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이 있는 커피 한 잔

나에게 '테라로사'라는 공간이란,

by 장아무개

10년 전쯤 처음 속초로 가는 길에 강릉의 '테라로사'라는 커피숍을 방문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이제 막 커피맛을 느끼기 시작했던 터라 시골길을 구불구불해야 겨우 들어갈 수 있는 구석에 커피숍이 있다는 것이 너무나 신기했습니다. 게다가 시골의 커피숍인데 왜 이리 사람이 많은지... 그럼에도 테라로사가 가지고 있는 푸근한 분위기와 생전 처음 맛보는 향과 맛 좋은 커피에 흠뻑 빠져 그 이후로도 여러 번 방문했습니다. 강원도를 향할 때마다 테라로사에 들렸으니 꽤 여러 번.


처음 만난 테라로사는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지금도 기억에 남습니다. 두꺼운 나무문을 힘을 줘서 밀어 열면 목조 구조로 된 높은 천장의 공간과 그 안에 쌓여 있는 커피장비와 원두들, 그들로부터 느껴졌던 시간의 흐름이 여전히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처음 봤던 커피나무를 비롯해(커피나무가 우리나라, 그것도 강원도 지역에 자랄 수 있다는 게 너무 신기했고) 다양한 식물들이 빼곡한 온실 공간과 그리고 그 공간 곳곳에 놓여 있던 테이블에 앉아 향기로운 커피와 익숙하지 않은 빵을 곁들여 식사를 하는 경험. 익숙하지 않은 요소들이 가득한 공간에서 향긋한 커피 한 잔을 마실 때의 감동. 그게 저에게는 테라로사이지 않았나 합니다. 마치 새로운 곳을 여행하는 듯한 기분에 빠질 수 있었던 테라로사. 물론 지금은 만날 수 없기에, 이런 추억을 가진 저는 매우 행복하고 뿌듯하며 한편으로는 서운하기도 합니다.


최근 강릉 테라로사를 다시 방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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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티지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지만, 10년 전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현대식 공간. 상호도 테라로사 커피공장으로 바뀌었더군요. 진입로도 구불구불한 시골길이 아닌 길로 변경이 되었고, 뭐니 뭐니 해도 달라진 건 외관이었습니다. 옛 추억 속의 테라로사는 어디 갔는지 모를 정도로 색다른 공간이 떡 하니 자리잡고 있는 것을 보고 서운한 감정이 밀려들었습니다. 서울, 양평 등에 위치한 테라로사 지점도 방문하면서 예전의 테라로사 같지는 않구나 라는 느낌을 받았지만, 본점의 변화는 생각하지 못했었던 터라, 웅장한 외관을 보며 멋있다라며 감탄하기보다는 어서 안으로 들어가 예전의 공간이 남아 있는지 확인하고픈 마음뿐이었습니다.


천장이 낮아 온실의 습기가 빠져나가지 못했던 그곳은 높은 천장과 넓은 공간으로 많은 사람들이 머물 수 있게 됐지만, 소소한 감동을 전달해주는 공간으로 기억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곳곳에 빈티지 스타일의 테이블과 의자를 놓아두었지만 말이죠. 거대하진 테라로사를 보는 순간 왠지 모를 서운함, 섭섭함, 안타까움으로 가득했습니다.


물론,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전까지만.


10년 전처럼 예쁜 커피잔에 담겨 오지는 않았지만, 참 다행이게도 종이컵에 담겨있는 맑고 짙은 갈색의 커피가 풍기는 맛과 향은 그때의 그것과 여전히 이어져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테라로사는 공간도 공간이지만, 커피로 감동을 주는 공간이구나 라는 안도감이 슬그머니 자리 잡았고, 눈에 보이는 아무 자리에 앉아 하루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휴식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최근 읽은 책이 갑자기 기억납니다. 광고대행사 카피라이터인 저자가 속한 팀장은 그 유명한 <책은 도끼다>의 저자여서인지, 모든 대화가 인문학적 사고를 담고 있다는 문구를 읽는 순간 기분이 묘해졌습니다. 그 팀장은 어떤 식으로든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전달해주고 있구나 라는 부러움이 차올랐기 때문입니다.


예전의 테라로사는 없지만, 여전히 커피로 감동을 주는 것처럼,

사소한 대화에서도 인문학적 대화로 감동을 전달해주는 한 팀장처럼,

저 또한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고 싶은 마음입니다만,

상처 주지 않으면 참 다행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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