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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우 Aug 09. 2021

월간 김창우 : 2021. 8월 8일

# 나른한 오후


지영이는 엄마를 도우러 처갓집에 갔고, 첫째랑 둘째는 사촌들이랑 각자 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못질에 콘크리트를 발라버리며 날 차단시켰다. 이렇게 독도 앞바다 우럭 같이 홀로 휑하게 남겨진 상황일 때, 일기예보를 주관하는 486 펜티엄급 슈퍼 컴퓨터로 AI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나의 행동을 예측해보면, 98%의 확률로 소파에 누워서 유튜브나 왓챠나 넷플릭스를 보는 것으로 나올 것이다. 


화창하다가 스콜성 폭우나 내리는, 확률의 허를 찌르기 딱 좋은 날씨다. 노트북을 켰다. 얼마만인가, 브런치에 접속했다. 오랜만에 네스프레소 커피 머신으로부터 글 캡슐 하나 내려봐야겠다.


"끝~!" 올림픽이 끝났다~



# SNS


싸이월드가 진짜 부활해서, 과거로의 후룸 라이드가 되어 우리를 20년 전으로 데리고 가 줄 지는 모르겠지만, 그 시절부터 시작했던 SNS 글쓰기는 프리챌 - 싸이월드 - 네이버 블로그 - 페이스북 - 브런치 - 인스타그램으로 이어져왔다. 프리챌 이전에 아직 사람들이 짚신을 신고 다니던 96~97년도에 박정효로부터 HTML을 배워 www.shinbiro.com/~sonchangwoo라는 개인 홈페이지도 있었으니, 사이버 공간에서의 글쓰기는 웬만한 사회 초년생의 나이인 25년 차가 되었구나.


최근 몇 년동안은, 주로 인스타그램에서 놀면서 가끔 브런치에 글을 쓰고 페이스북 통해 공유하며, 집을 잃고 여기저기 떠도는 SNS 디지털 노마드로 살다 보니, 글 쓰는 횟수가 뚝 떨어졌다. 인스타에는 종종 살아 있다는 흔적을 남기지만 브런치와 페이스북으로만 연결되어 있는 지인들이 요즘 들어 괜찮냐고, 잘 사냐는 안부를 묻기 시작했다. 아, 난 무소식이 마냥 희소식은 아닌 삶을 살아온 사람인데, 바닥을 치며 농담을 건네던 시기에 날 걱정해줬던 많은 분들에게 꾸준히 소식을 전하지 못하며 살고 있구나. 반성합니다. 


저, 자...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근황을 덧붙이자면,


강의는 3년 차에 접어들었고, 어느덧 제자가 300명이 넘어가다 보니 날 찾아오는 제자들과 티타임을 하는 것이 내 삶의 소소한 즐거움이 되었다. 제자들이 찾아올 땐 대부분 힘들었던 취준생 생활을 끝내고 취업을 했다며 기분 좋게 찾아온다. 첫 월급으로 선물도 사 오는데, 빨간 내복이면 충분한데 대부분 홍삼 인삼류다. 하, 내 나이 어쩌면 좋니. 하리보 젤리 세트까지는 에바지만 마카롱 정도는 괜찮은데. 


브런치를 구독 중인 제자분들도 많이 있다는데, 편하게 찾아오길. 좋은 날엔 주위 사람들과 하이파이브 나누시고, 힘들고 인생이 안 풀릴 때 찾아오세요. 약속한 것과 같이,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벤티 사이즈 사드립니다. 


아, 어디로 찾아오면 되냐?

역삼동으로 오세요. 역삼동 공유 오피스에서 좋은 분들과 스타텁하고 있습니다. 테헤란로 오셔서 길가는 아무나 잡고 저 물어보시면 다 알 겁니다. 


2학기 앞두고 학식 먹으러 학교



# 브런치


그동안 브런치를 하지 않았다. 


불가피한 이유가 있었다. '손가락이 부러졌다.' 하, 이건 너무 주작 냄새가 난다. 손가락은 잘 붙어 있다. 특히 가운뎃손가락의 힘이 유독 좋아서, 혼자 한 번씩 치켜올려지곤 한다. 그럼 이걸로 하자. '컴퓨터가 고장 났다.' 하, 타짜 김응수 형님이 한 마디 합니다. “예림이, 그럼 핸드폰은 무너졌냐, 이 XX야.” 그래, 이 핑계도 너무 촌스럽다. 


그럼 왜 그동안 브런치에 글을 안 썼나. 


쪽팔림 무릅쓰고 솔직히 고백하면, 그동안 브런치 로그인에 실패했다. 아무리 문과 출신이래도 로그인 실패로 못 들어가다니, 이 무슨 Rock Festival을 보고 ‘저 집 돌잔치 쎄게 하네’할 법한 소리란 말인가. 너무 아재스럽지만 사실이다. 무시무시한 로그인 미로에 갇혔다.


그동안 페이스북 계정으로 로그인하고 있었는데, 연결되어 있는 이메일은 드림위즈였다. 이미 수명을 다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드림위즈. 그런데 브런치가 카카오 계정으로만 로그인되도록 정책을 바꿨다. 새로 계정 만드는 것을, 마치 일론 머스크를 바라보는 비트코인러들만큼 싫어하는 나지만, 기존 브런치 글들을 버릴 수 없으니 kakao 계정을 어쩔 수 없이 만들었다. 그런데 그 계정으로 브런치에 들어가니 기존 브런치 계정과 연결되지 않고 글 개수가 0개인 새 계정이 만들어졌다. 그래서 기존 계정으로 다시 로그인하려니, 연결한 이메일로 접속 링크를 보냈다는 거다. 연결한 이메일은 드림위즈로 없어졌다니까! 그 사이 카카오 계정은 비번도 기억 안 난다. 어렵게 다시 카카오 계정으로 브런치 로그인했더니 글이 0개인 새 계정으로 또 연결된다. 아놔. 새 계정을 폭파할까 했는데, 기존 브런치 글들도 날아갈까 봐 탈퇴도 못하고, 퇴로가 없는 미로처럼 계속 뱅글뱅글 돌았다. 어쩌라고. 나, 안 해!


그렇게 아주 오랫동안 브런치를 들어가지 않았다. 가끔 만나는 지인들이 왜 글을 안 올리냐고 물으면 로그인을 못하고 있단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네이버 블로그 하나 파서 새로 글을 쓸까 했는데, 2021년에 네이버 블로그? 또 rock festival 돌잔치 아재가 떠올랐다. 그래, 내가 그 정돈 아니잖아. 빌보드 7주 연속 1위를 한 butter를 아직 들어보진 않았지만, 크랙샷에 쵸프라까야처럼 열광하고 있는 나인데. 그래서 카카오 고객센터에 몇 번의 메일을 보냈고, 6개월 만에 로그인에 성공했다. 코로나 시국에도 김창우 여기 잘 살아 있었구나.


4냥 이상 집합 금지 시대에도 잘 살아 있습니다.



# 음식


투병생활을 하며 입맛을 완전히 잃었을 때, 그래도 먹고 싶은 음식 리스트를 써 봤다. 


"딤섬, 고춧가루 팍팍 뿌린 자장면, 베이징 덕, 밀탑 팥빙수, 복숭아, 체리, 수박, 맥도널드 더블 쿼터파운드 치즈 세트, 연양갱, 하와이 훌리훌리 치킨, 버터 듬뿍 바른 프렌치토스트, 계란 입힌 김밥, 홈런볼, 꿀과배기, 콜라, 고딩 때 뺏아먹던 친구들 반찬, 쥐포, 바닐라 라떼, 양념 반 후라이드 반, 와인" 등이었다.


이 리스트를 보면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음식들의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노파심에 하는 이야기지만, 내 입맛이 까다롭진 않다. 양이 많지 않아서 문제지, 입에 넣지 못하는 음식은 없다. 코가 뻥 뚫리는 홍어 코도 먹을 수 있고, 고수도 숟갈로 퍼먹을 수 있고, 해운대 하면 해변가 포장마차 번데기부터 떠오르고, 횟집에서 서비스로 나오는 천엽이나 개불도 자신이 없다. 남길 자신이. 


단, 양이 많지 않다 보니 입이 짧다고 오해를 받는다. 어느 자리에서건 동석자보다 많이 먹어본 기억은 별로 없다. 


자, 다시 돌아와서, 못 먹는 건 없지만 즐겨 먹지 않는 음식은 있다. 

바로, 물에 빠진 고기가 들어간 음식들이다.


고기는 그대로 구워 먹어야 맛이지, 물에 빠진 고기는 내 취향은 아니다. 치킨은 없어 못 먹지만, 그 치킨을 왜 물에 빠뜨려서 삼계탕이란 메뉴를 만든 건지. 회사에서 도보 3분 거리에 멀리서도 찾아온다는 유명 음식점이 있지만 난 제 발로 가 본 적이 없다. 고기들을 물에 막 빠뜨려 놓고 설렁탕이란 이름으로 파는 이상한 곳이다. 특히 한우를 물에 빠뜨리는 건 범죄라고 생각한다.


이래 놓고 내일 삼성동 점심 약속인데 젤 먹고 싶은 음식이 하동관 곰탕이다. 아, 일관성 없는 나의 입맛이란.


고기 근처 물 금지



# 수염


지우, 지아가 염소를 보고 왔다. 그것과 연관된 행동인지는 모르겠지만, 심심해서 콧수염을 길러봤다.

어차피 나가면 마스크를 계속 쓰고 있는데, 마스크 안은 내 멋대로 해도 되잖아.


5일 차 때 가족들에게 들켰다. 

지영이와 지우에게 어떻냐고 물었더니, 더럽다고 했다. 와이프랑 딸에게 더럽다는 표현을 들어본 사람 몇이나 될까, 내가 그걸 해냈다. 당장 깎으라고 했다.


둘째 지아는 깎는 거 반대한다고 했다. 그렇다고 막 멋있다고 한 건 아니고 "예전보다 낫다"라고 했다. 나도 콧수염에 찬성이니, 2대 2. 그래서 일요일까지만 길러본다고 했다. 내 마음과 다르게, 열흘이나 길렀는데 남들 1~2일 차 수준이다. 그리고 분명 프레드 머큐리를 꿈꿨는데, 거울 앞에 김흥국이 서 있었다.


지난 열흘 간 즐거웠다, 콧수염과 올림픽. 안녕~


손흥국


예전처럼 주기적으로는 못 올리더라도,

심심할 때마다 근황 업데이트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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