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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Aug 24. 2023

사랑하기 위해 사랑받기 위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

사랑하기 위해 사랑받기 위해

먼저 스스로를 아는 것부터 시작하라

-니체-


누구나 마음의 약한 고리들이 하나씩 있을 거라고 홀로 위안해도 좀처럼 빛바랜 사진처럼 칙칙한 가라앉은 마음이 나를 놓아주지 않는 날이 있다. 누가 팔이 부러져도 지금 당장 내 손가락에 난 가시가 더 아프다고, 그런 마음일 때면 한껏 처량해져 세상의 괴로움을 다 짊어진 자가 된다. 기다렸다는 듯 괴로움이 시작된다. 마치 버튼 하나로 프로그램이 돌아가듯이. 금방 툭 하고 마음이 괜찮아질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스스로를 못난 인간으로 만들어가는 날도 있다. 슬픔, 우울, 외로움, 분노, 질투심, 두려움, 불안함, 위축감, 소외감, 부족감, 무력감, 허무감, 공포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들 때 나는 왜 지금 이런 마음이 들까? 또 왜 이것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을까? 이 부분은 오래도록 나에게 화두라면 화두였다.


언젠가부터 나는 혼자 맛집을 검색해 밥을 먹고, 혼자 낯선 외국을 여행 가서 거리를 걸으면서 맥주를 마시거나 길거리 디저트를 사서 먹는 게 낯설지 않은 사람이 됐다. 관광지에서 셀카봉을 설치해 두고 사진도 곧잘 찍었다. 누가 찍어주는 것보다 내가 찍는 게 만족도도 높았다. 좀 많이 걷고 싶은 날엔 간단하게 물만 딱 챙겨서 혼자 산이나 둘레길을 오르고 걸었다. 누군가에게 걷는 속도를 맞출 필요 없이 내 속도대로 산을 오르면서는 누군가 함께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잠깐 스치긴 하지만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되는 이 순간이 참 편하구나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그 모든 것들이 마치 원래 그랬던 것인 양 익숙했다. 사람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지만 싫어하는 것도 아니어서 그래도 뭐든 같이 맞춰하거나 함께 하길 좋아했던 것 같은데 (물론 지금도 함께 하는 것들도 있지만) 이제는 자연스럽게 그런 상황이 되거나 상대방이 같이 하자고 얘기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내가 굳이 함께 하는 상황을 만들지는 않게 됐다.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 관계를 유지시키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에 멈칫거리는 마음, 주저함을 느낄 때가 잦아졌다. 그 주저함 속에는 단순하게 딱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들이 뒤엉켜있다. 혼자 있고 싶지만 혼자 있고 싶지도 않지만 결국은 혼자가 편하다며 혼자 있는 것을 선택하는 순간들.


혼자 있는 것이 편하다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지만 같이 있는 것이 불편하다고 느끼는 건 다른 얘기였다. 혼자 있으면 혼자 있어서 편하고 같이 있으면 함께 해서 즐겁다면 좋으련만, 혼자 있으면 혼자 있어 외롭고 같이 있으면 같이 해야 해서 불편하다. 인간관계에 대한 내 이 불균형적인 인식과 마음은 사소한 경계에도 마음이 흔들리는 약한 고리가 됐다. 이 부분이 흔들리면 마음이 착 가라앉았다. 참 스스로 괴로움을 만드는구나 싶은 순간들. 누구와 누가 친하게 보이면 홀로 질투와 소외감을 느낀다. 그렇다고 내가 다가갈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나를 달가워할 것 같지 않은 생각을 지레 한다거나 가까워져도 피곤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왜 사람들은 나를 찾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처량해진다. 이토록 모순적인 생각이라니. 이럴 때면 결핍된 마음을 가진 내 상태가 인지된다. 인간관계라는 것이 노력이 없으면 유지되기 어렵다는 건 쉽게 알 수 있었다. 내가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니 주변의 관계들은 말라가는 식물처럼 생기를 잃어갔다. 물을 주지 않고, 애정을 주지 않으니 생명력이 다할 수밖에. 나는 물을 주지 않고 정기적으로 식물에 맞는 분갈이 조차 해주지 않으면서 식물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속상해하는 어리석은 마음을 내고 있었다. 이런 모순적인 감정을, 어린애 같은 마음을 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 고리 안에서 뱅글뱅글 맴돌았다. 특별한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어딜 가든 환영받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웠다. 지나친 관심이 싫기도 하면서 그 관심을 갈구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런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그걸 질투하고 그렇지 못한 스스로를 한심하게 생각하거나 모지리 취급을 할 때면 이렇게 생각하는 내가 이상하기도 했고, 바보처럼 느껴졌다. 스스로의 모습을 검열하기도 했다. 두려움에서 오는 자기 검열이었다. 사실 내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보여준다고 해도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가 보고 싶은 모습을 보고 좋아하고 싫어할 테지만 그럼에도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주저됐다. 사람을 온전히 믿는다는 게, 신뢰를 가진다는 게 어렵게 느껴졌다.


이건 정말이지 트라우마나 상처로 인한 반응이었다. 조그마했던 흠집이 제대로 된 조처를 받지 못해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치유되는 방향이 아니라 점점 더 큰 구멍이 되어간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사람에게 배신당했다, 상처를 입었다는 생각이 들었던 최초의 기억은 초등학교 3학년 시절이다. 학교가 마치면 자주 집을 들락거리며 함께 놀던 친한 친구가 있었다. 맛있는 것도 함께 먹고, 말도 안 되는 얘기들을 하면서 뭐가 재밌다고 함께 킬킬 거리며 웃던 친구였다. 그 친구는 공부를 잘하는 반의 모범생이라 선생님도 친구들도 좋아하는 아이였다. 무엇이 마음이 안 들었는지, 어떤 이유인지 나는 지금도 알 수 없지만 언젠가부터 그 친구가 멀어지기 시작했다. 혼자만 멀어졌어도 슬펐을 텐데 반아이들을 선동해서 나를 따돌리기 시작했다. 이유가 뭔지 왜 그러는지 숱하게 물어봤으나 아무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지금은 아마 아무 이유가 없이 돌연히 싫어졌을 수도 있겠다 생각이 되지만 당시 어린 나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태도의 돌변이었다. 누구에게 얘기를 해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 사람들이 나를 외면한다 느꼈다. 울며 집으로 돌아온 어느 날엔 전화기를 붙잡고 반 아이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돌렸던 것 같다. 왜 그러냐고 나도 이유를 알아야 되지 않겠냐고. 처음으로 느끼는 눈앞이 캄캄하고 막막한 순간이었다. 답답하고 슬프고 억울한 마음에 담임선생님에게 이런 상황에 대해 얘기를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네가 잘못하지 않았겠냐는 대답뿐이었다. 글쎄, 정확하게 생각나지 않지만 이때 나는 길이 없는 곳에 혼자 고립된 막막함을 느끼며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 이 교실이라는 공간에 내 편은 아무도 없다는 막막함. 그나마 내 옆에서 같이 말동무가 되어주던 유일한 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친구마저 사실은 스파이처럼 내 옆에 있던 상황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참 많이 슬펐다. 나는 주변 상황을 탓하다가 종국엔 내가 못 돼서 그럴까. 내가 못난 사람이라 그럴까. 하면서 나를 탓했다. 그 기간은 인간관계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기억이자, 스스로를 자책하게 됐던 안타까운 순간이다. 사람을 믿지 못하는 마음은 아마 그때부터 시작되지 않았을까?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사람, 내 성질 껏 해도 그대로 바라봐주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고, 안전기지가 없다고 느꼈다.


돌아보면 분명 내 주변에는 좋은 사람들이 참 많았고, 지금도 많이 있다. 내 옆에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가 있었고, 내 마음을 알아주는 이도 있었다. 아낌없이 나를 사랑해 줬던 연인도 있었다. 하지만 뭔가 고장 난 상태에서 결핍이 있는 상태에서는 그 어떤 걸로도 마음의 구멍은 메울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 돌아서면 헛헛했던 그 순간들이 그걸 증명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내가 참 그때의 나를 싫어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너는 미움받을 만한 사람이었고 미움받을 만한 행동을 했을 거라고. 그러니까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너에게 등을 돌린 것이 아니겠냐고. 안 그래도 갑작스레 떠나는 사람들을 보면서 서럽고 무섭고 막막하고 슬펐을 아이를 스스로 더 몰아붙이고 싫어하는 마음이 내 내면 깊숙이 있으니 결핍감과 괴로움은 깊어진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지 못한다는 점은 크나큰 상실이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사람이 있을까? 내 성질 껏 해도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누군가 나의 안전기지가 되어주면 좋겠다. 하면서 밖으로만 누군가를 통해서만 그 구멍이 채워질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그 누군가를 찾았다. 하지만 결국 공감해 주고 안아주고 다독여 주고받아줘야 하는 건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누가 나를 사랑하겠으며, 누구를 사랑할 수 있을까? 내가 나와 애착 관계를 형성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갈 곳 잃은 나는 빗장을 걸어 잠근 외로운 이가 되는 것이다. 내 이 결핍을 어디다가 드러내어 말하기도 꺼렸다. 스스로 부끄럽고 부족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다니고 싶지 않았다. 그건 스스로가 더 못나지는 길이라 생각했고, 부정적인 마음들은 인정받을 수 없는 마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괜찮은 척하고 외면한다고 해서 괜찮아지는 게 아니었다. 인정받지 못하고 갈 곳을 잃은 마음들은 차곡차곡 쌓이기만 했다. 조금씩 쌓인 마음은 어느새 거대한 산이 되었고, 그 산은 더는 외면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이 산 앞에서 주저앉아 신세한탄만 할 것인지, 지금이라도 한 발자국을 떼어서 이 산을 넘어볼 것인지. 내 선택에 달린 문제다. 오롯이 나만이 할 수 있는 일.


나라는 산을 흥미로운 마음으로 올라보기로 했다. 여기 길이 이렇게 나 있네, 폭포도 있었네. 이 나무 이름은 뭐지? 시원해서 좋다. 조금 지루하기도 하네.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깔딱 고개네. 하면서 산 구석구석을 살펴보며 그 기쁨을 만끽해보고자 한다. 평소 방향 감각이 없는 길치인데 폰으로 길 찾기를 누르지 않으면 어디든 다니는 것이 어려울 정도다. 심지어는 길 찾기가 있어도 남들은 단박에 찾아서 들어가는 둘레길 코스 입구를 찾아 1시간을 헤매기도 한다. 그냥 내가 이런 사람이다. 그런 나라도 결국은 둘레길 코스 입구를 찾았고, 즐겁게 걷기를 마쳤다. 스스로를, 내 마음을 외면하고 살아왔던 세월이 있어서 나를 알아가고 인정하는 쪽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도 여전히 습관처럼 마음이 올라온다. 약한 고리를 누군가 툭 치면 쓱 반응이 일어난다. 그렇지만 내가 나를 믿어주는 마음, 그 단단함이 중요하다는 걸 아니까. 흔들리면서도 계속 나아가보는 건 쭉 해볼 예정이다. 산 정상에 오르는 것도 결국 한 발 한 발이 중요하니까.

사랑하기 위해 사랑받기 위해 먼저 스스로를 아는 것부터 (이미지 :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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