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5분혁신=안병민] 30대 직장인 A. 우연한 계기로 접하게 된 무선조종 자동차는 스트레스 해소의 탈출구다. 하지만 꽤나 부담스러운 가격의 무선조종 자동차. 아내의 잔소리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라 아내가 여행을 간 날로 배송일자를 맞추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한 고육지책. 그런데, 이런. 배송이 늦어졌다. 출근한 내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던 그때, 사무실로 아내의 전화가 걸려왔다. 아내의 날 선 목소리. 맙소사, 들켰다.
문제는 단순하다. 주소가 원인이다. ’거주장소‘로서의 주소와 ’수령장소‘로서의 주소가 분리되지 않아 생긴 비극이다. 주소는 ’사는‘ 곳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온라인 쇼핑과 음식 배달이 일상이 되어버린 요즘, 주소는 물건이나 음식을 ’받는‘ 장소이기도 하다. 의미와 용도가 다른 두 가지 개념이 하나의 주소에 묶여 있다. 주소의 해상도가 낮아 생기는 사용자의 불편이다.
해상도는 화면에서 그림이나 글씨가 어느 정도 정밀하게 표현되는지를 나타내는 단어다. 보통 1인치 안에 들어있는 화소의 수로 표현한다. 해상도가 높으면, 라이언킹의 탐스러운 갈기 한 올 한 올이 선명하게 보인다. 해상도가 낮으면, 돋보기를 쓰시는 할아버지의 노안을 대학생 손자도 실시간으로 체험할 수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도 해상도가 있다. 많은 단어를 아는 사람은 적은 단어를 아는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은 개념과 현상을 설명하고, 표현할 수 있다. 언어 해상도의 차이다. 모든 언어를 다 갖다 쓰더라도 묘사할 수 없는 우리의 생각이나 감정도 있다. 언어의 해상도가 생각이나 감정의 해상도보다 떨어져서다.
주소도 마찬가지다. 지금 쓰는 주소는 해상도가 낮다. 사는 곳 정도만 식별하는 수준이다. 그랬던 주소가 인공지능, 로봇, 드론, 자율주행차, 클라우드, 빅데이터, 블록체인, NFT, 메타버스 등 디지털 개념들을 만난다. ’디지털라이제이션‘이라 불리는 이런 변화는 주소 해상도 제고의 원인이자 결과다. 새로운 기술들이 개발되니 주소의 해상도가 올라가고, 주소의 해상도가 높아지니 새로운 기술들이 연이어 나온다. 서로의 촉매로서 서로의 발전을 견인한다. 결국 주소는 이 모든 기술들을 우리의 삶과 이어주는 열쇳값인 셈. 미래기술과 미래사회, 미래산업의 핵심인프라로서 주소의 역할이 무척이나 크고 중요하단 얘기다.
주소의 해상도가 높아지면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난다. 내가 ‘사는’ 곳이라는 주소 개념이 내가 ‘있는’ 곳이라는 위치 개념으로 잘게 쪼개진다. 내가 있는 현재 나의 위치가 나의 주소가 되는 거다. 그러니 20층 건물의 7층 가장자리 구매팀에 있는 내게, 배달로봇이 샌드위치를 갖다준다.
사물 하나하나도 저마다의 위치를 주소로 갖게 된다. 길거리의 전신주와 가로등, 전기차 충전소의 개별 충전기가 각자의 주소를 가지면 우리의 삶은 다른 차원이 된다. 수집과 분석, 예측이 가능한 데이터는 무한대로 늘어난다. 물류의 세부 이력 추적도 가능하다.
디지털화된 주소에 콘텐츠가 붙으면 주소는 콘텐츠 플랫폼으로도 기능할 수 있다. 석굴암의 주소는 ‘경주시 석굴로 238’이다. 그 정보로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디지털주소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석굴암 관련 다양한 콘텐츠도 함께 심어놓을 수 있으니 주소의 효용은 한껏 올라간다.
메타버스도 있다. 내 아바타가 디지털현실 속 서울 명동을 거닐다 맘에 드는 옷가게를 발견하곤 바지를 한 벌 산다. 메타버스 상점에서 산 옷이 현실세계의 내게 배송된다. 반품도 다를 바 없다. 메타버스 속 그 옷가게 주소로 반품하면 된다. 현실공간과 가상공간의 경계가 사라지는 요즘, 두 개의 세상을 끊김없이 이어주는 요소 또한 주소다.
사물주소, 시간주소, 증강주소 등 주소와 관련한 새로운 개념들이 쏟아진다. 디지털에 기반한 주소 체계 고도화 덕분이다. 현실세계뿐만 아니라 가상공간 주소와도 이어지니 주소는 이제 눈이 쨍~할 정도의, 극강의 해상도를 갖게 되는 셈이다.
초고해상도의 주소가 빚어낼 새로운 미래가 코 앞이다. 물론 주소 혼자서 바꿀 수 있는 미래는 아니다. 주소에 디지털이 접목됨으로써 빚어질 미래다. 그럼에도 그 중심에 주소가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만만히 볼 주소가 아니다. 주소, 미래사회의 경쟁력이자 핵심 인프라다. ⓒ혁신가이드안병민 (202301 국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