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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창우 May 31. 2017

대안 학교 대안 아빠 #4

* 학교명이 두레학교에서 새음학교로 변경되었습니다.



"새음 학교는 어떨까?"


와이프의 두 번째 새음학교 언급이었다. 왜 이러지? 아이가 어느새 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된 것을 아쉬워하는 부모들이 내뱉는 유행어인가? 지난번 새음 학교 언급이야 사립 지원을 포기한 허탈감에 나온 말이라 생각했는데, 이번엔 농담 투가 아니었다. 가장으로서 브레이크를 한 번 걸어줘야 하나? 이 추세면 머지않아 영화 '캡틴 판타스틱'의 가족처럼 짐 싸들고 산으로 들어가서 홈스쿨링 하자고 할 기세다.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일반 초등학교로 결정하여 잔잔해진 바다 같은 내 마음에 와이프가 조약돌 하나를 퐁~ 던진 셈이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기독교 대안학교? 새음 학교? 이거 실화임?


80~90년대 공교육이 만들어낼 수 있는 최상위 품질이란 근자감을 가지고 있는 나로선, 우리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낸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일반 학교 보내자고 사립 지원조차 포기했던 내가, 결심을 엎어버리고 대안 학교로 갈아타는 건, 마치 광안대교를 지나가다 바다로 무심코 던진 조그만 조약돌에, 그 밑을 헤엄치며 지나가던 니모 열대어가 맞아 죽을 확률 정도였다. 장차 횟감이 꿈인 감성돔들만 드문드문 살고 있는 차가운 광안리에 니모가 왜 오겠는가.  


그래도 뭐라도 대답을 해야 했다. 좋게 생각하면, 초등학교 대선 레이스에서 다른 유력 후보들이 떨어져 나간 후라, 단독 결정보단 흥행의 불쏘시개 역할 혹은 비교대상군 정도의 역할을 해 줄 대상이 있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생각했다. 그래서 이런 나의 마음을 담아 성의 있게 대답했다.


"흠... ..."


그래, 입 밖으로 소리가 조금은 새어 나왔으니, 난 분명히 대답을 한 것이다. 나름 이것저것 공감을 잘하는 편인 내가 "흠... ..."이라고 대답을 했다면, "난 보낼 생각 전혀 없지만, 네가 대안 학교도 알아보고 싶다면 말리진 않을게." 정도의 뜻은 전달한 것이다. 나로선 대답에 최선을 다했다.


그때부터 남편의 "흠" 동의를 득한 와이프가 새음 학교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나도 성의를 보이고자 검색을 해봤는데, '새음 학교(구 두레학교)'와 '밀알 두레 학교' 두 개가 나왔다. 난 둘 중 어느 학교인지 헷갈려 그만뒀다. 그 후론 머릿속에서 초등학교, 대안학교, 학부모, 교육 등의 키워드를 깨끗이 지운채 일주일이 보냈다. 그리고 다음 주말, 와이프와 난 다시 한번 'What else'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시작했다.


"새음학교 조사 좀 해봤어? 어떤 것 같아?"


캬, 이런 거구나. 난 어쩌다 보니 십수 년의 직장생활 동안 누군가에게 업무 지시를 내리며 일을 해본 적이 없다. 항상 내가 막내였고, 후배가 있더라도 내가 소처럼 일을 다 해야 하는 팔자였다. 그런데 저 멘트를 날릴 땐, 마치 손하나 까딱 안 하고 카리스마로 아랫사람들을 들들 볶은 후, 결과물은 날름 먹어버리는 임원이 된 기분이었다. 캬, 윗사람들이 일 시키고 보고 받는 기분이 이런 거구나. 나의 얄미운 임원 멘트에도 와이프는 을계의 끝판왕 제일기획 출신답게 동요하지 않고 대답했다.

 

"새음 학교, 좀 알아봤는데...... 괜찮은 것 같아."


어라, 괜찮다고? 난 "새음 학교도 나쁠 것 같지 않지만, 비인가에 검정고시도 쳐야 하고, 어떻게 가르치는지도 모르겠고, 교회가 학교고, 한 학년에 몇 명 없고, 학비도 싼 편이 아니고, 한 번 보내면 중간에 일반 학교로 옮기는 것도 부담스럽고"등등을 나열하며 부정적인 결론을 내며, 해프닝으로 끝날 일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괜찮은 것 같다고? 난 담담한 척했지만, 속으론 'Are you kidding me?'를 외쳤다. 그냥 일반 학교를 보내고 평범하게 키우자.  


"어떤 점이 괜찮은 것 같아?"

"잠깐 있어봐."

"내가 두레 학교 학부모 한 분을 다음 주에 만나기로 했거든. 만나보고 이야기해줄게."


그래, 아이의 성공은 할아버지의 재력, 아빠의 무관심, 엄마의 정보력, 아이의 체력, 도우미 아줌마의 충성심이라 하지 않았던가. 우리 집안에선 이 중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이 '아빠의 무관심'이었다. 그렇게 무관심하게 한 주가 더 흘러갔다. 다시 찾아온 주말, 우린 주말을 더욱 풍족하게 만들어주는 치맥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래, 새음 학교 학부모님 만나봤어? 뭐라고 그러셔?"

"난 이제 완전 맘에 들어"

"(속으론 Seriously?를 외쳤지만) 어떤 부분이?"

"보면 볼수록 독일식 교육과 비슷한 것 같아"




와이프는 독일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다. 그러다 한국에 다시 들어와 중학교를 다니고 룩셈부르크에서 고등학교를 다녔고, 대학 때도 독일로 교환학생을 가기도 했다. 이런 경험들은 한국에서만 학교를 다닌 나 같은 사람보단 한국식 교육의 문제점을 누구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다. 기본적으로 우리 부부는 무조건 선진국 시스템이 옳고 훌륭하다는 스타일들은 아니다. 다만 한국과 독일의 초등 교육을 모두 경험한 와이프는 독일식 교육 시스템이 본인에게는 훨씬 잘 맞았다고 했다.


그때부터 와이프는 평소 많이 하지 않던 독일에서의 초등학교 시절 이야기를 해주기 시작했다. 평소엔 잠깐 샌디에고를 다녀왔던 내가 미국 생활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더 독일 생활 이야기를 안 하던 와이프였다.


우선 독일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너무나 달라서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정말 다양한 사례들을 이야기해줬는데 그 차이를 정리해보면, 자기 주도 학습 vs 부모 주도 교육, 복습 위주 vs 선행 학습, 토론식 수업 vs 주입식 수업 등이었다. 평소에도 다양한 매체들을 통해 많이 듣던 한국 교육의 문제점들이라 감흥이 없을 법도 한데, 정치인이나 교육전문의 이야기가 아닌, 양쪽 교육을 모두 받아본 와이프의 경험담을 통해 들이니 좀 더 마음에 와 닿았다.


예를 들면, 처제가 독일에서 1학년으로 중도 입학했을 때, 그 반에서는 그제야 숫자 6, 알파벳 h를 배우고 있었다고 한다. 한국에선 아이들이 1학년 입학할 때 이미 한글은 주시경 선생님 수준으로 마스터하고, 숫자 100 정도야 큰 숫자도 아니며 손가락으로 간단한 수셈 정도는 껌으로 하는 아이들도 수둑룩하지 않은가. 그런데 독일에선 입학 후 몇 달이 지났는데 그제야 숫자 6과 알파벳은 h까지 진도가 나가 있었다고 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땐 그렇게 느리지만 기초를 탄탄하게 세우는 교육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니 선행 학습은 당연히 없고, 숙제도 그날 배운 것들을 복습 노트로 정리하는 게 전부였다고 했다.


그리고 고학년이 되었을 땐, 자기주도 학습과 토론식 수업이 본격적으로 펼쳐졌다고 한다. 예를 들어서 역사 시간에 '보스턴 티 파티' 사건에 대해서 배울 때, 학생들은 각자 도서관에 가서 관련 문헌들을 찾아보며 시대적 배경, 그 이후 영국과 미국의 변화 등에 대해서 자기 주도적으로 조사를 한 후, 수업시간엔 각자의 생각들을 토론하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모두가 경험했듯이 '보스턴 티 파티' 관련 내용은 외워야 할 몇 줄에 불과했다.


또한 한국의 엄청난 과목수에도 놀랐다고 했다. 독일에선 History 한 과목에 철학, 역사, 사회 등이 모두 녹아 있는데, 한국에선 각각의 과목으로 따로 배우고 있어서 적응이 힘들었다고 했다. 그렇게 와이프는 오랜 시간 독일 교육의 좋은 점에 대한 사자후를 토해 냈다. 들어보면 다 일리가 있는 내용들이었다.


그런데 새음 학교를 알면 알수록 독일에서 받았던 초등 교육 과정이 다시 떠오른다고 했다. 독일을 모르는 내가 반박할 수 없는 내용들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중학생, 초등학생 2명을 두레 학교에 보내고 있는 학부모와의 면담을 통해, 긍정적인 관심이 확신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그분으로부터 들었던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사실 난 그때까지도 대안 학교에 보낼 생각은 1도 없었기에, 미안하지만 와이프의 설명을 한 귀로 흘려들어 정확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새음 학교의 대안 교육 방식은 상당히 훌륭하다. (이 부분이 새음 학교의 핵심이라 뒤에서 상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다만 비싼 돈 주고 두레 학교를 보낸다고, 학교에서 모든 것을 다 해줄 거라고 생각하면 절대 안 된다. 학교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결국 공부는 부모가 시키는 것이다. 새음 학교가 좋은 점은, 선생님들이 한 학년 10~20명 정도가 되는 아이들을 정말 사랑과 기도로 대하고 세세한 부분까지 깊게 관찰해준다는 것이다. 담임 선생님뿐만 아니라 교과목 선생님들 역시 아이들에 대한 피드백을 정확하게 해준다. 그래서 우리 아이가 어떤 부분에 강점이 있고 어떤 부분을 어려워하는지, 학교 생활은 어떻고 교우 관계는 어떠한지, 부모에게 정확하게 알려준다고 한다. 그런 정보를 바탕으로 아이를 교육시키는 건 결국 부모의 몫이다."


대략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결론적으로 와이프는 자식 교육은 부모의 역할이 큰데, 부모로서 자녀를 올바르게 교육시킬 수 있는 환경과 토대를 새음 학교가 만들어준다는 점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난 조용히 이야기를 다 듣고, 다시 한번 "흠... ..."


솔직히 말하면, 다 좋은 말들이었는데 난 여전히 마음이 열리진 않았다. 그래도 잠시 마음을 열고 차분하게 생각해 보았다. 독일식 초등교육을 받은 와이프, 처제, 처남 vs 공교육의 괜찮은 산출물인 나. 이렇게 비교해보니 나니, 강한 느낌표가 하나 왔다. 와이프 말을 흘려들을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와이프 3남매는 내가 봐도 참 잘 컸다. 이들이 나보단 모든 면에서 완성체 인격에 가깝다. 조금 다르게 생각하고, 여유 있고, 경쟁적이지 않고, 자존감 높고, 남을 헐뜯거나 미워하지 않고, 긍정적이고 등등. 나의 완패다.


이것이 독일식 초등 교육의 힘인가? 이쯤되면 난 공교육 잘 받고도 재밌게 잘 컸으니, 내 뜻대로 하자고 밀어붙이는건 꼰대나 하는 짓이다. 나도 새음 학교가 처음으로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와이프에게 무관심이 덕목인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긍정의 메시지를 보냈다.


"난 네가 새음학교 보낸다고 해도 반대하지 않을게."


이보다 더 강한 지지 표현은 없다. 물론 내 맘속에 여전히 느낌표 하나와 물음표 아홉 개가 있었다. 그래도 조금 더 알아보지 뭐. 우린 치맥을 던져버리고 노트북으로 새음 학교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지원서를 다운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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