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대치동 대신 파리나 갈까?
'이제 2만 보는 그만, 제발 그만!'
하지 않겠다고 맹세했지만 그만 또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한 달 가족 여행의 계획은 한 도시에 머물며 천천히 느그적 느그적 도시를 산책하고 골목을 거닐며 한 달 파리지앵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또 또 병이 도지고 말았습니다.
프랑스 동부 도시 스트라스부르는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유명합니다. 파리 튈르리 공원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마켓은 봤고 이미 시즌도 지난 터라 스트라스부르는 이번 여행에서 고려치 않았습니다. 헌데 그만 예약을 해 버렸습니다. 한 달간 파리를 탐험하기도 시간이 모자란 판에 스트라스부르에 욕심을 냅니다.
TGV를 타고 파리에서 약 2시간
파리 동 역에서 출발하는 기차를 탑니다. 시속 300 km가 넘는 기차… 빠르게 지나가는 차창 밖으로 눈 덮인 동부 프랑스 들판이 보입니다. 파리뿐 아니라 프랑스 전역이 온통 눈 덮인 겨울 왕국입니다.
TGV를 타고 스트라스부르에 도착 후 곧바로 30분 거리에 있는 소도시 콜마르를 먼저 방문합니다.
인구 7만 명의 작고 아담한 이 도시는 마치 애니메이션 속 어느 풍경을 그대로 옮겨 놓았습니다. 특히 알자스 지방인 탓에 독일과 스위스의 분위기가 물씬 배어 있어 파리와는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골목어귀를 돌면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나 미아자키 하야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소피와 마주칠 것만 같습니다.
프랑스 전역에 내려진 한파 때문에 쁘띠 베니스에 면한 쿠베르 시장은 그 인기가 더 높습니다. 지붕 덮인 이곳 시장에서 추위를 피합니다. 사퀴테리, 치즈와 빵, 향신료 가게가 아담하고 이쁘게 늘어서 있습니다. 추위 탓에 따뜻한 뱅쇼 한잔이 그립습니다. 독일과 인근 도시에 유명한 지역 와인인 리슬리까지 둘러보며 맛을 봅니다. 내륙이지만 빠질 수 없는 시장의 해산물 가게에서 와인과 함께 석화 또한 좋은 추억이 됩니다.
다시 스트라스부르...
'아! 대도시구나'
콜마르와 달리 스트라스부르는 대도시입니다. 현대적인 역을 빠져나오면 맥도널드와 스타벅스가 제일 먼저 눈에 띕니다. 이탈리아만큼은 아니지만 커피와 카페 문화가 중요한 프랑스 역시 스타벅스는 별 인기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나이 어린 학생들에게는 크고 편한 공간이라 그런지 상대적으로 찾는 비율이 높습니다.
예전 이 도시의 대성당을 처음 보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적색의 스트라스부르 대성당을 보고 있자니 웅장함과 화려함에 압도되고 맙니다. 덜컥 겁도 살짝 납니다. 중세의 사람들은 또 얼마나 이 대성당에 경외심을 느꼈을까요? 하늘을 찌를 듯 높고 붉은 대성당은 마치 거인처럼 우리는 내려다봅니다.
콜마르에 쁘띠 베니스가 있다면 스트라스부르는 쁘띠 프랑스가 있습니다. '뭐랄까... 콜마르를 뻥 뛰기 해놓은 느낌?' 처음 두 도시를 와본 짝꿍의 소감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빠는 어디가 좋았어?' 이곳에 오기 전 내게 한 질문에 답을 스스로 합니다. 나 또한 그때나 지금이나 대성당의 스트라스부르 보다 작고 소박한 콜마르에 더 끌립니다. 이번 여행에서 짝꿍도 그런가 봅니다. 통했습니다.
파리 집으로 돌아오는 길... 별로 돌아다닌 것 같지 않은데, 벌써 2만보를 훌쩍 넘어버렸습니다. 왕복 1,000km.. 영하의 날씨에 12시간 이상을 꼬박 밖에 있었습니다. 왜 그랬는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벌써 두 번째 방문인데도 '언제 또 오겠어' 탓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세 번째도 이 도시를 그리워 하며 그러지 않을까요? 여행은 그리움입니다. 그래서 여행은 하루 2만 보 이상 걸어야 제맛입니다.
P.S.
이제 2만 보는... 파리에서 2만 보는 이제 그만...
그러면서 다음에는 꼭 따뜻한 봄에 와 보고 싶어 졌어요... 수산물 시장의 주인아줌마와 안면을 좀 텄습니다. 혹시 모르죠... 서비스로 석화 하나 더 줄지.
2024년 1월 21일 이상 파리에서 파김치가 된 BOX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