일수록 리더를 중심으로 조직 전체가 똘똘 뭉쳐야 산다. 도요타에서는 ‘다시 태어나도 도요타에 입사하겠느냐?’는 질문에 40%가 동의한다고 한다. ‘다시 태어나도 같이 살고 있는 지금의 배우자와 결혼하겠느냐?’는 물음에 남자의 동의율이 평균 25%, 여자의 동의율이 평균 15%대라고 하니, 도요타의 40%란 수치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리더가 만들어내는 기업문화의 건강성을 확인할 수 있는 숫자다.
조직 내 생산성에 대한 깊은 통찰도 중요하다. 실제 리서치를 해 보면 많은 조직에서 생산성을 저해하는 요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가볍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뿐만 아니라 전체 조직의 생산성을 갉아먹는 뿌리 깊은 악성 요소들도 있다. 이런 요소들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문제가 아닌 건 아니다. 훌륭한 리더는 보이지 않는 환부를 발견해내고 거기에 메스를 들이댄다. 고통을 감수함으로써 생명을 살린다.
다음은 목표 달성을 위한 불굴의 의지다. '고객의 99%가 만족한다'는 말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물은 섭씨 100도가 되어야만 비로소 끓기 시작한다. 물을 끓일 수 없는 온도 99도는 결과만 놓고 보면, 1도나 10도와 별반 차이가 없다. 99%가 아니라 100%여야 한다. 이 작은 차이로 승부가 갈린다. 100에서 1을 빼면 99가 남는 게 아니라 0이 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수학과는 다른 고객만족 공식이다.
마지막으로, 리더는 문화 혁신의 촉매가 되어야 한다. 우리 조직원들이 나태하다거나 열정이 없다고 하소연하는 리더들을 종종 본다. ‘제 얼굴에 침 뱉기’다. CEO와 임원, 리더는 그 스스로가 조직이자 문화다. 리더는 기존의 문화가 더 이상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때를 식별해내야 한다. 시대가 요구하는 문화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한다.
결국 관건은 리더이고, 리더십이다. 1) 조직에 대한 애정을 갖고, 2) 보다 생산적인 시스템을 구축하며, 3) 목표 달성의 열정으로 무장해서 4) 변화혁신의 촉진제가 되는 것. 이게 격동기에 고성과 문화를 만드는 리더의 자질이자 모습이다. 기업의 성패는 조직의 리더에게 달려있다. 리더가 곧 문화이고, 리더가 곧 경쟁력이다. ⓒ혁신가이드안병민
*글쓴이 안병민 대표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하고, 헬싱키경제대학교(HSE) MBA를 마쳤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 마케팅전략연구소, 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의 마케팅본부를 거쳐 경영직무·리더십 교육회사 휴넷의 마케팅 이사(CMO)로서 ‘고객행복경영’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이자 [방구석5분혁신](bit.ly/5booninno)의 혁신크리에이터로서 경영혁신·마케팅·리더십에 대한 연구·강의와 자문·집필에 열심이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 일탈>, <그래서 캐주얼>, <숨은 혁신 찾기>, <사장을 위한 노자>, 감수서로 <샤오미처럼>, <주소가 바꿀 미래사회와 산업>이 있다. 다양한 칼럼과 강의를 통해 "경영은 내 일의 목적과 내 삶의 이유를 실재화하는 혁신의 과정"이라 역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