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덩구 Sep 06. 2024

리파리, 스트롬볼리, 깔라마리

여행 3주차 1

9.2(월)


이동

기차역까지 가는 편이 마땅치 않아 그냥 걸었다. 버스나 택시를 타라는데 걷는 게 아무래도 편하다. 땀을 뻘뻘 흘리며 도착했더니 도무지 기차가 오지 않는다. 그나저나 여기서 타는 게 맞는 걸까? 중년의 네덜란드 부부가 나처럼 서성이고 있다. 아마 여기가 맞는 건지, 플랫폼은 어디란 건지, 기차는 왜 안 오는지 궁금해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매표기계를 뒤적거리더니 나를 불렀다. 좀 도와줄 수 있나요,라고. 나는 나도 아무것도 모르지만 어디 봅시다,라고 했다. 부부는 나랑 같은 방향이었는데 정작 표도 없었다. 이미 기차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기계로는 표를 살 수 없었다. 우리는 방법을 여러 방식으로 고민했다. 나는 그들에게 그냥 올라탄 뒤 승무원에게 매표하라고 권했다. 그들은 다음 열차표를 구매한 뒤 가장 먼저 오는 열차를 타기로 했다.


잠시 뒤 기차가 왔고 우리는 탔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 부부는 5분 뒤에 내렸다. 사실은 모든 게 우리 생각보다 너무 쉬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러닝

러닝을 하다 보면, 대중교통으로는 쉽게 갈 수 없는 곳을 발견하게 된다. 배낭여행자의 활동 반경이 숙소에서 대략 10km 이내라고 가정하면, 두 시간 정도 뛰면 대부분의 장소에 도달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다 우연히 ‘카포 밀라쪼’를 만났다. 시칠리아 북쪽의 끝자락처럼 느껴지는 곳. 절벽 너머로 해가 지며 흰 바위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신혼부부들이 웨딩 사진을 찍는 가운데, 나도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사진을 한 장 부탁했다.


카포 밀라쪼


256

호주커플 브래디와 이지와 수다를 떨었다.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나눴음에도 내 머릿속에 남은 건 브래디가 256주자라는 사실이다. 풀마라톤 기록이 2시간 56분이라는 뜻이다. 호주의 배관공 브래디는 킬로미터당 4분 10초의 페이스로 42킬로를 달린다. 나보다 무려 26초나 더 빠른 페이스다. 나는 샘이 났다.


“한 달에 얼마나 뛰었어? “내가 물었다

”일주일에 120씩, 한 달은 400에서 500? “

브래디가 말했다.

”그렇게 뛰면 안 다쳐? “

”다치지 “

”어떻게 이렇게 빨리 뛸 수 있지? “

“나도 처음엔 불가능하다 생각했어 “

”너 몇 살이지? “

”스물다섯 살“

”얼마나 준비한 거야? “

”마라톤은 일 년 반. 집중 트레이닝은 한 달 반? “

”말도 안 돼 “


나는 침대에 누워 4분 10초로 달리는 마라톤을 떠올렸다. 차라리 이번 가을 마라톤에  서브3를 목표하는 게 어떨까 생각했지만, 곧바로 그만두었다.




9.3(화)


리파리

리파리로 간다. 여기서도 섬을 다니고 있다. 자꾸 시칠리아를 제주에 빗대서 생각하고 있는데, 시칠리아에겐 미안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시칠리아는 제주면적 13배 정도 된다. 경상도 면적이랑 비슷하다. 땅덩이가 큰 만큼 땅덩이를 이루고 있는 녀석들도 조금씩 더 크다. 에트나 화산은 한라산보다 1000미터 정도 높다. 지금 가는 리파리는 시칠리아의 제일 잘 나가는 부속섬으로 제주로 치면 우도 정도 된다. 리파리가 우도보다 6배 정도 더 크다. 우도는 15분이면 가지만 리파리는 쾌속선으로 60분 정도 걸린다.


섬 속의 섬이라는 특징은 관광의 맛과 현지의 맛을 동시에 갖추게 한다. 나는 그 점을 기대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피서객들은 물놀이 짐을 챙기거나 트래킹 채비로 배에 올라탔다. 어째 물놀이를 가는 사람이 더 많은 듯하다. (이 말에 기시감이 들어 곰곰이 생각해 봤더니 김영하가 자기 책 <오래 준비해 온 대답>에서 리파리로 가며 같은 얘길 했다)


우도와 다른 게 있다면 리파리는 여러 형제 섬과 함께 제도를 이루고 있다. 에이올리안 제도라고 한다. 시칠리아 북쪽으로 송송송 솟아있는 이 화산섬 형제들은 리파리를 중심지로 삼아 7개 섬이 각지의 매력을 지니고 있다.


큰 화산섬 옆에는 작은 화산섬이 솟아 있기 마련이다. 한라산이 있으면 성산일출봉이 있고 그 옆에 우도가 있듯, 에트나 화산이 있으면 리파리가 있고 스트롬볼리가 있고 불카노가 있다. 이 중에 스트롬볼리는 여전히 분화 중인 산으로 리파리에 가는 많은 사람이 스트롬볼리의 화산을 보러 간다. 나도 그렇다.


커피

오늘 커피 세 잔 째다. 이탈리아에 온 지 이주만에 커피를 시키는데 아주 능숙해졌다. 커피하나 주세요. 네 에스프레소로요. 앉아서 먹어도 됩니까? 카드로 계산해도 되지요? 뻥을 조금 보태서 이 말들은 내가 들어도 현지인 같다. 문제는 저게 내가 할 줄 아는 이태리말의 전부라는 것.


결국 종업원이 다른 소릴하면 못 알아듣는다. 내가 왜 갑자기 눈만 꿈벅거리고 있는지 의아할 거다.


파스타

저녁은 물론 파스타다. 주방 딸린 비앤비를 연박으로 잡은 기념으로 기분 좀 냈다. 큰 마트에 가서 장깨나 봤다는 얘기다. 모처럼 파스타에 넣을 생각으로 토마토를 샀다. 사과뿐만 아니라 배와 복숭아까지 샀다. 내 손으로 과일을 사다니 큰 맘을 먹어야 했다. 아침에 먹을 요구르트와 빵, 샐러드도 한봉 샀는데 거기에 계란까지 무려 6개나 샀다.


오랫동안 마음 한편에 시칠리아에 가면 좋은 지역 식재료로 잘 먹고 며칠 잘 살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이게 다 김영하 때문이다. 김영하 작가는 자기 책 <오래 기다려온 대답>에서 시칠리아에서 오징어 파스타 해먹은 얘기를 무척이나 자랑했고, 나도 모르게 미친 듯이 흉내 내고 싶어졌다. 어이가 없는 사실은 나는 이미 제주에서도 심심하면 오일장에서 오징어를 사다가 파스타를 해 먹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는 잡아서도 먹었다. 그거보다 싱싱한 게 뭐가 있어.


아니, 지중해로 까지 가서 그러고 앉았으면 뭐가 달라진단 말이냐? 이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다. 나는 예전부터 챗지피티에게 “지중해의 목가적인 분위기와 어시장의 고즈넉함을 느낄 수 있고 신선한 해산물을 즐길 장소를 알려줘”라고 심심풀이로 물어댔다. 이 놈은 아무 시골동네나 집어댄다. 마을 이름을 만들기도 한다. 대답을 탓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안다. 질문부터가 구리다. 그 따위 장소는 존재하지 않고 어딜 가든 내가 만들어내기 나름이리라!라고 호기롭게 생각해 본다. 그리하여 나는 오징어 파스타를 흉내 낼 장소를 오늘 있는 리파리섬으로 신명 나게 결정했고 곳곳에 어부들이 그물을 손질하고 항구엔 낚싯배가 들락날락하는 걸 보니 시장에 크고 싱싱한 오징어가 있으리라 판단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시장도 없고 대형마트에도 오징어가 없어서 정육집에 가서 고기를 사 왔다.


오다가 투어사에 들러서 “한 가지만 물어도 될까요. 싱싱한 오징어를 사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마트에는 오징어가 없던데요”라고 물었다.


투어사 아줌마가 말했다.

“싱싱한, 물고기, 오직, 아침에만, 항구에 많다, 지금, 싱싱한 물고기, 슈퍼마켓, 그러나 없다”


그래서 정육점으로 갔다.


보통은 육안으로 시뻘건 고기를 들여다보고 아무거나 내키는 대로 샀다. 뱃속에 들어가면 다 똑같지 뭐 이런 생각이어서 무작위를 믿었다. 그래서 몇 번은 살라미 비슷한 걸 샀고 어쩌다 반건조삼겹살 비슷한 놈을 사기도 했다. 때로 칼질이 전혀 안 돼서 실패했고 반건조삼겹살은 그럭저럭 성공했다. 오늘은 기분이 좋은 날이었으므로 처음으로 정육점 사장님에게 질문을 던졌다.


“파스타. 파스타에 들어가는 고기. 무엇이 베스트입니까?” 내가 물었다.


“이거. 쌀시차“


그리하여 쌀시차를 샀으니 어디 한 번 요리해 보고 오겠다.


살시차 토마토 파스타

오 성공, 이라고 적고 있는데 앞방 나폴리 청년 길로가 어떻게 파스타랑 주스를 같이 먹을 수 있냐고 경악을 한다.


밥을 먹곤 저녁 내내 옆방 프랑스 남자애랑 번역기로 수다를 떨었다. 영어는 0.1도 못하는 아이인데, 엄청나게 빙구웃음을 지어댄다. 구글 번역기가 자기 말을 번역하면 씨이이익하고 웃으며 나에게 들이댄다.


“당신은 별빛 아래에서 잠을 자나요?”


이게 뭔 소릴까?



9.4(수)


스트롬볼리

오늘은 스트롬볼리로 간다. 어제 러닝을 하다가 아무 투어사나 들어가 등산 프로그램을 예약했다. 리파리를 제주의 우도에 비교했다면 스트롬볼리는 가파도 정도 되려나? 점점 제주에 비교하는 게 이상해진다. 아무튼 더 멀다는 뜻이다. 스트롬볼리를 가려면 여기서 작은 배를 타고 두 시간을 더 간다.


스트롬볼리는 지금도 열심히 분출 중인 화산섬이다. 투어사에서 나는 이게 십오만 원가량 돈을 주고 갈만한 가치가 있는지 한참 고민하고 있었다. 옆에 있던 독일 아줌마가 고민하던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와 내 남편은 20년 전에 스트롬볼리에 갔어요. 산 꼭대기까지 올라갔죠. 엄청난 경험이었어요. 잊을 수 없답니다. 우리는 스트롬볼리 하나 때문에 20년 만에 여기에 다시 온 거예요. 우리 애들에게 그 광경을 보여주려고요 “


나는 그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결제했다. 100유로에 낮 12시에 배를 타고 밤 12시에 돌아오는 일정이다. 안타깝게도 아줌마는 3세의 아이를 데리고 있어서 투어 참여를 거절당했다. 독일인 부부는 아이를 업을 수 있는 하이킹 장비를 보여주며 투어사 직원을 설득했지만 직원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8월, 9월엔 어떨지 모릅니다. 아이는 원칙적으로 전부 다 안 돼요. 헬멧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돌발상황에 대비할 수 없어요” 직원이 말했다.


직원은 자기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영상을 보여줬다. “이 사진이 불과 지난주 금요일입니다” 붉고 밝은 용암이 솟구치고 있었다. 나는 얼른 남은 한자리 예약을 끝냈다.


아무래도 독일 아줌마는 아이를 두고 가기로 남편과 얘기하는 걸로 보였다. 그리곤 나에게 말을 보탰다.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나는 다시 달리러 갔다.


보트

리파리는 빠른 속도로 작아지고 있다. 멀리 보이는 스트롬볼리는 도무지 가까워지지 않는다. 보트는 내 예상보다 더 작다. 이십 명가량 어깨를 맞대고 가고 있는데 나는 그나마 여유로운 보트 옥상 위로 올라왔다. 늘 그렇듯 서양인들은 햇볕아래 비키니차림이거나 웃통을 벗고 있다. 나도 웃옷을 벗고 갑판에 널브러져 이걸 쓰고 있다. 보트가 달리는 바람에 열기가 식혀지고 있다. 음악은 롤링스톤즈의 쉬즈어레인보우.


시간이 지나자 보트가 아주 빨라진다. 뱃머리가 들창코처럼 들린다. 앞바퀴를 들고 달리는 바이크 같다. 갑판은 뒤쪽으로 기울어져 있어 벌거벗은 우리는 난간을 잡고 간신히 버티고 있다. 아마 도착하기 전엔 갑판밑으로 내려가는 게 불가능하지 싶다. 노래가 계속된다.


She comes in colours everywhere

She combs her hair

She’s like rainbow

Coming, colours in the air

Oh, everywhere


배가 갑자기 멈췄다. 날씨가 좋아서 20분간 수영하고 가잔다. 나는 수영복을 따고 안 챙겨 왔는데 다들 이미 비키니나 스윔팬츠다. 나만 몰랐던 건가. 여전히 깊은 물은 무섭지만 다이빙하는 분위기다. 어라 물에 뜨긴 뜬다.


이제 스트롬볼리가 가까이 보인다. 산할아버지가 쓴 모자는 구름모자가 아니고 가스모자.


가스모자를 크게 두 번 분출했다.

스트롬볼리


스트롬볼리 하이킹

가이드 린다는 사람들의 신발을 검사하고 있다. 화산 트레일을 오르기에 적합한지 밑창을 까보라고 한다. 사람들은 줄 서서 자기 밑창을 보여주는데 린다의 반응은 대게 비슷하다. 안됩니다, 저기 가서 등산화를 빌려오세요. 아마 등산로에 쌓인 화산재가 무척 미끄러워서 엄격한 듯하다. 나는 그런 광경을 보면서 내심 트레일러닝화를 챙겨 온 나를 칭찬하고 있었다. 디자이너가 미끄러지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한 신발이겠지. 심지어 내 신발 옆면에는 화산도 그려져 있다고. 생각해 보니 입고 있는 티셔츠에도 화산이 그려져 있는데, 아주 동양 화산의 맛을 보여주지. 린다는 내게 와 신발을 보자고 했고 나는 자랑스럽게 밑창을 내밀었다. 짜잔.


“흠..” 린다가 고민하는 눈치였다.

“이거 트레일용이야” 반응이 썩 별로길래 내가 말했다.

“알아. 너 많이 뛰나 보지?”

“아주 많이”

“다치는 일은 우리가 책임지지 않는다” 그녀가 말했다.


그룹으로 등산을 하다 보면 안전기준을 굉장히 보수적으로 세우기 마련이다. 아무 정보 없이 명소라는 사실만 알고 투어를 신청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 이십 명은 가이드를 중심으로 둥그렇게 모였는데, 보트에서 태닝 하던 여자는 비키니 위에 망사로 된 비치웨어만 걸치고 등산화를 싣고 나타났다. 반면에 스페인에서 온 중년 부부는 스틱부터 모자까지 네팔 히말라야 트래킹을 가는 줄 알았다. 나야 뭐 러닝 차림이니 우리의 콘셉트는 다양성이라고 해도 좋겠다.


린다는 언어를 조사했다. 이탈리아 손드세요, 프랑스 손 드세요, 자 다음 스페인, 영어 쓰시는 분은요? 영어만 되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린다는 나에게 그룹을 바꾸라고 농담을 한번 던지더니 영어로 말을 이어나갔다.


“오케이. 우리는 영어로 먼저 설명할 겁니다. 이후에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순으로 해설을 해드리죠”



나는 그녀가 스물다섯밖에 안 됐다는 게 놀라웠다. 안타깝게도 그녀가 쓰는 영어는 이탈리아 사람밖에 못 알아들었다. 어찌 되었건 20대 초반의 낭랑한 가이드는 4개 국어로 가이드를 꿋꿋이 이어나갔다.


사실 하이킹이라고 해서 신청했지만 하이킹까진 아니었다. 산보라고나 할까. 자꾸 제주로 쳐서 미안하지만 영실코스의 반의 반정도 되었고 큰 오름 하나 오르는 정도라고 해도 좋겠다. 뙤약볕에 연로한 인원도 많았으므로 우리는 모두를 배려해서 걸었다. 마치 나 하나 때문에 영어를 쓰는 것처럼. 나는 어제 뛰던 길을 떠올렸다. 뛰어가면 금방 갈 텐데, 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쓸데없는 생각은 집어넣고 린다 뒤를 쫓으면서 그녀와 대화를 나눴다.


대화를 통해 알게 된 그녀를 소개하겠다. 이름 린다. 나이 구십구 년생. 볼로냐 근처에 태어났지만 시칠리아 에트나 근처로 공부하러 옴. 전공은 지질학. 전공을 살려 시칠리아의 화산을 소개하는 일을 하고 있음. 이렇게 시골에 처박혀 매일을 보낼 순 없으므로 일주일에 두어 번씩 자기 집에 가서 강아지 밥을 줌.


린다는 이십 분마다 멈춰서 화산에 대해 소개했다. 나는 귀를 기울여 봤지만 잘 알아들을 수 없었으므로 그녀가 페페와 비슷한 얘기를 하겠거니 생각했다. 그녀 역시 등산 스틱으로 땅에 그림을 그려가며 화산을 설명했다.


린다가 말했다.

“1930년, 1954년, 2002년과 2019년 그리고 바로 올해인 2024년에 아주 큰 분출이 있었죠. 바로 지난 7월에 큰 폭발이 있었다는 사실은 다들 아실 겁니다. 용암이 해안까지 흘러내렸어요. 우리는 그 덕분에 헬멧을 챙겨야 하고 정상까지도 못 가게 됐죠. 위험한 건 아니냐고 물으신다면.. “


린다는 화산의 무해성에 대해 마르고 닳도록 얘기해온 듯했다. 입이 아파 보였다. 안타깝지만 헬멧을 착용할 일은 없습니다, 들고 가라고 하니까요. 린다는 그렇게 말했다.


두 시간이 걸려 전망대에 도착했을 땐 수평선 너머로 해가 지고 있었다. 온 바다가 황금빛으로 변하는 와중에도 모두의 관심은 분화구에만 있었다. 멀리서 보던 가스 분출이 이제는 눈앞에 보였다. 하얀 연기와 검은 연기를 번갈아 내뿜었다.


“10분에서 15분마다 큰 분출이 있습니다. 분화구에 압력이 가득 차면 터져 나오는 식이죠. 그런데 어제 굉장히 큰 분출이 있었어요. 검은 연기가 수키로를 채울 만큼 강하게 터졌습니다. 그만큼의 압력이 채워지려면 다시 오랜 시간 기다려야 할 거예요.“ 린다가 말했다.


사람들은 얼른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하늘이 검어질수록 분화구의 불꽃이 선명해졌다. 린다말대로 이따금식 불꽃놀이가 큰 폭팔음과 함께 솟구쳤다. 큰 불꽃이 눈에 보이고 사람들이 함성을 지르면 늦게 도달한 폭팔음이 전망대에 울렸다. 우리는 모두 별똥별을 기대하는 사람 같았다. 기다리는 모습은 가지각색이었다. 누구는 난간에 기대서 목을 빼고 있고, 누구는 인스타에 올릴 자기 사진을 찍느라 열심이었다. 누구는 카메라를 켜고 화면으로만 분화구를 쳐다보고 있었고, 누구는 더 좋은 자리를 찾으려고 돌아다녔다.


나는 눈에 담겠다는 입장이었다. 모두가 카메라를 들고 타이거 우즈를 찍고 있을 때 맥주만 들고 지금을 만끽하던 한 남성을 떠 올렸다. 지금 여기 있으리라. 눈에 담았던 지난 여행도 곰곰이 떠올랐다. 아타카마 사막 아래 번개 치던 날들, 우유니를 가르던 새벽 지프차, 히말라야 언저리 사막을 건널 때 만났던 당나귀 무리. 눈을 감고 그때를 떠올려보면.. 도무지 잘 떠오르지 않고 그 순간을 찍었던 사진부터 떠오르는 것이다. 인간의 눈은 지금 여기에 있을지 모르겠으나 기억으로 남기는 기능은 사진이 한다. 나는 결국 몇 번의 환호성과 불꽃놀이를 놓치고 남들을 따라 카메라를 들었다.


용암은 갯바위의 파도처럼 부서진다. 큰 파도가 바위에 부서지면 작은 파도들은 맥을 못 추고 흡수되듯이, 큰 불꽃이 분화구를 터뜨리면 작은 불꽃이 이끌려서 따라온다. 사람들은 임의적인 리듬에 매료된다. 규칙은 크게는 규칙을 가졌지만 작게는 불규칙하다. 이걸 불멍이라고 해도 좋겠다. 나는 불멍을 이어가며 핸드폰으로 한 손으로 쥐고 큰 분출이 터져주기를 기다렸다.


붉은 불꽃이 바위사이로 치솟았다.

나는 바르셀로나 애들에게 외쳤다.

“봐!”

모두가 이미 보고 있었다.

천둥 같은 소리가 전망대에 울렸다.

깨진 돌들은 수백 미터를 굴러 떨어졌다. 바위가 바다에 바다에 빠져 포말이 일면 잠시 뒤에 첨벙거리는 소리가 났다.






9.5 (수)


깔라마리

농땡이를 피우고 있다. 리파리 숙소를 2박 연장했다. 저녁에 파스타 해 먹으려고 오징어를 샀는데 한 마리 8유로다. 싸지 않다. 주방에 사람이 붐빌까 일찍 요리해 먹고 있다. 시간은 오후 한 시 사십 분. 모든 걸 불태워버릴 듯한 태양이 테라스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땀이 난다. 나는 아직 씻지도 않았다.


앞방에 묵고 있는 나폴리 청년 길로는 나보고 자꾸 같이 놀러 가잔다. 혼자 있는 내가 적적해 보였는지 배려해 주는 게 고맙지만 누구랑 같이 놀러 가는 건 정말이지 귀찮은 일이다. 길로는 내 스쿠터에 타면 돼,라고 한다. 나는 좀 쉬어야겠어,라고 한다. 길로는 오 커몬 브로, 해변에 가서 쉬어야지 여기서 이러면 되겠어?라고 한다. 나는 남은 일을 좀 해야겠어,라고 한다. 길로는 돈 내라고 안 할게,라고 한다. 리파리섬에서 방콕모드는 가당치 않다는 그의 말에 동의하지만 정말 나가기가 귀찮다.


다음 여행지를 검색해 보다가 두 시간이 지났다. 늘 있는 일이다. 방 안에서 푹쉬었나느냐면 그것도 아니다. 인스타를 보다 보면 시간이 훅훅 간다. 어째 더 피로해진 거 같다. 몸이 찌뿌둥 한데 이럴 때 최고는 뭐다? 러닝 하러 가는 것.


어쩌면 나는 할 줄 아는 게 러닝밖에 없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오늘은 해가 질 때까지 참아야겠다. 지금 나가서 뛰면 길게 뛰지 못하고 금세 들어와 버릴게 뻔하다. 그러니 침대에 조금 더 누워있도록 하자. 여행이 가져다주는 무료함이란 어이없는 일이다.. 하지만 더 익숙해지기로 한다. 나는 장기여행자다. 지금 이렇게 아무 말이나 지껄이고 있는 거도 나쁘진 않잖아?


그래도 나에겐 고대하던 오징어 파스타를 만들 시간이 있었다. 마늘과 파스타는 남들이 두고 간걸 조금 썼다. 냉장고에서 아침에 사둔 오징어를 한 마리 꺼내는데, 가슴이 두근거린다. 아니 그래도 한 마리 8유로는 살만한 가치가 조금 없는 것 같다. 세화 오일장에 가면 한 바구니 만원 정도에 두세 마리는 업어올 수 있는데, 아니 한치도 8유로 정도면 한 끼 먹을 만큼은 충분히 산다. 뭐 지중해에서 잡힌 오징 어니까 조금 다를지도 모르는데, 그런 기대로 샀다. 결과는?


아주 맛있고 또 사 먹진 않을 듯. 제주오징어보다 풍미 있고 한치보단 덜하다. 저녁엔 다시 살시차를 사야겠다.


침대에 누워서 러닝에 대한 얘기를 좀 해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챗지피티, 낙소스, 에트나 화산의 맛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