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행 Jan 10. 2024

[가상 인터뷰] 생각하는 사람, 창피해 죽어요!

: 지구별 여행자를 위한 가상인터뷰


턱을 괴고 한 자세로 그렇게 오랜 시간 있자니 힘들지 않을까? 인체 특성상 그런 자세로 있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습니다. 학창 시절 학교 운동장에 책 읽는 소녀와 함께 가장 많이 알려진 인물, 바로 그와의 인터뷰가 잡혔습니다. 


 파리 센강 좌안의 에펠탑과 마주한 샹 드 마르스 Champ de Mars의 푸른 잔디 길을 따라 약속장소로 갑니다. 센강 우안에서 바라보는 에펠탑도 아름답지만, 이곳 샹 드 마르스에서 보는 에펠탑도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잔디밭과 주변 벤치에 삼삼오오 모여, 파리의 봄날을 즐기고 있습니다. 샹 드 마르스를 오른쪽으로 끼고 빠져나와 10시 방향으로 향합니다. 잠시 걷다 보니 유럽대륙을 호령한 영웅의 황금 투구, 빛나는 돔, 나폴레옹이 영면하고 있는 앵발리드 Invalides와 마주합니다.  이곳을 둘러싼 혜자의 물은 이미 말라붙은 지 오래. 쓸쓸한 영웅의 안식처임을 감출 수 없습니다. 앵발리드를 천천히 돌아 센강 방향으로 다시 가다 보면 맞은편 골목에 자리 잡은 곳. 그렇습니다. 바로 이곳 로댕미술관 Musee Rodin에서 그와의 인터뷰가 있습니다. 아이보리 색의 거대한 돋을 아치문을 들어섭니다.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기 무섭게 정원에 청록색 형체의 그가 앉아서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상상 이상의 근육질 몸매, 제일 먼저 앉아있는 그의 다리 근육이 눈에 띕니다. 비복근, 장비골근, 가재미근 심지어 아킬레스 건까지도, 경탄하게 만듭니다. 제대로 피트니스 열심히 한 모양입니다. 


여기 들어오는 사람은 모든 희망을 버려라




만나서 반갑습니다. 생각보다 몸이 엄청 크시군요.

봉쥬~ 그런가요? 원래부터 이렇게 몸집이 큰 것은 아녔습니다. 지금이야 186cm이지만 원래 제 키는 69cm 정도였어요. <지옥의 문>을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는데 조각가인 오귀스트 로댕이 제가 마음에 들었는지 지금의 크기로 커다랗게 만든 것이죠.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겠어요? <지옥의 문> 이 대체 무엇인지요?

로댕이 만든 높이 6m의 대형 청동문입니다. 혹시 이탈리아 피렌체 가보셨나요? 그곳에 있는 <천국의 문>과 라임을 맞추려 만든 문이죠. 단테의 <신곡>을 들어보셨을 텐데 작가 단테가 묘사한 지옥의 모습을 조각해서 문으로 만든 것이 바로 <지옥의 문>입니다. 그 문의 상단에 제가 웅크리고 앉아 지옥을 바라보고 있죠. 



그럼 당신은 원래 그 문의 일부 조각였다는 말인가요?

네! 빙고! 정확히 그렇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세망령> 등도 크게 제작되었지만 역시나 제가 제일 유명한 셀럽이 된 거죠. 



어렸을 때부터 당신을 자주 봤습니다. 전 세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데 어찌 된 일인가요?

전 세계에 28개의 진품이 있다 보니 아마 그때 절 봤을 수도 있습니다. 원래 조각은 주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 몇 개의 에디션이 존재하게 됩니다. 넘버링된 에디션은 모두 제가 맞습니다. 물론 제가 워낙 인기가 많은 셀럽이다 보니 저를 패러디하거나 따라 하는 가짜가 있겠지만 저 정도 인기 있는 사람은 그깟 모조품 따위 괘념치 않습니다. 마치 디자이너 샤넬이 살아있을 때 자신의 제품이 복제되는 것에 관대했던 것처럼 말이죠. 이 놈의 인기란 정말…(좀 자뻑이 있어 보입니다)



그는 오늘도 생각합니다... 이 놈의 인기란 정말! 


<지옥의 문>도 그런가요?

물론입니다. <지옥의 문>은 당신이 사는 한국을 포함해 세계 각지에 총 7개의 리미티드 에디션이 있습니다. 전 세계 7곳에 헬게이트가 있는 셈이죠.



로댕을 천재 조각가라 칭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그를 일컬어 <다비드>를 만든 르네상스 시대의 미켈란젤로가 환생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위대한 조각가라는 뜻일 겁니다. 미켈란젤로의 영향을 많이 받기도 했구요. 당시 조각은 실물과 똑같이 조각하거나 미화하는 것이 주류였는데 로댕은 조각에 느낌과 감정을 표현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의 조각은 아름답기보다 격정적이죠. 로댕이 살았던 시대는 인상주의 회화가 떠오르던 시대였어요. 그래서 조각의 인상주의라고도 하죠. 인상주의 그림이 엄청 정교하거나 사실적인 것보다 감정과 인상을 남기듯 말이죠. (제법 로댕을 옹호하는군요)



인간적으로는 어떤 사람였나요? 카미유 클로델과의 스캔들을 알고 있습니다.

아… 물론 완벽한 인간일 수는 없겠죠. 로댕이 43살 때 19살의 제자 카미유를 만나 사랑해 빠지죠. 사실 로댕에게는 근 20년간 함께 산 여자가 있었습니다. 조강지처랄까요. 더욱이 그 여자와 헤어지고 카미유와 결혼하겠다는 약속도 해요. 그런데 속인 거죠. 결국 끝까지 헤어지지 않습니다.  



나이가 어리지만 아주 재능이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로댕의 작품에 영감을 주거나, 공동작업도 많이 했죠. 어찌 보면 재능과 욕망만을 탐낸 것일 수도 있습니다. 헌데 남녀문제를 비난할 수는 없겠죠. 그저 죽일 놈의 사랑을 탓할 수밖에요. 물론 개인적으로 늙은 로댕에게 그토록 젊고 아름다운 카미유가 희생된 것은 참을 수 없어요. 이뻐서만이 아닙니다. (공감입니다. 절대 이뻐서만이 아닙니다!)



당신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단테 <신곡>을 보면 지옥문에 ‘여기 들어오는 사람은 모든 희망을 버려라’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인간의 삶과 죽음, 고뇌, 고통, 선과 악, 죽음 너머의 세계에 대한 수많은 생각을 되뇌이고 있답니다.



인터뷰가 끝난 후 미술관을 빠져나오려니 그가 슬쩍 제게 와서 이런 귀속말을 전합니다.

자신이 왜 쭈그리고 앉아 있어야만 하는지, 왜 사람들 앞에 치욕적으로 벌거벗고 있어야만 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더 크다… 챙피해 죽겠다..






이전 04화 [가상 인터뷰] 마이콜, 세계 최고의 가수를 꿈꾸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