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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덩구 Sep 10. 2024

러닝, 파업, 모비딕

여행 3주차 2

9.5(목)


참을 수 없는 러닝의 가벼움

카네토 해변에 누워서 이걸 쓴다. 숙소에서 해변까지 3.3km를 뛰어 왔다. 러닝에 대해선 무슨 말을 짚고 넘어가야 할 거 같은데, 늘 뛰고 나면 별로 할 말이 없다.


말나 온 김에 어떻게 뛰었는지 좀 봐야겠다. 로마 8.7km, 나폴리 14.4km, 팔레르모 3.4km, 시라쿠사 6.1km, 시라쿠사 12.6km, 시라쿠사 6.9km, 노토 4.2km, 노토 21.3km, 시라쿠사 3.6km, 지아르디니 낙소스 6.7km, 지아르디니 낙소스 12.1km, 밀라쪼 14.9km, 리파리 11km, 방금 뛰어온 리파리 3.3km. 생각보단 많지 않다. 하루평균 10km가 안된다. 장거리 훈련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러닝 이야기를 많이 쓰고 싶었다. 포르투 마라톤을 앞두고 여행을 시작했기 때문에 여행지마다 뛸 생각이었다. 러닝 콘텐츠가 워낙 유행이기도 하고 달리기에 관해선 할 말이 좀 있으리라 여겼다. 훈련량도 점검하고 나중에 글로 풀어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조금씩 메모하기 시작했다.


러닝을 마칠 때마다 드는 생각인데, 정말이지 할 말이 없다. 멋진 말은 하루키가 다 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짜내어 쓰고 있는 글도 러닝 얘긴 잘 없다. 어제 만난 호주애가 어쨌다거나 오징어가 비쌌다는 식의 이야기만 하고 있다. 소매치기나 히피를 만난 얘기는 재밌게 적긴 했는데 러닝 얘기는 아니지 싶다. 러닝을 하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은 그야말로 할 말이 없다. 나는 왜 뛰는가, 무엇을 느끼는가, 무엇이 바뀌고 있는가. 그럴싸한 철학도 매번의 깨달음도 없다. 실제로 뛰면서 하는 생각은 저녁을 어떻게 먹을지, 개똥을 밟진 않았겠지. 뭐 이런 생각이다.


사실 러닝만 그런 게 아니고 여행도 그런 거 같다. 오늘도 종일 침대에 있다가 방금 나왔다. 여행을 하는 대부분의 시간은 일상적 생존을 영위하는데 쓰인다. 똥을 싸고 몸을 씻고 장을 보고 밥을 먹고 체크인과 숙소이동을 하는 시간이 대부분이고 남는 시간엔 인스타그램을 본다. 시칠리아라고 생기는 특별한 일은 딱히 없는 거 같다. 그러니 러닝이든 여행이든 무슨 말을 계속하겠다고.


카네토 해변에 누워서 계속 이걸 쓴다. 숙소에서 해변까지 3.3km를 뛰어 왔다. 두 명의 러너를 만나 인사했는데 한 명은 받아줬고 한 명은 날 못 봤다. 터널에서 길을 비켜준 사람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신발은 어제 화산재가 잔뜩 묻어서 발걸음마다 가루가 날렸다. 러닝벨트엔 바닥에 깔 시칠리아 지도가 그려진 천과 수경, 물통엔 마그네슘 파우더를 넣고 달렸다. 수경에 안티포그를 바르는 걸 잊었다. 러닝벨트에 화산재가 묻지 않게 하려고 바닷가에서 중심을 잡고 신발을 신은 채 바지를 벗는 사람처럼 아주 조심스레 러닝벨트를 벗었다. 러닝화를 벗고 자갈밭에 맨발로 서니 악소리가 나왔다.



9.6(금)


게으름뱅이

오후 세시다.


할머니는 내가 역마살이 꼈다고 걱정하는데, 사실 나는 집돌이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오후 두시까지 방에서 빈둥대다가 방금 나왔다. 생각해보니 종달리에 살 때도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몸좀 움직여야 겠다 어슬렁대는 편이다. 가까운 여행지도 게스트 보다 잘 모르고 가는 카페나 음식점만 주구장창 가는 패턴으로 살았다.


오늘은 뭐좀 해볼까 싶어 관광거리를 어슬렁 거리고 있는데 도무지 할 게 없다. 아니 놀거리는 많은데 내가 게을러서 없어졌다. 줄지어 서있는 투어회사들은 문을 닫고 낮잠을 자러갔다. 다섯시에 돌아옵니다. 이렇게 써있다. 오늘 마감. 이렇게도 써있다. 보트투어 출발 여덟시 도착 세시 이렇게도 꺼있다. 결국 투어는 포기하고 성당이나 항구를 느릿느릿 배회하다가 늙은 할아버지가 사진을 찍어달라고 핸드폰을 내밀었다. 나는 정성을 다해 여러번 찍어주었는데 할아버지가 손에 들고 있던 수박을 먹으라고 했다. 배부르다고 거절을 했더니 옆에 있던 다른 노부부가 자기들도 찍어달라고 했다.


결국 근처 카페에 들어와 에쏘 한잔 달라고 했다. 세시인데 커피마셔도 되려나? 뭐 여기선 별 상관 안한다. 같은 테이블에 오스트리아 가족들이 나랑 마주 보면서 젤라또를 먹고있다.


낮잠을 자러 사라진 여러 투어사중 하나에 문자를 남겨뒀다. 밤에 오징어 낚싯배를 태워 줄 수 있냐고 물어봤다. 앞방 길로가 엊그제 자기가 잡은 한치를 자랑했는데, 할말이 가득 있었지만 꾹 참았다.


리아와 클레어

낚싯배는 빈자리가 없다고 답장이 왔다. 다음에 갈게요, 라고 인사치레 문자를 보냈다. 저녁에 할 것도 없어서 골목을 뛰어다니는데 누가 불러 세운다. 오징어 낚싯배 주인이다. 메신저 프로필 사진을 보고 뛰는 날 알아본 듯하다. 프로필 사진도 뛰고있는 사진이고 지금도 뛰고 있으니까. 내가 저 사람일세! 그가 손가락질로 옆에 오징어 그림을 가리킨다. 우리는 오랜 펜팔친구를 만난 것처럼 인사했다. 선장은 내일이라도 오라고 명함을 줬다.


심심해진 나는 리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너네 오늘 뭐해?“


리아와 클레어는 스트롬볼리에서 만난 프랑스애들이다. 우리는 배 갑판에 나란히 매달려있으면서  처음 알게 됐다. 화산을 내려오면서 짧은 수다를 떨면서 통성명했는데, 글자그대로 짧았다. 영어가 전혀 안되기 때문이다. 항구에서 배를 타면서 이름과 동네, 서로의 향후 일정을 나눴다. 나는 찰나에도 리아가 수다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온갖 단어를 더듬다가 비슷한 낱말이 레이더에 걸리면 낚아 챘고, 클레어가 뜻을 재확인했다. 나는 곧 프랑스에 간다는 사실을 그녀들에게 말했었다.


리아는 기다렸다는 듯이 답장했다.

“안녕. 나도 메세지를 하려고 했는데! 드디어 어제 불카노섬이 보이는 전망대까지 트래킹을 했어! 오늘은 불카노섬을 트래킹했지! 섬을 빙빙 돌면서 수영도 했어. 우리의 다리가 꽤 피곤해. 너는?“


그러곤 사진 세장을 보내왔다.

전망대, 해변, 물 속.


나는 대충 빈둥대다가 바다에 누워 있던게 전부라고 말했다.


리아는 이렇게 말했다.

“너 잘했네! 우리도 쉴필요가 있어. 내일은 쉬겠어. 그냥 해변에서 말이야. 오늘 저녁 같이 먹을래?“


그녀는 타이핑이 한참 걸렸는데, 구글 번역기로 프랑스말을 영어로 바꾸고 있는 듯 했다. 나는 저녁은 먹었으니 너희가 다 먹은 뒤 산책이나 하자고 했다.


“우리는 저녁을 아홉시 반에 먹어. 너는 가능하니? (우리는 엠마누엘 거리에서 먹는다) 어디서 우리가 만날 수 있을까?“


나는 식사장소를 알려주면 그리로 간다고 했고, 걷던 중에 그녀들을 마주쳤다. 우리는 항구에 있는 바로 갔다.


리아와 클레어는 대화에 무척 적극적이었다. 스토롬볼리에서 돌아오는 보트에서도 자는 나를 깨워서 자기 핸드폰을 보여줬다. 어두워서 눈을 감았는지 몰랐던 것 같다. 화면에는 긴 문장이 번역되어 있었다. 인스타그램을 교환하고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해줄래. 그때 흔쾌히 교환하고 뭍에서도 만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겨우겨우 단어의 조합으로 대화했다. 그녀는 말이 잘 통하지 않을 경우 불어로 말했다. 그녀가 불어로 말하면 옆에 있던 클레어가 더듬더듬 영어 단어를 짚어낸다. 단어가 이해가 안되면 그와 연관있는 다른 하위단어 여러개를 짚어내 연상 퀴즈를 하는 모양새가 됐다.


대화를 위한 인간의 언어 능력은 놀랍다. 몇가지

단어와 손짓 상황에 대한 힌트를 주면 무슨말을 하려는지 금세 알게된다. 예를 들어 비키니 차림으로 산에 온 한 여자에 대해 ‘인스타그램걸’이라고 지칭했지만 우리응 뜻과 의미를 별 오해 없이 이해했다. 그녀가 넒은 자리를 차지하고 사진을 찍느라 주변사람들이 좁게 갔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맥주를, 클레어는 와인을, 리아는 콜라를 먹었다. 리아는 자기가 여태 무슨 일을 해왔는지 설명해주었는데 한참 걸렸다. 다들은 나는 단어로 요약했다. “생물학, 우편, 여행사, 가이드, 바텐더, 이제 곧 웨이트리스” 그녀는 엄청나게 많은일을 해왔고 늘 다른일을 했다고 했다. ”여행중이군“ ”그래 여행중이야“ 우리는 이런식으로 대화했다.


“나는, 키운다, 두마리 말을”

“말을 키운다고?”

“말. 말. 진짜 말”

옆에서 클레어가 발음을 교정해준다.

“말이 아니고, 말”

리아가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보여준다. 검은 말과 하얀말이 풀밭위에 있다.

나는 엄청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프랑스는 말을 흔히 키워?”

“우리 동네, 많은 사람이 키워“

”말은 개처럼 똑똑해?“

”똑똑하다”

”지금은 누가 돌봐?“

”내 친구가“

“우리 친구 한명 더 있다, 걔도 말을 키운다”

“말이 너를 보고 싶어하니?”

”다그닥다그닥 소리를 내면서 달려올거야“

그녀는 말을 껴않는 시늉을 했다.



친절전쟁

자밀자키의 멋진 책 <공감은 지능이다>의 원제목은 <친절 전쟁>이다. 더 워 포 카인드니스. 한국인

구미에 당기게 번역판 제목을 정한 듯 한데, 난 원제가 더 맘에 든다.


요즘 이 제목을 자꾸 떠올린다. 로마부터 시라쿠사를 거쳐 지아르디니와 리파리로 오기까지, 사람들이 이상하리만큼 친절해졌기 때문이다. 경제규모나 오버투어리즘의 역순일 수도 있다. 리파리 식당은 들어가면 눈길을 주고, 주문을 고민하고 있으면 “뿌에고“라고 응대도 해준다. 우연찮게 그런 가게만 들어갔다는 생각은 안든다. 거리에도 사람들의 여유가 느껴진다. 한번은 내가 러닝을 마치고 헐떡거리고 있는데 한 노점상 직원이 웃으며 부채질을 해줬다. 환대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리파리에선 ‘홀대’ 받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적어도 오랜기간 한국인에게 ‘친절’은 자의보다 타의에 가까웠던 듯 하다. 갑을의 종속관계를 친절로 포장하느냐고 그랬는지 모른다. 그러니 나같이 갑질에 신물이 난 사람들은 직원들이 친절할 필요가 없다는 쪽에 가깝게 살아왔다. 사랑합니다 고객님, 이런 소리좀 집어치우자는 쪽 말이다. 일명 MZ로 일컬어지는 어린 종업원들의 ‘최소한의 태도’ 역시 오랜기간 과잉친절로 쌓인 피로의 반대급부라고 느껴진다.


그럼에도 로마와 나폴리에선 거의 구박섞인 응대를 받을 때면 기분이 나빠졌다. 사랑합니다 고객님이 그리워진다. 종업원들은 메뉴를 물어보거나 어줍짢은 이탈리아어로 말을걸면 답답함을 한껏 표현했더. 때론 역정도 내고 내가 이해하는지 조금도 신경쓰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주문을 받으러 가버리는 식이었다. 점점 내 태도 역시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전략을 택했다. 적어도 그들에게 웃지않았다. 쓰레기통이 어디냐고 묻지않고 내맘대로 버렸다. 영어로 주문해도 괜찮겠냐고 묻지않고 알아듣든 못하든 원하는대로 주문했다. 룰을 찾으려 들지않고 내가 원하는 바를 가질 수 있는 대로 먼저 행동에 옮겼다. 유럽친구들은 여기선 원래 그러는거라고 했다. 그러자 많은 것들이 수월해졌다.


오해하지 않도록 짚어두자면 나는 그들에게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고 있지 않다. 의사소통의 문화적 차이를 인정한다. 나중에 듣자하니 많은 유럽인들이 여기서 불친절에 대한 불편을 못느낀다. 오히려 미국식 친절함이 불편하다는 사람도 있다. 나같은 동양인은 상대방이 내말에 어떻게 생각하는지 더 감지하고 스스로를 억제하는 편이니, ‘홀대’에 더 예민하다. 여기 사람들은 어떤 상황이건 자기가 지금 무슨 말을 해야할지 자기 내면에 집중하는 편이다. 이러한 문화차이가 친절과 불친절을 이야기 할때 큰 필터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은 알고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파리 사람들은 친절은 죄가 없다고 말하는 듯 했다. 정육점집 사장은 내가 몇그람의 고기를 먹고싶은지 의사소통에 노력했고 나는 이탈리아어로 말하기 위해 집중했다. 때론 옆에 다른 손님이 도와주기도 했다. 리파리 뿐만 아니라 시칠리아는 대체로 그랬다. 결국 친절은 선순환을 이뤄 나는 섬에서 여행하는 동안 다시 “카드로 계산해도 될까요?“라는 식으로 한국식 예의를 차리게 됐다.


내 말은, 적어도 한국에서 친절을 오해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한국에서 신물이 난 친절은 과잉친절이아니라 강요된 친절이다. 강요된 이상 친절이

아니라고 하는 게 낫겠다. 우리가 과하게 친절해서 피로한 게 아니고, 원하는대로 친절할 틈을 가질수 없어서 피로했다.


자밀자키의 말대로 “사람들은 자신의 환경을 어떻게 해석할지 선택하지만, 함께 환경을 ‘만들어’가기도 한다. 그렇게 함께 만들어낼 환경들이 서로와 자신에 대한 우리 기대를 형성한다.“ 결국 친절은 현상에 따르는 수동적 결과가 아니라 쟁취해여 할 투쟁의 대상이다.


리파리 항



9.7(토)


체크아웃

4박 체크아웃이라 신경 좀 썼다. 이불은 제자리에 펴두고 플라스틱은 곱게모아놨다. 이정도면 만점짜리 손님이다. 화장실에 걸려있던 수건은 발수건으로 썼는데 생각해보니 비데하고 엉덩이 닦는 수건인 거같다.


체팔루

기차가 갑자기 검색이 안되길래 쎄한 느낌이 들었다. 챗지피티에게 “시칠리아에서 진행중인 기차파업이 있는지 검색해줘”라고 물었더니, 내일 부터 파업이란다. 좋은 정보 고맙긴 한데 오늘껀 왜 안되는거야.


출발30분전부터 여객선 터미널에 와있던 내가 바보다. 출발30분 후에 와도 탈 수 있었을 것이다. 온몸이 땀에 다 젖었다. 기껏 빨래해서 말려놨더니만.


페리가 연착돼서 기차도 놓쳤다. 표값을 날려먹었다. 다음 열차를 잡으려니 핸드폰으론 조회가 안된다. 무인기로 표를 사려니 카드가 안먹는다. 열차가 오길래 일단 올라탔다. 승무원에게 날려먹은 기차표를 보여주니 웬걸 문제가 없단다. 타고 가란다. 근데 이 기차는 체팔루에 안간다는걸 나는 안다. 종착역에서 체팔루까지 가는 티켓을 다시 끊었다. 이번엔 승무원이 다가와 이 열차가 체팔루에 가니 환승할 필요가 없단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건지 원..


알았다. 종착역에 들어간 이 열차가 이름을 바꿔 체팔루로 새 열차가 된다는 뜻이군! 아우 힘들어.


체크인

이탈이아에선 기차를 타기전에 “체크인” 처리를

스스로 해야한다. 비행기를 타듯 말이다. 그런데 인터넷이 잘안돼서 체크인 버튼이 눌린적이 한번도 없다. 승무원은 검표하면서 ”다음엔 꼭 체크인하세요“라고 말하는데 그 말을 다섯번정도 들었다.



9.8(일)


파업

또 바보짓 했다. 기차 파업을 알고서도 기차표를 샀다. 표를 파니까 파업안하는가 보다 쉽게 생각했다. 같은 실수를 하지않도록 메모 해둬야겠다. 파업을 해도 표를 판다. 제때 기차역에가서 플랫폼을 찾고 있는데 헷갈렸다. 나는 앞에 있던 미국인 여자에게 물어봤다.


“혹사 팔레르모 가는 기차가 1번 승강장인가요?”


“1번은 맞지만 당신 기차는 취소됐어요“

여자가 답했다.


가만보니 시간이 됐는데도 사람들은 승강장에 없었다. 죄다 자기 가방을 깔고 앉거나 벤치에 눕듯  앉아있었다. 오늘 전부 파업이래요. 그녀가 말했다. 표를 팔길래 파업을 안하는 줄 알았어요, 내가 말했다. 저도 그랬죠, 여자가 말했다. 왜 표를 파는지 모르겠군요. 여자가 말했다. 파업 헬프 센터가 있대요. 환불을 신청할수 있다는 군요. 옆에 있던 다른 여자가 말했다.


우리는 가만히 전광판을 들여다 봤다. 나는 ‘CAN’표시는 취소를 의미한다는 걸 그제서야 눈치챘다. 여자가 말했다. 당신은 다음 기차를 타면 되겠네요. 매우 운이 좋군요. 그녀 말대로 다음기차는 운행중으로 표시됐다. 그녀는 아침 6시에나와서 취소가 됐길래 다시 숙소에 들어갔고 9시에 나왔더니 또 취소가 돼서 지금까지 있단다. 결국 가까이사는 친척에게 도움을 요청해 차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삼십분을 기다려 다음 열차가 도착했을 때 사람들은 기대에 부풀어 기차로 몰려갔다. 팔레르모 가는거 맞지요. 이런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승무원들은 기차의 입구를 굳게 막고있었다. 잘모르는 사람이 올라 타려고하자 경고용 호루라기를 불어댔다. 결국 아무도 기차에 타지 못했고 탄식소리와 함께 사람들은 승강장에서 빠져나왔다.


“오늘 팔레르모 가는 기차가 오긴 옵니까?” 사람들 중 누군가 물었다.

“아무도 모릅니다!” 승무원이 웃으며 말했다.


나도 벤치로 돌아갔다. 미국인들이 오 못탔군요, 하고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젠장 그럼 왜 멈추는거야, 이런 소리가 들렸다. 그냥 올라타버리자고. 이런 말도 들렸다. 나는 가방을 내려놓고 머리를 쥐어뜯었다. 다른 방편을 검색해보았지만 버스는 없었고 택시는 비쌌다. 기둥에 기대어 히치하이킹을 할까 고민하고 있었다.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자 미국 여자애는 우, 댓츠 크레이지, 라고 했다.


“그럼 여기 우버는 있을까요?” 내가 물었다.

“잘 모르겠네요. 없을거 같은데요“ 여자애가 답했다.

그리고 눈동자가 파란 여자애가 끼어들었다.

“여긴 우버를 안쓸거에요“


나는 그녀 쪽으로가 당신도 팔레르모로 가냐고 물었다. 그녀는 타오르미나, 즉 반대방향이라고 했다. 나는 동지인가 했는데 살짝 아쉬워졌다. 우리는 짧은시간 대화를 나눴다. 이삼분이 안되는 시간 이었다. 그녀는 슬로베니아에서 왔고 무척 작은나라다, 나는 리파리에서 슬로베니아 사람을 만났고 그게 내 인생 첫번째였는데 당신이 두번째다. 택시를 기다리고 있다는 그녀는 아주 적극적으로 나를 위해 검색했다. 오 당신이 가는 팔레르모는 하루 다섯대 사설버스가 운행하는군요. 택시는 200유로 정도 들거랍니다. 그녀가 핸드폰을 보여줬다. 어디 좀 볼 수 있을까요. 그녀 말대로 였다. 하지만 정말 운행을 하는지, 어디서 타는지는 오리무중이었다. 기본적인 정보만 담겨 있었다. 우리 택시가 왔대요, 어서 이걸 찍어가세요, 그녀가 말했다. 난 버스정보가 담긴 그녀의 화면을 내 폰으로 찍고, 무척 고맙다고 말했다. 그녀 눈은 초록 빛을 띄는 파란색이었다.


나는 다시 기둥에 기대어 고민했다. 내가 지금 뭘 할 수 있을까. 눈이 파란 여자가 알려준 버스는 아무리 찾아봐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 예약한 숙소에 연락해 물어봤다. 혹시 모든 열차가 멈춘날 여기서 트라파니를 갈 방법이 있나요? 금세 답장이 왔다. 잘 모르겠네요. 그 주변에 물아봐야 할거같습니다. 방법 하나, 히치하이킹을 한다. 둘, 택시를 200유로 주고 탄다. 셋, 혹시 한대정도는 올지도 모르는 기차를 기다린다. 나는 이 얘기를 카톡방에 했더니 최성민이 이런다. “넷, 뛰어간다”


그래, 차로 한시간이 걸리면 뛰어갈수 있는 거리일지도 몰라, 라는 생각을 잠깐 했다. 구글지도에 찍어보니 69km 길래 금방 생각을 접었다. 배고파서 판단력이 흐려지고 있다. 20km면 뛰었으려나.


예상치 못한 상황에 반응은 제각각이다. 얼굴로 화난 티를 내는 사람도 있고 아무 생각없이 앉아있는 사람도 있다. 누구는 분주하게 전화를 하는가 하면 누구는 열심히 구글링 하고있다. 특이한건 직원에게 화풀이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우리나라면 어땠을까 잠깐 궁금했는데 생각하다 말았다. 기둥에 기대어 천장을 쳐다보며 히치하이킹을 해도 괜찮을까 고민을 하고있었다.


“당신 팔레르모로 간다고 말했죠?”

한 아저씨가 나에게 다가와 물었다.


나는 맞다고, 당신도 팔레르모에 가냐고 물었다. 우리는 모두 팔레르모에 가지요, 그는 말했다. 컴온, 이리 와요. 우리는 이제 당신까지 다섯이군요. 나는 그를 따라 기차역 밖으로 나갔다. 문 밖에는 나와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네 명이나 있었다. 한 여자가 심각한 표정으로 누구와 문자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보더니 말했다. 우리는 택시를 불렀어요. 7명이면 인당 30유로 정도 나올거 같군요. 지나가던 커플이 우리도 같이 타도 되겠죠, 라고 물었다. 그렇게 일곱이 모였다.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나를 부른 아저씨는 (또) 호주에서 왔다. 그는 한 할머니와 같이 있었는데 서로 부부같기도 했고 모자지간 같기도 했다. 둘은 엄청나게 큰 캐리어를 하나씩 끌었다. 6주동안 이탈리아를 여행중이에요. 할머니는 말했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그녀는 한국은 너무나 사랑스럽다고 했다. 그런 얘긴 처음 들어본다. 아마 할머니는 모든게 사랑스럽게 늙어버렸는지 모른다. 나는 그들이 부부인지 묻고 싶었는데 묻지 않았다.


우리는 정확히 31.50 유로씩 모았다. 모든 진행은 카일라라는 이름의 미국 여자애가 주도했다. 그녀는 키가 작은 독일인 남친과 여행중인 듯 했다. 우린 커다란 밴 택시에 올라탔다. 호주 할머니가 사랑스러운 카일라, 당신이 고생헤줘서 고맙다고 했다. 카일라는 나는 스트레스받고 싶지 않을뿐이에요, 라고 말했다.


15유로면 왔을 도시에 40유로를 내고왔다.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다.


트라파니

지금 트라파니 가는 버스에서 이걸 쓰는 중인데, 옆에 이탈리아 아줌마들 목소리가 너무 커서 귀가 아프다. 대화마다 브라바 박수를 친다. 이것이 버스에서 들리는 대화소리라곤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나는 에어팟을 꼽고 그들 목소리보다 큰 신나는 노래를 틀었다. (?)그랬더니 기분이 상기된다. 어제 읽은 모비딕에서 맘에드는 대목을 잠깐 적어둬야겠다.


모비딕

하지만 퀴퀘그가 고래와 배 사이에 끼지 않도록 이따금 그를 밧줄로 확확 잡아당기면서 곰곰 생각해본 결과, 나의 이 상황이 살아 숨 쉬는 모든 인간의 처지와 똑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만 대부분의 인간은 어떤 식으로든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과 샴쌍둥이처럼 결합되어 있을 뿐이다. ••• 때로는 퀴퀘그가 밧줄을 확 잡아당기는 바람에 마터면 미끄러져 바다에 떨어질 뻔한 적도 있었다. 내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내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내 마음대로 지배할 수 있는 것은 밧줄의 한쪽 끝뿐이라는 사실이다.


체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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