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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비 Mar 22. 2016

덩달아 아빠도 달린다

'무슨 사진이 초점도 잘 안맞고 흔들렸어...'

왜 이런 사진이 찍혔는지를 설명해보겠다.

태양이 뉘엇뉘엇 져가기 시작하는 시간에 한 가족이 공원으로 나들이를 나왔다. 호수 가운데 조그만 인공섬을 만들고 마치 미로처럼 다리를 사방으로 연결해 놨는데, 아이들 눈에는 재미난 놀이터가 아닐 수 없다. 
이 아이는 저만치에 그곳으로 건너갈 수 있는 조그만 나무 다리를 발견하고 뛰어가고 있는 중이다. 사진을 찍는 아빠도 이 아이와 함께 뛰고 있다. 

여섯 살난 이 꼬마가 무서운 속도로 뛰어갈 때 아빠는 잘 가라고 손흔들고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형편이 아니다. 이 아이가 저 허술해 보이는 나무 다리를 무사히 잘 건너는지도 봐야하고 잰 걸음으로 여기저기를 싸돌아다니다가  길을 가족들과 동떨어저지지는 않는지 혹은 난간에 기대 서 있다가 무거운 균형을 잃고 무거운 머리를 물 아래로 향하게 만드는 불상사가 생기지 않는지를 지켜봐야하기 때문이다. 

무거운 사진기를 들고 배나온 중년 아저씨가 신이난 난쌘돌이 아들을 헐레벌떡 쫓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일줄을 상상해보라. 예고도 없이 천진난만한 얼굴로 마구 뛰어가는 아들의 흥을 깨고 싶지 않아 무거운 몸을 던져 애를 쓰며 따라가기 때문에 사진은 흔들릴 수 밖에 없고 촛점도 살짝 안맞게 찍힌 것이다. 

아빠는 아들이 바빠지면 덩달아 바빠진다. 아들은 혼자 즐거운 시간을 만끽하고 있지만 매의 눈으로 그를 주시하고 있는 아빠의 존재를 정확하게 인식하지는 못한다. 한마디로 철모르는 어린애지만, 그래도 기특한 것은 마음 한구석에는 언제든 자기가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 '짠'하고 나타나는 아빠라는 존재를 잊지 않기 때문이다. 

그 아이에게는 아빠가 힘도 세고 뭐든지 척척 다 해내는 슈퍼맨이며, 자기를 적에게서 구해내는 정의의 용사이기 때문에 있는 듯 없는 듯 아빠를 대하는 것 같아도 가끔식 아빠의 존재감을 느끼게 만든다. 
이 아이가 더 자라 성숙해지면 지금 같지는 않을 것이다. 인격적으로 더 친밀해져서 아빠의 마음을 이해하려 들 것이며, 툭하고 던지는 몇 마디 말때문에 아빠는 감격해할 날이 오고야 말 것이다. 

아빠는 지금도 흥미거리에 온 맘이 팔려 아무 것도 개의치 않고 달려나가는 아들 옆을 함께 달리고 있다. 

그 아빠가 있어 행복한 아들은 아빠의 마음을 좀 더 헤아려야 더 멋진 아들로 거듭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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