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들어 바라보니 시리도록 파란 하늘이 가을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눈 부셔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는 태양이 만들어 내는 가을의 한 낮. 따뜻함과 서늘함이 너무나 잘 어우러져서 그냥 걷는 것만으로도 행복의 기운이 온몸에 가득 차는 순간. 비록 봄에 태어난 생명이 사그라드는 가을이지만, 그 또한 아름다울 수 있음을 오감으로 느끼는 이 순간에 내가 멍하니 서 있다.
저 밝은 하늘에 사실은 수많은 별들이 밤에 그랬던 것처럼 반짝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수만, 수백만 년 전부터 그 자리에서 똑같이 빛나고 있건만, 오직 사람만이 밤과 낮의 구분에 너무 엄격한 나머지 밤에는 별들이 수를 놓는다 이야기하는 반면, 낮엔 별들이 숨어 버렸다 말한다. 어찌 보면 낮과 밤의 구분이 적용되지 않아도 되는 존재들에게 억지로 그 구분을 강요하는 꼴이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밤이 되면 별들은 언제 그런 강요를 받았냐는 듯 밝은 빛을 내며 가을 밤하늘을 빛낸다. 그러다 수명이 다 되어 별똥별로 스러지는 그 순간을 맞이한다면, 한 없이 안쓰러운 그들을 기억해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지금까지 내가 스쳐온 사람은 얼마나 될까?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항상 반짝이는 별들의 수보다는 작겠지만, 우주의 생애와 별들의 숫자를 인간의 수명과 스쳐 지나간 사람들의 수를 비교한다면, 아마 별들의 수 정도 되는 사람들을 스쳐 지나갔다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밤이 지나 낮이 되어 강력한 햇빛으로 인해 별들의 존재는 그대로이나 존재감이 사라지게 되면 그들의 존재 자체를 까맣게 잊어버리는 것과 같이. 이 땅에 태어나 사람과 사람이라는 관계를 형성하고 그 과정에서 스쳐 지나간 사람들을 까맣게 잊은 채 오로지 지금 순간에 내 옆에 있는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 사람이 있다. 바로 나.
학창 시절에는 우리 영원히 우정을 함께하자며 다짐했던 그들, 사랑의 매 순간마다 인생을 함께하자 다짐했던 그들, 직장에서 함께 상사를 욕하며 언젠가는 우리들만의 회사를 차려보자 의기투합했던 그들. 그 당시엔 모두가 나에게 소중한 별들이었으며, 내가 가는 방향을 잃지 않도록 나에게 아낌없이 빛을 선물해줬던 그들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가을이 빠르게 스쳐가는 한낮의 순간, 모두가 내 인생의 별들이었건만 '지금'에 가려져 나의 기억 속에 존재조차 불확실해진 그들이 떠오른다. 나의 과거의 순간마다 나를 향해 빛내주었던 그들, 하지만 지금은 나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그들이 말이다. 사람으로 가득한 홍대 거리를 걷다, 서울역 대합실에서 어디서 본 듯한 사람과 어깨를 부딪히며 지나치다가, 책을 보느라 주변에 신경 쓰지 않는 나의 앞에 서 있을 수도 있는 그들. 나의 짧은 인생을 보면 하늘의 별만큼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웃고 울고 행복하고 사랑했건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스쳐 지나가는데 왜 그들을 만나기가 이렇게 힘든 걸까.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지하철과 버스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을 만나고 있는데, 왜 내 인생을 함께했던 그들이 눈에 띄지 않을 걸까? 내가 기억을 하지 못하는 건지, 아니면 그들이 나의 영역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인지. 하지만 제발, 사실은 내 인생에 만난 사람이 별처럼 많지 않다고, 그저 열 사람의 손가락이면 충분히 셀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하지 말아 주세요.
사람과 사람의 관계라는 게 일방향적일 수 없을 테니, 그들의 기억 속에 희미하나마 한 가락의 기억이 자리 잡고 있기를 기대해볼 수는 있지 않을까? 그들의 기억 속에 나는 어떤 존재로 기억되고 있을까? 아, 이건 욕심이겠구나. 내가 한낮의 눈부심에 가려져 별들을 떠올리지 못하는 것처럼, 그들의 기억에 내가 자리 잡을 시간과 공간은 아마 존재하지 않을 테니.
앞으로 당신을 스쳐 지나가거든, 내가 당신을 기억하지 못하거든,
억지로라도 붙잡고 나에게 '안녕' 한 마디 전해주세요.
알 듯 모를 듯 작은 미소라도 흘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