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대치동 대신 파리나 갈까?
어제는 눈이 내리더니 오늘은 파리의 날씨가 영하 -4도에서 영상 1도에 머물고 있습니다. 파리에서도 이런 추위는 오랜만에 일어난 일인지 TV에서는 연일 눈과 날씨에 관한 짧은 특보가 서브라인 자막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밖으로 돌아다니는 것을 최소한 자제하는 동선으로 파리를 산책해 볼까 합니다.
파리에서 어딘가를 방문하려면 언제나 긴 줄을 서야 하고, 만일 뮤지엄패스가 없다면 티켓을 사기까지 적게는 수십 분을 더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파리와 익숙해진다는 것은 대기줄과 익숙해진다는 의미입니다. 그런 이유로 인기가 있지만 파리의 다른 스팟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람이 적은 오페라 가르니에를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파리는 2024년 올림픽을 준비하느라 도시 이곳저곳이 리뉴얼로 한창입니다. 루브르 미술관 앞의 카루젤 개선문, 이노상 분수, 화재 복구가 한참인 노트르담 대성당, 그리고 오페라 극장이 그렇습니다. 샤틀레 역에서 RER A를 타고 한 정거장을 더 가 오베르 역에 내립니다. 복잡하게 연결된 지하 통로를 빠져나오자 오페라 하우스가 보입니다. 조금 아쉽습니다. 오페라 대로의 중앙에 위치한 이 아름다운 건물의 전면이 대규모 공사 중입니다. 발코니에서 바라보던 오페라 대로와 파리 시내가 풍경이 그립습니다.
예상이 정확했습니다. 다른 미술관과 박물관에 비해 대기줄이 없습니다. 곧바로 보안검색대를 통과하고 티켓팅을 합니다. 예전과 변화된 부분은 키오스크가 많아져, 대기줄이 분산된 것입니다. 현금으로 구매한다면 티켓 오피스에서, 카드로 티켓팅을 한다면 키오스크가 나름 편합니다.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화려한 오페라 극장의 계단을 접하게 됩니다. 오페라 극장은 오페라 가르니에로 불립니다. 건축가인 샤를 가르니에의 이름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스티유 광장에 위치한 오페라 바스티유과 구별됩니다. 새롭게 건축된 오페라 바스티유에서는 주로 음악 공연이 오래된 이곳 오페라 가르니에에서는 발레 공연이 열립니다.
오페라 가르니에가 더욱 유명하게 된 이유는 바로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덕분입니다. 가스통 르루의 소설이 원작입니다. 궁전보다도 화려한 이곳 오페라 하우스에 음악의 유령이 살고 그는 2층 5번 귀빈방을 무상으로 사용하며 매월 엄청난 규모의 돈을 요구합니다. 요구를 거부할 때마다 불행한 사고가 오페라 극장에 발생하는 지라 이 요구를 거절할 수 없습니다. 크리스틴이라는 작고 아름다운 배우에게 오페라의 유령은 음악을 가르치며 사랑을, 크리스틴은 그에게 거부할 수 없는 연민을 그리고 그녀의 연인인 라울은 그녀의 보호자로의 운명을 그립니다.
오페라 극장을 둘러보다 보면 틀림없이 극장 어딘가에서 오페라의 유령인 에릭이 자신의 상처받은 얼굴을 가린 백색 가면을 쓰고 불현듯 나타날 것만 같습니다. 오페라 대로와 마주한 화려한 황금색 회랑은 베르사유의 거울의 방에 영감을 받았지만 거울의 방 보다도 더 화려합니다.
붉은 벨벳 귀빈방에서 객석을 바라보다 보면 오페라의 유령이 된 듯한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천장에는 색채의 마술사인 샤갈의 커다란 천장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이 화려한 오페라 하우스의 객석에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그림입니다.
계단을 빠져나오는 길, 전 세계에서 온 많은 사람들의 얼굴에 경탄의 표정이 비칩니다. 이만큼 아름다운 극장이 또 있을까요? 오페라의 유령이 이곳 어딘가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것입니다. 틀림없습니다.
극장이 위치한 오페라 대로 근처에는 여러 개의 파사주가 있습니다. 19세기에 만들어진 이른바 쇼핑몰입니다. 유리로 덮인 천장 덕에 비와 추위를 막을 수 있어 당시 파리 사람들에게 핫플레이스였습니다. 파사주를 찾았습니다. 소품샵과 고문서샵 등을 둘러보며 오래되고 낡은 오브제의 매력에 빠집니다. 세월의 탓인지, 파사주는 영하의 바람을 막아주기엔 시간을 거스를 수는 없나 봅니다. 뒤안길의 쓸쓸함이 묻어납니다. 이 또한 파리라는 생각입니다.
문득, 파리의 모더니스트였던 시인 보들레르가 떠오릅니다. 파사주 어딘가 그의 숨결이..그의 현대생활의 시와 파리의 우울이 깃들여져 있을 것만 같습니다.
P.S.
역시나 추위를 막을 수 있는 메르시에 갑니다. 21세기의 핫플입니다. 중3 딸의 위한 장소지만 가격은 사악합니다. 매력적이지만 치명적인 오페라의 유령을 닮았습니다.
이번주까지 파리는 영하입니다.
2024년 1월 10일 이상 파리에서 BOX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