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마음가짐으로 낚시하러 가냐고?
너에게 자연이 들어갈 것이다. 정혜윤 <사생활의 천재들>에 나온 문구야. 자연다큐 감독인 박수용 씨는 어린 시절 매일 같이 소를 직접 몰아서 먼 시장까지 오솔길을 걸었대. 고등학교 진학까지 반대할 정도로 시골일에 강경했던 그의 아버지가 시골소년 박 감독에게 '너에게 자연이 들어갈 것이다' 했다는 거야. 나도 워낙에 깡촌에서 자란지라 그 문장을 읽자마자 가슴에 턱 박혔어. 물리적으로 정확한 말이었거든. 밑줄 쳐놓고 지금도 그 말뜻을 곱씹곤 하는데, 사실 비슷한 이야길 나도 들어본 것 같아.
너는 평생 낚시할 거야.
처음 물고기를 잡아온 날이었어. 종달리 게스트하우스에서 스태프로 지낼 때야. 제주에서 두 달은 지내야 하는데, 낚시는 해보고 싶고 어떻게 하는 줄은 몰랐지. 예전에 고래사장님-우리 게하 남자사장님-이 알려준 대로 꽁치 미끼를 바늘에 끼워서 바닥에다 던져놓고 물어주기를 무작정 기다렸어. 그렇게 일주일을 시도했던가? 잔잔한 밤바다에 커다란 힘이 낚싯대를 덜컥 잡아당기는데, 나는 깜짝 놀라서 이게 뭐야 하다가 어찌어찌 잡아 올리긴 했어. 커다란 우럭이 바닥에서 펄떡펄떡 뛰는데 나는 그게 너무 신기하면서도 무서운 거야. 입에 걸린 낚싯바늘을 빼야 하는데 몸부림치는 우럭을 손으로 잡기가 너무 어려워서 아무도 없는 그 바다에서 나는 으악하고 소리만 질렀어. 어쩔 수 없이 낚싯대에 우럭을 주렁주렁 단 채로, 타고 온 자전거를 타고 게스트하우스로 냅다 달렸지. 속으로 오 잡았다, 오 진짜 잡았다, 이러면서. 잡기부터 자전거를 타고 일 킬로 넘게 떨어진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가기까지 몇 분이 채 안 걸린 것 같아. 고래 사장님은 낚싯바늘을 빼주고 우럭을 손질하면서 상기된 나에게 '너는 이제 평생 낚시할 거야'했어. 뭐 몇 마디 더 한 거 같은데 그 말밖에 기억이 안 나. 내가 그때 워낙 흥분한 상태였거든.
그날 이후로 저녁만 되면 나는 자전거를 타고 종달항으로 갔어. 폭풍우가 쏟아지지 않는 한 나갔어. 아니 가끔은 폭풍 속에도 낚시하고 있던 기억이 나네. 한 겨울 제주 바람에 오들 오들 떨면서, 항구 계단 밑에 몸을 웅크리고 두 시간 정도 똑같은 동작을 반복했어. 이번엔 낚싯 바늘을 내가 빼야지 다짐하면서 우럭이 덜컥 물어주기를 기다리는거야. 그런데 우럭은 없었어. 다음 커다란 우럭을 잡기까지 한 달 정도 걸렸던 것 같아. 약 한 달 정도의 시간 동안 내 모든 신경은 우럭이 종달항 어디에 있을까에 가 있었어.
그때가 18년 말이니까, 대학 3학년 마치고 휴학했을 때야. 일년간 휴학하고 복학한 지 한 학기 만에 다시 한 휴학이었어. 학교에 진절머리가 났거든. 그때 무슨 사춘기가 와서 온통 거짓말 같았어. 가르침을 볼모 잡고 언변으로 처세하는 교수들, 거기 아부하는 학생들. 그리고 나 역시 거기에 속해있다는 무력감도 있었지. 무언가 아닌 거 같은데 나만 그런 생각 하는 별난 놈 같아서 도망나왔어. 사실은 복학했을 때만 해도 의욕이 넘쳤었어. 마감하기 전 삼사 주 정도를 하루도 안 쉬고 새벽 네시 다섯 시에 자면서, 이번 학기 설계는 기가 막히게 해내겠다고 눈이 충혈돼 있었지. 결과적으로 망한 거야. 마감날 어떤 교수는 나에게 이딴 학생에게 피드백을 줘야 하냐고 하더라. 허무감에 멘붕이 왔지. 그 과정과 노력을 내가 알면 되지 않느냐고? 듣기나 좋은 말이었어. 나도 나 스스로를 결과로 평가하고 절망하고 있었으니까. 뭘 보고 달린걸까, 이건 아니다 싶어서 무턱대고 다시 휴학했어.
대책이 있던 건 아니지. 공부를 하겠다거나, 일을 하겠다거나. 당시에 과사무실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백만 원 정도를 모아둔 게 있었는데, 삼주 정도 여행 다닐 돈은 되겠다 싶은 거야. 일단 제주로 내려가 단골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했어. 체크인하면서 사장님이 날 보더니 마침 스태프 자리가 빈다는 거야. 나도 옳다거니 싶어서 그다음 날부터 조식을 만들고 스태프로 일했어. 그렇게 두 달을 지냈네.
학교 엿 먹어라 하면서 나왔으니 나도 뭔가 해야겠다 싶었어. 결과와 상관없이 스스로를 인정해줄 수 있을 만한 무언가가 필요했어. 만만한 게 글이었어. 그래 나도 작가가 되겠다. 그즈음에 독립출판이 유행을 막 탔던 것 같아. 종달리엔 내가 좋아하는 카페가 두 군데 있는데, 종달리 746이랑 엉물이야. 하나는 책이 벽면에 가득한 북카페고 다른 하나는 골든리트리버 하늘이가 있는 데야. 책에 파묻히고 싶으면 746으로, 하늘이 보고 싶으면 엉물로 출석했지. 아침에 일어나 게스트들 주먹밥 해주고, 빨래하고 햇볕에 이불 널어놓고, 청소기 돌리고 카페로 꼬박 출석했어. 노트북을 펼치고 뭘 써볼까 했던 날들. 지금 생각하니까 참 행복하긴 했네.
문제는 쓰려고 마음먹는데 두 시간, 쓰는덴 십분, 다시 딴짓하기가 두 시간 이더라고. 여행 얘기를 좀 쓰고 싶었는데, 정신 차리면 유튜브로 우럭낚시를 계속 찾아보고 있었어. 우럭은 바닥에 있다. 야행성이다. 입이 커서 자기 몸뚱이 만한 것도 먹는 다나 뭐라나. 내 뇌가 이런 정보들을 미친 듯이 흡수했어. 나는 그때 우럭 전문가가 됐는지 몰라. 근데 다들 전문 낚시꾼 인 데다가 이곳 사정은 모르니 나한테 큰 도움은 안되더라. 종달 바다의 일은 경험치로만 알 수 있었어. 모든 조건이 완벽했는데 그곳에 우럭이 대체 왜 없었을까. 글은 안 쓰고 가설만 머릿속에 세우는 거야. 우럭은 야행성이니까 해 질 녘에 먹이 활동을 시작할 거다. 오늘은 만조가 일곱 시니까 물이 차오르는 시기와 일몰이 겹치니 활동성이 두배로 뛸 지도 모른다. 어제보다 수온이 0.5도 올랐으니 어제 없던 자리에 오늘은 새로운 녀석이 들어왔을지 모른다.
책장 속에 파묻혀 우럭을 생각하다 보면 해가 뉘엿뉘엿 기울어. 노트북을 덮고 저녁을 먹으러 갈 시간이야. 글에 관해선 별소득 없이 카페를 나오면 넓은 갈대밭과 당근밭이 보이지. 햇빛이 옆으로 비추니까 그 넓은 들판이 바람이 지나갈 때 마다 황금빛으로 반짝반짝 빛이 나. 제주의 겨울은 어찌나 맑고 청량했는지, 늦은 오후면 한라산의 윤곽이 펜으로 그은 것 처럼 뚜렷해져. 파란 하늘과 황금빛 갈대밭을 배경으로 걷고 있으면 신의 은총이 날 비춰주는 것 같아. 너는 오늘 우럭을 잡으이라, 하면서. 글을 쓰지 못해도 마음이 어찌나 홀가분 했는지 모르겠어. 지금도 종달항 중간 방파제 두번째 계단 밑에 우럭 한마리가 있을텐데. 추워질 때 한마리 씩 들어오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