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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교달 Sep 26. 2021

엄마가 죽던 날-1

엄마, 난 아직 할 말이 남았어.

엄마, 거기서 잘 지내?

엄만 당연히 천국에 갔을 거야. 엄마처럼 살았는데 못 간다면, 그 따위 천국을 믿는 종교는 때려치우고 난 오늘부터 무신론자가 될래. 그러니까 천국에 있다고 말해줘. 그래야 아빠가 내는 헌금들이 무의미하지 않으니까. 엄마가 그렇게 평생을 좋아하면서도 미워한 아빠는 오늘도 건강하셔. 생각해 보면 평생을 통틀어 아빠와 내가 말을 섞은 시간은 아마 1년이 채 되지 않을 것 같아. 어쩌면 나도 엄마처럼 애증의 눈으로 아빠를 보았던 걸까? 요즘도 내가 전화만 걸면 바로 응답기에 녹음해 놓은 듯한 목소리로 " 난 괜찮다."라고 하셔. 어쩔 땐 나는 어떻게 사는지 듣기도 싫으신 것 같아. " 난 안 괜찮아요 아빠!"라고 하면 못 알아들으시는 척하실걸? ( 못 알아들으시긴 하지만... 보청기는 절대 안 하셔. 안 멋있대.) 엄마는 늘 " 괜찮아?"라고 먼저 물었는데 이젠 그렇게 묻는 사람이 없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내 벌건 상처를 보여주지 않는다면 난 늘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겠지? 


엄마, 엄마 기일이 한 달 남았네. 

잔소리 대마왕, 늘 잘하고 살아라 잔소리 늘어놓더니, 엄마는 왜 다른 엄마처럼 오래오래 안 살았어? 엄마가 선택한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좀 잘 살지. 티브이에 나오는 114살 먹은 할머니가 덥석덥석 물건 집어 옮기고 진지 드시는 모습을 보니 갑자기 엄마가 원망스러워졌어. 태어나며 엄마랑 울음으로 인사했지만 또다시 울음으로 작별 인사를 하고 싶지 않았어. 엄마가 오래오래 내 삶을 함께 걸어줄 줄 알았어. 


엄마가 죽던 날, 비가 엄청 왔어. 엄마도 비가 오는 거 봤어? 하늘로 올라가면서 우산은 필요 없었지? 

엄마가 조용히 세상을 떠나던 그 시간 난 엄마 옆에 없었어. 바로 전날까지 이틀 밤을 엄마랑 함께 했는데, 언니랑 바통 터치한 그다음 날 돌아가셨더라? 드라마에서나 본듯한 임종 못 지키는 자식의 모습이 나라는 게 자존심이 상했어. 정신을 놓기 전까지 나는 알아봤잖아. 난 엄마에게 특별한 딸이었잖아. 특별하게 마음 쓰이게 한 딸이었잖아.....



아침 일찍 걸려오는 핸드폰 소리. 벨 소리만 들었는데 용건을 다 알 것만 같은 그 순간.

" 엄마 방금 돌아가셨어. 얼른 병원으로 와" 

입던 잠옷 그대로 달려갔으면 엄마가 또 그러셨겠지. " 너 옷이 이게 뭐냐?"  그래도 다행히 언니들이 며칠 전에 준비해준 검정 고무줄 바지랑 티가 있어서 옷 속에 몸을 집어넣고 분당으로 달려갔지. 가는 내내 비가 와서 속도를 내지 못하는 아저씨를 재촉하지 못했어. 재촉한들 엄마는 이미 죽었잖아. 숨죽여 우는 내 모습을 안타까워하는 기사 아저씨는 그날 최선을 다했어. 전화받은 지 한 시간도 안돼서 엄마 병실에 도착했으니까. 

언니들과 아빠가 엄마를 옆에 두고 아침 식사를 하는 그 순간 엄마는 아무 말도 없이 떠났어. " 나 간다~"라고 하면 밥 먹다 체할까 봐 그랬어? 아님 엄마 장례 치러야 하니까 먹던 밥이라도 다 먹고 기운 내라고 조용히 간 거야?

그럼 나한텐 왜 말 안 하고 갔어? "손이라도 잡아 줘, 나 무서워" 아님, " 고생했다 아가, 엄마가 너를 위해 기도 많이 할게." 아니지, "너 좀 잘하고 살아." 잔소리 한번 더 해주지.  




엄마한테 갔을 때 엄마는 병원에 들어올 때 입었던 싸구려 폴리에스테르 노랑 블라우스와 회색 바지를 입고 있었어. 엄마, 집을 떠나 병원에 입원하던 날, 엄마는 알았어? 엄마가 입고 가는 그 옷이 엄마가 이승에서 입게 될 마지막 옷이었던 거. 좋은 옷 다 놔두고 하필 그 옷을 입고 있었어도 엄마는 예쁘더라. 엄마, 엄마가 죽었다는데 엄마는 아직 따뜻했어. 엄마 머리, 엄마 등, 엄마 엉덩이 구석구석 만지고 안았는데 엄마는 그저 곱게 자고 있는 것 같았어. 언니가 엄마 손에 쥐어 준 예쁜 꽃다발과 어울려 엄마는 너무 예쁘더라. 예쁜 엄마 옆에서 세상에 하나뿐인 내 편이었던 사람을 잃은 못난 딸은 그저 엄마를 부둥켜 안고 놓고 싶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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