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평교달 Oct 21. 2021

브런치 작가는 아무나 하나

아무나 한다.

퍼스널 브랜딩의 꽃은 바로 글쓰기이다. 누구나 자기의 인생이 책 한 권의 이야기는 될 거라 믿는다. 나 역시 국제학교 교사 경력을 바탕으로 자녀 교육에 관련한 글을 쓰는 것이 꿈이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던가? 시작은 그렇게 힘든 일이다. 일의 반을 차지하는 일 아닌가.

20년 전 영국에 거주하면서 나는 소소한 블로그를 운영했었다. 기억도 안나는 플랫폼이었지만, 나는 매일 영국에서의 일상을 적었다. 그 당시에는 유튜브도 네이버 블로그도 없었다. 삐이이이 소리가 나고 천리안으로 이어지는 인터넷 세대를 막 지나, 웹을 통해 정보를 찾기 시작한 사람들이 늘기 시작한 때였다. 나의 매일 일상은 영국으로 유학을 오려는 사람들에게 공감을 받았고 생생한 정보를 전해주는 전달자가 되었었다.

그 후 자녀를 출생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10년을 돌아 돌아 살다 보니, 바쁘고 고단한 삶을 나눌 여유가 없었다. 2006년 다시 블로그를 해보자 생각하고 글을 한 편 쓰고는 거의 10년을 방치했다.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힘든 삶을 살았다. 그러나 그 치열했던 삶을 살면서 나는 공부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공부를 계속했다.



다시 글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대학원이 거의 끝나가는 시기였다. 논문 시험을 준비하면서 나는 또다시 다음 공부는 무엇을 할까 생각하고 있었다. 평생 학습 금단 현상이랄까? 공부를 끊으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러다 우연히 유튜브의 알고리즘을 통해 브런치라는 글 쓰는 사람들의 플랫폼을 알게 되었다. 아, 일단은 브런치 작가가 되려면 블로그를 해야 하는 거구나.. 지원할 때 내가 쓴 글을 올려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나는 방치되었던 내 블로그의 빗장을 열었다. 


일 년에 한두 개의 글을 쓴 흔적을 발견했지만 어느 글 하나 브런치 작가 지원에 낼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그럼 내가 무엇부터 쓸 수 있을까 생각했다. 누구나 책으로 쓸 사연은 있는 법. 내 인생의 빅 이벤트에 맞춰 인생을 돌아보았다. 

10년 단위로 내 인생의 키워드를 적어보았다. 아, 내가 쓸 이야기는 이거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고, 글이 10개 조금 넘었을 때 브런치 작가에 지원했다. 그래, 그렇게 무모하게 지원했다.

유튜브나 다른 블로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작가가 되는 것 자체가 어려운 관문이란 걸 알게 되었다. 4수, 5수는 기본에다 브런치 작가가 되는 법 강의를 팔기도 하더라. 나는 내 마음속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이제껏 숨어 지냈던 네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고. 브런치 작가가 목표가 될 수는 없지만 내 라이프 롱 저니에 있는 버킷리스트 중 하나는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일 년에 책 52권 읽기 미션을 하면서 느끼는 점을 나의 삶과 연관 지어 글을 몇 편 썼고, 그 글을 카피 앤 페이스트 하여 지원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하루 만에 합격 통지를 받았다. 하루 만에. 그렇다. 하루 만에.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경단녀로, 다시 세상에 나와 파도를 타는 20년 인생을 누군가 인정해 주는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그 많은 유튜버들과 블로거들에게 " See, see?" 하면서 자랑하고 싶었다. 교사로서의 인생과 더불어 작가로서의 타이틀을 단 기분이었다. 작가라니. 블로그에 글 몇 편을 써서 지원했을 뿐인데 책을 수백 권 쓴 작가처럼 가슴이 뛰었다.



브런치 작가가 된 이후, 나는 브런치에 있는 글들을 읽기 시작했다. 자신의 삶이 녹아든 훌륭한 메시지를 담은 에세이들. 전문가 못지않은 글을 쓰는 전문가들. 글들을 읽으면서 나는 이제 막 마당을 나온 암탉이 수많은 족제비들이 판치는 야생으로 첫 발을 딛고 정신줄을 놓는 상태가 되었다. 작가가 된 이후 나는 자신감을 잃었다. 블로그에 끄적거려도 이웃이 몇 명 없던 터라 남들이 내 글을 보고 판단할 일이 없었다. 그러나 브런치는 판이 다르다. 아무렇게나 일상을 올릴 수 있는 블로그와는 차원이 다른 세계인 것 같았다.


6월 중순에 작가가 되고 난 후 나는 거의 세 달을 글을 쓰지 못했다. 블로그에 일상을 쓰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쓸 수 없게 길을 잃었다. 자신감을 상실한 것이다. 저 레드오션에 내가 과연, 이 글 솜씨로 세상에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누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기나 할까? 헛짓을 한 것 같은 자괴감에 대학원 졸업 시험을 본 후 나는 내 평생 학습의 방학을 맞았다. 직장도 마침 방학이었고, 대학원도 졸업 전까지 맞는 마지막 방학이었다.

코로나로 학교는 온라인으로 종업식을 하고 어디 하나 자유롭게 나갈 수 없는 코로나 재확산 시기를 맞았다. 낭랑 벽이 있는 나는 집안에 갇혀 그저 책을 놓지 말자 생각으로 하루에 한 권 이상 책을 읽었다. 한국 문학부터 자기 계발서, 심리학, 최신 트렌드, 책 쓰기 비법을 알려주는 책 등을 그저 닥치는 대로 골라 읽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돌아가신 엄마가 꿈에 나왔다. 엄마는 이사를 간다며 엄마의 자개장에서 물건들을 꺼내고 계셨다. 꺼내놓은 물건을 들여다보니 엄마가 썼던 벼루며 붓이 있었다. 자세히 보니 한두 개가 아니었다. 엄마는 나에게 쌓여있는 벼루를 꺼내 주셨다. 그저 웃으며 그 무거운 벼루를 모두 나에게 주셨다. 

엄마를 꿈에서 보면 늘 운다. 별말씀을 안 하셔도 안다. 엄마는 꿈에서도 나를 걱정하신다. 그런 엄마가 나에게 준 벼루는 어떤 의미였을까? 꿈해몽을 찾아보니 뭔가 좋은 꿈인 건 같은데 혹시 놓았던 캘리그래피를 다시 하라는 말씀이신 건가? 며칠 뒤 언니들과 통화를 하다 엄마 꿈 이야기를 했다. 언니들이 다양한 해석을 해주었는데, 둘째 언니가 한 말이 갑자기 귀에 들어왔다. "엄마가 너 글 쓰라고 하시는 거 아니야? 벼루에 먹을 많이 갈아서 네 이야기를 쓰라고." " 응? 나 브런치 작가도 됐는데, 글은 안 쓰고 있었어." 


정말 그랬던 걸까? 꿈보다 해몽이라고 어쩌면 나는 내가 다시 글을 써야 하는 이유를 찾아 헤맸었는지도 모른다. 왠지 브런치에 올리는 첫 글은 엄마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드리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잘 살고 있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의 브런치 작가로서의 글쓰기가 시작됐다. 

늘 핑곗거리를 찾고 게을러지지만, 그래도 무언가 쓰기 시작했다. 브런치 작가는 아무나 하는 것인가. 여기서 말하는 '아무나 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것이라 얕잡아 보는 것인가? 아니다. 브런치 작가는 아무나 할 수 있다. 그 '아무나'는 아무나 가는 똑같은 인생의 길을 가지 않는다. 어느 하나 똑같은 인생을 사는 사람은 없다. 그 수많은 길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브런치에 있다. 나도 내가 살아온 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다. 그렇게 먼저 산 인생의 지도를 그려 사람들에게 나누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바로 브런치다. 

닥치고 써보자. 문장의 호응관계가 조금 안 맞으면 어떠랴. 나는 이미 이 글을 쓰면서 인생의 지도를 바르게 그려나가려고 노력하고 있지 않은가. 

이전 07화 멀고 먼 여정-승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