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도 사랑도 열심히 하다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글까지 쓰는 아주 바쁜 분의 에세이를 다듬었습니다. 경험에서 비롯한 생각이 뚜렷하게 자리 잡은 사람은 글도 거침이 없는데, 이분이 그랬습니다.
저로서는 어설프게 손댔다가 이 분의 색깔을 없애버릴까 봐 무척 조심했습니다. 그나마 마음 놓고 고쳤던 대화문을 가져왔으니, 함께 보시죠.
써도 됩니다. 그러나 많이 쓰면 글이 가벼워 보이고, 앞뒤 문장 흐름이 무너지기도 합니다.
물론 노랫말이라면 연주에 따라 줄임말을 쓰거나 늘어뜨릴 때도 있죠. 그러나 산문 글은 음악이 아닌 글로서 분위기를 자아내고 정보를 알려야 하는데, 줄임말이 많으면 진정성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정해진 규칙은 없지만, 저는 되도록 줄임말을 쓰지 않습니다. 정갈한 글을 좋아하거든요.
[보기]를 보면 길지도 않은 문장에 줄임말이 세 개나 있습니다. 게다가 모두 ‘ㄴ’ 받침이라서 글이 매끄럽게 흐르지 않고요.
줄임말 ‘(이럴) 땐’은 그대로 두고 고쳐보죠.
‘(너)란’은 ‘(너)라는’이라 풀어쓰면 간단히 정리가 됩니다.
‘다행인’에서 ‘-인’은 형용사 어미라 해서 명사를 형용사로 만들어줍니다. 그런데 뒤에 ‘(일)이다.’를 쓰니까 ‘인’과 ‘이다’로 이어져 동사를 두 번 되풀이하는 느낌을 주죠.
따라서 ‘(다행)인’을 ‘(다행)이다.’ 하고 풀어쓰고, 뒷말을 지웠습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뜻이 바뀌지만 않는다면, 글자를 과감히 버리는 용기도 내보세요.
“줄임말을 고쳤으면 하는데, 작가님 생각은 어때요?” 하고 물으면, 보통은 줄임말을 쓴 지도 모릅니다. 집중해서 마구 쓰다 보면 흔히 있는 일이죠.
가끔은 문장 길이를 줄이기 위해 일부러 그랬다고 하는 분도 있습니다. 이런 까닭이라면 저는 좀 더 강하게 타이릅니다.
이미 [고침 1]만 해도 [보기] 글보다는 글자수가 줄었습니다.
그러나 좀 더 군더더기가 될만한 걸 찾아보면, ‘너’와 ‘친구’가 있죠. 글자만 다르지 같은 사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더구나 [보기] 글은 대화문입니다. 우리가 입으로 말할 때, 어떻게 말하는지 생각해 보면 글도 어떻게 고칠지 쉽게 알 수 있죠.
이럴 땐 네가 있어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