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아 Apr 09. 2023

'대충'의 역사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이건 스스로 부끄러워서 쓰는 자기반성의 글이다. 

그리고 이 습관으로 인해 소중한 순간들을 

얼마나 흘려보냈을지 모른다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앞으로의 다짐을 남기는 글이다.



유서가 깊다. 내 대충의 역사  


자각은 하고 있었는데 깊은 마음으로 인정하기가 어려웠을 수도 있다.


내가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들으면서 상대방 이야기가 그다지 집중하고 있지 않은 순간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상대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보다 훨씬 생산적이고 시급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

주의가 산만해져선 경청하는 자세가 아니라 대충 듣고 있는 모양새다. 

그 사람의 말투나 표정에서 느껴지는 감정들을 공감하는 데엔 에너지가 든다는 생각도 기저에 깔려 있다. 

손에 스마트폰을 들었다 하면 백발백중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스킬 시전 중인 거다. 


최근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다 내 얼굴에 침 뱉기 같은 고백이지만...

누군가 먹을 떡을 챙겨준다고 락앤락통에 담아뒀었는데 그 사람이 떡을 먹지 않았다.

그 떡은 상온에서 2-3일 간 방치되었고 결국 곰팡이가 폈다. 

왔다 갔다 하면서 내 시야에 걸렸으나 충분히 치우거나 조치를 취할 수 있음에도 

역시나 대충대충 흘려봤다. 

나중에 곰팡이가 핀 떡을 발견하고선 또 대충 처리하고자 하는 마음이 올라오는 걸 봤다.

이런 마음의 습관이란. 


업무를 할 때도 그렇다.

근래까지는 굵게 굵게 기획을 잡고 일을 진행하면 세부적인 것들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메워줬었다.

크게 크게 방향을 잡고 가면서 이쯤 하면 됐지 하면서 세세하게 챙기지 않은 부분들이 있었다.  

일을 하면서 불편함도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다 도와주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최근 업무 조정을 하면서 이제는 내가 세부적으로 꼼꼼하게 살피고 챙겨가야 할 것들이 늘었다. 

그러니 당장에 내 이 대충 하는 부분들이 스스로 점검됐다.  

이제까지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살아왔구나 깊은 반성이 된다.  

하물며 신문 보도 내용 스캔을 할 때도 좀 더 세심하게 디테일하게 챙겨볼 수 있을 텐데 

그냥 빨리 하고 싶은 마음으로 디테일은 전혀 연구하지 않고 빠르게 처리했다. 

내가 팀장으로 있을 때 부서원들에게 왜 디테일을 챙기지 않고 연구를 하지 않냐고 속으로 불만이 많았는데

내가 딱 그렇게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흠칫 놀라게 된다. 


명상을 할 때도 그랬다. 

수련을 들어가면 보통 사람들은 다리 통증이나 허리 통증 각종 통증과 싸우다가 

호흡은 관하지 못한 채 4박 5일 수련이 끝나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통증이 문제가 아니라 지루함이 문제였다. 

호흡을 있는 그대로 계속 관찰하는 것이 어떻게 지루할 수 있을까. 계속 집중을 해야 하는데 

대충 살펴보는 이 습관이 어김없이 발동되어서 호흡을 보고 관찰하는 것도 휘리릭 넘어가고선

그 상태가 너무 지루하게 다가왔던 거다. 


생각해 보면 그냥저냥 해도 중간 이상은 갔던 것이 영향이 컸다. 

최선의 노력을 다하거나 정성을 들이지 않아도 어느 정도 해결이 가능했다.

어쩐 지 100프로에서 항상 20프로는 남겨놓는 것 같은 헐렁함. 



사물을 보거나 상황을 보거나 사람을 볼 때 

그냥 대충대충 보면서 다 안다고 생각한 순간이 얼마나 많았을까?


대충 한다는 건 정성을 들이지 않는다는 말과 비슷한 의미로 느껴진다. 

내가 참 정성이 부족했구나. 

너무나 많은 것들이 당연한 듯 주어져 있어서 그게 감사하다거나 소중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삶 속에 대부분의 것들 중에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는데 말이다. 

(다른 브런치 작가님들의 글을 읽으면서도 각각의 삶의 모습이나 생각을 자세히 들여다볼 때 

그 자체가 너무나 생동감 있게 다가와서 혼자 감동하곤 한다.)


한 번 쓱 보고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 내 식대로 그렇겠지 단정 지었던 것들 

그냥 그렇게 내 생각이 굳어버리면 다양한 빛깔들을 볼 수 없다. 

그 입체감과 생동감을 느낄 수 없다. 

결국은 내 손해다.

정성을 들여서 집중하고 살피고 공감해 보는 것은 결국 나를 위한 일이다. 

내 식대로 이해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말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던 나태주 시인의 말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자세히, 정성을 들여서, 그 순간에 집중하면 삶이 그 자체로 풍부해지리라. 


선물 받은 앙증맞은 화분. 책상에 올려놓으니 기분이 산뜻하다. 이 화분 포함 주변에 관심과 정성 기울이기를 연습하자. 



매거진의 이전글 가진 물건과 마음의 상관관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