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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행 Jan 17. 2024

[가상 인터뷰] 슈퍼맨, 당신의 레깅스는 안녕하십니까?

: 지구별 여행자를 위한 가상 인터뷰


‘마블은 되는데 DC는 왜 이럴까?’ 

인터뷰를 위해 얼어붙은 북극점을 지나는 사이, 잠시 생각에 잠깁니다. 인터뷰어로서 뿐 아니라, 영화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도 그 이유가 궁금해졌습니다. 


어렸을 적 기억 속 최초의 히어로들은 모두 DC의 멤버들이었습니다. 악당으로부터 시민을 지키고, 위험으로부터 지구들 지켜주는 정의의 사도이자 우주 영웅. 


분명 그들은 여전히 그대로인데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어디부터 잘못된 일일까? 이러한 궁금증을 안고 인터뷰 장소로 이동합니다. 파란 레깅스 타이즈에 빨간 삼각팬티, 빨간 부츠, 빨간 망토, 군더더기 하나 없이 깔끔한 2:8 가르마에 살짝 내려앉은 한가닥 머리를 보며 대번에 그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쫄쫄이? 생각보다 아주 편안합니다. 



반갑습니다. 데일리 플래닛의 기자로 신분을 속이고 활동합니다. 직업이 기자인 이유가 딱히 있습니까?

저도 만나서 반갑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그렇긴 한데, 당시만 해도 세상의 모든 사건 사고에 대해 가장 빠르게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신문사이기 때문이죠. 지금 같으면 아마 인터넷 포털이나 유튜브 같은 곳을 찾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비슷한 예로 스파이더맨의 피터 파커도 프리랜서 계약직 사진기자로 신문사에서 일하니까요.



솔직히 기자로서는 유능한 모습이 아닙니다. 

사실 제 신분을 속이려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면이 있습니다.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어리바리한 면을 공공연히 보여야 하죠. 눈치도 없고 어눌하고 순박한 스몰빌 시골 출신의 기자로 위장을 한 겁니다. 슈퍼히어로들은 대부분 자신의 신분을 속이죠. 저뿐만 아니라, 배트맨, 스파이더맨도 마찬가지입니다. 마블의 토니 스타크 같은 관종들이나 자신이 아이언맨이라고 뻔뻔하고 공공연히 떠들고 다니는 것이죠. 우리가 대중의 인기를 먹고사는 직업은 아니잖아요? 우리는 지구를 지키는 저스티스리그의 일원일 뿐입니다. (역시 마블 그룹에는 감정이 좋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럼 당신과 같은 슈퍼히어로들이 신분을 속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실, 당신 얼굴만 보면 안면인식 장애가 아니고서야 주변 사람들이 절대 속을 수 없거든요.

영화적인 구성으로는 저와 클라크 켄트 기자가 동일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없습니다. 없어야 하고요. 사실 슈퍼히어로들이 자신의 신분을 속이는 이유는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나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제 신분이 노출되고 알게 된다면 혹시 모를 빌런의 복수에 제 연인과 가족, 친구들이 위협받게 될 테니까요. 또한 저도 생활인입니다. 직장을 다니며 월급을 받아야 살아갈 수 있습니다. 백수로 살 수는 없잖아요. 늘 평범한 삶을 꿈꾸고 살고 싶은 거죠. 법적 문제도 있습니다. 드론도 허가를 받아야 하잖아요? 비행금지 구역을 날거나 이동할 때도 제한속도를 넘기다 제 신분이 밝혀지면 범법자가 되니까요… 이게 바로 배트맨이 늘 고소를 당하는 이유입니다. 그 친구 좀 우울한 안하무인이거든요..(배트맨에 대한 감정 역시 좋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런데 왜 당신은 자신의 그 쫄쫄이 의상을 그리 고집하는 건가요? 

생각보다 아주 편안합니다. 원래 제 고향별인 클립톤 행성에서 지구로 오는 우주선에 갓난아이인 저를 감싼 천들로 만든 옷입니다. 옷감은 제 고향 행성에서 만든 소재구요. 그래서 지구의 극한 환경에서도 절대 상하지 않는 옷감인 것이죠. 워터프루프, 방염, 등등.. 생각해 보면 지구인들이 요즘 운동을 할 때 레깅스를 입고 운동하는 것과 같은 효과라 보시면 됩니다. 편하고, 맵시도 좋고 말이죠. 물론 정장 속에 옷을 입고 있어서 몸이 좀 둔하긴 하지만, 다른 사람보다는 훨씬 옷을 빨리 벗을 수 있어서 문제가 되진 않습니다. 



당신이 태어난 클립톤 별은 어떤 곳이고 당신도 그곳의 인간였을텐데 어떻게 지금 같은 능력이 생긴 것인가요?

클립톤은 지구보다 약 1,000년 앞선 우주 문명을 가진 행성였습니다. 지금은 이 우주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파괴되었습니다. 행성의 공전 궤도가 바뀌면서 그 운명을 다한 것이죠. 제 친부모님은 행성이 폭발하기 직전 저를 클립톤과 비슷한 환경인 이곳 지구로 탈출시켰습니다. 분자구조가 촘촘하기 때문에 힘이 세지고 빨라지고 지구인의 입장에서는 불사신에 가까운 존재가 될 수 있었던 거죠.


아들아! 지구를 부탁하노라! 아버지! 걱정은 하지 마세요!


당신이 가진 능력을 생각하면, 절대 거만하지 않고 항상 겸손한 태도를 보입니다. 가정교육을 아주 잘 받은 느낌이 들어요.

원래 저는 태어나자마자 지구로 왔기 때문에 제 친부모에 대한 기억은 없습니다. 그들의 존재는 제가 10대 후반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죠. 사실 지금의 제 성격은 순전히 저를 키워준 제 양부모님의 덕분입니다. 능력에는 책임이 따른다고 늘 가르쳐주셨고 제가 지구인과 다르다는 것에 대해 언제나 따뜻한 위로로 보듬어 주셨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이 없었다면 저는 타노스가 되었을지도 모르죠. (손가락은 연거푸 튕깁니다. 좀 놀랐어요)



음.. 솔직히 말해 당신의 주제가가 영화 <스타워즈>의 주제가와 비슷합니다. 가끔 헷갈리기고 합니다만.

네, 아마 그럴 겁니다. 원래 제 주제가를 만든 작곡가가 바로 <스타워즈>의 영화음악감독 존 윌리엄스거든요. <슈퍼맨> 감독인 리터드 도너가 <스타워즈> 메인테마와 비슷하게 작곡해 달라 주문까지 했으니 더욱 비슷할 수밖에 없죠. 사실 그는 <인디아나존스>의 작곡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3편의 영화를 펼쳐 놓으면 듣는 사람들이 아주 혼란스러워합니다. 훗!



제가 기억하는 최초의 슈퍼히어로가 당신입니다. 안타깝게도 요즘 들어 당신과 당신 친구들의 인기가 예전만 못합니다. 마블 히어로들에 비해 너무 어둡고, 시리즈 캐릭터 간에 유니버스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네, 그 부분은 인정합니다. 사실 마블에 비해 많이 어둡죠. 특히 배트맨의 경우 더 그러한데, 그 친구 워낙 밤에 돌아다니는 캐릭터고 정체성에 대해 늘 고민하다 보니 어쩔 수 없습니다. 당연히 능력차이는 있지만 슈퍼히어로의 리더는 저와 마블의 캡틴 아메리카, 배트맨-아이언맨, 원더우먼-캡틴마블, 플래시-퀵실버 등을 보면 우리가 요즘 많이 밀리는 것도 사실이죠.… 다만 요즘 MCU도 약발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세계관을 한계가 온 것이죠. 저희가 먼저 겪었던 시련을 이제 마블도 준비를 해야 할 겁니다. 여러분이 저를 끝까지 믿고 사랑해 주신자면 제가 처음 지구에 왔을 때처럼  DC도 다시 좋은 시절이 올 거라 믿습니다. 



왠지 연전연패로 사기가 떨어질 대로 떨어진 팀의 주장이 홀로 파이팅을 외치는 듯 한 모습였습니다. 팀원들과 코칭 스테프들은 과연 그를 따라줄까요? 





이미지출처 : Warner Br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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