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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ybeen Sep 02. 2023

잘못 부른 러시아 택시가 폭우 속에 20분을 기다리다

#4 블라디보스토크 下편 : 노어노문학과 자퇴하러 직접 가보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큰 기대를 하진 않았다. 벌써 세 번째였기 때문이다. 두 번 모두 국외 대외활동 겸 패키지 투어의 느낌이었으니 개인 여행으로 자유롭게 다녀본 적은 없지만, 한국에서도 세 번 이상 가 본 도시가 흔치 않다는 것을 생각하면 역시나 택배박스 뜯는 듯한 설렘은 없었다. 그래서 내 딴에는 진짜 여행이 시작되기 전 워밍업이자 아이스브레이킹 같은 느낌으로 여유롭게 계획을 세웠는데, 아쉽게도 블라디보스토크는 호락호락하지 않은 도시였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노을 명소인 독수리언덕은 오를 생각조차 못했고(3번 모두 실패했다), 우비를 쓰고 걸어 다니다 보면 곳곳에서 관광객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도 꿋꿋하게 드럭 스토어 '추다데이'에서 다른 한국인들처럼 당근크림(핸드크림인데 천 원 정도 가격이라 기념품으로 나눠주기 좋다) 몇 개를 쟁였고, 극동 지역 커피 프랜차이즈인 '해적커피'에서 비를 피했으며, 비가 멎을 때면 어제 할아버지와 갔었던 해양공원도 홀로 걸어보았다. 이 정도면 나름대로 악착같이 잘 다닌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블라디보스토크 필수 방문 코스인 해적커피. 가격도 저렴하고, 무엇보다 아르바트 정중앙이라는 입지가 아주 좋았다. ⓒboybeen
해양공원 끝자락에 있는 올림픽 짐 스포츠 센터. 생긴 건 삭막한 공장 같지만 의외로 헬스장이었다. ⓒboybeen
비 오는 해양공원. 포항과 부산에서 나고 자라서인지 이 바다는 내가 아는 그 바다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boybeen
해양공원은 유원시설도 크고 시설도 꽤 잘 되어 있었다. 아이를 데리고 온 가족 단위의 현지인이 많다는 것만으로도 안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해양공원이 그랬다. ⓒboybeen


블라디보스토크에서의 마지막 날, 울란우데로 향하는 자그마치 '2 days 17 hours' 짜리 밤기차를 타기 전까지 이런저런 채비를 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신한촌 기념비만큼은 보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그날이 8월 15일 광복절이었기 때문. 신한촌은 19세기말 연해주로 이주해 온 조선인들이 정착했던 마을로, 20세기 초 일제 치하까지 삶의 터전이자 독립운동의 거점이 되었던 공간이다.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 이후 해체되어 잊혀졌다가, 반 세기가 넘게 지난 1999년에 기념비가 세워졌다. 지금은 작은 아파트 몇 동과 슈퍼마켓 사이로 러시아인들이 일상을 보내고, 오래 자란 가로수가 사근거리는 평화로운 주거지가 되었지만, 그 속에 우리의 역사가 잠들어 있는 것이다.


이전에 국외 대외활동으로 고려인 학교가 있는 우수리스크와 함께 방문했었던 곳인데, 기념비 부지를 관리하고 계신 고려인 할아버지께서 우리를 반겨주셨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한 여름의 노을이 비스듬히 내려앉으며 모두가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던 그 시간, 먼 이국의 동네에서 우리와 억양은 다를지언정 명확히 같은 뜻을 가진 인사말을 건네주시던 할아버지가 게셨다. 인솔자 분께서 나눠주신 흰 국화 한 송이를 들고 있던 20살의 나는 하나의 나라를 전공으로 삼는다는 것이 어쩌면 내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고 애틋한 일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후로도 국시(김치말이 국수 같은 느낌의 고려인 음식. 가끔 생각날 정도로 맛있다.), 당근 김치(중앙아시아로 이주한 고려인들이 배추 대신 당근으로 김치를 담갔는데, 지금은 러시아 아무 마트에 있을 만큼 대중적인 반찬. 교환학생 시절 많이 먹었다.)와 같은 고려인 분들의 문화를 접할 때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동질감, 혹은 연대감, 어쩌면 책임감을 가져왔다. 그것이 그 순간의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지만 중요한 일일 것 같아서.


이처럼 역사적인 의미는 깊지만 신한촌 기념비는 일반적으로 관광객들이 많이 찾지 않는 곳이기도 하고, 위치 상 대중교통도 잘 되어 있지 않아 속 편히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러시아는 거리에서 택시를 잡지 않고, 거의 무조건 어플을 이용한다. 동쪽은 '막심', 서쪽은 '얀덱스택시'를 이용하는 게 한국인 여행객 사이에서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었는데, 나처럼 동에서 서로 횡단을 하는 경우에는 어느 정도로 서쪽인 도시쯤부터 어플을 바꿔야 할지 고민해 보는 재미(?)도 있었다. 아무튼 러시아에서의 첫 택시를 타고, 동해항에서처럼 '나는 너무나도 일상적인 순간이니 관광객으로 오해하지 마시오'하는 표정으로 창밖을 구경했다. 관광객이 정말 많은 아르바트 거리에서 조금씩 벗어나니 이른바 진짜 일상적인 러시아의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나 군사적인 이유로 개방되지 않았던 이 도시의 역사적 배경 덕인지 우중충한 날씨와도 꽤 어울리는 것 같았고.


목소리를 엄청 깔고는 '스파씨바'하고 택시에서 내려 처음 향한 곳은 근처 꽃가게였다. 광복절의 의미를 담아 3년 전 처음 이곳을 방문했을 때처럼 국화꽃을 헌화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직원분께서 이유는 모르겠지만 오늘따라 흰색 국화꽃만 다 팔렸다고 말씀하셨다. 그래, 오늘은 그런 날이었다. 다른 색깔의 국화꽃을 두는 게 혹시 결례가 될까 봐 어쩔 수 없이 빈 손으로 기념비를 향해 걸었다. 기념비를 둘러싼 철창살엔 비에 젖은 태극기가 하얗게 펄럭이고 있었고, 한국어로 빼곡히 적힌 메모와 편지도 함께 걸려 있었다. 3년 전 나와 단원들을 반겨주셨던 할아버지는 안 계신 것 같았고, 그렇게 나는 경비실 처마 아래에서 빗소리를 듣다가 짧게 묵념을 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당시에 굉장히 다양한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얼떨결에 정한 전공이고, 그 전공에 대한 고민으로 시작된 여행이기도 했지만, 또 그렇기에 경험할 수 있었던 순간들이 생기곤 한다. 아무튼 '참 사람 일 모른다'는 편한 말로 그 기분을 정리해 본다.



* 위 원고의 초안을 작성했던 2018년 이후, 5년이 지난 2023년인 현재의 신한촌 기념비와 관련한 기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제 기억 속에 계셨던 할아버지는 블라디보스토크의 한 고려인 단체의 회장님이셨고, 2019년 별세하셨다고 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남북한과 재외동포를 상징하는 세 개의 대리석 기둥과 팔도를 뜻하는 8개의 작은 돌로 이루어져 있다. 장대비 속에서도 국화꽃을 놓고 간 이들의 따뜻함이 느껴졌던 순간 ⓒboybeen
비에 쫄딱 젖으면서도 너무 예쁘다고 생각했던 포크롭스키 정교회 성당. 러시아 정교회 건축의 특징은 십자가의 모양과 양파 모양의 돔 루꼬비짜(луковица)이다. ⓒboybeen


비가 더욱 심해져 서둘러 근처 마트에 들어가 택시를 불렀다. 조금 걸린다는 알림이 오길래 간단히 간식거리를 사서 먹고 있었는데, 이제 러시아어로 음료수 정도는 쉽게 사는 자신에 약간 대견하다는 생각도 들 때였다. 그런데 잠시 후 문제가 생겼다. 도착했다는 알림에 거리로 나서보니 택시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마트명을 바로 넣었기 때문에 헷갈릴 일도 없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싸한 느낌이 들었다. 탑승 장소가 같은 이름의 다른 점포로 설정되어 있었다. 오늘 처음 써 본 러시아 어플이고, 심지어는 한국에서도 택시 어플을 거의 쓰지 않았다 보니 생긴 실수였다. 택시는 그렇게 폭우를 맞으며 전혀 엉뚱한 곳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가까우면 뛰어가기라도 할 텐데, 꽤 많이 먼 곳이었다. 이럴 땐 어쩌다 이런 일이 생겼냐는 생각만큼 쓸데없는 게 없다. 빨리 문자를 보냈다. "잘못된 주소를 보냈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 취소해도 되는가." 보내보니 전화가 왔다. 다른 나라도 아니고 러시아 택시인데, 아마 엄청 화를 내겠지. 얌전히 욕먹을 각오로 "여보세요" 대신 "죄송합니다"하며 전화를 받으니 응? 의외로 차분하셨다. 일단 고비는 넘겼다. 그런데 "그래서 지금은 어디냐. 내가 가겠다"는 질문에 주소를 알 길이 없었다. 사람이 당황하면 지도 어플을 켤 생각도 못한다. 한국인도 한국에서 잘 못 찾는 도로명주소 표지판 같은 걸 외국 마트 앞에서 쉽게 찾을 수 있을 리도 없었고.


그렇게 우비를 쓰고 한참을 헤매다가, 지나가시던 러시아 여자분께서 대신 전화를 받아주셨다. 친절해 보이진 않았지만, 그런 걸 따질 겨를이 없어 무작정 부탁드렸다. 여기로 올 거라는 말씀에 긴장이 풀려 거의 울 뻔했다. 고맙다고 계속 말하니 한 번 ‘끄덕’하시곤 가버리셨다. 역시 쿨한 사람들. 근데 전화가 오가며 약 20분은 차가 멈춰있었던 것이라 나를 노쇼 고객으로 인식한 것인지 고객센터에서 연이어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고객센터 직원 분은 약간 화가 난 것 같은 목소리였지만, 내 러시아어는 얄팍했으니 "모스크바의 막심 택시 어쩌고저쩌고"만 들렸다. 어쩔 수가 없어 정말 죄송한데 외국인이니 영어로 말해줄 수 있냐, 나는 드라이버랑 통화했다는 말만 반복했더니 작은 한숨소리가 들리곤 전화가 끊겼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유명한 조지아 식당. 말이 조금 안 맞는 것 같지만 사실이다. 힌칼리라는 육즙이 엄청 많은 만두가 대표 메뉴인데, 안 흐르도록 잘 먹어야 한다. ⓒboybeen


옷, 가방, 머리 할 것 없이 젖어있다는 걸 알게 된 건 택시기사님이 나를 보며 놀랬을 때였다. 정말 폼 안 나고 찌질하게도 택시 회사 블랙리스트에라도 올라가는 거냐고 묻는 내게 아무 일 없을 거라 하셨고, 기사님조차도 아무 일 없어 보이셨다.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택시는 정말 시간이 돈이 되는 일이지 않은가. 도로에 가만히 서서 20분, 그리고 또 나를 찾아오느라 시간이 더 들었을 테니 너무 죄송한 마음이 컸다. 아르바트에 도착하니 요금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 고객센터는 뭘까? 아무튼 잘 해결되었으니 그런 것까지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단지 나의 죄송한 마음을 담아 최선의 성의를 표하고는 비틀거리며 아르바트에 내렸다.


몸도 춥고, 마음도 힘들어서 추다데이 로비에 잠시 앉아 있었다. 하하 호호 지나가는 수많은 한국 관광객들을 보니 서러워졌다. 첫 도시부터 이렇게 예상치 못한 일들이 많이 생기면 나중엔 어떡하지. 그 마음에 약간은 서럽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나도 주저앉을 순 없었고, 내 여행도 끝낼 순 없었다. 그 각오로 당차게 일어났을 때, 뜻밖의 인연을 만났다. 블라디보스토크항에 도착했을 때 할아버지와 함께 대화를 나눈 한국 분이 한 분 더 계셨는데, 동해항에서 '나와 같은 검은색 카라티를 단체복으로 입고 다니던' 탐방단의 단장님이셨다. "저도 한 달 전에는 이런 국외 탐방단에 있었는데 신기하네요~" 하면서 대화를 나눴었는데 그게 또 인연이 되었다. 무슨 일이 있었을지 예상도 되지 않는 내 몰골을 차마 설명하진 못하고, "할아버지는 기차를 잘 타셨고, 저는 비를 좀 맞았습니다"하고 멋쩍게 웃었다. 그렇게 서로의 향후 일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같은 배를 탔던 탐방단과 함께 같은 기차, 심지어는 같은 칸에 탈 예정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 어쨌거나 여행은 계속되어야 했다. 지금 생각면 블라디보스토크에서의 일들은 그리 특별하지 않은 해프닝 같지만, 첫 배낭여행을 홀로 왔었던 당시의 나에겐 예상 밖의 모든 사건들이 크게 다가왔던 것 같다. 여행이란 게 그 예상 밖의 일을 즐기는 것이라는 걸 이해하기 시작한 건 여행의 중반쯤이었다. 앞으로의 삶에서도 모든 상황을 내가 컨트롤할 수 없고, 그렇기에 더 재미있는 게 여행이고 인생이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었던 여행의 시작이었다. 어쨌거나 얼추 결론을 내리니 배가 너무 고팠다. 러시아식 팬케이크인 블린으로 유명한 '우흐띄블린'에서 2갠가 3개를 시켜서는 무식하게 배를 채웠고, 오늘 비를 많이 맞았으니 혹시 몰라 테라플루도 샀으며, 한인 게스트하우스 사장님께 사정을 설명드리고 따뜻하게 샤워도 했다. 이렇게 하나씩 해결하면 된다. 이젠 될 대로 되라지. 3일 만에 앞뒤로 가방을 메고 씩씩하게 뒤뚱거리며 역으로 향했다.     


첫 기차이자 3일 간 내 여행 최장기 횡단열차 노선을 함께할 -일기에 적힌 표현 그대로 적자면- '윗자리 아주머니, 탐방단의 26살 형, 23살 동갑 친구’와 인사를 나눴다. 머지않아 객차의 등이 꺼졌다. 모두가 잠든 밤기차의 창밖엔 달이 떠있었다. 앞으로 정말 러시아 여행이 시작된다. 이제는 진짜 집으로 가고 싶어도 웬만해선 못 간다는 생각에 마음이 복잡 미묘했다. 덜컹거리는 기차에서 고요한 창 밖을 바라보며 마셨던 레몬맛 테라플루는 씁쓸했지만 퍽 상큼하기도, 달달하기도 했다. 내 첫 도시에서의 기억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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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박 34일,

11개의 도시와 바이칼호수까지!

10,000Km를 넘게 달렸던

2018년 스물셋 여름날의 기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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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프롤로그 : 좋아할 수 있는 일만 하며 살아가고 싶은데, 전공자도 전공자라서 러시아는 무서워요

02 동해항 : 배 타고 러시아 가는 건 영화에서나 봤지

03 블라디보스토크 1편 : 반가움에 '끝내주는 가게'를 소개해주겠다는 술 취한 현지인

04 블라디보스토크 2편 : 잘못 부른 택시가 폭우 속에 20분을 기다리다

05 울란우데 도시편 : 전 세계에서 가장 큰 42톤 짜리 레닌 두상이 있는 도시

06 울란우데 이볼긴스키 다짠편 : “다 끝내고 다시 시작할거야.” 사연 있는 현지인과 사찰을 걷다

07 울란우데 린포체 박샤 다짠편 : 부산(釜山) 사람은 평원에 약해

08 바이칼 호수 알혼섬 후지르마을 입성편 : 편도 6시간, 알 사람은 안다는 호수의 섬

09 바이칼 호수 북부 투어편 : 바다가 없으면 답답하다는 아버지를 호수에서 이해하다

10 바이칼 호수 알혼섬 카약 대장정 1편 : 수영은 못 해도 무작정 IN THE BAIKAL

11 바이칼 호수 알혼섬 카약 대장정 2편 : 카약도, 인생도 뒤집어지기는 쉽지 않아

12 이르쿠츠크 1편 : 유배자들이 일군 시베리아의 파리에서 좋은 학생으로 인정받다

13 이르쿠츠크 2편 : 유노스찌(젊음)섬, 청춘은 그 자체로 노 프라블럼

14 시베리아 횡단열차 : 러시아 군인 앞에서 꺼낸 K-POP이 왜 하필 ‘이등병의 편지’였을까

15 노보시비르스크 : ‘노잼도시’에도 사람은 산다, 그래서 재밌다

16 예카테린부르크 1편 :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에서 마이클 잭슨을 기념하다

17 예카테린부르크 2편 : 치킨텐더를 시켜서 닭날개를 받아도 맛있는 게 여행이다

18 카잔 1편 : 자퇴한다더니 교환학생의 도시를 예습해도 되는 걸까

19 카잔 2편 : 정교회 성당 옆 이슬람 사원에서 느껴보는 연방국의 넓이

20 니즈니노브고라드 : 러시아에서 조국을 수호한 날에 한국 예비군으로서 축하를 받은 사연

21 황금고리 1편 블라디미르 : 으슥한 식당 한 구석 오크통에서 꺼낸 꿀술, 메도부하

22 황금고리 2편 수즈달 : 1,000년 전 방어요새도 이제는 선베드 명당

23 모스크바 1편 : 러시아어 전공자면 성 바실리 성당 앞에서 울어도 주책은 아니지?

24 모스크바 2편 : 모스크바의 871번째 생일, “오늘 모스크바는 잠들지 않습니다.”

25 모스크바 3편 : 지방 사람은 서울 한 번도 결심이 필요한데, 모스크바는 어떻겠어

26 모스크바 4편 : DIY가 취미가 아니라면 마트료시카는 꼭 열어보자

27 상트페테르부르크 1편 :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이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

28 상트페테르부르크 2편 : 책을 산 게 죄고, 읽는 게 벌이라던 <죄와 벌> 따라 ‘도망’가기

29 상트페테르부르크 3편 : 비행기 시간 남았으면 투어 시켜줄게, 마지막 택시기사님의 호의

30 에필로그 : 스물셋의 나름 괜찮았던 한 달

전 세계에서 가장 큰 42톤 짜리 레닌 두상이 있는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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