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 내린 눈... 그리고 루이비통과 쉼과 와인

: 우리 대치동 대신 파리나 갈까?

by BOX


그만 지치고 말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열흘간 지나치게 달려온 탓입니다. 한 달간 느그적 느그적 거리며 보내는 파리생활이라 했지만, 날마다 숙제하듯 아침에 집을 나서 하루종일 어딘가 돌아다니고 무언가 했나 봅니다. 새삼 유럽 여러 도시를 계획에 맞춰 돌아다니는 여행자들이 대단하단 생각입니다. 파리의 플라뇌르가 되기도 이렇게 벅찬데 말이죠…




컨디션이 좋지 못한데도 불로뉴 숲에 있는 루이비통 미술관에 가기로 합니다. 샤틀레 역에서 지하철 M1을 타고 에투알 개선문에 내립니다. 흔히 우리가 아는 그 개선문입니다. 파리에는 세 개의 개선문이 있습니다. 루브르 박물관 앞의 카루젤 개선문, 신도시의 라테팡스 개선문, 그리고 그 중간에 에투알 개선문이 위치합니다. 이들은 콩코드 광장의 오벨리스크와 연결되며 샹젤리제 거리를 거쳐 일직선으로 파리 전체를 관통합니다. 파리의 지평선입니다.


루이비통 미술관은 루이비통 재단이 2014년에 설립한 사설 미술관으로 개선문과 미술관을 오가는 셔틀을 자체 운영하고 있습니다. 셔틀은 개선문 2번 출구에서 출발합니다.

미술관 밖으로 눈이 내립니다. 파리에 눈입니다.

메트로 M1을 빠져나오니 하늘이 온통 뿌옇습니다.


‘파리에 눈이라니!!!’


좀처럼 눈이 내리지 않는 파리에 소복이 쌓일 정도의 눈입니다. 파리에서 눈을 보다니 행운입니다. 파리의 선물이라는 생각에 절로 기분이 좋아집니다. 셔틀은 보통 15명이 정원이지만 날이 춥고 눈이 내리다 보니 20여 명이 넘는 인원을 태우고 출발합니다. 전 세계에서 모인 사람들은 작은 지구입니다.


사실, 이번 특별전에 대한 사전 정보를 갖고 가지 않았습니다. 이전에 엔디워홀과 리히텐슈타인을 보았기에 상설전이 있다는 착각였나 봅니다. ‘마크 로스코’생소합니다. 입장료가 무려 성인 1인 16유로, 청소년 10유로니 족히 50유로인데 정보가 부족했습니다. 파리는 J가족을 P로 만드는 마법을 부리는 도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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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로스코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먹먹한 울림이 있습니다


전시관은 파리의 대형 미술관에 버금가는 관람객이 몰렸습니다. 특히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마치 모네의 수련을 보듯 숭고한 표정 일색입니다. 검색해 보니 추상미술의 대가였어요. 현대미술에 문외한인 탓입니다. 작품을 보다 보니 순간 먹먹해집니다. 뜻 모를 이 감정을 뭐라 설명해야 할까요? 한참 동안 여운이 남습니다. 뜻하지 않게 마주한 작품에서 감동을 받습니다. 계획에서 벗어난 여행의 매력입니다.


여행이 우리에게 특별한 이유... 궤도에서 벗어나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그 무언가를 살갗으로 감각하고 그 새롭고 낯선 감각을 즐기고 놀라워 하는 것이 바로 여행이라는 선물입니다. 익숙함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건을 어린아이처럼 경험하는 것. 낯선 도시에서 벽안의 사람들과 마주하며 하루 하루 새로워 하는 것. 그 낯섬의 연속이 바로 여행이 특별한 이유입니다. 낯섬이 익숙해질 무렵 아마도 이 여행도 끝이 나겠지요. 로스코의 그림을 보며 이 낯섬이 조금 더 오래가기를 희망합니다.




살았니? 죽었니?

중3 딸이 힘겨워합니다. 쉼 없이 돌아다닌 부모 탓에 체력이 그만 방전된 것입니다. 세심하지 못한 이유로 친구의 얼굴이 좋지 않습니다. 관심을 쏟으면 쏟아서 싫고 무심하면 무심한 게 싫은 청소년... 아직은 보살펴줘야만 하는 나이구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후에는 일정 없이 느그적 거리기로 합니다. 잠시 동네 서점에 들르고 장을 보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파리의 물가는 대체로 한국보다 높습니다. 밖에서 식사를 하고 영수증을 보면 깜짝 놀라게 됩니다. 한달살이의 숙명인지라 집에서 적당히 요리를 해 먹고 적당히 여비를 아끼며 생활해야 합니다. 그래도 파리가 행복한 이유는 다양하고 품질 좋고 맛있는 와인이 무척이나 저렴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와인만큼은 과소비를 해야 합니다. 진열장을 보니, 그동안 마신 와인이 10병입니다. 1일 1병 중입니다. 파리가 주정뱅이를 만들고 있습니다.


파리는 주정뱅이를 탄생시킨다

P.S.

매주 목요일, 일요일에는 바스티유 재래시장이 열립니다. 잘만하면 맛 좋은 부르고뉴 피노누아를 저렴한 가격에 구할 수 있습니다.


현재 파리는 영하 -3도에서 +1 도를 오가고 있습니다. 파리에는 유래 없는 추위입니다. 그래도 롱패딩은 결코 입지 않습니다. 파리는 패션의 도시니까요...


이상 2024년 1월 9일 파리 특파원 BOX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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