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
사랑하기 위해 사랑받기 위해
먼저 스스로를 아는 것부터 시작하라
-니체-
누구나 마음의 약한 고리들이 하나씩 있을 거라고 홀로 위안해도 좀처럼 빛바랜 사진처럼 칙칙한 가라앉은 마음이 나를 놓아주지 않는 날이 있다. 누가 팔이 부러져도 지금 당장 내 손가락에 난 가시가 더 아프다고, 그런 마음일 때면 한껏 처량해져 세상의 괴로움을 다 짊어진 자가 된다.
기다렸다는 듯 괴로움이 시작된다. 마치 버튼 하나로 프로그램이 돌아가듯이. 금방 툭 하고 마음이 괜찮아질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스스로를 못난 인간으로 만들어가는 날도 있다. 슬픔, 우울, 외로움, 분노, 질투심, 두려움, 불안함, 위축감, 소외감, 부족감, 무력감, 허무감, 공포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들 때 나는 왜 지금 이런 마음이 들까? 또 왜 이것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을까? 이 부분은 오래도록 나에게 화두라면 화두였다.
언젠가부터 나는 혼자 맛집을 검색해 밥을 먹고, 혼자 낯선 외국을 여행 가서 거리를 걸으면서 맥주를 마시거나 길거리 디저트를 사서 먹는 게 낯설지 않은 사람이 됐다. 관광지에서 셀카봉을 설치해 두고 사진도 곧잘 찍었다. 누가 찍어주는 것보다 내가 찍는 게 만족도도 높았다.
좀 많이 걷고 싶은 날엔 간단하게 물만 딱 챙겨서 혼자 산이나 둘레길을 오르고 걸었다. 누군가에게 걷는 속도를 맞출 필요 없이 내 속도대로 산을 오르면서는 누군가 함께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잠깐 스치긴 하지만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되는 이 순간이 참 편하구나 생각했다.
혼자 있는 것이 편하다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지만 같이 있는 것이 불편하다고 느끼는 건 다른 얘기였다. 혼자 있으면 혼자 있어서 편하고 같이 있으면 함께 해서 즐겁다면 좋으련만, 혼자 있으면 혼자 있어 외롭고 같이 있으면 같이 해야 해서 불편하다. 인간관계에 대한 내 이 불균형적인 인식과 마음은 사소한 경계에도 마음이 흔들리는 약한 고리가 됐다.
이 부분이 흔들리면 마음이 착 가라앉았다. 참 스스로 괴로움을 만드는구나 싶은 순간들. 누구와 누가 친하게 보이면 홀로 질투와 소외감을 느낀다. 그렇다고 내가 다가갈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나를 달가워할 것 같지 않은 생각을 지레 한다거나 가까워져도 피곤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왜 사람들은 나를 찾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처량해진다. 이토록 모순적인 생각이라니.
인간관계라는 것이 노력이 없으면 유지되기 어렵다는 건 쉽게 알 수 있었다. 내가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니 주변의 관계들은 말라가는 식물처럼 생기를 잃어갔다. 물을 주지 않고, 애정을 주지 않으니 생명력이 다할 수밖에. 나는 물을 주지 않고 정기적으로 식물에 맞는 분갈이 조차 해주지 않으면서 식물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속상해하는 어리석은 마음을 내고 있었다.
이건 정말이지 트라우마나 상처로 인한 반응이었다. 조그마했던 흠집이 제대로 된 조처를 받지 못해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치유되는 방향이 아니라 점점 더 큰 구멍이 되어간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사람에게 배신당했다, 상처를 입었다는 생각이 들었던 최초의 기억은 초등학교 3학년 시절이다. 학교가 마치면 자주 집을 들락거리며 함께 놀던 친한 친구가 있었다. 맛있는 것도 함께 먹고, 말도 안 되는 얘기들을 하면서 뭐가 재밌다고 함께 킬킬 거리며 웃던 친구였다.
무엇이 마음이 안 들었는지, 어떤 이유인지 나는 지금도 알 수 없지만 언젠가부터 그 친구가 멀어지기 시작했다. 혼자만 멀어졌어도 슬펐을 텐데 반아이들을 선동해서 나를 따돌리기 시작했다. 울며 집으로 돌아온 어느 날엔 전화기를 붙잡고 반 아이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돌렸던 것 같다. 왜 그러냐고 나도 이유를 알아야 되지 않겠냐고.
처음으로 느끼는 눈앞이 캄캄하고 막막한 순간이었다. 답답하고 슬프고 억울한 마음에 담임선생님에게 이런 상황에 대해 얘기를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네가 잘못하지 않았겠냐는 대답뿐이었다. 이때 나는 길이 없는 곳에 혼자 고립된 막막함을 느끼며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느 순간 내가 참 그때의 나를 싫어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너는 미움받을 만한 사람이었고 미움받을 만한 행동을 했을 거라고. 그러니까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너에게 등을 돌린 것이 아니겠냐고. 안 그래도 갑작스레 떠나는 사람들을 보면서 서럽고 무섭고 막막하고 슬펐을 아이를 스스로 더 몰아붙이고 싫어하는 마음이 내 내면 깊숙이 있으니 결핍감과 괴로움은 깊어진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지 못한다는 점은 크나큰 상실이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사람이 있을까? 내 성질 껏 해도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누군가 나의 안전기지가 되어주면 좋겠다. 하면서 밖으로만 누군가를 통해서만 그 구멍이 채워질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그 누군가를 찾았다.
하지만 결국 공감해 주고 안아주고 다독여 주고받아줘야 하는 건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누가 나를 사랑하겠으며, 누구를 사랑할 수 있을까? 내가 나와 애착 관계를 형성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갈 곳 잃은 나는 빗장을 걸어 잠근 외로운 이가 되는 것이다.
나라는 산을 흥미로운 마음으로 올라보기로 했다. 여기 길이 이렇게 나 있네, 폭포도 있었네. 이 나무 이름은 뭐지? 시원해서 좋다. 조금 지루하기도 하네.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깔딱 고개네. 하면서 산 구석구석을 살펴보며 그 기쁨을 만끽해보고자 한다.
평소 방향 감각이 없는 길치인데 폰으로 길 찾기를 누르지 않으면 어디든 다니는 것이 어려울 정도다. 심지어는 길 찾기가 있어도 남들은 단박에 찾아서 들어가는 둘레길 코스 입구를 찾아 1시간을 헤매기도 한다. 그런 나라도 결국은 둘레길 코스 입구를 찾았고, 즐겁게 걷기를 마쳤다.
스스로를, 내 마음을 외면하고 살아왔던 세월이 있어서 나를 알아가고 인정하는 쪽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도 여전히 습관처럼 마음이 올라온다. 약한 고리를 누군가 툭 치면 쓱 반응이 일어난다. 그렇지만 내가 나를 믿어주는 마음, 그 단단함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돌아보면 분명 내 주변에는 좋은 사람들이 참 많았고, 지금도 많이 있다. 내 옆에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가 있었고, 내 마음을 알아주는 이도 있었다. 아낌없이 나를 사랑해 줬던 연인도 있었다. 하지만 뭔가 고장 난 상태에서 결핍이 있는 상태에서는 그 어떤 걸로도 마음의 구멍은 메울 수 없다는 걸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오늘도 나는 흔들리면서도 계속 나아가본다. 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외부의 인정보다 더 근본적인 치유임을 알기에. 산 정상에 오르는 것도 결국 한 발 한 발이 중요하듯, 자기 인식과 사랑의 여정도 매일의 작은 걸음들이 모여 완성되는 것임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