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교명이 두레학교에서 새음학교로 변경되었습니다.
강아지도 키워보고 고양이도 키워봤지만, 자식을 키우는 건 대략 만 배는 더 신경을 써야 하는 섬세한 과정이었다. 만 분의 일이면, 내가 애완동물을 너무 성의 없이 키웠나. 그건 확실히 아니다. 고양이가 한 밤중에 내 다리를 부비부비 하면 5분 거리의 편의점까지 걸어가서 오양맛살이랑 쥐포랑 참치도 사서 먹일 정도였다. 물론 내가 같이 키우고 있던 룸메이트 박정효 먹일 맥주도 사 왔지만.
모든 부모들이 마찬가지겠지만, 아이에게 사소한 문제라도 발생하면 아빠 엄마의 과학적인 지식과 양가 어르신들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지혜를 총동원하여 문제를 해결해갔다. 예를 들어 아이가 갑자기 열이 난다 싶으면, 엄마는 체온계와 해열제를 찾고, 아빠는 스마트폰으로 근처 응급실의 위치 파악과 후기들을 읽어보고, 할머니는 아무 말 없이 아이 옷을 벗기고 수건으로 몸을 닦아 주시고, 할아버지는 "괜찮다. 애들은 원래 열나며 크는 거다"라고 하시며 TV조선 뉴스를 계속 보신다. 돌이켜보면 별 것 아닌 일들이었는데, 하루에도 몇 번씩 'THE END OF THE WORLD'인 것처럼 온 집안의 머리를 맞대고 키우는 게 우리 자식들이다. 우리도 응급실은 몇 번 다녀왔지만, 돌이켜보면 가장 좌충우돌하면서도 행복했던 첫째의 아기 시절이었다.
그렇게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첫째가 다섯 살이 되던 해, 인생에 0.1% 정도의 영향을 줄 수 있는 유치원 결정의 시기가 다가왔다. 지금이야 누군가 덕분에 병설유치원, 국공립유치원, 사설유치원 등 유치원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때 내 기준으로 유치원은 세 가지 종류였다. 집에서 가까운 유치원, 먼 유치원, 그리고 영어유치원. 인텔리 남양주 좌파로서 영어 유치원은 처음부터 생각하지 않았고, 결국 집에서 가장 가까운 메이플 유치원이란 곳을 다녔다. 내 자식을 맡긴 곳인데 이런저런 불만 사항들이 없을 순 없지만, 그냥 유치원 범주 내에서 충분히 납득할만한 수준들이었고, 우린 다른 옵션들을 꺼내보는 동요 없이, 메이플 유치원에 3년 스트레이트로 보냈다. 그리고 5년 후 둘째도 별다른 고민 없이 그곳에 보내고 있을 정도로 우리 가족에겐 나름 고마운 곳이다.
유치원 3년도 스토리가 많지만 다시 주제에 집중하겠다. 첫째가 7살 후반이 되어 초등학교 선택의 시기가 다가왔다. 이젠 더 이상 밥을 떠먹여 주지 않아도 되고, 잘 때 깨서 울지도 않고, 이불에 쉬도 거의 하지 않고, 치카치카도 혼자 하고, 쫑알쫑알하고 싶은 말도 잘하고, 부모한테 대들기도 하는데 나름 논리도 생긴다. 아기로 키울 땐 언제 오나 하며 꿈꾸는 것들인데, 막상 그때가 오고 나면 마음이 허해진다. 내가 늙어가는 것보다 아이가 커가는 것이 더욱 아쉬운 시기에, 내 딸이 초등학생이 된다는 생각을 하면 만감이 교차한다. 하지만 이런 감정은 다스릴 수 있다. 아이가 커가는 만큼 부모들의 마음도 성장하고 단단해진다. 물론 우리에겐 5살 아래의 둘째도 있었으니 더 도움이 되긴 했다.
초등학교 선택은 제법 무거운 결정이다. 우리에겐 처음에 세 가지 옵션이 있었다. 우리 아파트 단지 내에 있어 걸어갈 수 있는 일반 A초등학교, 그리고 스쿨버스 혹은 약간의 라이딩 희생이 필요한 사립 B초등학교와 사립 C초등학교. 대부분 이럴 경우, 사립 둘 중 하나를 선택해서 지원하고, 뺑뺑이에서 떨어지면 일반 학교로 보내는 그림이다.
하지만 난 사립을 아예 배제하고 일반 초등학교를 보내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배경을 설명하기 위하여 '대안 학교 대안 아빠 #2'에서 나의 공교육에 대한 경험과 애정을 길게 적어 놨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은 없다.
그래도 남들 다 하는데, 우리도 학부모의 마음가짐도 배우고 바람도 쐴 겸 사립 초등학교 B와 C 설명회를 갔다. 나름 유명한 학교들이라 운동장에 빈 주차 공간을 찾기 어려울 만큼 인산인해를 이뤘다. 다들 느끼겠지만 그런 곳에 가면 우리를 제외한 나머지 부모들은 대부분 극성으로 보인다. 그들 눈에는 남양주에 살면서 서울까지 학교 설명회를 들으러 온 우리가 제일 극성으로 보였겠지. 괜히 '경쟁'의 분위기가 그곳 주차장에서부터 느껴지기 시작했다. 우리 애는 알파벳도 모르는데 같이 설명회에 참석한 안경 낀 7살 아이들이 "Excuse me, sir"하며 날 밀치고 지나가고, 돌아서서 "쉐쉐, 따거"할 것 같았다.
그렇게 살짝 위축된 상태로 서울 소재 사립학교 두 군데의 설명회에 참석했지만, 삼성동에서 일하며 하루 세 끼를 해결하는 사람으로서 이내 평온함을 되찾았다. 설명을 듣다 보니 사립학교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도 편견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학교 모두 느낌이 괜찮았다. 특히 B 학교는 영어뿐만 아니라 중국어도 필수로 가르쳐서, 시범 수업에서 재학생들끼리 편하게 외국어를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나처럼 외국어 소질이 없는 사람들은 이런 장면에 눈에 꽂힌다. 아이들이 책상에 앉아 있는 모습들이 다소 경직되어 보이긴 했으나, 공부를 많이 시키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학교였다. 반면 C학교는 훨씬 전통이 있고, 무난한 커리큘럼에 약간 귀족학교 느낌을 주었다.
난 B와 C 중엔 B학교로 마음이 갔다. 평범하게 일반 학교를 보내지 않고 기왕 사립을 보내는 거라면, 차라리 대놓고 공부를 많이 시키고 우열반도 있다고 자랑스럽게 홍보하는 B학교가 솔직해 보였다. 그래서 돌아오는 길에 난 마음속으로 B에 한 번 넣어보고, 떨어지면 아쉬워하지 말고 일반 학교로 보내자고 소결론을 내렸다. 와이프도 비슷한 생각인 듯했다. 그런데 그때 와이프의 조심스러운 한 마디 "새음학교는 어떨까?"
우리 가족은 10여 년째 새음교회를 다니고 있다. 그래서 새음 유치원과 새음 학교의 존재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심각하게 교회 부설 대안 학교인 새음학교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와이프도 A, B, C 사이에서 혼란스럽고 곧 초등학교 학부모가 된다는 허한 마음에 별생각 없이 꺼낸 말인 듯했다. 그건 마치 오랜만에 길거리에서 만나 이름도 가물가물한데 "번호 그대로죠? 우리 다음에 밥 한 번 먹어요"라고 인사하고 헤어지는 것과 같이, 아무런 영혼이 담겨 있지 않은 멘트였다. '나 지금 A, B, C 사이에서 헷갈려. 어떡하지?'의 다른 표현이었다. 그래서 난 생각도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새음학교란 이름이 생뚱맞은 타이밍에 처음 등장했지만, 아무런 임팩트 없이 그냥 넘어갔다.
그래고 우린 결국 사립 중엔 B학교로 결정하고 원서를 썼다. 경쟁률이 엄청나게 높아 보이지도 않았고, 그 동안 내 인생에서 '노력하지 않고 찾아오는 행운' 카테고리에서 득을 본 것이 1도 없었기에, 추첨하면 이번엔 왠지 될 것 같았다. 그래도 B학교에 떨어지면 쿨하게 일반 A학교에 보내기로 했다. 원서를 정성스레 쓰고 접수를 하러 토요일 오전에 학교로 행했다.
원래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지만 그날따라 유독 멀게 느껴졌다. 합격하더라도 이제 겨우 아기를 벗어난 첫째가 이 거리를 매일 등하교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심란해졌다. 게다가 이날 북부간선도로는 역대급 HELL이었다. 앞에 사고가 난 게 분명했다. 주차장으로 변한 도로에서 우린 차분하게 상황을 돌아볼 수 있었다.
스쿨버스가 우리 동네까지 올진 모른다. 안 올 확률이 높다. 그러면 우리 둘 중 한 명이 출근시간을 조정해서 아침에 첫째를 태워주고 출근해야 한다. 북부헬(hell)선도로야 그렇다 치고, 서울 북동쪽 끝에서 도심을 가로질러 삼성동이나 소공동까지 출근을 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문제였다. 우리 부부의 라이프는 사실 이런 컨셉이 아닌데. 이런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도 차는 1M도 움직이질 않았다. 마치 토요일 점심시간의 코스트코 입구처럼 앞 차의 꽁무니만 보일 뿐,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건 아니다. 내 안의 청개구리가 날 흔들어 깨웠다.
"차 돌릴까?"
"흠... ... ... 그러자"
돌이켜보면 그것은 첫째 지우 인생을 조금은 바꿔놓을 수도 있을 역사적인 U턴이었다. 차를 돌리고 나니 "그러게, 거길 왜 가려고 그랬냐"라고 하는 것처럼, 돌아오는 길은 뻥 뚫려 있었다. 기분이 갑자기 좋아졌다. 그렇게 우린 선택지에서 B와 C를 완전히 지워버렸다. 그래, 초등학교는 가까운 게 최고지. 메이플 유치원 친구들도 대부분 함께 입학할 테니 어색하진 않을 테지. 그렇게 우린 집 앞 가운초등학교로 마음을 굳혔다.
오래간만에 기분 좋게 식사를 하고 네스프레소 기계로 'What else' 커피를 마셨다. B와 C로 고민하지 않아도 되니 홀가분했다. 몇 주였지만, 우리 스타일에 안 맞는 옷을 입으려 한 것 같아 반성도 했다. 하지만 설명하기 어려운 아쉬움이 조금은 남아 있었다. 교복을 입고 영어와 중국어를 유창하게 하던 그 아이들이 눈 앞에 아른거리기도 했다. 그때 정적을 깨고 와이프가 다시 말을 꺼냈다.
"새음학교는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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