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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Apr 13. 2023

Be myself 나답게

살펴 맞추는 것과 눈치 보는 것은 다르니까

나는 욕심이 많다. 

욕먹거나 문제제기받는 걸 싫어했는데 모든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 주길 바랐던 것 같다. 

그런 심리가 사랑받거나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반응이라는 것을 잘 몰랐다. 

모든 사람이 좋아한다는 게 애당초 가능하기나 할까? 


당연히 불가능이다. 이게 가능하다면 세상에는 개보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말이 안 되고 

고양이보다 개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사람들의 취향이란 건 비슷할 순 있어도 동일한 건 있을 수 없다.


나는 바다보다는 산이 좋다. 예전에는 바다가 더 좋았지만 이제는 오르는 맛이 있는 산이 좋다. 산을 오를 때 땀이 나고 약간 숨이 차는 그 느낌을 좋아한다. 여름 산이 초록빛인 나무로 나를 감싸는 느낌도 좋고, 잘 물든 단풍을 눈에 한 껏 담으면서 오르는 가을 산이 좋다. 한겨울 눈이 내린 뒤 온통 눈으로 덮인 산을 오르다 나무에 맺힌 눈꽃 보는 것도 참 좋다. 산에서 먹는 건 뭐든 다 맛있다. 

짜장면과 짬뽕을 고민하지만 늘 짬뽕을 선택한다. 그리곤 짜장면 한 젓가락만을 시전 한다. 

여행지에 가면 그 지역 다양한 탈 것들을 다 경험해 보는 편이지만 결국은 걷는 것을 제일 좋아한다. 

비 오는 날과 눈 오는 날 중에 어떤 날을 더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비 오는 날이다. 

눈이 오고 난 뒤 제설이 쉽지 않다는 걸 산중 생활로 절절히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진눈깨비 같은 눈이 정말 힘들다. 눈이 내렸다가 살짝 녹았다가 다시 눈이 오면 빙판길로 더 문제다. 

채소는 벌레가 먹거나 못생긴 아이들이 더 싱싱하다고 느낀다. 약을 치지 않고서는 상처 하나 없이 자랄 수 있는 채소는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벌레 먹고 울퉁불퉁 생긴 그 모양새 자체가 청정함을 상징한다.

옷은 무채색 계열로 입는 걸 좋아한다. 여러 곳에 포인트를 주기보다는 딱 하나에만 컬러 포인트 두는 걸 좋아했다. 지금은 그것도 옛날이야기가 되었지만 

음악 듣는 것보다는 뉴스 방송, 시사 방송 듣는 걸 더 좋아한다. 그게 더 재밌다. 유익하다고 느끼는 것을 할 때 기분이 좋다. 뉴스를 들으면서 마음이 올라오는 건 또 다른 문제다. 더 잘 살아야지 다짐하게 된다.   

둥글둥글해 보이는 인상의 이성보다는 약간 날카로워 보이는 인상을 선호한다. 나한테는 그렇다. 날렵한 느낌을 선호하는 것 같기도 하고... 


누군가 같이 앉아서 취향에 대해서 서로 이 얘기 저 얘기한다면 아마 밤새서 얘기해도 모자라지 않을까. 

밤하늘에 떠 있는 별보다도 다채롭고 변화무쌍한 것이 취향이자 생각이자 마음일 텐데.



취향과 인간관계가 무슨 상관이냐 싶을 수도 있겠지만 사람에 대한 취향이나 반응은 정말 즉각적이다. 

어제는 좋았던 사람이 오늘 그 사람의 말 한마디에 꼴 보기 싫은 사람이 되기도 한다. 어제 나한테 잘해줬던 좋은 기억은 어제의 기억, 오늘 나한테 대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오늘의 일이다. 

나는 그렇다. 내 마음이 그렇게 시도 때도 없이 막 바뀐다. 다만 그 바뀌는 마음에 휩쓸려가지 않으려 살피는 연습을 해본다. 마음이 이렇게 시시각각 바뀌는 것이라면 그 마음 따라 갈팡질팡 오르락내리락하는 인생은 참 피곤하겠다 싶은 거다. 


'나답게 사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사람들에게 싫은 소리 듣기 꺼려하고, 사랑받고 싶고 누군가 좋아해 주길 바란다면 자동적으로 그 사람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살펴야 하는데 사람 마음은 시시각각 변한다.

내 마음 시시각각 변하는 것도 따라가면서 화냈다가 좋았다가 왔다 갔다 하면 참 피곤한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마음인지 정확히 알 수도 없는 상대방 마음에 들기 위해서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니 몇 배는 더 피곤한 마음일 수밖에 없다. 


"내가 뭐 잘못한 거 있는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왜 날 싫어하지?" 

"내가 뭐 한 거 없는 것 같은데 왜 날 이렇게 좋아하지?"

이런 생각해 본 적 있을 거다. 무슨 이유가 있었을 수도 있고, 특별한 이유가 없었을 수도 있다.

사실 정확한 건 알 수가 없다. 직접 당사자에게 물어봐도 좋지만 내 경험에 비추어보면 정말 그냥 자기 마음이다. 호불호 사이에서 사실은 내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건 그렇게 크지 않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내 영향이 굉장히 크다면 내 말이나 행동에 모든 사람들이 다 동일하거나 최소한 비슷한 반응이라도 보여야 하는데 실상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여기서 선택은 온전히 내 몫이 된다. 

나답게 살 것인지, 내가 어떻게 해볼 수 있다는 착각 속에 눈치를 보며 살 것인지. 

상대방의 반응은 내가 바꾸고 싶어도 바꿀 수 없다. 


내가 어떻게 행동해도 누군가는 나를 좋아할 것이다. 누군가는 나를 싫어할 것이다. 누군가는 나에게 1도 관심이 없을 거다. 사람을 해치지 않고 그게 범죄의 영역이 아니라면 나는 무엇이든 나답게 할 자유가 있다. 


그 안에서 사람들을 살필 수 있다. 이건 눈치 보는 것과는 다르다. 

사랑받기 위해서 애써 하는 행동과 상대방을 위해서 하게 되는 행동은 내 마음가짐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뭘 원하는 것 같은지, 상대가 어떤 상태인지 살펴진다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행동을 하면 된다. 나답게 행동한 것에 대한 상대의 반응은 내가 관할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니 사실 더 안심이다. 


욕심부리던 습관이 남아 있어서 내가 원하는 반응에, 원하지 않는 반응에 마음이 출렁이는 날 본다. 

이제부턴 계속 연습이다. 


살펴 맞추는 것과 눈치 보는 것은 다르니까. 나답게 간다. 

마우리치오 카텔란 전시를 보면서 씁쓸한 마음이었다. 삶이 어려워 전시회도 보지 못하는 사람들 생각이 났다. 이건 순전히 내 마음이지 작가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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