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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덩구 Sep 19. 2024

니스, 키스, 제발 해피 땡스기빙

여행 5주차 1

9.13(금)


트램

이탈리아가 조금 익숙해지나 싶을 때 프랑스로 왔다. ‘출구’ 표시부터 달라서 눈여겨보면서 나와야 했다. 지금은 트램을 기다리고 있다. 티켓발권기에서 티켓을 안 판다. 헤매다가 오랜만에 네이버 힘을 빌렸다. 한 정거장 타고 다른 역에 가서 티켓을 산 뒤 다시 트램을 타면 된단다. 대체 왜 그래야 하는데,라는 질문은 하지 않도록 하자. 호스텔에 체크인하면 밤 12시는 되겠다.


시간은 많으니 챗지피티에게 ’ 프랑스어 필수 회화‘를 좀 물어봐 놔야겠다. 지금 살짝 겁을 먹었다. 프랑스는 여행할 때 언어가 안되면 무안을 좀 당할 수 있다는 얘기가 있다. 인스타에서 밈처럼 도는 얘긴데 크루아상 발음을 아주 잘해야 한단다. 잘못하면 크데 혼줄이 날지도 모른단다. 아무리 그래도 다들 농담이겠지라고 생각하고 있다. 내가 만난 프랑스 친구들은 엄청나게 착했는 걸.



9.14(토)


니스해변에 누워서

아직 어버버 대고 있다. 얼마예요, 어디 있어요, 이거 주세요 등등을 겨우 이탈리아어로 익혀놨더니 쓸모가 없어졌다. 가게에서 나올 때마다 나도 모르게 ‘그라지에’라고 한다. 메르씨, 라니 어딘가 말장난스러운 느낌이 들고 쑥스럽다. 오늘은 프랑스어를 좀 익혀놔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일단 카페로 가봐야겠다.


카페에서

카페에 실내가 있다. 앉아도 되나요?라고 물어봤는데 당연하지요,라고 한다. 에스프레소 더블로 시켰다. 도피오라고 안 해도 된다. 프랑스 사람들 되게 친절한 것 같다. 영어가 잘 안 된다고 들었는데, 관광지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시칠리아보단 훨씬 수월하다. 와이파이도 빠르다. 도시 문명에 약간 상기되고 있다.


공원에서

데카트론에 가서 소프트 물병을 샀다. 15유로. 눈에 밟히던 초밥집에 들러 큰맘 먹고 초밥을 먹었다. 14유로. 젓가락을 한 달 만에 썼다. 길을 걷다 마주친 아시아 식료품점에선 진라면 세 개를 샀다. 개당 1.8유로. 문득 마주친 한국어가 적힌 상품은 굉장한 인상을 준다. 짜-왕, 이런 게 적혀있다. 약국에선 선크림을 샀다. 14유로. 점원이 “뭐 찾으시는 거 있으세요?”라고 물어본다. 나는 이런 친절이 굉장히 생경하다. 내가 선크림을 찾는드 하니, 얼굴과 몸에 바르는 제품을 구분해서 알려준다. 영어를 쓰는 그녀를 옆에 다른 직원이 놀린다. 여기 동네 사람들은 여유와 미소를 장착하고 있다. 시칠리아보다 더 큰 관광지 같은데, 이런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건지?


다음 단계는 미용실에 가는 것이다. 세시반에 머리를 예약해 놨다. 무척 긴장된다.


미용실

나는 내가 헤어스타일을 신경 쓰지 않고 살아가는 부류의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서양인에게 머리를 맡긴 이유도 사람 머리가 거기서 거기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기 때문이다.


지난 한 시간 동안 거울을 몇 번이나 봤는지 모르겠다. 이 방향으로 돌려보고 저 방향으로 돌려봐도 정말 이게 내 머리다. 숙소에 돌아와서 머리를 다시 감아봤는데 정말 내 머리카락이 이렇게 생긴 게 맞다. 숱은 없어졌고 기장은 거의 그대로인데, 특히 구레나룻과 뒷머리가 많이 남아있다. 뒤통수에 검은 빗자루를 하나 붙여놓은 듯하다. 나는 이발기로 쓱싹 밀어버렸으면 했는데, 왜 아무 말도 못 했을까?


“깔끔해요. 괜찮나요? “ 미용사가 묻고

”음. 괜찮아요” 내가 이렇게 말했을 때.

”확실한가요? “ 미용사는 다시 이렇게 물었다.


내가 그때 왜 확실하다고 했을까?

미용사는 왜 다시 물었을까?


니스에서 달리기

프랑스에 내렸을 때 가장 반가운 점은 날씨였다. 반팔 반바지 차림이 나밖에 없었다. 가방에서 바람막이를 꺼내 입었다. 여행하고 처음이었다. 이제 달리기를 할 때 뙤약볕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다.


물병은 한통만 챙겼다. 아침에 데카트론에서 산 소프트 플라스크다. 이 녀석을 달고 뛰는 게 얼마만 인지 모르겠다. 나는 물과 에너지젤, 에어팟과 반키를 벨트에 넣고 니스 해변으로 뛰어 나갔다. 트램길이 잘 닦여있었기 때문에 러너들은 그 길을 이용해서 뛰었다. 뒤에서 트램의 경적소리가 들리면 인도로 올라가서 달렸다.


훤히 나타난 저녁의 니스해변은 낮과는 달랐다. 해수욕을 하던 사람들은 샤워기에 줄을 서 있었다. 악기를 든 사람들이 연주를 준비하고 있었다. 맥주를 들고 자리를 잡은 사람과 연인을 사진 찍어주는 사람이 보인다. 긴팔 긴바지에 모자를 쓰고 배를 내밀고 걸어 다니는 사람은 영락없는 한국 아저씨다. 나는 뒤통수만 보고 한국인을 구분해 내는 직관이 사뭇 놀라웠다. 그리고 조금 더 솔직히 말하자면, 음 이제는 해변 풍경이 좀 지겹다.


니스 성을 지나 동쪽으로 달렸다. 오르막길을 거세게 뛰어 올라오는 러너들이 보였다. 한 키가 큰 아저씨는 아주 해맑게 따봉을 날려 인사했는데, 나는 뒤늦게 봐서 제대로 응답을 못했다. 그 아저씨는 1시간 뒤에 다시 만났다. 더 큰 따봉으로 인사를 날렸다.


러닝 중 여행은 대부분 초행길이기 때문에 내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뛸 때가 많다. 나는 니스해안을 동쪽으로 지나 한 항구에 이르렀고 길이 막혀있길래 그냥 반환했다. 해변의 서쪽을 달리는 동안은 지고 있는 태양이 정면으로 나를 비췄기 때문에 선글라스를 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이때부터 지루해져서 이어폰을 꼈다. 데이터가 약해서 스트리밍으로 듣기는 어렵다. 다운로드하여놓은 음악은 영화 ’ 퍼펙트데이‘ 플레이 리스트뿐이었다.


Lou Reed - Perfect day

The velvet underground - Pale Blue Eyes

The animals - The house of the Rising sun


최근엔 너무 많이 들어서 지겹다. 좋은 영화를 만나면 플레이리스트를 귀에 딱지가 않도록 들은뒤 그 뒤로 평생 안 듣는 편이다. 퍼펙트데이 플레이리스트가 그 지점, 그러니까 앞으로 이 음악은 기어코 안들을 것 같은데 싶은 그 지점에 가 있다. 어쨌든 해가 내리쬐서 눈이 부실 때 눈을 약간 찡그리고 듣기에 제격인 음악 들이다.


말나 온 김에 덧붙이자면, 퍼펙트데이 엔딩은 배우의 표정연기가 더 심심했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궁금하면 보시오.


10킬로 지점에서 방향을 돌려 다시 숙소 쪽으로 달렸다. 이제 해는 내 등뒤에 있을 뿐 아니라 산 너머에 있었다. 동쪽 하늘은 분홍빛이었다. 걸음마다 색깔이 조금씩 진해지는 듯했다. 아까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하늘과 해변에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도 멈추고 그 하늘을 찍었는데 카메라엔 담기지 않았다. 몇 번을 더 멈추고 사진을 시도하다가 맘대로 걷거나 뛰며 대충 달리기를 마무리했다. 아침에 봐둔 중국 음식점이 계속 생각나서 음식점까지 얼른 뛰어갔다.


니스


9.15(일)


아침 조 달릴 깅

모처럼 아침을 시간 맞춰 보냈다. 내 밑에서 자던 독일녀석 나일이 부추긴 면이 있다. 내가 어제 뛰고 왔다고 하니, 나일은 자기도 내일 아침에 뛸 거란다. 그래서 그래 나도 뛰어야지, 하고 먼저 운동화를 신었다. 나일은 아직 여자 친구 조이스랑 꽁냥 대고 있다. 나일이랑 조이스는 커플인데 굳이 도미토리를 선택해서 잔다. 사람들을 만나서 같이 놀러 갈 수 있다나 뭐라나. 그래서 꽁냥대는 커플과 나, 셋이 잤다. 더 잘 수 없어서 먼저 러닝 하러 나온 면도 있다.


샤갈

달린 뒤엔 얼른 샤갈 미술관으로 갔다. 간만에 타임어택이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절반정도가 한국인이다. 오픈 시간을 맞춰가서 그런 걸까? 알록달록 멋진 그림들을 보고 왔지만, 시간에 쫓기니 별 감흥이 없다. 메모, 미술관은 느긋히 갈 것.


카시스행

이틀을 도시에서 지냈으면 삼일은 외곽에서 지내야겠다. 니스에선 머리를 자르고 약국을 들르고 스시를 먹고 중국집을 먹고 데카트론을 쇼핑하고 라면을 샀다. 도시의 뽕을 뽑았으니 다시 하이킹과 수영이 편한 데로 가서 장박을 해야 한다. 거기가 바로 카시스다. 어플로 숙소를 찾다가 점수가 꽤 높은 데가 있어서 무턱대고 예약해 뒀다. 카이트

호스텔 이후로 평점을 믿는 편이다.


나타샤

사실 어디든 이동하고 나면 별로 할 게없다. 장이나 보고 일몰 전에 러닝이나 기다리고 있으면 하루가 끝난다. 오늘도 체크인을 마치고 호스텔 수영장에 앉아 다리에 붙는 모기를 쫓고 있었다. 모기는

왜 나만 무는 걸까? 덩치가 아주 크고 피부가 하얀 여자가 플라멩코 튜브를 들고 수영장으로 걸어온다. 나를 향해 건치를 자랑하는 잇몸 미소를 보인뒤 수영장에 첨벙 뛰어들었다. 수영장 물이 참방 거 린다.


“사진 좀 찍어봐 봐! “ 그녀가 말한다.

나는 폰을 달라고 했다.

그녀는 ”내 폰 후졌어! 니 걸로 찍어! “라고 말한다.

”인스타그램에 올리게 좀 섹시하게 말이야 “ 그녀가 플라멩고를 누르고 엉덩이를 들어 올리면서 말한다.


자기 말에 웃음이 터진 그녀는 다시 나를 향해 잇몸 웃음을 짓는다. 잘 보니 그녀는 건치에 알록달록한 장식도 했다.


그녀의 이름은 나탸사. 모스크바에서 태어나 오 년 전에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했다.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전공한 그녀는 호스텔에 그림을 그려주고 그 대가로 숙박하고 있다. 여기 걸려 있는 건 전부 다 내가 그린 거야! 그녀가 자기 그림을 보여줬다. 화장실엔 술병마다 담긴 똥들을 그렸고, 개인실엔 큰 술잔을 그렸다. 호텔의 입구에는 호랑이와 너구리, 플라멩고와 악어 같은 온갖 동물들이 알록달록하고 선명한 색으로 그려져 있다.


”암스테르담에서 전시를 준비하고 있어 “ 플라멩고에 올라탄 그녀가 말했다.


“저런 그림들 말이지?” 내가 말했다.


“아니. 키스에 관한 거야” 그녀가 말했다.


“가든 오브 키스. 키스에 관한 인터뷰를 했어. 누구나 이상한 키스를 해본 경험이 있을 거야. 파티에서 술을 먹었든, 장난으로든, 진심으로든. 전시장엔 그 경험을 고백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 돼. 그 고백은 저기 있는 동물들의 입으로 반대편에서 흘러나오지. 동물들이 하는 말은 누구의 고백인지 아무도 알 수가 없어 “


그녀는 튜브에 기대 발장구를 쳐서 물가로 올라왔다. 내게 에어드롭을 켜라고 하더니 파일 하나를 보내줬다. 전시설명서였다. 나는 그녀 앞에서 파일을 열었다.


키스를 전시한다니 꽤 흥미로웠다. 나는 시칠리아 파티에서 봤던 두 여자의 키스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 녀석은 자기가 레즈비언이라고 밝혀 뒀는데, 다른 한 녀석은 아니었다고. 그래서 친구들이 약간은 놀랐었다고.


“그래.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바로 그거야. 언제나 일어나는 일이지. 그 여자는 질문이 시작됐을까? 새로운 세계가 열릴까? 아무도 모르는 일이야 “ 나타샤가 말했다.


그녀가 말을 계속했다.

“지금은 여자 사이에 일어난 키스만 다루고 있어. 나중엔 남자이야기도 해보고 싶어 “


”너의 경험이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겠는 걸 “

내가 말했다.


”이미 그건 모두 내 얘기야. 오른쪽에 그려진 키스하고 있는 여자가 나야 “


“그러면 너는 질문 중인 거야?”


“읽기나 해” 나타샤가 말했다.


나는 다시 파일을 들여다봤다. 아크릴로 강렬하게 눌러진 두 여자들의 키스 장면이 장마다 그려져 있었다. 오른쪽에 그려진 여자는 나타샤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했다. 진한 농도의 물감으로 채색된 그림 뒤에는 이름과 사진, 짧은 인터뷰가 수록 돼 있었다.


나타샤는 일 년에 한 달씩은 호스텔에 와서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이 동네에 정통했다. 우리는 오늘 계획을 이야기 나누다가 슈퍼마켓에 같이 가기로 했다. 그녀는 아주 자신 있는 태도로 내가 설명해 줄게 같이 내려가,라고 했다. 성큼성큼 걸음을 내딛는 그녀는 머릿속에 내비게이션이 있는 듯했다. 여긴 공원이야, 수요일이면 플리마켓이 열리지. 여기가 제일 싼 술집이지, 저기가 우체국이고 바로 옆에 에이티엠이 있어, 한 골목만 옆으로 가면 엄청 비싸져. 나는 로컬의 안내를 받는 듯했다.


“로제 좋지?” 술집을 지나가다 나타샤가 물었다.


나는 제일 싼 술집이라는 말에 좋다고 했고, 우리는 길가 테이블에 앉았다. 머릿속엔 저녁 러닝에 관해 걱정하고 있었다. 아줌마가 얼음이 든 로제 잔 두 개를 가져다줬다. 너는 이제 제일 싼 집을 안 거야, 나타샤는 그렇게 말했다. 동네 사람들은 술집 안에서 돈을 세가면서 경마를 티브이로 보고 있었다. 놀음이야, 정말 이상하지, 그녀가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하루키를 읽어본 적 있느냐고 물어봤다. 그녀는 하루키를 좋아한다고 했다. 자기가 읽은 하루키 책을 찾다가, 영어 제목을 몰라서 한참을 뒤졌다. 아무튼 그녀가 읽은 하루키는 <태엽 감는 새>였다.


“하루키는 왜?” 나타샤가 물었다.

“노르웨이 숲. 거기 키스 이야기가 나와서” 내가 말했다.


나타샤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두 명의 여자가 키스를 나눈 이야기가 나오지. 한 명은 열다섯 살도 안된 어린애고 한 명은 사십이 넘은 아줌마야. 이야기는 아줌마의 회고로 시작돼”


“이렇게 어린애?” 나타샤가 손동작으로 물었다.

“그래. 그만큼 어린애“ 내가 말했다.


“아줌마의 회고는 다여섯장이 넘어갈 정도로 길어. 이해할 수 없는 일이 펼쳐졌고 하루키는.. “


하지만 나는 그 이야기에 대해 조금도 더 설명할 수 없었다. 영어가 어려워서인지, 내가 그 이야기에 대해 단순한 사실 말고는 짚이는 게 없어서 인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하루키도 모를지도 모른다. 나는 무언가를 설명하려는 태도로 하루키에 대해 말문을 열었지만, 그래 그런 이야기가 있어,라는 식으로 어정쩡하게 마무리했다. 하지만 나타샤의 흥미를 유발하기엔 충분했다.


“한잔 더 마실 거야?” 나타샤가 물었다.

“아니. 나는 러닝을 해야 해서” 내가 말했다.


일몰엔 러닝을

체크인 한 날 일몰러닝을 한다. 이건 완전한 패턴으로 자리 잡았다. 체크인하고 그 동네 명소를 알아보면, 여러모로 뛰어가면 되겠군 싶다. 호스트 소피는 체크인하자마자 일몰 포인트를 알려줬다. 아주 죽입니다,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카시스를 동쪽에서 감싸고 있는 커다란 절벽이 있는데, 절벽 위에 일몰을 감상하기 좋은 발판이 있다. 절벽의 높이는 해발 500미터 정도로, 하이킹 삼아 운동을 가는 사람이 많다. 나타샤 말로는 가방에 돌을 넣고 걸어가면 운동이 된단다. 나는 날씨도 추워졌고 저녁에 시간도 많으니 뛰어가기로 했다.


가민 내비게이션 기능이 큰 도움이 된다. 나는 거제 트레일러닝 대회에서 길을 잃은 경험을 하고 난 뒤, 내비게이션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여행지에 도착해 와이파이를 연결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가민 애플리케이션에 들어가 누군가가 업로드해놓은 러닝 코스가 있는지 확인하는 일이다. 인간들은 좋은 러닝 코스를 만들어 두는 일에 미쳐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방문한 모든 여행지에 적절한 러닝코스가 업로드되어있었다. 오늘 확인한 카시스는 서쪽으로는 유명한 국립공원이, 동쪽으로는 방금 말한 절벽이 감싸고 있는 휴양지다. 당연히 그 모든 코스를 주파하는 코스가 쥐피에스 자료와 함께 올라와 있고 나는 하나를 다운로드하여 성실히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지난 한 달간 200킬로를 좀 넘게 뛰었고, 살이 꽤 빠졌다. 술은 거의 먹지 않았고 (작년에 비하면 말이다) 트레일러닝을 빈번히 섞었다. 러너들은 가을 대회를 앞두고 날씨가 쌀쌀해지기 시작하면 여름동안 상승된 기량을 체크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그래서 원하는 시간에 5킬로나 10킬로를 돌파하는 시간주를 이맘때쯤 많이 시도한다. 나로서는 전력을 다하는 달리기는 늘 통증을 가져오기 때문에, 대신 꽤 힘차게 해발 500미터를 뛰어올라가기로 했다.


시칠리아와 달리 차도와 인도의 분리가 확실했다. 내비게이션이 차도를 가리키더라도 크게 두렵지 않았다. 언덕은 스키장 슬로프를 올라가는 만큼이었다. 센 바람이 햇살의 강한 열을 족족 빼앗아 가주고 있기 때문에 나는 개의치 않고 강하게 밟았다. 훈련의 결과가 피지컬로 드러날 때, 러너들은 마약만큼 강한 효능감에 도취 돼 더 힘차게 뛰게 된다. 내가 강하게 올라가도 다리가 쑥쑥 앞으로 뻗는 느낌이 들었다. 멀리 보이던 절벽이 눈앞으로 다가올수록 햇볕은 더 노래지고 뒤로 보이는 마을이 물들어갔다. 나는 이따금씩 뒤를 돌아 경치를 확인하고 앞으로 강하게 뛰기를 반복했다.


첫 번째 전망대를 지나 산속을 향해 뛰고 있을 때, 페데리코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시계에 그의 이름이 떴다. 그는 많은 서양애들이 그러듯 메신저 창에 목소리를 직접 녹음해 보냈다.


나는 잠깐 멈춰서 페데리코의 목소리를 재생했다.


“헤이 코리안 영가이, 나야 페데리코, 나는 이제 로마로 돌아왔어. 너를 만난 건 아주 큰 재미였어. 잊지 못할 기억이 될 거야. 마테오에게 들었어. 네가 나의 피자나잇 비용 절반을 내주고, 리사가 나머지 절반을 내줬다고. 나는 그냥 너무너무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 매우 고마워. 매우 고마워. 그게 다야. 안녕“


나는 툭하면 내 가슴을 치고, 코리안 영가이,라고 하는 18살 페데리코를 떠올렸다. 절벽을 배경으로 키스를 보내는 시늉을 하는 사진을 하나 찍어 보냈다.


“어디야?” 페데리코가 말했다.

“카시스. 여자 친구를 만들어 오도록” 내가 말했다.


내가 다시 절벽의 끝을 향해 달렸을 때, 태양은 이미 반대편 절벽 끝으로 사라질 듯 말 듯 몸을 숨기고 있었다. 나는 일몰을 놓칠 수 없었기 때문에 뛰기를 포기하고 전망대에 앉았다. 풀숲 사이로는 돌로 만들어진 발판이 각각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었다. 발판마다 한 쌍씩 총 세 쌍의 커플들이 앉아있었는데, 그중 가운데 커플은 격하게 키스하고 있었다.


카시스


토마토 닭가슴살

나타샤가 해두고 남은 닭고기 요리를 줬다. 나누는 건 자기 기쁨이라면서. 혼자서 와인 까고 있는 나타샤에게 플라스틱 통을 돌려줬다. 그녀가 그린 ’ 굴‘그림을 집으면서 내가 말했다.


“우리나라에도 굴이 아주 많지” 내가 말했다


“북한에도 굴이 있어?” 나탸사가 묻는다.


나타샤는 내가 북한사람인 줄 알았단다. 초면에 인사할 때 농담으로 북에서 왔다고 했더니 여태 진짜인 줄 알았다고. 요리를 건네준 것도 일종의 유대감 표시였단다. 나는 역시 너는 러시안이야,라고 말했다. 아무튼 토마토에 시뻘겋게 절인 닭가슴살은 파스타랑 신나게 먹었다. 혁명적인 맛이었다.



9.16(화)


조식

프랑스 사람들 빵 정말 좋아한다. 빵을 네 종류로 가져다 놨다. 내가 아는 건 크루아상, 초코 들어간 크루아상, 바게트, 더 딱딱한 바게트. 뭐 다른 빵일 수도 있다. 스위스에서 온 노엘은 한국도 아침에 이렇게 빵을 먹느냐고 물어본다. 먹긴 하는데, 한국 사람들은 빵을 과자처럼 먹는 거 같군. 노엘이 살짝 의외라는 눈치다. 사실 나도 잘 모르는데 너무 함부로 말한 거 같다. 빵순이 빵돌이들이 빵을 달고 살길래.


오늘의 계획은

오늘의 계획은. 밀린 글을 쓴다. 밥을 해 먹고 러닝을 한다. 이게 다다. 맨날 이런 식이다.


라고 쓰고 소파에 앉아서 어제 나타샤 만난 얘길 적고 있는데, 한 독일 여자가 우리 해변에 갈 건데 같이 갈 거냐고 물었다. 난 그 자리에서 그래! 하고 나왔다. 덕분에 지금은 해변에 누워있다. 매일이 이런 식이다. 소파에 뻗어있는 별생각 없어 보이는 애 같이 가자하면 갈 거라는 걸 알았을 듯. 그녀 이름은 줄리아다.


독일어 생태계를 파괴하고 싶진 않았는데, 나 덕분에 영어를 써준다. 노엘, 조한, 줄리아 그리고 나까지 네 명이서 먼 해변으로 걸어갔다. 너 어제 여기를 뛰어갔다고 했지? 응. 이십오 분 정도 걸려. 뭐 이런 얘기를 했다. 넌 정말 뛰게 생겼어, 요즘 그런 얘기를 많이 듣는다. 내 몸이 너무 말라가서 걱정이긴 한데, 운동 많이 하게 생겼다는 말은 뭐 기분이 썩 괜찮다.


노엘은 대학입학을 앞두고 갭이어를 보내고 있단다. 취리히에 사는 그는 독일어가 모국어지만 영어와 프랑스어도 모국어만큼 한다. 이탈리아어도 조금 한단다. 곧 취리히에 있는 대학에서 생명다양성을 공부한다는데 잘생기기까지 했다. 러닝까지 잘하게 생겼으면 같이 안 갔을 듯. 내가 영어가 유창하지 못해 대화엔 너네보다 시간이 좀 걸려,라고 하자. 나도 그래 특히 아침엔 좀 느리지, 독일어로 꿈을 꿔서,라고 한다.


절벽 밑에 자리 잡은 해변은 그리 아름답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매일 같이 좋은 해변을 찾아다니는 배낭 여행객들은 기준이 조금 높은 편이다. 우리는 잠깐 앉아서 파도를 구경하다가 절벽 너머로 차라리 넘어가기로 했다. 오분 정도 바위를 건너 절벽 반대편으로 자리를 옮기자 조금 더 고즈넉한 숲과 해안이 펼쳐졌다. 누군가 나무 밑에 그네를 만들어 둔 턱에 우리는 자연스레 그네 곁에 자리를 잡았다.


나는 머릿속에 오늘 몇 시에 뭘 하면 좋을까,라고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줄리아는 카드를 꺼냈고 노엘과 조한은 맥주를 꺼냈다. 우리는 기억도 나지 않을 법한 필요 없는 수다를 나눴다. 한국인들은 술을 좋아하는지, 독일은 왜 유치원에서부터 수영을 배우는지 같은 것들, 독일은 왜 지루하다는 편견이 생겼고 마요르카는 왜 독일의 모던 식민지가 되고 있는지 따위의 것들. 대화는 대부분 목적 없이 이어갔고 당연히 목적을 필요로 하지도 않았다. 나는 오후에 뛰려고 했던 트레일러닝 코스에 대해서 성공적으로 잊을 수 있었다.


나머지 독일 친구들을 남겨두고 조한과 나는 해변을 옮겼다. 조한은 조금 이따 버스를 타야 하고 나는 그냥 옮기고 싶었다. 나는 이런저런 대화 나누며 조한과 다른 해변으로 걸어왔는데 조한은 오랜만에 꽤 결이 맞는 친구였다.


“나도 사실은 소설이 쓰고 싶어” 조한이 말했다.

“뭐라고?”내가 말했다.

“소설 쓰는 거 말이야. 이야기. 너처럼”조한이 말했다.


우리는 내 인스타그램 아이디인 ’ 싯다르타‘에 대해 얘기했다. 헤세의 데미안을 거쳐서 그는 갑자기 입에 거품을 문 것처럼 소설 얘기를 했는데, 나는 그때 얘가 진심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슈테판 츠파이크를 읽어야 돼, 꼭, 반드시, 반드시 말이야. 조한은 그렇게 얘기했다. 나는 내가 독일어를 읽을 수 있다면 반드시 ‘부분과 전체’를 읽겠다고 했다. 우리는 짧은 시간 안에 꽤 진한 친구가 됐다.


“이제 나는 들어가 봐야겠어” 나는 조한에게 말했다. 시간은 오후 다섯 시였다.

“러닝도 해야 하고, 빨래도 해야 하거든”


조한은 말했다.

“오늘도 뛰려고? 애들이 곧 온다는데?”


나는 결국 독일 애들을 기다렸고 뛸까 말까를 한참을 고민하다가 해 질 녘이 다 되어서야 숙소에 러닝복장으로 갈아입으러 갔다.


처음으로 간 칼랑코

해질녘에 뛰다 보면 시간의 압박을 받는다. 숲을 뛰다 보면 더 그렇다. 오늘 종일 머릿속 한구석에 몇 시에 뛰지, 어딜 뛰지가 박혀있었다. 고민만 하다가 시간은 흘렀고 해가 뉘엿뉘엿 기울 때쯤 숲을 향해 뛰어 들어갔다. 좋아, 해가져도 30분은 밝으니까, 여차하면 돌아오자.


여차해서 돌아왔다. 아무도 없는 숲에서 엄청 큰 보름달을 보았고, 내일이 추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보름달



9.17(화)


카시스 칼랑크 트레일 러닝

카시스의 꽃은 서쪽에 자리 잡은 국립공원이다. 이름은 ‘칼랑크 국립공원‘이다. ‘칼랑크’는 협곡이라는 뜻도 가졌는데 카시스부터 세 개의 협곡이 차례로 자리 잡고 있다. 사람들은 골짜기마다 만들어진 해변에서 수영을 한다. 쇠소깍처럼 생겼다. 계곡을 따라 하이킹 코스가 거미줄처럼 얽혀있다. 어떤 코스는 산 꼭대기로 한참을 올라가기도 하는데, 각자의 입맛에 맞춰 여러 유형으로 등산을 할 수 있는 장점 덕에 수많은 유럽인들이 이곳으로 휴양을 온다. 나는 가민 앱을 켜서 15킬로 정도 되는 등산 코스를 아무거나 골라 내비게이션을 다운로드하였다. 국립공원을 크게 한 바퀴 도는 코스다.


늘 고민은 챙겨야 할 물의 양이다. 내가 이해가 안 가는 점은 그렇게 물이 모질라 고생을 해봤으면서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오백미리 물 두 개 밖에 안 챙겼다. 뛰기 직전엔 약간 상기되어 있기 때문에 판단력이 흐려지는 듯하다. 말했듯 온갖 등산로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기 때문에 내비게이션이 있더라도 길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세 번째 칼랑크에 도착했을 때 예상의 두 배가 넘는 8킬로 정도를 이미 달린 상태였다. 물은 한통밖에 남지 않았다.


세 번째 칼랑크 ‘앙보’는 가장 인기 있는 동시에 가장 깊숙이 있어서 사람들이 찾으려면 고생 좀 해야 하는 협곡이다. 최근엔 물이 좀 차가워져 슈트를 입고 수영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나는 뜨거워진 무릎을 부여잡고 계속 달리기를 포기했다. 잠깐 멈춰서 찬물에 다리라도 담그기로 하고 내비게이션을 멈췄다.


이십 분 정도 다리를 담근 것 같다. 무릎과 발바닥의 뜨거운 기운이 협곡에 들이치는 바닷물을 통해 빠져나갔다. 나는 발바닥에 통증이 약간 있었기 때문에 자갈밭에 발을 떼지 못하고 물 위에서 가만히 서있어야 했다 그때의 고요한 대화들을 기억한다. 어느 학생들이 단체로 슈트를 입고 해파리를 쫓고 있었다. 한국인들의 “너무 차가워!”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협곡은 좁고 깊었기 때문에 정오라 하더라도 해가 조금만 기울면 금세 응달이 모양새였다. 서있기가 지루해질 때쯤 젖은 발을 양말과 윗옷으로 대충 닦고 운동화를 다시 신었다. 눈을 마주친 한국인들에게 가볍게 목례를 했다. 더러워진 윗옷은 그냥 벗어서 러닝벨트에 묶었다.


가지고 있는 물과 식량으로 국립공원 한 바퀴를 돌 수 있을진 불투명했다. 물 오백미리 정도면 십오 분에 백 미리씩 마신다 했을 때, 한 시간 조금 넘게 버틸 수 있었다. 남은 거리는 십 킬로였다. 모든 것이 순조로울 때 약간 목마른 상태에서 러닝을 마칠 수 있었다는 뜻이었다. 나는 거제 트레일러닝 대회 이후로 뭐든지 보수적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그냥 이대로 돌아갈 까 고민도 했다. 결국 조금만 더 뛰어보고 생각하기로 실수를 저질렀다.


그리고 역시나 길을 잃었다. 내가 도착한 곳은 국립공원 순환로가 아니라 또 다른 협곡의 꼭대기였다. 길은 모든 곳에서 모든 곳으로 통했고, 모든 곳이 오르락내리락 이었기 때문에 한번 길을 잘못 들면 되돌리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언젠가부터 내비게이션을 따르기를 포기했고, 그냥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쪽으로 달렸다. 그렇게 도착한 곳이 세 번째 칼랑크 ‘앙보’의 서쪽 절벽 꼭대기였다.


발밑에 네발로 절벽을 기어오르는 한 커플이 보였다. 한 시간 전에 수영을 하던 사람들이었다. 남자는 나를 알아보고 먼저 인사했다.


“여긴 굉장한 뷰포인트입니다! 우리는 지름길로 올라가고 있어요! 지도엔 없지만 빠르게

올라갈 수 있죠! 추천하지는 못하겠군요! 지금 서있는 그곳에서 조금만 더 안쪽으로 들어가 보세요!”


나는 그의 말대로 절벽의 끝을 향해 달렸다. 몇 분지나 사람의 목소리가 가까워지더니 자리를 잡고 간식을 챙겨 먹는 등산객들이 보였다. 그들 너머로는 두 개의 칼랑크가 한눈에 보였다. 나는 깜짝 놀라 발걸음을 멈췄다. 수백 미터 발밑에 세 번째 칼랑크에 수영하고 있는 사람들이 개미처럼 보였다. 내가 언제 이만한 높이를 뛰어왔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았다.


“사진 찍어줄까요?” 한 프랑스 아저씨가 물었다.


“이미 찍어서 괜찮습니다. 메르씨“ 내가 말했다.


“당신은 한국인이죠. 나는 아주 많은 한국인들과 일했어요. 삼성. 액정을 만드는 일” 인상 좋은 아저씨는 핸드폰 액정을 두들겨가며 말했다.


나는 칼랑크를 뒤로 하고 결국 왔던 길 그대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대부분은 내리막일 터였다. 종종 오전 중에 등산로에서 만난 사람을 다시 만나기도 했다. 그들은 힘차게 인사해 줬다. 나는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가듯 중력의 힘을 받아 뛰어내려 갔고, 오르막이 나타나면 모아둔 중력을 이용해 전속력으로 올랐다. 가끔 멋진 전망이 나타나면 사진 찍고 싶은 욕구를 참느라 애썼다. 몇 번 뒤를 쳐다보기를 반복하고 계속 뛰었다. 숙소에 돌아왔을 땐 오늘 뛴 거리는 19킬로였으니, 길은 잃었지만 예정한 만큼의 달리기였다.


플린

입에 오렌지를 욱여넣고 있는데 반갑게 인사한 사람이 있다. 나는 왜 항상 오렌지를 손에 범벅이 되도록 까는 걸까. 멋쩍게 들어온 그녀는 스위스에서 온 ‘플린’이다. 우리는 초면인데도 여러 번 본 사람처럼 인사했다. 그렇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호스텔에서 나누는 전형적인 대화-그러니까 입이 닳도록 말하는 이름과 국가와 앞뒤일정-를 오분 내에 나누고 같이 해변으로 나갔다.


플린은 방금 전에 스위스 로잔에서 기차 타고 왔다. 로잔에는 지난 주말 눈이 왔단다. 이곳도 찬바람이 불기 시작해 가을이 물씬 느껴지는데, 그녀는 따뜻한 곳을 찾아 바로 여기로 왔단다. 플린은 카시스 호스텔을 한 두 번 온 게 아니다. 그녀는 휴식이 필요할 때마다 기차를 타거나 캠핑카를 끌고 왔다. 오면 해변에 누워서 가만히 시간을 보내는 게 전부이다. 그녀 말대로면 비로소 ’ 집에 온 기분‘을 느낀다고 한다. 다른 곳은 잘 가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짧은 시간 이내 플린이 무척 섬세한 사람임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녀는 영어가 그다지 유창하지 않았다. 더듬더듬 단어를 짚어 자기를 ’ 내려놓을 ‘ 공간, 무엇에도 ’압박을 느끼지 않을‘장소를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번아웃‘을 피할 장소를 이곳으로 찾았으며 ‘몇달전부터’ 이곳을 예약해 오늘만 기다렸다고 한다.


그런 플린은 호스텔에 도착하자마자 두꺼운 파카와 보온병 가득 따뜻한 차를 챙겼다. 수영을 하겠다고 한다. 나는 늦은 점심으로 파스타를 이제 다 먹은 참이었기 때문에 소화시킬 겸 그녀와 같이 나가기로 했다. 시간은 이미 네시였고 하늘엔 비가 올 듯 구름이 끼고 있었다.


플린은 걸음걸이가 유난히 느렸다. 처음엔 막연히 걸음이 느린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러다 문득 그녀 왼쪽 발목에는 둘러진 검은 보호대를 봤다. 나는 그 보호대를 본 이후로 의식적으로 속도를 늦췄지만 원래 내 발걸음이 느린 양 자연스레 걸었다. 머릿속으론 그녀의 주의 깊고 세심한 면을 보호대랑 멋대로 연관 짓고 있었다.


그러나 플린은 먼저 많은 얘기를 해줬다.


“너는 볼 수 없겠지만 자동차 사고를 당했어. 척추가 부러졌었어. 모든 게 암흑 속으로 빨려 들어간 세월을 보냈었지. 팔도 다리도 움직일 수 없었어. 그전에는 원래 농장에서 일했었거든. 나는 다른 직업을 찾아야 했고 몇 년 전부터.. 뭐라 하지? 영어로는 뭐라 하는지 모르겠네. 예를 들면, 다리가 없는, 장애, 그래 장애를 돕는, 그런 일을 했지. 그리고 얼마못가 번아웃에 빠지게 됐어“ 플린이 계단 난간을 잡고 얘기했다.


“무슨 농장이었어?” 내가 물었다.


”모든 종류의 농장. 스위스에 있는 양이든 과수원이든 가리지 않았지. 네덜란드에도 있었고. “ 그녀가 말했다.


우리가 아주 느린 걸음으로 도착한 해변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나는 시칠리아에서 사 온 천을 바닥에 깔고 그녀는 커다랗고 파란 샤워타월 위에 앉았다. 그녀는 몇 달 만에 처음으로 긴장을 푸는 사람처럼 보였다. 입가에 묘한 만족을 머금고 콧구멍 크게 바람을 들이마셨다. 그녀는 이 소리를 좀 들어보라고 했다. 파도가 깨지는 소리와 물에 부딪힌 몽돌이 구르는 소리, 나로서는 너무나 뻔하고 일상적인 소리였다. 스위스 호숫가에 사는 플린은 유난히 파도소리를 좋아했다.


조금만 거만하게 말하자면, 나눈 소리를 들어보라고 할 때 플린의 얼굴을 기억한다. 그녀가 동의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녀 입가와 눈가에 새겨진 주름이 자기 삶을 보통 사랑하지 않고는 새겨질 수 없는, 그런 자신 만만하고 여유 있는 주름이라는 사실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그녀는 스위스 사람들의 속좁음과 자신의 사고와 돌이킬 수 없는 장애와 일터의 압박과 번아웃에 대해 약간은 하소연하듯 이야기했다. 하지만 나는 마음 한편으로 그녀가 그 모든 일들을 그녀도 모르게 가뿐히 지나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는데, 그건 그 입가의 주름 때문이었다.


해변엔 사람들이 모두 떠나갔다.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졌다. 바람이 점점 세차게 불었다. 드문드문 앉아있는 사람들은 털 달린 스웨터나 파카를 꺼내 입었다. 오직 플린만이 타월로 몸을 두르고 훌렁훌렁 속옷을 벗더니 비키니로 갈아입었다. 엉금엉금 물가에 발을 담근 플린은 “차갑지 않은데? “하고 웃었다. 그녀는 비바람에 파도치는 바닷물 속으로 거침없이 헤엄쳐 들어갔다. 아마 로잔에 있는 호수에 비하면 따뜻할 것이다.


그녀는 모든 것이 나보다 느렸다. 느려진 걸음걸이가 그녀의 모든 사고를 느리게 만드는 듯했다. 그런 그녀를 생각하면 얼마나 많은 세상이 그녀에게 속도를 강요했는지 알 수 있었다. 플린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랜 시간 찬 바다에서 수영했다. 내가 슬슬 추워질 때쯤 그녀는 물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여전히 가슴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해변을 떠날 줄을 몰랐다.


“오늘은 한국에서 아주 큰 휴일이야. 땡스기빙데이라고나 할까” 내가 말했다.


“땡스기빙데이?” 그녀가 말했다.


플린은 몸을 여러 번 쓸더니 가방에서 주섬주섬 파카를 꺼내 입었다. 가져온 보온병을 열었다.


“해피 땡쓰기빙데이“ 그녀가 얼그레이 차를 따라 내게 건넸다.


“저기 절벽 가봤어?” 내가 물었다.


“가봤지. 몇 년 전에 캠핑카를 끌고 왔었어” 플린이 답했다.


“캠핑카가 있어?”


“아빠 꺼야” 플린이 말했다.

“로잔에서 여서 일곱 시간이면 와. 절벽에서 차를 세우고 있는데 처음 보는 나이 많은 독일 남자가 문을 두드렸어. 그는 기타를 가지고 있었고 우리는 밤새 노래했어. 절벽을 볼 때마다 그때 생각이 나”


“저기서?” 나는 절벽을 가리켰다.


“응. 엄청났지” 플린이 답했다.


”나는 뛰어갔었어. 일몰이 엄청나. 누군가가 저 절벽 위에서 엄청 격하게 키스했어 “ 내가 말했다.


플린이 웃었다.


나는 계속 말했다.

“나도 비슷한 기억이 있어. 몇 년 전에 볼리비아에서 늙은 스위스 부부를 만났었어. 광산투어에서 처음 만나고, 거리에서 마주쳐 인사했는데 마켓에서 또 만난 거야. 할머니는 우리를 자신의 캠핑카로 초대했어. 캠핑카 앞에 앉아서 부부는 우리를 위해 요리를 해줬어. 토마토소스를 얹어먹는 파스타였지. 그렇게 맛있는 파스타는 내 인생 처음이었어. 우리는 자정까지 수다를 떨었어. 나는 스위스 사람을 볼 때마다 그날이 생각나”


돌아오는 길엔 슈퍼마켓에 들렀다. 그녀는 토마토와 양파를 사고 나는 고기를 두덩이 샀다. 목살로 추정된다. 추석이랍시고 수육을 해볼 생각이었다. 냉장고에 마늘이 있는데 그것만 넣어서 끓이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밥은 없으니 파스타로 대신할 생각이었다. 샐러드를 너무 크게 팔았기 때문에 플린과 나는 나눠서 샐러드를 샀다. 우리가 느리게 걸어 숙소로 돌아왔을 땐 이미 해가 넘어가 있었다. 플린은 요리를 하는 속도도 무척 느렸는데 나는 그녀와 반나절을 같이 있자 내가 너무 빠른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됐다. 나는 수육을 끓일 물을 올리고 오십 분짜리 타이머를 맞춰뒀다. 내가 수육을 자르고 파스타를 익히는 동안, 그녀는 아직도 토마토와 쌀을 섞은 냄비를 뒤적이고 있었다.


나는 식탁에 앉아서 그녀에게 사진을 보내줬다. 텅 빈 바다에 그녀뿐인 사진을 플린은 무척 좋아했다. 플린은 에어드롭을 쓸 줄 몰랐다. 쓸 필요를 평생 못 느끼고 살았다고 한다. 그녀의 아이폰엔 놀라울 정도로 아무런 어플도 없었다. 전화기론 음악을 듣고 메시지와 전화를 주고받는 게 전부라고 했다.


나의 수육은 완전 실패였다. 후추가 없어서 공용 선반에 있던 작은 찻잎을 넣었는데, 큰 실수였다. 고기를 씹을 때 향신료 향이 난다. 알리오올리오랑 같이 먹기엔 썩 나쁘지 않지만 이건 수육이라 할 수 없다. 플린은 그 수육을 한 조각 먹고 괜찮다 했다. 나는 플린이 만든 토마토 리소토를 다섯 번을 퍼 먹었다.


“이거 더 먹어도 돼?”라고 내가 물을 때마다

“응. 제발. 해피 땡스기빙데이” 플린은 그렇게

말했다.


칼랑크 앙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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