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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우 Mar 31. 2022

2022년 3월

건축


2022년 1분기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15-15를 가까스로 달성했다.

책 15권 + 체육관 15번


신년 초 급발진을 감안했을 때, 올해 목표인 50-50에 간당간당한 페이스다.

50-50은 지력과 체력 두 영역에서 전년비 역성장 추세를 끊어낼 마지노선이라 생각했다.

수년 거듭되는 패턴을 감안할 때, 책 숫자가 대폭 줄어들 확률이 높으니

운동 횟수를 늘려, 합이 100으로 퉁 칠 생각이다. 


올해 읽은 책들 중 원픽은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시작은 이랬다.

얼마 전 지우와 미래의 전공과 직업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중2 딸과 이런 대화를 나누는 것이 쉽지 않지만, 그날은 지우 감정을 지배하는 '사춘기 어쩔 호르몬'이 잠시 쉬는 틈을 타서, '유아시절 아빠 앉아줘 호르몬'이 뿜뿜하는 찰나의 순간을 파고들어, 조금 진지하면서도 건설적인 대화에 성공했다.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대학의 전공과 미래의 직업들에 대해 하나씩 브리핑을 했다. 내 생각을 은연중에 강요할까 봐 최대한 중립적이고 객관적으로 하나씩 소개를 했지만, 문과 쪽 전공을 스킵한 것 안 비밀이다. 문과로 먹고사는 세상은 엄마, 아빠가 막차를 탄 걸로.


대부분의 전공에서 시큰둥하던 지우의 눈빛이 건축학과 소개에서 반짝였다. 하트가 뿅뿅 정도는 아니고, 동공이 1 나노 퍼센트 정도 더 커진 걸, 가제트 닮은 아빠의 눈에 포착이 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지우는 어릴 때부터 퍼즐로 공간을 채우는 것도 좋아했고, 레고로 집을 만드는 것도 좋아했고, 박스나 다양한 소재들로 이것저것 만들어 보는 것을 좋아했다. 보쉬 공구함과 폐기물들로 가득 찬 차고가 딸린 집에서 태어났다면, FAANG 기업 하나쯤은 만들었을 듯. 여느 아이들과 마찬가지고 재미없는 도시와 닭장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본인의 취향을 잃어가고 있었는데, 이런 관심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그래서 건축가에 대해서 설명을 해줬다. 건축가가 되려면 수학을 잘해야 하냐고 묻길래, 수학은 피타고라스 같은 형님들이 이미 다 만들어 놓을걸 적용만 하면 되고, 훌륭한 건축가가 되기 위해선 역사, 음악, 미술, 문학, 도시, 삶 등 인문학적인 소양을 많이 갖춰야 하기 때문에 공대 중 가장 인문학적인 전공이라고 말해줬다. 이 말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듣기도 그럴듯했으니, 지우도 대충 끄덕끄덕하는 분위기였다.

 

자본시장의 최전선에서 일하고 있지만, 알고 보면 건축학과 출신인 낙권이에게 자문을 구한 후, 다음날 서점에 가서 낙권이 추천 도서들을 모조리 업어 왔다. 오랜만에 훌륭한 아빠가 된 것 같아 으쓱하는 마음으로 짜잔~ 책들을 보여줬더니, 지우 몸속에서 다시 '사춘기 어쩔 호르몬'이 반등에 성공하여 형식적인 "알겠어~ 고마워~"를 투척한 후, 쿨하게 에어팟을 다시 꽂고 침대 속 머나먼 곳으로 떠나셨다. 그래, 이틀 연속은 욕심이지. 어제 속 깊은 대화 나눠준 추억으로 몇 달 살겠습니다.


그리하여 주인 잃고 소파 위에 방치되어 있던 책들을 내가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만난 책이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건축학과 학생들의 바이블이라는데,

'이게 책이고, 이런 분이 교수구나'가 느껴지는 묵직한 책이었다.

어떤 공간을 가건 그 안의 '사람'만 보며 45년 살아왔는데, 건축물은 더 이상 배경이 아니라, 사람이야말로 그 건축을 완성시켜주는 인테리어인 셈이었다. 건축가, 참 멋진 직업이었네. 봄내음이 그득할 어느 날, 레고로 영도다리나 만들어봐야겠다.


롯데월드



지아와도 진솔한 대화를 해야지.

매년 고민만 하던 롯데월드 연간이용권을 마침내 질렀다. 

지아는 연간회원권을 샀다는 사실에, 이 정도로 기쁠 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잘 모르는지, 상기된 얼굴로 눈만 껌뻑였다. 그래, 아빠도 참치캔을 처음 먹어봤을 때, 이 미친 천국의 맛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눈만 껌뻑였단다. 


위풍당당 연간회원으로서 몇 개 탈 거 타고, 산책하고 들어오기엔 토요일 오전이 딱 좋다. 

지난주엔 한 두 개만 타고 오자고 일요일 오후에 호기롭게 갔다가, 

주차에 30분, 줄 서서 기다리는데  2시간 반, 하나 겨우 타고 왔다. 


지아는 후룸라이드를 가장 좋아하고, 아빠는 회전목마 앞에서 파는 버터구이 오징어에 환장한다.

대충 진미채 버터 발라 구운 게 아니고, 그물에 걸려 짬뽕이 된 친구를 찾아, 바다를 떠나 뭍으로 온 오징어의 튼실한 다리가 수분이 살짝 빠져나간 자리에 도톰하게 버터를 머금고 있다 보니, 한 다리 베어 물면 참치를 먹었을 때의 표정이 절로 나온다.


쓰다 보니 또 침이 고인다. 이번 주 토요일 오전에도 가야겠다. 



새 학기


딱딱한 재무관리에 인문학을 덕지덕지 버무린 강의를 2019년에 시작했으니, 어느덧 4년 차에 접어들었다.

그 사이 선배님에서 산학협력중점교수를 거쳐 연구교수로 타이틀은 바뀌었지만, 토마토나 도마도나 토메이토나 그게 그거다. 변한 것은 없다. 그저 버킷리스트였던 강의를 여전히 설레어하며 할 뿐이다.

 

4년 전 50명으로 시작했는데, 점점 인원이 늘어나더니 이번 학기엔 120명이 넘어가버렸다. 

실제 대면 강의였으면 얼마나 씐났겠냐만, 그저 회의실에서 zoom으로 모자이크 화면만 볼뿐이다.

함성과 기립이 금지된 관객들 앞에서 콘서트를 하는 BTS도 이런 기분이겠지.


미쳤구나. 그... 그분들과 비교를 하다니. 아미들, 저에게 짱돌을 던지세요. 감히 그분들의 존함을...


꽃보다 강의


음악회


오래간만에 음악회.

음악회를 간 것보다, 아이들 집에 놔두고 나왔다는 것 자체가 천지가 개벽한 것이다.

이렇게 우리만 다닐 수도 있고, 많이 컸다.


예술의 전당에서 건물들이 조금 보이기 시작했다.

웅장한 지붕, 입구의 위치, 외벽 유리 내벽 유리, 계단의 방향.

쯧쯧, 꼴에 건축 책 몇 권 읽었다고 대단한 건축가 납셨네.

이래서 어설픈 지식이 벼락 거지가 되는 거구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임동혁, 지휘 이병욱,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

이런 조합이면 다들 내가 졸거라 예상했겠지만, 내가 얼마나 음악에 진심인 사람인데...


물론, 

아주 낮은 확률이지만 Hoxi 몰라, 

낮잠을 좀 자고 나오긴 했지만. 




영화


건축과 음악으로 정서 세탁을 좀 했지만 나의 뿌리 누아르를 벗어나긴 힘들다.

몇 달 전부터 손꼽아 기다리던 영화, '뜨거운 피'


김언수 소설 원작에 부산 양아치역 원탑인 정우가 주연을 맡고, 택이 아부지가 신스틸러 역할이니 시작도 전에 그냥 게임 끝이지. 

 

일요일 밤에 혼자 극장에 가서 봤다.  

역시, 기대를 벗어나지 않았다. 누아르는 이렇게 만들어야지. 

다만, 처음부터 천명관 작가님이 감독을 맡으신 걸 보고 조금 갸우뚱하긴 했는데, 역시 그 부분이 조금 아쉬웠다. 노련한 감독이 맡았으면, 친구, 바람, 신세계 급의 레전드 영화가 나올 뻔했을 듯.


야심한 밤, 극장에 혼자 있어도, 안무서운 척.


3월


3월 30일 지영이 생일

3월 31일 결혼기념일


Big 주간이 끝났다. 


오래간만에 올리는 글로, 선물을 퉁치려는 거 아님.


저거 생일 케이크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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