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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아무개 Sep 06. 2022

[부업으로 청소합니다] 5. 청소에 '사명감'이라뇨?

'죽은 자의 집청소'와 같은 일은 없더라고요

얼마 전에 '죽은 자의 집청소' 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특수청소, 그러니까 자살 현장이나 은둔형 외톨이가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곳을 찾아가 말끔하게 치워주는 그런 청소. 특히 자살 현장을 청소하는 경우가 몇 번 묘사되는데,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쉽게 할 수 없는 일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일을 하는 분들을 우리는 '사명감'을 가졌다라고 이야기하죠.


물론 책을 읽을 당시에는 청소일을 하지 않았기에 청소에 대한 동질감보다는 우리 주위에 소외된 사람들, 외로움에 지치다 못해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고, 그들의 남은 흔적을 묵묵히 정리하는 분들이 있어 참 감사하다 라는 생각 정도밖에 하지 못했습니다. 책을 쓴 저자 역시 독자들에게 청소업에 몸을 담기를 바라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그럼 제가 하는 창고 청소도 사명감이 있어야 할까요? 아직 몇 개월 하지는 않았지만 사무실이나 창고 같은 공간을 청소하는 일에 사명감은 그리 많이 필요하지 않아 보입니다. 단순하게 매일 청소를 한다 그리고 지저분하니 먼지를 닦아낸다 정도. 청소를 하는데 무슨 생각이 많아야 할까요? 안 그래도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클라이언트의 불평불만, 말도 안 되는 요구 사항들에 지쳐 스트레스 가득한 상태로 퇴근했는데, 청소일까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고민을 해야 한다면 아마 오래 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두 번째 출근 후 청소도구를 장착하는 순간, 머릿속에 복잡한 생각들은 사라집니다. 낮 시간 동안 괴롭혔던 업무 생각도 사라지고, 힘들게 만드는 팀원에 대한 불만도 사라집니다. 그저 3층 사무실의 쓰레기통 비우기를 시작으로 2층, 1층 그리고 창고. 이런 순으로 쓸고 닦는 시간 동안에는 귀로 들려오는 라디오 방송의 사연 외에는 방해할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빗자루를 쥐고 있는 순간에는 우에서 좌로 쓰레기를 쓸고 쓰레받기에 담아야 하는 게, 밀대로 바닥 먼지를 닦아내고 있을 때는 바로 앞에 있는 먼지만을 바라보며 발걸음을 옮기는 게 지금 제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다 마지막 지점에 가서 뒤를 돌아보며 나름 깨끗해진 창고 바닥을 바라보며 흐뭇해는 것. 이것이야 말로 두 번째 출근 후 저에게 주어진 미션이자 성취감의 전부입니다.


그럼 안되지만 사무직 직장인들에게 몸 쓰는 단순 작업은 아주 가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일종이 여가 생활과도 같습니다. 가끔 현장으로 지원을 가거나 이벤트 진행 후 배송 박스를 조립하는 일에 투입되노라면, 역시 난 단순작업이 잘 맞아 라며 흐뭇해하는 경우가 더러 있기도 합니다. 말도 안 되는 자신감이라고 할까요? 몸 쓰는 단순 노동일 너무 쉽게 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꼭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직업에 귀천은 없다고 하지만 그걸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건 쉽지 않습니다. 솔직히 저 역시 친한 친구에게 청소일을 한다고 쉽사리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거든요.


사명감은 없지만, 덕분에 복잡한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는 청소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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