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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우 Oct 25. 2018

월간 김창우 : 2018년 10월


난 언제 어디서나 잘 자는 아이였다. 


어릴 땐, 한겨울에 어머니가 깜빡하고 내 방에 히터를 안 틀어주셔도 얼음장 같은 곳에서 잘 잤으며, 입도 돌아가지 않았다. 그 조그만 피아노 의자 위에서도 아크로바틱 하게 누워서 잘 잤으며, 떨어져서 어디 한 군데 부러지지도 않았다. 


대학 땐, 과친구 네댓 명이 88과 디스를 쉼 없이 펴대서 최루탄이 막 터진듯한 친구 자취방에 모여, 한국 영화 발전을 이끌어 온 유호프로덕션과 한시네마타운 영화를 볼륨 높여 볼 때도 동요하지 않고 구석에서 조용히 잤다. 그리고 3명이 함께 살던 내 자취방으로 돌아와선 이미 이불을 선점한 룸메 녀석들을 보며, 또 구석 자리로 가서 겨울 코트 두 개를 꺼내 하나는 깔고 하나는 덮고 잤다. 당연히 친구 코트를 깔고 내 코트를 덮었다. 이 정도면 나의 승리... 라 생각했지만, 다음날 나보다 먼저 나간 룸메는 덮고 있던 내 코트를 입고 나갔다. 난 깔고 자서 꼬깃꼬깃해진 친구의 코트를 입고 신촌으로 나가 90년대 중반을 강타한 그런지룩을 선도하였다. 


시험기간에는 밤샘이 되는 도서관 열람실에 야심 차게 도착해서 1시간 정도 공부하고 잠깐 눈 좀 붙인다고 책상에 엎드리고 나면, 눈을 뜨면 아침이었다. 물론 개운했다. 만약 내가 코를 골았다면 누군가는 나를 깨웠겠지만, 난 생사확인이 필요할 만큼 쥐 죽은 듯 조용히 자는 편이다.


하루에 6~7시간 이하로 자는 것은 자신에 대한 학대라 생각해서, 언제나 푹 잤다. 회사 다니면서도 잠이 부족하다 싶으면, 문 걸어 잠그고 낮잠으로 보충하는 것이 낙이었다. 내 뇌의 기본 욕구를 관장하는 부분은 이처럼 수면욕이 대장이었다.


그런 내가 불면증에 걸렸다.


10시에 자리에 누워도 새벽 4~5시나 돼야 잠이 들었다. 머리를 최대한 비운 상태라 이런저런 생각이 많은 것도 아닌데 도통 잠이 오질 않았다. 양도 세어보고, 명상도 해보고, 미지근한 물에 샤워도 해보고, 가독성이 떨어지는 책들도 읽어보았다. 이 정도 노력을 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불면은 엄청나게 괴로운 경험이었다. 수면의 질이 떨어지니 하루 종일 컨디션 저하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결국 수면제를 처방받았다. 역시 약효는 좋았다. 수면제를 먹고 2~3시간이 지나면 몸이 나른해지기 시작하고 어느새 잠이 들었다. 그런데 이미 복용하고 있는 약도 많은데, 수면제까지 추가로 먹는 것은 괜히 싫었다. 먹다 말다를 반복했다. 안 먹은 날은 1~2시까지 다시 불면과 싸웠고, 그걸 본 와이프는 지금이라도 수면제를 먹으라고 권했지만, 그 시간까지 안 먹고 버틴 게 아까워 거부하다가 결국 4~5시에 잠이 들었다. 참 미련했다. 약을 하루에 8알 먹는 것과 9알 먹는 것이 무슨 차이가 있겠냐만, 이상하게 수면제를 먹는 것은 자존심이 상했다. 유호 프로덕션 유혹도 이긴 내가 수면제라니.


역시 시간은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

이젠 수면제를 완전히 끊었다. 여전히 잠을 조금 설치긴 하지만 1~2시에는 잠이 든다. 이 또한 지나간 것 같다.


다시, 푹 자자.



친구


부산 친구 류지훈. 5~6살 때 아파트 같은 층에 산 인연으로 친구가 된 후, 함께 치카치카도 배우고 좌변기에서 응아 하는 것도 배웠다. 첫 담배, 첫 술도 같이 했다. 그리고 유일하게 나보다 더 잘 자는 녀석이다. 


지금 생각하면 진짜 부끄럽지만, 둘이서 이승환 콘서트에 간 적이 있다. 모두가 덩크슛 노래에 맞춰 스탠드업 해서 떼창 하며 춤을 추고 있었는데, 옆에 보니 이 녀석은 좌석에 벌럴덩 누워서 처자고 있었다. 올림픽 체조경기장에 모인 3만 명에게 육성으로 사과하고 싶었다.

 

몇 주 전, 내가 전화도 안 되는 요양원에 들어갔을 때, 방에 비치된 전화가 3분간 무료라길래 이 녀석에게 전화했다. 평소 완벽한 서울 사람인 나도 이 녀석과 대화하기만 하면 사투리가, 톡을 주고받으면 손투리가 나온다. 


나 : (다짜고짜) 오늘 메이저리그 우찌됐노.

지훈 : 다저스 이깄다. 

나 : 누가 잘칬노

지훈 : 테일러, 마차도가 하나씩 넘깄다. 뷸러 강속구 씨드라. 98마일 팍팍 꽂아뿌드라. 어디고.

나 : 요양원. 곧 끊어야 된다.

지훈 : 와?

나 : 전화 3분간만 무료고, 1분에 50원씩 붙는다. 씨다. 

지훈 : 50원 정도는 좀 쓰라, 개&&아.

  ... 중략...

지훈 : (갑자기 장난 그만치고 진지한 톤으로) 요샌 몸 좀 어떻노. 좀 개안나.

나 : 3분 다됐다. 끄리자 (뚜.... 뚜....)


우리의 대화는 항상 이런 식이다. 

평소에도 주로 스포츠 이야기만 한다. 40년 가까이 친구면 안부 따위는 묻지 않는다.


얼마 전 톡이 왔다. 


지훈 : 내일 올라간다. 집주소 찍어라. 

나 : 다음에 온나. 아직 좀 그렇다. (몸이 많이 안 좋던 시기였다.)

지훈 : 니랑 내랑 내일 워커힐 호텔에서 잔다. 워커힐 조식 뷔페 때리고 메이저리그나 보자.

나 : 지기네.


다음 날 진짜 처들어 왔다. 그리고 남자 둘이 이승환 콘서트 간 것 보다 더 모양 빠지게, 남자 둘이 호텔에 갔다. 다행히 이 녀석이 중국사람처럼 생겨서 별로 부끄럽진 않았다. 침대 하나씩 벌러덩 누워서 스포츠 중계란 중계는 다 봤고 다음 날엔 계획대로 조식 뷔페를 때린 후, 다시 벌러덩 누워 메이저리그 생중계를 시청했다. 얼마만의 신선놀음인가. 


신기하게 이 날 이후 컨디션이 조금씩 회복되었다. 

워커힐 강제 외출이 이번 투병 생활의 터닝포인트였다. 



지우


No.1 지우가 방사선 치료 마지막 날을 앞두고, 기도를 해줬다. 


"하나님, 내일 아빠의 마지막 방사선 치료 날이에요. 마지막까지 아빠 아프지 않고 치료 잘 끝나게 도와주세요. 남은 종양들도 내일 다 사라지게 해 주세요. 입맛도 다시 돌아오게 해 주세요. 그리고 그동안 아빠를 위해 기도해주고 도와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그 사람들도 모두 건강하게 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아빠를 위해 기도해주시고 도와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대목에서 깜짝 놀랐다.

우리 딸이 이제 다른 사람들도 생각할 줄 알구나. 고마움이 뭔지 알구나. 아빠 마음과 똑같구나.



지아


아빠가 집에 있는 동안 가장 큰 수혜자는 No.2 지아다.


하루 종일 옆에서 떨어지질 않고, "아빠, 이 놀이하자"를 끝없이 반복한다. 

매일 빠뜨리지 않고 하는 놀이는 '마그네틱 코디 놀이 장난감으로 연극하기, 피규어로 역할놀이 하기, 병원 놀이, 유치원 놀이, 화장품 놀이, 레고, 축구, 피구, 책 읽어주기' 등이다.


이 중, 내가 가장 선호하는 것은 병원 놀이. 진짜 병원을 다니는 사람으로서 놀이에서조차 환자 역할이라 좀 끔찍하긴 한데, 환자는 계속 누워있을 수 있다. 몸이 가장 편했다. 날 치료해주는 지아 의사 선생님은 주사를 좀 과하게 많이 놓긴 하지만, 그래도 5분 안에 모든 병을 다 고쳐준다. 설사가 심하다고 했는데 청진기를 머리에 한 번 대보고 다 나았다고 해주고, 허리가 아프다고 했는데 체온 한 번 재보고 퇴원시켜 줄 정도로 신기의 명의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 이제 아프지 않길.

혹시라도 아프더라도, 적당한 걸로 아프길.



3개월


3개월 간의 수술, 치료를 마치고 다시 MRI를 찍었다.


주치의 선생님을 만나러 가는 길을 항상 발걸음이 무겁다. 무서운 건가? 아니다, 무섭다고 하긴 싫고 무거운 걸로 하자. 물론 이 분 덕분에 오늘의 내가 있다. 정말 감사한 분이다. 다만 지금까지 면담마다 내가 들을 수 있는 답변의 Range를 상상해보고 들어갔는데, 항상 Worst Case 쪽의 이야기만을 해주셨기에, 오늘은 또 무슨 말씀을 하실까 조마조마했다.


MRI 사진을 한동안 보시더니, 말씀을 시작하셨다.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딱 두 마디만 기억이 난다.


blar~ blar~ blar~ blar~ blar~ blar~ "MRI 상 수술과 치료는 잘 된 것 같고"

blar~ blar~ blar~ blar~ blar~ blar~ "6개월 후에 봅시다" 


후...


"6개월 후"란 말을 듣기 위해, 지난 3개월을 그토록 힘들게 보냈나 보다.

수고했다, 지영아. 여기까지 온 건 너 덕분이다. 아직 가야할 길이 많지만, 기분좋게 6개월 잘 살아보자.



강남


이제 좀 움직여 봐야지.

100일 만에 강남 나들이에 나섰다.


집 근처에서 산책은 계속했지만, 사회적응 훈련 차원에서 삼성동으로 나갔다. 훈련코스로는 삼성동 코엑스 점심시간 전후가 제격이지. 평소 산책로와는 달리 오르막 내리막도 있고, 핸드폰만 바라보며 빠른 속도로 직진하는 사람들을 갤러그 게임에서 적의 육탄 공격 피하듯이 요리조리 피해 다녀야 해서 훨씬 힘들었다.


나의 목적지는 코엑스 영풍문고.


비록 서점으로서 기본 중의 기본인 '하와이 패밀리' 책은 입고되어 있지 않지만, 일주일에 두세 번씩 퇴근길에 아이들 책을 사러 들르던 곳이다. 그동안 아이들 책 사서 집에 들어가던 것이 가장 그리웠다. 한 동안 아이들이 내가 퇴근해서 들어가면 첫인사가 "아빠, 책 사 왔어?"였고, 내가 그냥 씨익 웃으면 둘 다 환호성을 지르며 눈을 감고 손을 내밀며 책을 기다리던 모습이 너무 그리웠다.


지우 선물로는 500 피스 퍼즐 하나와 마법천자문 43권을, 지아 선물로는 공주 스티커 책과 만 5세용 덧셈 뺄셈 책을 하나 샀다. 4개 모두 아이들이 무척 좋아하는 것들이기에, 발걸음은 이미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서점을 나오면서, 혹시 몰라 전산 확인을 해봤다.

'하와이 패밀리'는 여전히 없었다. 미쳤구나, 이런 킬러 상품을 비치해놓지 않다니. 서점은 진열이 생명인데, 총칼 없이 전쟁에 나가는 병사와 같구나. 



두둥


의도하진 않았지만,

내 생의 최고의 머리가 완성되었다. 


A특공대의 B.A. 바라쿠스를 추억하며.



이제 6개월간 병원을 안 가도 되고

불면증도 대충 사라진 것 같고

헤어스타일도 마음에 들고

강남 나들이 예행연습도 마쳤으니


세상을 좀 나가볼까.

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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