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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덩구 Sep 03. 2024

챗지피티, 낙소스, 에트나 화산의 맛

여행 2주차 2

8.29(목)


챗지피티와 시라쿠사

시라쿠사에 온 지 일주일 됐다. 오르티지아 섬을 몇 바퀴 뛰어보고 광장을 가로질러 산책도 하고,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해변이나 바위에서 수영도 했는데, 정작 중요하다고들 얘기하는 유적지는 가보지 않았다. 정말이지 귀찮다. 그리스인지 로마인지 바로크가 어쨌다고들 하는데, 완전히 아는 게 아니다 보니 우두커니 쳐다보다가 나오게 되고 아예 찾질 앉는다.


여길 떠날 때가 되니까 그래도 몇 군데는 좀 들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챗지피티에게 “시라쿠사 마지막날 들르면 좋을 곳을 알려줘”라 주문했다. 챗지피티는 착실하고 정확하고 재미없는 대답을 해줬다.


“시라쿠사에서의 마지막 날을 어떻게 보내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때, 이 아름다운 도시가 제공하는 풍부한 역사, 문화, 자연을 모두 즐기며 완벽한 하루를 보내는 방법을 제안드릴 수 있습니다”


이러곤 네이버 뉴스 헤드라인에 나올법한 뻔한 제목을 줄줄 읊어댔다. 오르티지아 탐방하기, 현지 음식 맛보기, 바다에서 일몰감상하기. 지난 며칠 챗지피티를 써보니, 질문이 구체적일수록 답변이 쓸만하다는 걸 알았다. 질문이 어떻게 구체적 일지는 여전히 질문자의 몫으로 남는다. 심지어 허투루 물었다간 사실과 다른 정보를 술술 떠들기도 한다. 따라서 나는 “카르타고와 로마의 전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구체적인 사건과 연도를 포함하며 방문 순서대로 네 군데를 꼽아달라 “고 말했다. 착한 챗지피티는 네 군데를 뽑아줬다.


두오모 광장


뭐, 챗지피티의 조언이 트립어드바이저에서 점수매긴 투두리스트와 댓글창에 비해 뭐가 더 나은진 모르겠다. 아직 제한적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라 추측하는데, 적어도 재미는 있다는 측면에서 여행에 도움을 받고 있다.


아무튼 조언대로 네 군데, 아폴로 신전, 두오모 광장, 산타루치아성당, 시라쿠사 대성당을 돌았다.


다 도는데 삼십 분이 걸렸다. 사실 이렇게 쓰기 시작한 이유도 여행기가 좀 여행기다워야 하지 않나 싶어서인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별로 할 말이 없다. 결국 근처에서 피자빵을 먹고 에스프레소를 한잔 때리고 해변에 내려와 웃통을 벗고 누워서 모비딕을 읽고 있다. 끝.


아니다 그래도 쥐어짜보자.


앞서 말했듯 시칠리아 역사의 키포인트는 짬뽕이다. (뭐 사실 유럽 여러 도시가 마찬가진데 그렇다 치고) 동네 북이 될 수밖에 없었던 지정학적 조건 탓에 지배구조가 끊임없이 바뀌었고 그때마다의 양식이 건물로 남았다. 시라쿠사 역시 그리스의 도시로 출발했지만, 카르타고랑 싸워 어떻게든 제 도시를 지켰더니 멀리서 로마가 쳐들어와 고전하다가 결국은 자리를 내줬다.


아폴로 신전은 그리스가 기원전 6세기 초에 이 땅에 도시를 건설했을 때 세웠다. 아테네에 유명한 그것과 마찬가지로 교과서에서 보던 신전이다. 무너지고 남은 기둥 몇 개가 광장 한편에 보인다. 육중한 도리아식 돌기둥을 따라 걷다 보면 그리스인의 숨결을.. 전혀 느낄 수는 없고 무척 큰 돌이구나,라고 느껴진다. 이 신전이 비잔틴 때는 교회로, 아랍제국 때는 모스크로, 노르만 때는 군사요새로 쓰였단다. 알았으니 나는 더워서 자리를 떴다.


두오모광장으로 발을 옮기면 세상에 이렇게 햇볕이 밝은 곳이 있구나 싶다. 선글라스를 끼지 않고는 도저히 다닐 수 없을 정도다. 시칠리아라고 다른 해가 뜨는 건 아닐 테고 아무래도 밝은 색상의 돌로 건물과 바닥을 지어서 그런 듯하다. 광장엔 마찬가지로 그리스 신전이 있었다. 로마가 시라쿠사를 정복한 이후에 기독교가 퍼지면서 신전위에 성당을 덧대어 지었다. 그게 지금의 시라쿠사 대성당이다. 대성당을 들어가면 육중한 도리스식 돌기둥을 회랑의 지주로 삼아 사방으로 증축을 한 광경을 볼 수 있다. 이뿐 아니라 로마네스크 양식과 근대 지진바로크식 외관까지도 차후에 덧붙여졌으니, 로마인의 증축의 지혜가 엿보이며 먼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느낌이 들고 한 장소에 쌓여간 중세부터 근대까지 선인들의 각기 다른 흔적이 우주를 관통해 나에 가슴에 한마디 건네는 듯한 느낌을 주지는 않고, 출구로 잘못 들어갔다가 입장권 어딨냐고 해서 내쫓겨났다. 몰랐지 나는. 입구는 왼쪽에 있고 2유로 내야 한다.


산타 루시아 성당도 비슷해서 별로 할 말이 없다. 아, 카라바조의 그림이 있음.


저녁 뭐 먹지.


삼겹살올리오

저녁은 당연 파스타다. 파스타와 마늘을 가방에 짊어매고 다니고 있다. 저녁 시간이 되면 주방에 슬그머니 가지고가 까지 않은 마늘을 물에 불린다. 마늘을 까는 동안 파스타면을 끓이고 프라이팬에 올리브유를 두르면 시간이 얼추 맞다.


키 포인트는 그날의 단백질이다. 마트에 가면 전부 알아들을 수 없는 온갖 종류의 고기와 햄이 있기 때문에 육안으로 보고 그럴싸 한걸 아무거나 집는다.


오늘은 삼겹살을 반건조한듯한 진공포장육을 파스타에 넣었다. 반건조삼겹살올리오라고나 할까.


아주 만족했다.



8.30(금)


Let there be love

아침에 일어나서 처음 하는 생각은 아 뭐 하지? 오늘은 눈을 뜨자마자 인스타 쇼츠를 몇 개 보고 얼른  꺼버렸다. 다른 침대를 슬쩍 보면 죄다 쇼츠보고 있다. 나는 침대에 커튼을 치고 양반자세로 앉았다. 유튜브에 싱잉볼을 검색해서 에어팟을 끼고 15분간 앉아있었다.


명상은 늘 의심스럽지만 안 하는 거보다 낫다는 확신은 있다.


결국 오늘도 해안가 바위에 올라와서 책을 읽고 있다. 여기서 이탈리아어 공부를 좀 할 작정이다. 오는 길에 시칠리아 지도가 그려진 천 한 장을 2유로 주고 샀다. 바위에 깔고 앉으려고 샀는데 좀 뿌듯하다. 이따 이걸로 몸도 닦아야지.


제일 많이 하는 말부터 익히도록 한다. 운 까뻬 뻬르 빠보레. 커피 하나 주세요. 듣자 하니 여기선 에스프레소라고 안 하고 그냥 까뻬라고 한다던데 내가 까뻬달라고 하면 이 양반들은 꼭 에스프레소냐고 물어본다. 내가 관광지만 다니고 있다는 얘긴가. 동양인이라 그럴 수도 있고. 뽀쏘 쎄데르미? 앉아도 되나요? 뽀쏘 마싸레 꼰 까르따? 카드로 계산해도 되나요? 가끔 현금 없냐고 되묻는 사람들이 있어 익혀놔야겠다.


뭐 십몇분 보다가 꺼버렸다. 도저히 더워서 공부든 뭐든 뭐 할 수가 없다. 선크림을 몸에 바른다고 발랐는데 이 정도 자외선은 분명 선크림을 다 뚫고 내 몸에 파고들어 와 필요한 피부조직마저 다 태워버릴 것이다. 여름마다 궁금한 것이 두 가지 있는데, 서양인들은 어떻게 그리 오랫동안 뙤약볕에 아무렇지 않게 앉아있는지, 또 어떻게 그토록 오래 물에 둥둥 떠다니는 지다. 덥기도 하거니와 뜨거운 돌덩이에 엉덩이가 배겨서 화산석 모양대로 문신이 남을 지경이다. 망원엔 소파가 있는 카페가 많은데. 지금 가면 딱 좋겠다. 특히 오늘 같은 감성은 카페꼼마 지하에서 책 읽으면 딱인데. 아무튼 이 사람들은 이런 바위를 꼭 소파에 찰싹 붙은 고양이처럼 널브러져 있다. 나보다 피부가 훨씬 두꺼워서 그런가? 그래서 자외선에 꿈쩍안하고 날카로운 돌멩이에도 강하고 물에도 잘 뜨는 거야? 나중에 챗지피티에게 물어볼 예정.


나 : 서양인들이 나보다 물에 둥둥 더 잘 뜨고 햇볕아래 오래 버티고 있는 이유를 알려 달라


챗지피티 :

서양인은 일반적으로 체지방 비율이 조금 더 높을 수 있습니다. 체지방은 부력을 증가시킵니다. ••• 서양인들은 주로 더 밝은 피부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햇빛에 더 많은 비타민 D를 생성하기 위해 진화한 결과입니다. 밝은 피부는 햇볕에 약하긴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햇볕 아래에 있을 때 체온을 조절하는 능력이 더 뛰어날 수 있습니다.••• 서양인들은 종종 어린 시절부터 수영에 노출되고 •••


나 : 과학적인 근거를 인용해 줘


챗지피티 :

1. International Journal of Obesity - “Ethnic Differences in Body Composition”

2. Journal of the American Academy of Dermatology - “Evolutionary Perspectives on Skin Color”

3. Human Biology - “Cultural and Environmental Adaptations in Human Populations”


오..


아침에 프랑스 여자애들 둘한테 프랑스 남부에서 가면 좋을 곳을 받아놨는데 여기 메모해 둠. 바욘네랑 마르세유. 바욘네가 발음이 맞는지 모르겠다. 마르세유는 아니까 그냥 적는데 얘들은 말쉙 뭐 이렇게 발음한다. 마 ㄹ 색? 마ㅇㄹ셰?


근데 얘네 여기서도 만나서 인사했다. 아이러브시칠리가 적힌 옷을 입고 오더니 현재는 웃통을 훌러덩 까고 줄담배를 피고 있음. 법학과라고 했다.


공부는 때려치우고 더워서 수영 조금 하다가 모비딕을 읽고 있다. 이제 슬슬 고래가 나타난다. 나타난 고래가 작살잡이의 보트를 유유히 농락하고 사라질 때쯤 또 책을 덮고 노래나 듣기로 했다. 오아시스가 재결합했다던데, 맨 앞에 뜨는 곡이 오아시스의 “Let there be love”다. 내가 이걸 언제 한참 들었더라.


젖은 옷을 입고 가기 싫어서 그냥 바지를 벗은 뒤 바위에 말리는 중이다. 방금 널었는데 거의 다 마른듯하다.


렛 데얼 비 러어업

렛 데얼 비 러어업-


렛 데 얼 비 러어어어어업


버스 늦겠다 얼른 가야한다.




호주 아저씨

버스정류장에서 같은 호스텔 아저씨를 만났는데 타오르미나로 간단다. 같은 방향이다. 그 역시 포피처럼 에너지 넘치고 해맑다. 역시나 호주에서 왔다. 나는 내가 만난 호주사람들은 다 당신처럼 인상이 좋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풍긴다고 했다. 아저씨는 “우리도 그걸 알아요, 호주에서도 좋은데 나오니까 더 좋아지는 듯”이라고 했다. 아저씨는 “한국사람들은 꼭 감옥에 갇혀있는”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너는 한국에서 사는 게 어때? “ 그 아저씨는 이렇게 물었다.


나는 서울을 떠나 제주라는 시골에 살고 있어서 이제 감옥은 잘 모르겠고 “내 삶을 찾아 즐겁게 살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따위 간질거리는 문장을 내 입으로, 무려 즐 겁 게 살 고 있 어 요라고 말한 것이다. 영어로 급하게 옮기다 보면 온몸에 닭살이 돋을 법한 얘기도 하게 되는 법이다.


영어가 유창했으면 이랬을까?

‘사실 한국이 어떤지는 나도 잘 모르겠네. 한국 혹은 서울사람이 어떻다 말하는 건 참 어려운 일이야. 어디에 태어났건 누구나 자기 몫만큼의 환경은 쟁취하고 살아가지. 내가 답답함을 느껴서 수도에서 시골로 이동한건 사실이야. 그게 특별히 한국이라 그랬는진 모르겠네. 다른 나라에서 살았더라도 더 자유로운 동네를 찾아 떠났을 테지.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 아니겠나? 이렇게 여행을 다니다 보면 당신네 나라나 어느 유럽국가에 부러움을 느낄 때가 있는 건 사실이야. 남의 시선에 자유롭고 사회적인 의무를 덜 지고 살아간다는 점에서 말이야. 그렇다고 어느 날 신이 나에게 완전한 자유를 덜컥 쥐어준다고 했을 때 내가 과연 해방감을 느낄지 나는 솔직히 의문스럽네. 사람은 어디까지 환경을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가. 나는 이점에 대해선 아직 아무 답을 못 내리고 있어. 물론 답을 내려야 하는 질문은 아니라고 생각하네 ‘

물론 나는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지아르디니 낙소스

오늘부턴 지아르디니 낙소스에서 지낸다.


첫인상은 이렇다. 별거 없다. 도미토리 혼자 쓰니 좋다. 그러나 퀴퀴하다. 모기가 많다. 로비는 에어컨이 없다. 여기서 계속 지내고 싶단 생각은 안 든다. 껌껌하다. 얼른 리파리를 가볼까. 된다면 프랑스행 비행기를 조금 앞당겨도 괜찮겠다. 근데 니스도 비슷하겠지. 마르세유로 나갈까.


근데 머리가 너무 복잡하니 일단 할 수 있는 만큼의 생각과 행동만. 내일은 1박 추가. 화산투어 예약. 이솔라 벨라 가서 수영하고.



8.31(토)


달리기

잘 잤다. 8시에 일어났는데 아직 침대다. 11시다. 다음일정을 고민하다 보면 시간이 훅훅 지나버린다. 침대를 벗어나고 싶지 않다. 여행은 사실 기본적으로 귀찮다.


이럴 땐 그냥 달리기를 하면 된다.


이솔라 벨라까지 6km 정도를 뛰었다. 대중교통편을 검색하고, 버스를 기다리고, 제대로 가는 게 맞는지 확인해서 멀쩡히 내리고, 다시 목적지까지 걸어갈 시간에 그냥 뛰는 게 편하다. 물론 뛰기 전에는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뛰고 이십 분 정도가 지나면 늘 그렇듯 무더위를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떠올린다. 또 물이 모자라고. 또 도보가 없고. 결국 큰 오르막을 만나 헥헥거리며 걷는다.


마침내 도착한 이솔라 벨라는 명성 그대로였다. 이솔라 벨라는 글자 그대로 섬이다. 통영의 비진도를 떠올리게 한다. 혹은 안면도라고 해도 좋겠다. 해변가 앞으로 불쑥 바위하나가 튀어나와 있어 섬을 이루고 있는데 섬에는 걸어 들어갈 수 있다. 그 길 양편으로 자리한 해변에 피서객 수천 명이 고양이처럼 파라솔아래 뻗어있다.


엊그제 챗지피티 녀석이 귀띔해준 내용을 떠올린다. 백인들은 피부가 밝아서 태양빛을 덜 흡수하기 때문에 일광욕을 오래 잘한다. 나는 아무래도 유전적 차이는 없다는 데에 한 표다. 이솔라 벨라에 누워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작은 그늘이라도 찾아들어가 몸을 꾸기고 바위나 우산아래 찰싹 붙어있다. 작렬한다는 표현이 맞겠다. 작렬하는 태양은 피부색이 어떻든 간에 전부 태워버릴 만큼 강력하니 작렬한다고 한다. 나는 용기를 얻고 태닝을 하는 양 그늘 없는 곳에 앉아있었다. 그늘이 비싸기도 하다. 늘 그렇듯 운동화를 벗고 옷을 벗고 책을 펼쳤다. 책을 보려면 선글라스를 끼고도 눈을 잔뜩 찌푸려야 했다. 결국 얼마 못 가 수영을 두 번 하고 또 도망쳐 나왔다.


그래서 지금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고 이걸 쓰고 있다. 원래는 뛰어가려 했는데..

이솔라 벨라


결국 뛰어왔다. 버스가 올 기미가 없었다. 사람들 모두 혼란스러워했다. 먼 땅을 한번 보고, 버스 시간표를 망연히 쳐다보고, 마침내 온 버스를 허망하게 보내버리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뛰기로 한건 멋진 선택이었다. 내가 한 시간 뛰어 오는 동안 옆으로 버스가 지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클럽

호스텔에서 만난 애들과 안면을 텄다. 이 호스텔은 제주 게하에서 스탭 하던 때를 떠올리게 한다. 스탭은 총 여섯으로 콜롬비아, 튀르키예, 프랑스, 헝가리, 영국.. 한 명은 기억이 안 난다. 어째 게스트보다 많아 보이는 숫자다. 이들 중 한 명이 마지막 날이라고 해서 열댓 명이 밤에 놀러 나갔다. 호주의 톰과 영국의 새미와 리비가 추가 됐다. 클럽은 한국에선 평소에도 질색하는 편이고 음악을 들으러 간다는 말에도 잘 공감하지 못한다. 귀가 아픈데 뭐가 들린다는 건지. 아무튼 여행 왔을 때 누가 가자고 하면 대체로 거절하진 않는데 ‘와이 낫?’이라는 심정이다.


5유로씩 내고 들어간 클럽은 클럽이라기 보단 마을 잔치에 가까웠다. 동네 고등학생들이 들어와 우리와 강강술래 하며 소리를 질러댔고 황소같이 광분한 여자가 자리를 바꿔가며 나를 웃게 했다. 턴테이블 뒤에 있는 마이크 잡은 남자는 음악 사이사이마다 추임새를 넣었는데 엑스맨 시절 사회 보던 유재석을 떠올리게 했다.


나는 여기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 더 재밌게 적고 싶다고 생각하며 집에 갔는데 결국 기억너머로 던져버리기로 했다. 네시까지 노느라 글을 제때 못썼기 때문이다. 술을 한잔도 먹지 않은 걸 생각하면 대단한 일이다. 간략히만 이렇게 남겨둔다.


올리는 지랄 하며 노는 게 이동철같다. 칼로타와 데프니는 엄청나게 키스했다. 다른 스탭들이 약간 고개를 저었다. 리비는 페기구를 좋아한다. 대부분 술을 먹지 않았지만 마지막 날인 애들은 만취한 상태로 바다에 수영하러 갔다. 나는 방에 돌아와 내일 화산투어를 준비했다. 나중에 듣자니 올리는 방키를 잃어버리고 바다에서 잤단다.



9.1(일)


에트나 화산의 맛

네 시간 정도 잤다. 피로가 회복되기에는 조금 모자란 시간이다. 알람을 9시 15분에 맞춰놓고 네시반쯤 잠들었는데, 시계를 봤더니 8시 57분이길래 그냥 일어났다. 그러더니 9시 3분에 전화가 오는 것이다.


“에트나 화산의 맛 투어가이드입니다! 늦었어요. 빨리 내려오셔야 해요 “


누구 말에 서둘러보기가 얼마나 오랜만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클럽에 갔다가 짐을 다 싸놓고 자길 다행이다. 나는 3분만 주세요,라고 하고 침대에서 2분 만에 모든 걸 챙겨서 투어버스에 올라탔다. 가끔은 이토록 몸을 긴밀하게 움직이는 물질들이 내 몸에 남아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란다.


투어가이드 이름은 주세페. 주라고 부르거나 페페라고 부르면 된다고 한다. 페페에게 내 이름을 알려주니 나를 ‘주’라고 부르겠다고 한다. 좋다고 했다. 우리는 다른 여행객들을 태워 화산으로 향했다.


“자 이제 우리는 카타니아주로 넘어왔습니다. 카타니아의 돌과 지형은 99퍼센트가 화산석으로 이루어져 있죠. 완전히 하얀 돌. 오른쪽에 벽들이 보이시나요? 이 지역의 건물들 역시 화산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페페가 말했다.


나는 제주 돌집들을 떠올렸다.


“우린 오늘 세 가지 장소에 들릴 겁니다. 먼저 에트나 화산의 입구인 리퓨지오 사피엔짜로 갑니다. 해발 2000미터인 곳이죠. 각자의 취향에 따라 전기자전거나 케이블 카를 타고 2300미터까지 올라갑니다. 아쉽게도 여러분의 투어는 이 비용을 포함하지 않습니다. 추가 비용을 내고 싶지 않으신 분들은 저와 리퓨지오 사피엔짜를 도보로 둘러보며 멋진 투어를 겪게 될 겁니다. “ 페페가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내려오는 길에 작은 동굴을 들릴 겁니다. 그곳에서 용암이 어떻게 동굴을 형성하는지 멋진 설명을 듣게 될 거예요. 마지막으로 삼십 분 거리에 있는 와이너리에 도착하면 바로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에트나 화산의 맛을 느낄 수 았습니다. 아쉽게도 맛보기 술을 제외한 식사금액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에트나에서만 맛볼 수 있는 와인과 술, 잼들을 만나게 될 거예요. 맛있다고 계속 드신 분 들은 돌아오실 수 없으니 주의하시면 되겠습니다 “ 페페의 낭랑한 목소리가 9인승 밴을 가득 채웠다.


페페는 과연 베테랑이었다. 자기가 해야 할 말을 정확히 알았고 어느 지점이 명료해야 나중에 문제가 되지 않는지 경험으로 체득하고 있었다. 동시에 자신의 가이드 능력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으며 여행객이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면서도 생각치못한 서비스로 한수 앞서 나가는 식이었다. 여행을 하다 보면 로컬과 바깥 모두에 정통한 가이드를 만나게 되는데 오랜만에 페페가 그런 경우였다. 그는 나를 ‘나이스 영가이’ 혹은 ‘주’라고 부르며 예의와 스킨십을 동시에 차렸다.


내 옆자리는 호주에서 온 제마였다. 제마는 변호사 일을 시작하기 직전에 짬을 내 여행을 하던 20대 초반의 쾌활한 청년이었다. 그녀와 나는 추가비용을 지불하지 않았으므로 페페와 함께 도보 여행을 이어나갔다.


나는 에트나의 구석구석을 제주에 빗대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모양이 굉장히 닮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도착한 등산로 입구는 제주로 치면 관음사 입구 정도 되는 듯했다. 아래로는 온갖 오름들이 한눈에 들어왔는데, 여기서도 오름이라는 낱말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아직 살아있는 화산이라는 점에서 제주 오름과 달랐는데 무엇보다 색깔이 시꺼맸다. 화산재에 식물이 자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페페는 내 어깨에 손을 올려가며 구석구석을 가리켰다. 그리고 설명을 이어갔다.


“저 멀리 오른쪽에는 푸른 숲이 이뤄져 있죠. 그 근방으로는 수백 년 전에 화산활동이 모두 멈췄습니다. 자 이제 이쪽을 보세요. 까맣고 긴 길이 보이죠? 불과 23년 전에 생긴 길입니다. 지금도 살아있는 분화구는 다섯 개예요. 가장 높은 녀석과 그 밑에 형제들입니다. 지난주에 제마도 봤다던 그 분출은 가장 높은 녀석 분화구에서 이뤄진 거예요. 자 이제 나를 따라오시죠..“


나는 끊임없이 제주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 오름에 올라가 설명하면 될 터였다. 호기심 가득한 외국인에게 용눈이부터 다랑쉬까지, 멀리 보이는 지미봉까지 설명해 주는 상상을 했다. 그 설명이라고 크게 다를 건 없을 텐데, 왜 그런 일은 아무도 하지 않는 걸까?


페페는 돌을 집어가며 설명을 계속했다. 지층마다 다르게 쌓여있던 돌들이 분화마다 다른 곳으로 퍼진 이야기를, 그러니 구역에 따라서 색깔이 다르고 모양이 다른 지형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를, 어디 오름이 형제고 어디가 아닌지를. 앞에 보이는 저 가게는 용암이 옆으로 지나가 창문을 모두 막았지만 지금 멀쩡히 영업하는 걸 볼 수 있듯이 용암은 전혀 위험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술술 이어나갔다.


페페는 때때로 우스꽝스러웠다. 자신의 짧은 신체를 활용하는 듯했다. 어떻게 사람을 웃길지 능숙한 가이드였다. 돌을 집어 화산재 바닥에 커다란 바다를 하나 그리고 작은 분화구 모양을 쓱쓱 그어댔다. 그가 작은 분화구를 여러 개 만들자 가운데로는 점차 큰 언덕이 생겨났고 비로소 섬이 되었다. 보이죠? 이렇게 시칠리아가 만들어지는 겁니다. 물에서 터진 용암은 금방 식어서 작은 갯바위를 만들고 이게 반복돼 융기와 함께 커다란 섬이 형성된다는 얘기였다. 마침내 커다란 화산이 육지에서 터지면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용암이 해안가로 흘러가고 계곡과 지형을 만든다. 그는 온몸이 작았기 때문인지 온몸을 활용하는데 능숙했고 그 모양이 우스꽝 스러울 때마다 나랑 제마는 깔깔대고 웃어댔다.


오름 두어 개를 도는 동안 우리는 꽤나 각별해져 있었다. 산발적으로 비가 쏟아지거나 멈추고 있었다.  때로 붉은 화산재 위로 번개가 쳤다. 우리는 비를

피하러 카페로 향했다.


페페는 제마에게 이렇게 물었다.

“비가 올 때 나 젖고 있어요. 이렇게 말해도 돼? “

제마는 깔깔대고 웃었다.

“돼. 듣는 사람 뇌가 썩은 게 아니라면 괜찮을 거야 “

우리는 비를 피하러 카페로 향했다. 용암에 창문이 막혔다던 그 카페. 페페는 랩을 했다. 스눕독의 노래였다.

“에트나. 네가 젖었으면 해. 에트나. 네가 젖었으면 해”


우리는 배를 잡고 웃으며 다른 일행들을 만나러 갔다.


오름과 페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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