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2주차 1
8.25(일) 시라쿠사
모카포트
아침에 1유로씩 내고 에스프레소를 매일 마셨는데 오늘은 아니다. 부산스러운 사람들 사이로 주문하기도 쉽지 않고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못마땅한 종업원 얼굴을 마주하기도 불편했다. 겨우 커피를 시키면 인파에 몰려 쫓기는 듯이 서서 들이키고 가야 했다. 이탈리아는 ‘커피 한잔의 여유’ 같은 건 없고 ‘니 커피 뭐 마실 거야, 겁나 맛있지. 나도 알아, 이제 가쇼’가 있는 듯하다.
호스텔에는 무료로 제공하는 커피와 모카포트가 비치되어 있다. 오늘은 이거다.
모카포트를 만지작 거리자, 47세의 옆침대 이탈리아 아줌마가 반응한다. 그녀는 처음으로 만난 착하고 친절한, 그리고 무척이나 수다쟁이인 이탈리안이다.
”오. 모카포트 좀 쓸 줄 아나 보지? 여기 사람들이 아침마다 모카포트를 만지고 있는 게 정말이지 놀라워. 난 이탈리아나지만 모카포트를 안 쓰거든. 차라리 차를 마시지 “ 아줌마가 말했다.
”나는 늘 실패해요. 오늘은 모르겠군요 “ 나는 커피를 따르며 말했다.
”오. 실패한 거 같군. 모카포트는 인내가 있어야 해. 벌써 불을 껐단 말이야? 보글보글 소리를 들었어야지. 보글보글 소리를 반드시 들어야 해. 보글보글 소리를 듣고 충분히 커피가 올라오면 그때 불을 꺼도 된다고. 충분한 시간을 들이지 않으면. 엄청 쓸 거야 “ 아줌마가 말했다.
아줌마 말이 맞았다.
나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영어 문장이 안 나와서 대답대신 입을 삐죽 내밀었다. 아마 이런 얘기였을 것이다.
‘한국에선 소리가 들리자마자 불을 껐었는데, 얘는 사이즈가 달라서 그런가 뭔가가 안 맞네요 ‘
아줌마는 ”오 신이시여. 그에게 축복을 “이라고 말했다. 나는 대답대신 또 씩 웃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영어를 잘하고 과묵한 편인줄 안다. 난 사실 영어를 못하고 저 아줌마만큼 수다쟁이다.
소설
이렇게 시작하는 소설이 있다고 치자.
“K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을 갈망했다.”
소설분량의 대부분을 아름답지 않은 해변을 묘사하는데 써야 할 것이다. 더 뻔한 이야기가 되고 싶다면, K는 마지막 장애물을 극복하기 위해 그가 지나온 허접한 해변을 돌아봐야만 할 것이다. 결국 K가 됐든 화자가 됐든 독자에게 강요하고 말 것이다. 아 얼마나 아름다운 해변을 거쳐왔는가.
에바
잘 안 풀린 일을 술술 적자니 너무 길어 귀찮고 요약만 해두자.
고고학 공원에 갔다. 줄을 삼십 분 섰더니 옆 창구로 가란다. 줄을 다시 설 수는 없는 노릇이라 눈칫밥 먹고 끼어들었건만 그마저도 한참을 기다렸다. 돈을 내고 오디오 가이드를 신청했다. 실제 관람동선과 가이드 안내 순서가 달라서 길을 한참 헤맸다. 순서를 포기하고 가이드에 귀를 기울였는데, 영어를 알아들을 수 없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쫑긋 기울여도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포기하고 공원을 나왔다. 에어비앤비를 다른 날짜에 잘못 예약했다. 수수료를 물고 날짜를 바꿨다. 알고 보니 에어컨이 없었다. 이번엔 수수료를 물고 숙소를 바꿨다. 갑자기 돈을 펑펑 쓰고 싶어 져서 추천받은 레스토랑에 갔다. 해물파스타와 이름 모를 요리를 시켰다. 평범한 스파게티과 빵가루로 만든 오렌지 순대가 나왔다. 내가 만든 게 더 맛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35유로를 냈다.
이때부터 정말 기분이 안 좋아져서 오후 다섯 시까지 낮잠을 잤다.
늘 그렇듯이 운동화를 눌러 신고 뛰러 나갔다. 옷은 어제 땀이 밴 그대로였다. 오르티지아 섬을 크게 돌 생각이었다.
한 바퀴를 뛰고 포구에 멈춰서 사람들 수영하는 걸 구경했다. 포구 뒤 노천 음식점에서 호텔 캘리포니아가 흘러나오고 바다로는 붉은 해가 지고 있었다. 소리를 지르며 다이빙하는 어린애들 사이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에바, 숙소에 있던 프랑스 여자애였다. 하얀 얼굴이 일몰에 맞아 새빨갛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우리는 금세 서로를 알아봤고 반갑게 인사했다. 너 호스텔에 걔 맞지? 어 너도 걔지? 나는 달리기를 멈추고 그녀 옆에 앉았다.
“나는 여기 여섯 시간째 있어. 어제도 종일 이러고 있었어. 여기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이야. “
에바가 말했다.
”멋지군 “ 내 대답은 그랬다.
우리는 목적 없는 수다를 떨어댔다. 다음은 짧은 시간 알게 된 에버의 약력이다.
나이 서른두 살. 라틴댄스와 불어를 가르치며 세계를 돌아다니고 있음. 동남아 일 년, 브라질 오 년, 로마 일 년.. 또 이곳저곳 몇 년씩 살고 다니느라 프랑스는 잘 안 가는 편. 집은 톨레즈에 있고 톨레즈를 무척이나 좋아하지만 겨울은 질색이라 해외에 있는 편임. 못 가본나라로는 한국과 일본. 일본을 엄청나게 가고 싶음. 사시미를 좋아하기 때문. 양념치킨을 좋아하고 어린 시절 동방신기와 빅뱅을 좋아했음. 넷플릭스 더 글로리를 무척 재밌게 보았다고 함. 오징어게임은 과해서 중간에 꺼버림. 시칠리아는 두 번째고 제일 좋아하는 동네는 바로 여기 시라쿠사. 이탈리아어와 포르투갈어가 유창함.
나는 그런 에바에게 한 가지를 부탁했다. 나는 지금 여기서 다이빙을 하겠다. 나는 수영을 못하니 내가 가라앉으면 니가 구해라. 나는 러닝벨트와 운동화를 벗었다.
”노노노노노노노“ 에바가 말했다.
“여기 엄청 깊어. 안돼”
내가 다이빙 자세를 취하자 에바가 다급해졌다. 그때 나와 에바사이로 통통하고 세상 해맑은 여자 한 명이 바다를 가르고 물개처럼 다가왔다. 포피였다. 호스텔에서 일하는 호주 애. 하이 가이즈,라고 그녀가 물 위에서 말한다.
“맘대로 해. 쟤가 널 구할 거야” 에바가 말했다.
난 머리부터 물에 처박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았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멀리 점프했다. 발밑에 자리돔이 달아났다. 콧바람으로 물이 끓는 소리, 귀에 첨벙거리는 소리와 에바와 포피가 소리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팔과 다리에 있는 힘을 뺐다. 힘을 뺄 때마다 몸은 가라앉는 것 같기도, 뜨는 것 같기도 했다.
연고
마데카솔을 쓰다. 포구에서 올라오며 배와 발가락, 손가락에 조개껍데기 상처가 잔뜩 남.
파니니
에바가 맛집이라고 파니니 푸드트럭에 데려가 삼십 분을 기다려 먹었다. 이탈리아판 서브웨이였는데, 나는 한국에서도 서브웨이 주문을 못한다. 여기선 에바가 주문했다. 나는 똑같은 걸로 달라고 했다. 맛은 대성공이다.
8.26(월) 노토
본조르노
아침엔 에바와 작별인사를 했다. 외국어 수업을 하는 플랫폼 사이트를 알려줬는데 나도 그녀처럼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는지 좀 봐야겠다.
커피를 만들면서 칠레에서 온 두 친구와 스몰토크를 나눴다. 그중 여자애는 놀라울 정도로 예뻤다. 남자 앤 얼굴이 기억나질 않는다. 한국에 소주 먹으러 꼭 오고 싶다고 하는데 이름도 모르고 헤어졌다. 정말 놀라울 정도로 예뻤다. 증거가 없으니 글로는 뭐라고 적어야 할지 모르겠다. 흠칫 놀랄 정도의 미모라고나 할까.. 난 하루키가 아니니 그만두자.
모카포트는 성공했다. 아줌마가 봤어야 하는데.
노토
노토에 왔다. 시칠리아 두 번째 도시다.
호스텔이 없어 개인실을 잡았다. “체크인 시간 엄수 및 반드시 현금 결제 바람. 도착 한 시간 전 메시지 필수”라고 메시지를 보내는 호스트 덕분에 약간 긴장했다. 찾아가니 경제관념 철저한 가장아줌마의 포스였다. 그녀는 나갈 때는 에어컨을 꼭 꺼야 하며 끄지 않을 경우 페널티를 물을 수 있다고, 변기물을 내릴 때는 레버가 정위치 했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전등과 상관없는 스위치는 절대로 건드리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나는 살짝 거짓말했다.
“나도 한국에서 에어비앤비 해요. 문제없을 거예요”
아줌마는 씨이 이이익 하고 웃었다.
“문제없겠군”
지난 며칠 시라쿠사를 여행하며 느낀 점 중 하나는, 아는 게 없으니 즐거움이 덜하다는 점이다. 특히 시라쿠사 고고학 공원에 갔을 때는 이 공원이 로마와 그리스와 카르타고의 흔적이 한 군데서 뒤섞인 흔치 않은 유적지라는 점에도 불구하고 뭐 어쩌라고 싶었다. 그래서 노토에 가면 만날 사람도 없고 즐길거리도 적을 테니 방에 틀어박혀 공부나 하자 싶었다.
다음은 아줌마가 체크인해 주고 방에서 뒤적여본 시칠리아, 시라쿠사, 노토에 관한 아주 간단한 상식이다. 팩트체크에 도움을 준 챗지피티 유료버전님에게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린다.
8.27(화) 노토
역사
시칠리아 역사는 기원전 800년부터 생각하면 편하다. 물론 그전에도 들어와 살던 사람이 있었지만 오늘은 잘 몰라도 되겠다. 시칠리아에도 그리스 사람들이 들어왔다. 고대 유럽사에 죄다 등장하는 그 그리스인 말이다. 소크라테스도 있고 플라톤도 있고 광장에 모여 멋지게 떠들었다던 바로 그 사람들이 배를 타고 시칠리아 동쪽에도 왔다. 그게 기원전 734년이다. 어제까지 내가 여행한 ‘시라쿠사’역시 그렇게 세워진 그리스 도시국가 중 하나다.
시칠리아는 지중해 한가운데 있다. 너도 나도 먹고 싶은 땅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동쪽에 시라쿠사가 강해지는 동안 서쪽은 카르타고가 커졌다. 카르타고는 지금 튀니지 근처에 자리 잡았던 도시국가다. 그 유명한 한니발이 바로 카르타고의 장군이다. 기원전 6세기부터 약 300년간 시라쿠사와 카르타고는 섬을 두고 박 터지게 싸운다.
이후 시칠리아의 역사도 싸움과 지배순서로 이해하면 편하다. 이 좋은 땅을 누구도 적국이 가지도록 가만둘 리 없으니까. 기원전 3세기, 로마가 정복. 532년, 서로마제국이 무너지고 비잔틴 제국이 점령. 10세기, 아랍제국이 이슬람 문화로 지배. 11세기, 드디어 노르만이 여기까지 점령.
카르타고와 시라쿠사가 싸운다, 로마가 죄다 먹는다, 로마가 망하고 비잔틴제국이 다스린다. 아랍제국이 들어와 이슬람을 퍼트린다, 노르만이 유럽을 삼킬 때 여기까지 온다. 이렇게만 알고 있자. 이후에도 시칠리아는 독일 호엔슈타우펜, 스페인 아라곤, 오스트리아 부르봉 등 시대별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데, 그렇다고만 알고 있자.
아무튼 오늘 내가 여행하는 노토에는 위에서 설명한 역사의 유적지가 별로 없다. 1693년에 지진으로 싹 다 무너졌기 때문이다. 노토는 이후에 한 가지 양식으로 도시를 재건하는데, 이 리치이고 저리 치이던 시칠리아는 지진 당시엔 스페인 합스부르크 통치 아래에 있었다. 그때 재건을 지배한 양식이 그토록 많이 듣던 ‘바로크’ 건축이다.
화려하고 강렬하고 복잡하고 역동적이면 바로크다. 딱 봤을 때 이리 꼬고 저리 꼬고 비틀어 놨으면 바로크라고 생각해도 좋겠다. 노토는 지진으로 백지상태가 되었기 때문에 한 가지 양식으로 도시를 구획하고 설계할 수 있었다. 3세기가 지난 지금도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미의 원천은 지진 후 재건에 있었다.
러닝
지금은 관광객이 바글거리는 노토는 지진 후에 재건한 신도시라고 보면 된다. 지진 전 노토는 지금 위치가 아니라 저 멀리 보이는 산속에 있었다. 유적지만 남아있는 그 지역을 여기선 ‘노토 안티카’라고 부른다. 노토 안티카는 노토로부터 북쪽으로 10km 정도 떨어져 있으며, 지금은 국립공원으로 관리돼 트래킹 코스와 몇 가지 고대 유적지를 포함하고 있다.
거기가 오늘 나의 러닝 코스다.
시칠리아에 있는 동안 러닝은 좋은 교통수단이 된다. 대중교통이 불편하기 때문에 삼사 킬로의 애매한 거리는 도보이동이 빠른 편이다. 그런데 날씨가 무척 더워서 도저히 걷기는 싫으니 차라리 뛰게 되는 것이다. 숙소에 도착해 한 시간 정도 동네를 뛰고 나면 8킬로에서 10킬로 정도를 뛰게 된다. 도시의 지리와 주요 지점들을 머릿속에 넣을 수 있다. 로마, 팔레르모, 시라쿠사, 노토 모두 그랬다. 뛰다 보면 원하지 않던 곳에 가게 될 위험이 있는 만큼, 기대이상의 뷰를 맞다고 뜨릴 수도 있다.
나는 시라쿠사에서 길을 잘못 들었던 터라,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구글맵을 통해 러닝코스를 계산했다. 가민에 누가 이미 표시해 둔 좋은 경로가 하나 있었다. 노토에서 노토 안티카 왕복 달리기, 거리는 20km 정도. 오늘 여행은 이거로 정했다.
나는 가민에 내비게이션을 입력하고 차도로 잘못 들지 않기 위해 경로를 꼼꼼히 점검했다. 어제 빨아둔 쇼츠와 싱글렛을 입었다. 물은 총세병으로 벨트에 두 병을 넣고 한 손에 한 병을 들었다. 맹물만 마시면 안 된다. 약국에서 산 미네랄 가루를 물에 풀어 무더위에 대비했다. 시계는 이미 네시를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에, 서둘러 산을 향해 뛰어갔다. 해가 지기 전에 돌아오려면 발을 보채야 했다.
날씨는 더웠다. 준비해 온 물 세병 중 두병을 얼마 못 가 다 마셨다. 한 병을 아껴마시기 시작했다. 뛸수록 인적은 드물어졌다. 가까워진 산에는 녹음이 없고 노랗고 하얀 돌들이 지층을 드러내고 있었다. 도로가 돌산 사이를 가로지르는 동안 건물의 풍경은 사라지고 지평선이 과수원으로 가득 매워졌다. 나는 이따금씩 개 짖는 소리와 발밑에 도마뱀이 도망치는 소리에 놀랐다.
그렇게 한 시간을 뛰자 ‘노토 안티카’라는 간판과 국립공원 표지판이 나타났다. 낙석과 실족을 조심하라는 주의표시가 보였다. 공원의 입구는 철문으로 굳게 닫혀있었는데, 자동차 출입만 막아둔 건지 보행자도 들어오면 안 된다는 건지 헷갈렸다. 고민하다 철문 옆에 놓인 사다리를 건너 공원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비로소 녹음진 트레일이 시작됐다.
이따금씩 큰 개가 나타나 뛰는 나를 보고 짖어댔다. 농장의 개인 듯했다. 어떤 개는 늑대만큼 크고 한쪽눈이 판다처럼 멍들어 있었는데 철장 사이로 콧잔등과 이빨을 드러내며 짖었다. 울타리에 갇혀있어서 안심했지만 개구멍이라도 있을 까봐 더 빨리 뛰곤 했다. 더 빨리 뛰면 더 빨리 쫓아올까 봐 태연하게 걷기를 반복했다.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발밑에 계곡이 흐르고 있었다. 마시고 싶었지만 참았다. 가민이 표시하는 위성지도는 물길을 따라가라고 안내하고 있었다. 그렇게 산 중턱으로 올라가자, 저 멀리 머리가 아주 길고 웃통을 벗은 사내가 무언가를 던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사내 옆으론 검은 개가 뛰어다녔고 잘 보니 옆에는 덩치가 태산만큼 크고 뚱뚱한 사내가 반라의 상태로, 비키니를 입고 머리를 땋은 여자 둘이 돌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겁이 나 속도를 줄였다.
내가 흠칫했을 때는 검은 개가 이미 내 발치에 냄새를 맡으러 왔을 때였다. 개를 좋아하지만 그때는 발을 멈췄다. 태산만큼 큰 사내는 나의 조심성을 알아보고 큰 소리로 말을 걸었다. 이탈리아어 말이라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아주 좋은 개야! 엄청 착하다고!”하는 듯했다. 나이스 독 나이스 독 이런 소리가 들렸다. 머리 긴 사내는 영어를 조금 할 줄 알았다. 허스키와 무언가가 섞인 잡종이지,라고 그는 말했다. 나는 개를 쓰다듬고 그들 옆 돌에 앉았다.
“개 이름이 뭐야?” 내가 물었다.
“체리. 아주 착해 “ 덩치 큰 사내가 말했다. 그는 덩치가 정말 컸다. 머리는 레게머리처럼 땋았다.
그들은 총 다섯 명이었는데, 낯선 동양인이 이탈리아 산골에 뛰어 올라오더니 스페인말로 개이름을 묻고 있는 광경에 무척 흥미가 생긴 듯했다. 특히 덩치가 큰 사내는 영어를 제일 못했지만 대화에 자신이 있었다. 난 마르코야!라고 그는 말했다. 우리는 서로 짧은 영어와 스페인어를 섞어가며 통성명했다. 나는 노토에서 뛰어올라왔다고, 그들은 시칠리아 사람이고 여기서 한 시간 거리에 산다고.
“호수가 있네! 일분거리! 바로 앞!” 마르코가 말했다.
“반드시 빠져야 해, 물이 아주 차, 뻐르뻭또”
나는 몸이 아주 더웠기 때문에 그들의 안내를 뒤로하고 호수를 찾아 뛰어내려 갔다. 내가 작별인사 하자, 자기들도 금세 내려간다는 듯 손 짓 했다.
정말로 일분도 안가 지름이 육칠 미터쯤 되는 커다란 호수가 떡하니 있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호수 옆으론 자연이 만든 벤치가 아주 매끈하게 닦여있었다. 여럿이 누워도 될 만큼 평평하고 넓은 자리였다. 어린아이 둘셋, 비키니를 입은 여자들과 몸이 우락부락한 남자들이 호수 가장자리에 제각기 앉아있었다. 누구는 태닝을 하고 누구는 다이빙을 했다. 이 험한 산중에 어떻게 이런 데를 알고들 오는 건지 놀라웠다.
나는 얼른 신발과 벨트를 벗고 물에 뛰어들었다. 달아오른 열기가 호수 안으로 빠져나갔다.
“여길 어떻게 알고 온 거야? “ 한 남자가 물었다.
나는 물에 떠서 대답할 만큼 능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바위를 잡고 물밖으로 나왔다.
“뛰다 보니 저 위에 마르코가 알려줬어”
그의 이름은 카를로, 옆에 있는 여자는 줄리엣이라고 했다. 카타니아 대학교에서 만난 그들은 오늘 하루 휴가라 차를 끌고 놀러 왔다고 했다. 자기들은 이십 년 만에 여길 처음 알았는데 너는 며칠 만에 여길 알아냈냐고 놀라워했다. 엄청나게 시크릿 스팟이지,라고 그들은 말했다.
나는 줄리엣을 보자마자 무슨 운동을 하는 걸까 궁금해졌다. 돌 위에 아슬아슬하게 중심을 잡고 앉아있는데 그녀의 코어가 도리아식 기둥만큼 단단해 보였기 때문이다. 처음엔 그녀가 크로스핏을 할까 생각했지만 금세 알 수 있었다.
”우리는 태권도를 해 “ 그녀가 중심을 잡으며 말했다.
“배구를 하는데, 다리를 찢기 위해 태권도를 하는 거야” 카를로가 말을 보탰다.
우리는 한국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태권도를 하는지, 그러나 중학생 될수록 얼마나 운동을 안 하는지, 왜 죄다 대학을 가는지, 이탈리아도 얼마나 똑같은지 수다를 떨었다. 카를로는 카타니아 대학교에서 사회학을 공부했는데, 나는 카타니아 대학교에 까를로 로벨리 교수가 궁금하다고 말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로벨리 교수는 그 대학에서 일하지 않았다. 챗지피티가 잘못 알려줬다) 그 교수가 한국에서도 유명한 월드 페이머스 물리학자라고 하니, 까를로는 카타니아에 제네바에 이어서 두 번째로 큰 입자충돌기계가 있다고 했다. (이 역시 사실이 아니다.)
멀리서 마르코와 친구들이 내려오고 있었다. 체리가 그들을 호위하고 있었다. 그들의 발걸음은 정말 느릿느릿했다. 지나가는 공기를 온 뺨으로 느끼고 발바닥의 감촉을 깊이 느끼기 전에는 다음발을 디딜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렇게 돌바닥을 구름처럼 살금살금 내려오더니 나를 향해 아주 방긋, 그리고 느리게 웃었다. 헤에이-하고.
맥주
운동도 만족스럽고 의외의 호수와 재밌는 친구들을 만나 부쩍 기분이 좋아졌다. 숙소에 들어오는 길에 하이네켄 맥주 두병을 샀다.
맥주를 마신 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여행을 시작하곤 처음이다. 여행 전에도 가물가물 허다. 나는 완전 내가 맥주러버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러닝을 많이 한 이후로는 이상하게 맥주를 마시고 나면 불쾌하고 몸이 무거워졌다. 자연스레 멀리하게 됐다. 잘된 일일까? 잘못된 일일까?
하이네켄 두병 중 한 병은 거의 못 먹고 그대로 버렸다. 취하진 않는데 몸이 맥주를 부르지가 않는다. 이대로 맥주와는 끝인 걸까?
8.28(수)
의
이번 여행짐은 좀 잘 싼 듯하다. 남미는 가방 끈에 어깨가 빠질 뻔했고(나중에 가방 끈이 빠졌다) 인도는 세계여행자냐고 사람들이 놀렸다. 이번엔 아주 가벼운 가방을 사서 아주 가벼운 옷들만 두어 개씩 집어넣었더니 다니는데 부담이 없다.
가볍고 잘 마르는 옷. 이것보다 중요한 게 없다. 가장 만족스러운 선택은 스키니즘 팬티와 데카트론 러닝 양말이다. 그날 입고 샤워하면서 손빨래하면 다음날 아침에 입기 전까지 마른다. 그 덕에 세탁실을 전전하면서 여행할 필요가 없게 됐다. 가격도 저렴한 탓에 분실이나 손상의 부담이 덜 하다. 반바지 역시 쿠팡에서 만오천 원에 산 비닐봉지 같은 쇼츠를 제일 잘 입고 있다. 땀을 많이 흘리기도 하고 수영이나 러닝을 하는데 저녁에 쓱싹 빨아버리면 그만이다. 한 가지 단점은 물에 들어가거나 땀에 젖으면 거시기가 불룩 튀어나온다는 점인데 여기선 그따위 문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룰루레몬과 파타고니아 쇼츠는 되려 안 입고 있다. 말리는데 조금 더 오래 걸려서.
식
로마에서 권영재가 라면을 주고 가겠다고 했을 때 호기롭게 거절했다. 그 나라에 가면 그 나라 음식을 먹어야지라는 생각도 있었고, 라면을 가방에 넣어 다니며 청승맞게 끼니를 때우던 지난 여행을 반복하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에서도 라면을 잘 먹지 않는다. 지금은 마트에서 빵을 사고 살라미를 조금 얹어서 식사를 하거나 시리얼을 사서 아침에 부어먹고 있다. 현지의 음식을 먹는다고 해도 몇만 원에 만족스러운 끼니를 하기는 한두 번에 불과하고 장기여행자가 레스토랑에 계속 다니는 건 정신 나간 일 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라면이 졸라 먹고싶다. 하지만 나는 호기롭기 때문에 앞으로 5개월은 더 라면 없이 여행할 것이다. 촤하하하.
주
자고 일어나면 가민이 수면점수를 측정해 준다. 내 손목에서 심박수가 어땠는지, 심박변이도가 어땠는지, 몇 번이나 뒤척였는지를 측정하고 잘 잤네요, 못 잤네요 오늘은 한 시간 더 자세요,라고 코멘트까지 해준다. 정확도를 전혀 신뢰하지 않지만 솔직히 재미는 있다. 높은 점수를 주면 갑자기 잘 잔듯한 느낌까지 든다. 아무튼 가민 수면점수는 여행 이래로 낮은 점수를 반복하고 있다. 매일 아침 가민이 ”오늘은 뒤척이셨네요 “하는 것이다. 하지만 체감은 매일매일 잘 자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왜냐하면 잘 자야 한다는 생각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