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사람의 현실세계관 09
줄곧 뚝심 있게 똑같은 옷만 입었을 때 경험할 수 있는 몇 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인상 깊으면서 여러 번 겹치는 에피소드 한 가지를 얘기해보려고 한다.
과거 몇 번의 회사생활을 했을 때다. 이런 대화가 종종 오갔던 기억이 있다.
"(위아래로 흘겨보며) 자네는... 옷을 안 갈아입나?"
속으로 '뭔 개소리야?'라며 고개를 돌려 음성이 들린 쪽을 바라봤다.
고개를 돌리자 입이랑 옷에서 담배냄새가 찌든 부장급 인사가 생기 없는 표정으로 나를 보며 우두커니 서있었다. 과한 흡연덕에 얼굴빛도 니코틴을 잔뜩 빨아들였는지 회색빛깔에 누런빛도 서려있었다.
"아니요. 똑같은 옷이 여러 벌 있는데요..."
가끔씩 조금 친하다는 동료들도 같은 일에 궁금해할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쓸데없는 TMI를 쏟아내곤 했다. 시대의 위인인 스티브 잡스나 마크 주커버그, 일론 머스크, 크리스토퍼 놀런, 그리고 한국의 위인인 앙드레 김 까지도 항상 같은 옷을 입었다고 장황하게 예를 들어가며 설명했다.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는데도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TMI에 대한 그들의 반응은 매번 비슷했다.
"네가 회사 대표냐, CEO냐?"
비슷한 상황을 여러 번 겪다 보니 한 가지 공통된 사실을 발견했다.
(감히) 나에게 패션을 지적했던 사람들은 단 한 명도 스타일리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들 하나같이 패션계 테러분자 같은 몰골로 다니면서 지적질하는 게 황당했다. 나중엔 헛웃음을 참느라 고생한 적도 있다. 점점 상황이 누적되니 이젠 가볍게 무시할 수 있는 내성이 생겼다.
모름지기 패션은 개인취향이 중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누군가 나의 패션세계를 이상하게 보듯, 나 역시 그다지 멋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패션스타일이 있다. 개인적으로 브랜드의 이름이나 로고가 크게 박혀있는 패션은 굉장히 지양하는 편이다. 'A가 B를 입었다'라는 느낌을 주는 것보다 'B를 A가 선택했다'라는 느낌을 주는 것이 더 힘들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듣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전자는 B라는 브랜드가 강조되는 느낌이다. 후자는 A의 능력이 좀 더 강조되는 느낌이다. 그리고 브랜드보다 그것을 선택한 사람이 훨씬 더 가치가 있어 보인다. 내가 지향하는 바도 그렇다(다만 아직 급이 안될 뿐이다). 중요한 건 옷걸이지, 옷걸이에 걸려있는 옷이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다. 결국 패션스타일의 완성은 '자기만족', 그리고 그것을 받쳐줄 '자존감'으로 완성되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