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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Jun 15. 2023

PMS 증후군

몸과 마음의 패턴을 알고 이해하기

"나 지금 커피 시킨 거야?"

점심 식사 후 가벼운 마음으로 카페에 갔다가 막 주문을 마친 참이었다. 호기롭게 텀블러도 내고서 기다리다 내가 주문한 메뉴가 나왔고 첫 입을 쫙 들이켰다. 강렬한 커피맛에 눈이 번쩍 뜨였다. 커피가 몸에 맞지 않아 커피를 마시지 않은지 한참이 되었다. '커피 시켰나?' 그 순간에도 버퍼링이 걸려 한참 생각한 뒤에야 내가 커피를 주문했다는 걸 알았다. 웃음이 났다. 

판단력이 많이 흐려진 채 바닐라아포가토가 커피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의식의 흐름대로 주문을 한 탓이다. 평소 컨디션이라면 잘하지 않을 실수가 연발된다. 그런 날들이 매달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돌아오는데 이건 과히 증후군이라고 부를 만하다. 제대로 인식 못하던 시절에는 이걸 질환으로 인지를 못 하고 살았는데 지속적으로 같은 증후가 반복되어 나타나는 엄연한 질환의 영역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PMS증후군, 일명 생리 전증후군은 여성의 80%가 경증이나 중증이든 겪는다고 한다. 대부분이 겪는 증상이라 해서 겪게 되는 당사자가 힘들지 않은 건 아니다. 각종 증상들이 귀신같이 그맘때가 되면 발생되기 시작하는데 내 경우에는 가장 몸 컨디션이 안 좋은 시기가 이 시기다. 이 시기에는 없는 에너지를 끌어 다모아 사용하는 심정으로 저전력 모드로 버전을 전환시켜 지내야 겨우 겨우 살만하다. 다행히 막상 생리가 시작되면 컨디션이 올라오기 때문에 그나마 위안이 된다.


생리 주기가 비교적 일정한 편이기 때문에 생리예정일을 가늠하기 어렵지만 않지만 보통 내가 '곧 시작이 되나 보다.'하고 알아차리는 징후는 신경이 날카로워질 때다. 잘 자고 일어나서 아침부터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날이 있다. 평소에는 별로 걸리지 않던 것들이 눈에 거슬리고 평소에도 듣고 살던 소리들이 듣기 싫어지는 것 같다 싶어 확인해 보면 십중팔구 생리 일주일 전이다.

이 예민함과 날카로움이 어느 정도냐면 사무실에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일하고 있는 직장동료를 엄청나게 사소한 이유로 혼자 시비하고 있다. '프린트 왜 저렇게 많이 하지? 프린터기 돌아가는 소리 듣기 싫다.' '발걸음 소리가 너무 커.' 등등 

시야 안에 걸리는 사소한 것들이 거슬리는 경우가 많고, 청력은 소머즈급으로 예민해진다.  


호불호 감정의 진폭도 커진다. 평상시 컨디션이라면 수용되는 상황들도 저항감이 올라오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집중력이나 기억력이 굉장히 감소한다. 판단 능력이 매우 흐려지기 때문에 커피가 커피인 줄 인지를 못하고 행동하는 것처럼 허당 같은 실수들을 연발하기도 한다. 머리 회전 능력이 현격히 떨어지니까 많은 부분에서 뚝딱뚝딱거리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피로감은 또 어떤가. 세상 피곤함이 아니다. 어깨 통증이나 아랫배가 묵직하게 뻐근하고 눈 주변이 싸하면서 피로감이 확 몰려온 상태가 지속된다. 주의할 건 이때 이 피로감을 떨치기 위해서 카페인을 섭취하게 되면 잠깐 반짝거리면서 좋아지는 것 같다가도 이 증상들이 더 크게 되돌아온다. 악순환이 반복되기에 알고 조심해야 한다.


이런 증상들이 PMS증후군인 줄 몰랐던 시절, 그러니까 이렇게 주기적으로 정서적, 신체적으로 힘든 상황들이 온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던 시절에는 꽤나 힘들었다. 내 상태에 대한 정확한 인지가 없는 상태가 되다 보니 부정적 감정에 지배당한 채로 날카롭고 쏘고 다녀 나도 힘들고 주변도 어렵게 만들었다. 


한 번은 "심리적, 신체적 주기가 있는지 한 번 살펴봐요. 그런 마음이 들 때가 보통 언제인지? 몸이 힘들 때는 어떨 때 그러는지 살펴보는 게 도움이 될 거예요."라는 조언을 들었다. 반복되는 것에는 어떤 주기성이나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때부터 정서적 변화나 신체적 변화를 살펴보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렇게 어려움을 겪고 있으면서도 면밀하게 살펴볼 생각을 못했는데 참 둔감하게 살았다는 걸 알게 됐다. 몇 달을 그렇게 살펴보니 이런 증상들이 생리 전에 주로 나타난다는 규칙성을 발견했다. 


그 규칙성을 발견했을 때 참 기뻤다. 호르몬의 영향이 이렇게 크구나 하는 걸 이해하게 됐고 내 정서적, 신체적 상황들이 스스로 납득하게 되니 속이 시원했다. PMS증후군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고 해서 그 증상들이 없어지는 건 아니었지만 그 기간을 대하는 내 태도가 바뀌었다. 


시선을 두는 곳이 달라졌다.

PMS증후군임을 인지하지 못했을 때는 시선이 무조건 밖으로 향했다. 내가 아닌 상대가 문제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거다.

사무실에서 동료의 발소리가 크게 들렸을 때 상대방을 계속 탓하면서 왜 저렇게 크게 걸어 다니냐 시비를 하든지 아니면 참지 못하고 얘기를 할 수도 있다. 조용히 다니면 좋겠다고. 근데 그걸 전달하는 말투가 절대 부드러울 리가 없다. 싸우자는 태세로 공격적인 눈빛을 번뜩였을지도 모른다. 축축 처지는 몸을 붙잡으며 힘들다는 생각에만 빠져있기도 한다. 실제로 그랬다.


이젠 안으로 시선을 돌려서 나를 살피게 된다. 

생리 일주일 전이나 열흘 전에 내 상태가 이렇게 된다는 걸 인지하니 스스로 경계발령을 내리게 된다. 이 시기에는 부정적인 감정이나 생각도 커지기 때문에 중요한 결정은 될 수 있으면 내리지 않는다. 이때 내리는 내 판단은 미스가 있을 가능성이 굉장히 크기 때문이다. 지금 일으키는 이 감정은 저 사람 때문이 아니라 내 날카로움과 예민함의 상태로 인해 크게 느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점을 인지하고 말을 줄인다. 이게 굉장히 주효해 불필요한 감정소모나 갈등을 줄일 수 있다. 내 성질에 내가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중요한 지점이다. 몸이 휴식을 필요로 한다면 될 수 있으면 푹 쉬어주려고 노력한다. 어쨌든 뭣보다 내 이런 상태를 내가 스트레스받지 않고 수용하게 되는 부분이 좋다. 


이번 주기도 어김없이 PMS증후군을 앓고 있다. 입안은 두 군데 구내염이 생겼고 팔다리에 힘이 없는 증상을 겪고 있다. 그래도 마음적으로는 내 상태를 알아차리고 휩쓸리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 좋다. 오늘도 말 줄이는 하루를. 맛난 음식은 먹어주는 걸로!

자극적인 음식이 좀 당긴다. 맛난 쌀떡볶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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