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마음가짐으로 낚시하러 가냐고?
소개팅 나가서 저 낚시 좋아해요 하면 어떨까. 어부가 아닌 이상 불필요한 말이라고 본다. 입에 거품을 물고 제가 잡은 감성돔이 어쩌고요 손맛이 어땠고요 하면 박차고 나가려나. 회를 좋아하면 호기심을 보일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 사람 뭐야 아닐까 싶다. 어디 여행지 얘기를 하다가 이전에 거기서 낚시를 한번 했더랬어요 까지가 적정선이라고 해야겠다.
낚시가 멋없다는 걸 인정한다. 달리기나 요가나 축구나 테니스나 나 이거 해요 할만한 다른 취미와 비교했을 때 어딘가 아저씨스러운 구석이 있고 비린내도 조금 날 것 같다. 실제로 낚시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면 눈은 벌겋고 머리는 꼬질꼬질해서 집중한 입은 툭 튀어나온 데다가 가까이 가면 비린내도 조금 난다. 이 취미가 어느 정도 원시적 남성미를 포함한 사냥의 일이라 해도 중간중간 팔 굽혀 펴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숨을 헐떡 야성미를 내뿜으며 고기를 끌어올리는 것도 아니니 (누가 그런다고 좋아해) 멋없다고 인정하기가 참 쉽다.
누군가 쓰려거든 가장 개인적인 것을 쓰라고 했다. 사소한 것 하나라도 자기의 일을 써내면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는 말에 나는 가장 먼저 낚시를 떠올렸다. 헬스장에 가야지, 러닝을 해야지, 책을 읽거나 글을 써야지 따위의 다른 취미와는 사뭇 달랐다. 낚시는 의지가 없어도 가능했다. 아니 정확히는 의지를 가지기도 전에 이미 하고 있었다. 정신 차리면 또 항구로 가고 있었다. 바다 옆에서 지낼 일이 있으면 일주일이건 한 달이건 질리지 않았다. 하루키가 그랬던가 아무것도 추구하지 않을 때 나의 모습이 진짜 제 모습이라고 했는데, 나는 낚시를 추구한 적은 물론 없는 것 같고, 늘 낚시를 하고 있었을 뿐. 거기에 고백하자면 나는 사실 '낚시'에 대해 잘 모른다. 실제로 잡은 고기가 많아서 나의 뇌가 손맛에 중독된 채 움직이고 있다면 그 반복적인 행동 양식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겠으나 사실은 딱히 잡아본 고기도 없다.
나는 여기서 약간 당당해진다.
친구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낚시에 가냐'라고 물었을 때, 나는 '그냥'이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해본 적도 없는 오징어 낚시채비를 꾸리고 항구로 향하는데 내 머릿속은 '잡히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어느 정도 그럴싸한 질문에 어울리는 대답은 아니라서 '그냥'이라고 했으나, 나 역시도 그럴싸한 한 줄의 인생다운 대답이 마련되지 못함에 스스로 아쉬워했다. 그렇다고 곰곰이 생각해 규정해낼 일은 아니어서, '글을 써야겠다'는 다짐을 대답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깊은 곳에 오징어 한 마린 있겠지 싶은 생각으로 내 속 깊이 무언가 낚시에 대해 할 말이 있을 거라고. 김영하가 여행의 이유에 대해 한 권이나 써낼 수 있었듯이, 하루키가 달리기에 대해 한참을 말할 수 있었 듯이 나도 낚시에 대해서라면 뭔가 말할 수 있을지도 몰라.
지금 손에서 비린내가 난다. 엊그제 종달항에서 광어를 한 마리 잡으면서 밴 바다 짠내다. 정확히는 광어를 잡기 위해 미끼로 쓴 전갱이의 내장 냄새 이기도 하고, 그 전갱이를 잡으려고 사용한 작은 새우의 부패한 냄새이기도 하다. 나는 냄새를 없애기 위해 낚시가 끝나면 치약을 비누처럼 손에 벅벅 문지르는데, 어쩐지 효과가 좋지 않은 것 같아 그날은 커피가루를 스크럽처럼 문지르곤 만족했었다. 아마 그래 놓고 일 년 만에 광어를 잡은 덕에 이 정도 냄새쯤이야 뭐 하며 대충 닦고 넘어가지 않았나 싶다. 이렇듯 손에 밴 비린내 하나에도 돌이켜보면 피할 수 없었던 많고 작은 규칙이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 낚시하는 마음가짐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한다면 거짓말일 거야. 다만 며칠 전에 광어와 고즐맹이를 한 마리씩 잡았을 때 그때의 기분이 어땠는지는 누구보다 당당히 말할 수 있어. 광어는 정확히 그 자리에 있으리란 확신이 가득했고 고즐맹이는 그런 게 있는지도 모르는데 어쩌다 얻어걸렸지. 낚시를 향한 내 설명 역시 내 깊은 바닷속 작은 확신을 수면으로 꺼내오는 일이기를. 기대치도 않던 꿈틀거림이 어쩌다 눈앞의 선물로 다가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