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비 Mar 28. 2016

혹독한 고난 속에 피어나 더 아름다운 꽃

남들은 모두 거기 떨어진 씨앗이 싹도 못 틔우고 그냥 죽어버릴 것이라고 말했다. 

정말 암울하기만 했다. 뜨거운 태양이 작렬하는 여름을 견뎌내려면 충분한 물과 뿌리를 깊게 내릴 수 있는 흙이 있어야 하는데 주변은 온통 콘크리트만 있었다. 

이 씨앗은 더 좋은 환경이 준비된 곳으로 옮겨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도저히 살아남을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무 작아 찾기도 어려운 이 작은 씨앗을 누가 옮겨준단 말인가? 그렇다고 민들레 씨앗처럼 날개가 달린 것도 아니고...

낙심한 씨앗은 자포자기 상태로 한숨만 쉬면서 그냥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그런데, 어디선가 살랑살랑 불어온 봄바람에 데굴데굴 굴러 시멘트 블록이 만나는 작은 틈에 빠져들게 되었다. 이제 더는 물러설 곳이 없는 상황이 되자 씨앗은 이를 굳게 악물고 그곳에서 살아남아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죽기 살기로 노력한 덕에 길고 얇은 뿌리를 저만치 내려가며 이파리를 내는 데 성공을 했다. 꿈쩍도 않는 시멘트를 밀어낼 기세로 날마다 조금씩 뿌리를 사방으로 뻗어갔다. 


하늘도 무심하지 않았는지, 때마다 적절하게 비가 내리고 따스한 햇볕을 받아먹고

아름다운 꽃을 피어내는 데 성공하였다. 




어느 여름날, 아침 일찍 아이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러 나갔다. 

집에서 20여 km 떨어진 이웃 도시까지 다녀오는 길인데, 멀기는 해도 서울 도심을 벗어나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바람을 맞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한 절반쯤을 지나고 있을 때 무더운 여름을 내모는 짧은 소낙비가 내렸다. 고가 다리 밑에서 잠깐 비를 피하고 나니 금세 해가 떠올랐다. 한참 동안 달려야 하는 시멘트 길에서 반가운 손님을 만났다. 


수 백 미터가 넘는 그 길 전체에 딱 세 송이의 나팔꽃이 피어 있었는데, 갑자기 쏟아진 여름 비를 머금은 그 모습이 마치 수채물감으로 그린 그림 같았다. 


흙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척박한 시멘트 틈에서 어찌 자랐는지 알 수 없는 나팔꽃 덩굴이 솟아나와 이렇게 예쁜 꽃을 피워내다니 대견스럽기만 했다. 길가던 사람을 불러내 멈추게 만드는 이 신비한 꽃이 사랑스럽지 않은가?

이 꽃이 더 아름다운 것은 유독 혹독한 환경 속에서 꽃을 피웠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과 자전거가 지나다니는 길에서 찾아보기 어려울 예쁜 꽃을 피웠으니 그 가치가 높은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하찮게 보이는 들풀도 아름답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