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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Apr 17. 2023

행복의 기준

기준이 낮다는 건 참 다행이다.  

잠깐 비가 내렸다. 예보에서는 비가 온다는 소식이 없었는데 빗방울이 토독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산이 없어서 근처 상점 처마 아래에서 잠시 비를 피했다. 잠시 멈춰 있는 쉼이 좋다고 느껴졌다. 

비는 곧 멈췄고 다시 길을 나섰다. 하늘이 말끔히 씻긴 것처럼 청량한 느낌이었다. 도로 주변에 있는 나뭇잎의 초록빛도 어쩐지 더욱 선명해진 것 같다. 풀내음도 코끝을 스친다. 한옥으로 구성된 마을은 정갈한 느낌이었고 이런 곳을 왜 와보지 않았었지? 스스로에게 의문을 가질 정도로 좋은 느낌이었다. 길 주변으론 다양한 인테리어의 카페들이 있고 그 안에 사람들이 각자의 주말을 즐기고 있다. 다정해 보이는 연인,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워하는 친구, 연세 지긋한 노부부까지. 누군가는 길가를 여유롭게 걷는다.

그 선명한 느낌을 남기고 싶어서 순간순간 사진을 남겼다. 눈으로 직접 보는 것만큼의 감동을 다 담아내진 못 하더라도 나중에 지금 이 순간이 기억날 것 같다. 같이 했던 사람들의 표정도.


특별할 것은 없지만 특별한 어느 주말 오후였다. 잔잔한 행복이다. 




필리핀에 NGO 활동가로 지냈을 때다. 

한국에서 마닐라로 마닐라에서 민다나오로. 라긴딩안 공항에 내려서 활동가들이 머물 수 있는 센터로 이동했다. 필리핀 도착 후 차량을 타고 가며 내가 처음으로 느낀 마음은 놀라움이었다. 

공항에서 출발하여 점점 센터로 가까워져 갈수록 창밖 풍경들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아스팔트가 그나마 깔려있던 도로에서 흙길로, 페인트 칠이 되어 있던 콘크리트 건물에서 페인트가 없는 콘크리트 건물로, 마지막엔 얽기 설기 나무판자로 엮어 놓은 것 같은 집으로.

자연의 풍경은 시골풍경처럼 생각할 수 있었지만 집의 모양새가 자뭇 충격적이었던 것 같다. 

(나중에 인도를 가서는 이 상태보다 더한 집을 봤다.) 외부 화장실로 사용하기에도 어려울 것 같은 공간인데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니... 그때 나는 꽤나 충격을 받았다. 할아버지 할머니 혹은 우리 부모님 세대가 아주 어릴 때는 이렇게 살았단다 하던 어려운 시절의 모습이 펼쳐졌다. '21세기에 이런 곳이 지금도 있구나.'하고 생각했다. 


아마 누군가는 한국에도 여전히 그런 곳이 있다고 말할 것이고, 필리핀은 그나마 상황이 더 나은 편이고 다른 더 어려운 나라들도 많다고 알려줄 것 같다. 어쨌든 그때 나는 필리핀에서 그 모습을 실제로는 처음 봤던 거다.  

 

필리핀 마닐라만 하더라도 고개를 뒤로 엄청나게 젖혀야 그 끝을 볼 수 있는 고층 빌딩부터 한국 못지않게 세련된 건물들이 즐비했지만 소외되어 있는 민다나오 섬, 그것도 소외되어 있는 마을의 모습은 전혀 달랐다. 


필리핀은 종교와 민족이 다양하다. 과거 스페인의 식민지 시절 당시 종교를 활용해 식민지 정책을 펼쳤고 기독교가 기득권을 잡았다. 무슬림들은 식민통치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자연스레 소외되었다. 

민다나오는 그들이 거주하게 된 섬이다. 현재까지도 가장 빈곤한 섬인 민다나오는 내가 갔을 당시에도 1인당 GNP가 1000달러 미만이었다. 평균 수명은 가장 낮은데 문맹률은 가장 높은 곳이다. 그러나 필리핀 정부 차원에서 민다나오에 살고 있는 원주민과 이슬람교도, 무슬림들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열악했다. 그러다 보니 지역 간, 종교 간 갈등이 심화되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우리는 민다나오에 평화의 씨앗을 뿌리는 마음으로 "아이들은 제때에 배워야 합니다."는 단체 이념 아래 열악한 원주민과 무슬림 지역의 교육 환경을 개선하는 활동을 했다. 평화를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우선 문맹퇴치가 중요한 사안이라고 봤다. 그 목표로 학교 건축을 시작했었고, 지역군청과 협력하여 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우리 단체가 건축에 필요한 자재를 제공하면 군청은 기술 지원과 인력 지원을 한다. 


기아, 질병, 문맹퇴치를 통한 국제 구호. 


우리 단체는 오지 마을에 학교 짓는 것을 지원했다. 아이들이 학교를 가기 위해서 몇 km 거리를 걸어야 하는 경우들이 많았고, 그 속에서 쉽게 범죄에 노출되기도 했다. 형편이 어려운 마을 주민들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일을 시켰다. 당장 교육을 받는 것보다는 돈을 버는 것이 이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본인들이 그런 교육을 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근처 농가에서 일을 시키거나 아니면 근처 산에 밭을 만들어 농작물을 키우게 하기도 했다. 한창 배우거나 놀아야 할 시기에 고사리 같은 손으로 무슨 일이든 하고 있다. 그 아이들이 배워야 할 그 시기에 제 때 교육을 받지 못한다면 아이들 인생의 선택지에서 다른 것은 모색해 보기 어려울 것이다. 


민다나오 섬 모든 구역을 다녀본 것은 아니지만 내가 가는 곳에 평지에 좋은 땅들은 거의 다 델몬트 회사에서 파인애플 농사를 짓고 있었다. 커다란 몸통의 농약 기계가 팔을 길게 뻗고선 그 팔 곳곳에서 농약을 잔뜩 살포한다. 예전 식민지 시절에 거의 공짜에 가까운 금액을 지불하고 100년 이상 땅 계약을 한 뒤로 계속 그렇게 이용하고 있는 거다. 델몬트가 파인애플이든 바나나든 농사를 짓고 있는 땅들은 그 생명력들이 거의 사그라들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평지 땅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고 형편이 어렵거나 오지에 살면 살수록 가파른 산등성이에 옥수수를 심는다. (북한의 민둥산이 생각났다.) 


어쨌든 상황이 이렇다 보니 무엇이든 언제든 심으면 잘 자랄 수 있는 기후적 조건이 있어도 이들은 가난하다. 척박하고 연구를 해야 하는 환경이 아님에도 이들은 가난하다. 이들의 가난을 단순히 게을러서 노력하지 않아서라고 폄하하긴 어렵다. 


이런 사람들의 삶을 가까이 가서 살펴보다 보면 더 많이 가지지 못해서 헐떡거리던 내 모습이 돌아봐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잘 곳도 있는데... 심지어 그 집이 비도 새지 않는다.  

먹을 것도 있다. 있기만 한 게 아니라 먹고 싶은 것을 골라서 먹을 수도 있다.  

입을 옷도 있다. 더욱이 이 부분은 생존의 영역이 아니고 어떤 디자인을 입을지까지 고려하면서 입을 수 있다. 무엇을 더 바랄 게 있을까? 근데 나는 뭘 더 바라는 걸까? 



그곳에서 생활이 적응이 되어가니 사람들의 면면을 살피게 된다. 

무엇보다도 가장 인상적인 건 사람들 표정이 굉장히 밝다는 것. 학교 건축 점검을 위해서 공사현장을 다닐 때 가장 심각한 얼굴을 한 사람은 나뿐이다. 자재를 사러 시내로 나가서 상점을 가도 그렇다. 심각한 건 나뿐이다. 살면 살수록 그 점이 계속 걸렸다. 

어렵다는 사람들을 지원한답시고 그곳에 살고 있는 한국인. 그런데 표정은 제일 밝지 못 한 한국인.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삶의 행복은 물질적인 것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는 건 이때부터 느끼기 시작한 것 같다. 

객관적이든 주관적이든 누가 보더라도 그들이 가진 것보다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월등히 많았다. 심지어 배울 수 있는 기회도 말이다. 초등학교도 가기 어려운 그 사람들 비해 나는 대학까지 아무 문제 없이 잘 졸업했다. 


더 많은 것은 가졌지만 그때 내가 그들보다 가지지 못했던 건 '지금 이대로 좋다.'였다. 

지금 이대로도 문제없는 삶. 발전을 해나가는 방향으로 가지 않겠다는 건 아니지만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이 삶에 감사하면서 불만을 가지지 않는 것. 


오지 마을을 다니면 어디든 굉장히 고마워하면서 해맑게 웃어준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현재의 삶을 비관하지도 않는다. 불만을 가지거나 불평하지 않았다. 이 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고, 그 점이 나와의 차이였던 것 같다. 


예전엔 행복은 뭔가 짜릿하거나 엄청난 기쁨이 있거나 솟구치는 희열을 느끼는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런 자극적인 순간들은 인생에서 그렇게 많지 않아서 결론적으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대신 남과 비교하면서 불평불만을 할 일들은 많았다. SNS를 통해서 올라오는 소식들을 보면서 질투의 감정을 느끼며 비교하고 혹은 좌절을 하기도 했고, 매체를 통해서 보이는 화려한 것들과 평범한 내 일상을 비교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정말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었다. 파랑새는 내 곁에 있었다. 

행복의 기준이란 게 팍 낮아졌다. 


지금 슬프거나 우울하거나 괴롭거나 미움이 생긴다거나 긴장되거나 불안하거나 불편한 것이 아닌 모든 상태는 사실 괴롭지 않기 때문에 그 자체가 행복이다. 소소하게 흘러가는 모든 일상은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180도 다르게 다가온다. 

행복한 일이 많다. 지금 괴롭지 않으니 행복하고, 같이 밥 먹을 수 있는 동료들이 있어서 행복하다. 산책을 할 수 있어서 행복하고, 푸른 하늘을 봐서 행복하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는 행복하다.


이 아이들이 사는 마을은 3시간 정도 산을 오르면 만날 수 있다. 미끄러운 구간이 많아서 나는 등산화를 신고도 계속 넘어지기 일쑤였는데 아이들이 쪼리를 신고 나보다 5배는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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