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대치동 대신 파리나 갈까?
파리는 오래된 도시입니다. 낡고 오래된 지하철이 그렇고, 숙소로 올라가는 삐걱이는 나무 계단이 그렇고, 유명한 카페의 찾기 어렵고 좁은 화장실이 그렇습니다. 세련되고 시크한 도시만을 상상하고 이곳에 온다면 분명 파리에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거리의 포석과 가스등, 루이비통과 샤넬이 공존하는… 조금만 눈을 돌리면 수세기의 시간 여행이 가능한 이 도시는… 오래된 것에 대해 제법 관대한 편입니다.
오래된 도시가 그렇듯, 여행자는 파리에서 며칠 머물고 나면 파리의 시간은 우리의 시간과, 그 공간과 속도가 다르다는 것을 이내 깨닫게 됩니다. 시간은 물리적 법칙을 거슬러 올라 아주 천천히 흐르고 공간은 수세기를 넘어 확장이 됩니다. 카페와 레스토랑에서 주문하는 시간... 음식과 커피가 나오는 시간... 심지어 계산서를 받고 그곳을 빠져나오는 시간까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물리적 시간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파리를 접하게 됩니다. 내가 머무는 이 카페는 수세기 전 어떤 문학가가 커피를 마시며 글을 썼던 장소이고 당신이 거니는 이 공원은 수세기 전 어느 화가의 산책로였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낡고 오래되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그 어떤 것도 파리에서는 현재의 것이고 지금의 시간의 것이 됩니다.
방브 벼룩시장에 가기로 합니다.
지금 파리는 춥습니다. 물론 서울의 추위에 비할 바 아닙니다. 1월 평균 8-10도 안팎의 날씨지만 이번주는 영하의 날씨도 있다는 예보입니다. 오늘은 몇 가지 오브제를 사러 토요일 오전에 열리는 벼룩시장에 갑니다. 옷을 좀 단단히 입습니다.
샤틀레 역에서 RER B를 타고 시테 유니베시테 역에 내려 다시 트램을 한번 갈아타고 방브시장에 왔습니다. 코로나 이전에 비해 시장은 규모가 작아졌습니다. 예전엔 큰 거리까지 노점이 펼쳐져 있었는데 지금은 그 규모가 작아졌어요. 아쉽습니다.
길을 따라 걷습니다. 좌판에 올려져 있는 오래된 서적, 장신구, 은식기, 장난감, 가구, 그림, 유리잔 등을 둘러보며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나만의 보물 찾기를 합니다. 재미가 쏠쏠합니다. 깐깐한 주인도 있고 적당히 흥정을 받아주는 주인도 만나게 됩니다. 어쨌든 한번 흥정을 해봄직합니다. 시장이니까요. 특별한 이문을 남기는 장사가 아니라면 흥정의 득실을 떠나 추억이 됩니다.
한때 누군가의 소유였을, 몇 번의 주인이 바뀌고 그들의 손때가 묻은 빈티지 제품은 주인의 취향에 따라 또 누군가의 소유가 됩니다. 수십 년은 되어봄직한 물건을 사 와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파리를 기억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파리지앵의 일상을 느껴보면 그만입니다.
파리는 19세기 중반, 당시 황제였던 나폴레옹 3세의 명으로 크게 탈바꿈합니다. 시장이자 도시설계자인 오스만 남작은 지금의 도시 구획을 정비하고 7층 높이의 건물을 세워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전형적인 파리를 만들었습니다.
19세기 이래 변함없는 이 건물은 시간이라는 나이를 먹고 빈티지함의 파리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파리가 빈티지에 익숙한 이유입니다.
짝꿍은 자신의 가게를 장식할 오브제를, 중3 딸은 자신의 방에 컬렉션(?)할 소품을 삽니다. 적당한 흥정을 하고 파리라는 추억을 제법 좋은 가격에 얻었습니다. 제법 남는 하루입니다.
빈티지한 물건을 산다는 것! 오래되고 낡은 물건을 산다는 것이 반짝반짝 윤이 나는 새로운 물건을 얻는 것보다 좋을 수야 없습니다. 그렇지만 새 물건과 비교할 수 없는 그 만의 감성이 분명 존재합니다. 그것은 시간이 켜켜이 쌓이고 쌓인 잔 하나... 그림 한 점! 거기에 깃들여 있는 사연과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공유하는 것이 아닐까요...
P.S.
보아하니 파리는
패션만큼은 아주 깐깐합니다. 흥정이 안됩니다.
그러니 절대 롱패딩은 사양입니다.
2024년 1월 7일 새벽... 이상 파리 특파원 BOX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