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아이를 보며 진심으로 웃어줄 수 있을까?
아니, 솔직해져야 했다. 그는 두려웠다. 아이를 사랑하지 못할까 봐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아이를 보며 실패작이라고 느낄 자신의 그 역겨운 마음을 마주하게 될까 봐, 그게 사무치게 두려웠다.
임신 14주 차. 밴쿠버의 벚꽃이 비에 젖어 질척하게 보도블록을 덮어 가던 무렵이었다.
진수는 매일 저녁 수연의 배를 어루만지며 조용히 숨을 골랐다. 아직 태동은 없었다. 하지만 손바닥을 통해 전해지는 미세한 온기만으로도 배 안의 생명은 그의 가슴을 울렸다. 경이로움과 동시에 엄청난 책임감이 밀려왔다. 이 작은 존재를 끝까지 지켜야 한다는 무게가 어깨를 짓눌렀다. 아빠가 된다는 설렘은 달콤했지만, 그 설렘 속에는 늘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함께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작은 것이 나를 닮는다면.’
생각이 스치자마자 손바닥에 식은땀이 배었다. 손을 떼고 싶었지만, 떼지 못했다. 떼는 순간 이 생명이 사라질 것 같은 비이성적인 두려움이 그를 붙들었다.
정기 검진 날. 의사가 며칠 전 찍은 초음파 검사 결과를 들고 들어왔다. 그의 표정이 평소와 달리 무거웠다.
“태아 목덜미에 부종이 관찰됩니다. 전문 병원에서 정밀 상담을 받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순간, 진수의 세상이 얼어붙었다. 청천벽력이라는 말이 이렇게 생생하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머릿속이 하얘지고, 귀가 멍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은 죽음처럼 고요했다. 수연은 창밖만 바라보았고, 진수는 핸들을 쥔 손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힘을 주었다. 불안함 때문에 가슴이 조여들어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며칠 뒤, 두 사람은 유전의학 상담실에 앉아 있었다. 상담사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차분함이 오히려 더 잔인하게 느껴졌다.
“니프트는 안전하지만 확률을 알려줄 뿐 확진 검사는 아닙니다. 양수검사는 거의 100% 정확하지만, 침습적인 검사라 매우 낮은 확률로 파수나 유산의 위험이 있습니다.”
안전하지만 1%의 불확실성을 남겨두는 길과, 위험하지만 0%의 오차도 없는 확실한 진단을 받는 길. 그날 두 사람은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도망치듯 병원을 빠져나왔다.
이후 며칠간 집안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감돌았다. 식탁 위에는 병원에서 받아온 팸플릿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먼저 용기를 낸 건 수연이었다.
“그냥 양수검사 하자. 확실한 게 낫겠어. 남은 기간 내내 불안해하면서 떨고 싶지 않아.”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지만, 눈빛은 결연했다. 애매한 희망 고문보다는, 잔인하더라도 명확한 진실을 마주하겠다는 의지였다. 진수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이미 아이를 위해 용기 내어 한 발을 내디딘 아내 앞에서, 여전히 두려움 속에 웅크리고 있는 자신이 초라했다. 죄책감이 뜨거운 쇠꼬챙이처럼 목구멍을 찔렀다.
검사 당일. 병원의 처치실은 서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의사가 소독약을 바르자 하얀 배 위로 차가운 갈색 얼룩이 번졌다. 곧이어 진수의 눈에도 공포스러울 만큼 길고 굵은 주삿바늘이 들어왔다. 진실을 확인하기 위한 대가치고는 지나치게 날카롭고 거대해 보였다.
“조금 따끔합니다.”
바늘이 수연의 배를 뚫고 들어갔다. 수연의 미간이 고통으로 찌푸려졌다. 그녀는 비명 대신 진수의 손을 으스러지도록 꽉 움켜쥐었다. 손톱이 살을 파고들었다. 진수는 그 고통마저 고맙게 느껴졌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수연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나눠 가지는 기분이었다.
양수가 주사기 안으로 차올랐다. 노란 액체가 천천히, 너무 천천히 움직였다. 진수는 그 액체를 바라보다가 결국 고개를 돌렸다. 속이 울렁거렸다.
주삿바늘이 빠져나가고, 수연의 배 위에는 작은 반창고 하나가 붙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모든 절차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채취된 양수는 미국의 랩으로 항공 배송된다고 했다. 결과를 확인하기까지 필요한 시간도 길었다. 빠르면 2주, 늦으면 3주.
기다림의 시간은 지옥이었다.
밤마다 진수는 눈을 감아도 잠이 오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생각들이 독버섯처럼 피어났다.
'내가 너무 늦게 가진 탓인가. 내가 더 일찍 용기를 냈더라면. 내가 수연이 말을 좀 더 일찍 들었더라면'
자책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기어이 가장 두려운 상상에 도달했다.
'만약 아이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다면?'
머리로는 ‘어떤 아이든 사랑해야 한다’고 되뇌었지만, 가슴은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자신의 부모는 진수가 완벽한 모범생이기를 원했다.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때마다 느꼈던 그 서늘한 시선. 진수는 그것이 끔찍하게 싫어서 도망쳤다.
그런데 지금 진수는 상상 속의 아이를 두고 저울질을 하고 있었다. 다운증후군을 가진 아이. 남들과 다른 외모, 평생 부모의 돌봄이 필요한 아이.
‘나는 그 아이를 보며 진심으로 웃어줄 수 있을까? 사랑해 줄 수 있을까?’
아니, 솔직해져야 했다. 그는 두려웠다. 아이를 사랑하지 못할까 봐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아이를 보며 실패작이라고 느낄 자신의 그 역겨운 마음을 마주하게 될까 봐, 그게 사무치게 두려웠다.
진수는 옆에 누운 수연을 돌아보았다. 그녀는 돌아누운 채 얕은 잠에 들어 있었다. 며칠 사이 앙상해진 그녀의 등. 자신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울 테지만, 뱃속의 아이를 위해 애써 담담함을 유지하려는 그녀의 등이 위태로워 보였다.
문득 진수는 또 다른 공포를 느꼈다.
'우리는 괜찮을까?'
이 낯선 타국 땅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유일한 피난처였던 우리였다.
'하지만 만약 감당할 수 없는 불행이 닥친다면?'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우리가 쌓아 올린 이 작은 모래성이 무너져 내린다면?'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우며 서로를 탓하고, 지쳐가고, 끝내 서로를 증오하게 되는 미래. 가장 안전했던 아내와의 관계마저 망가질지 모른다는 상상이 진수의 목을 조여왔다.
마침내 결과를 받는 날.
병원 복도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심장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상담실 문을 열자 공기가 납덩이처럼 내려앉았다. 상담사가 서류를 내려놓으며 한 박자 쉬었다. 그 한 박자가 진수에게는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다.
“결과 나왔습니다.”
진수는 숨을 참았다. 상담사의 다음 말이, 마치 물속에서 들리는 소리처럼 느리게 다가왔다.
“완전히 정상입니다. 유전자 결함 없고, 모든 염색체 정상이에요. 축하드려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온몸의 긴장이 한꺼번에 무너졌다. 무릎 안쪽이 순간적으로 힘을 잃어 살짝 휘청였다. 가슴 한가운데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르는 느낌. 숨이 아니라 울음이 먼저 터져 나왔다.
“... 정말입니까?”
목소리가 갈라졌다. 수연의 어깨가 들썩이기 시작했고, 곧이어 작게 끊어지는 흐느낌이 터져 나왔다. 진수는 그녀를 힘껏 끌어안았다.
“다행이야...... 다행이야......”
그는 주문처럼 반복했다. 그 말은 단순한 안도가 아니었다. 오랜 시간 가슴 깊숙이 쌓여 있던 공포, 죄책감, 자기혐오, 수연에게 미안해서 죽을 것 같았던 마음이 눈물과 함께 쏟아져 내려 눈을 흐렸다.
수연이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우리 아기...... 괜찮대......”
그 한마디에 진수의 눈물이 둑 터지듯 흘러내렸다. 그 순간만큼은 어떤 걱정도, 미래에 대한 불안도 없었다. 그저 건강하게 엄마 뱃속에서 자라고 있는 생명이 고마울 뿐이었다.
‘아기야 건강해서 너무 고마워. 엄마 아빠가 너를 꼭 행복하게 해 줄게.’
병원을 나설 때까지 두 사람은 맞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병원 밖 보도블록에는 여전히 젖은 벚꽃잎들이 흩어져 있었지만, 그날만큼은 그 분홍빛이 처연하지 않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비 개인 하늘 사이로 밴쿠버의 햇살이 희미하게 비치고 있었다.
밴쿠버의 긴 밤, 당신이 건넨 온기 한 잔. 이방인의 삶은 때로 서늘합니다. 여러분이 보내주시는 커피 한 잔은 글을 써 내려가는 제게 가장 든든한 난로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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