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친구와 저녁밥을 먹고 들른 카페 화장실에서 이런 문구를 봤습니다.
“레버를 왼쪽으로 돌리실경우 화상위험있으니 주의부탁드립니다”
뭐가 문제인지 보이시나요? 쓸데없는 서양말, 한자말을 썼고 띄어쓰기도 틀렸고 높임말도 어설픕니다.
짧은 한 줄에 그동안 켜켜이 쌓인 우리의 잘못이 다 드러나 있죠. 부끄러운 일입니다.
오늘 고칠 문장
레버를 왼쪽으로 돌리실경우 화상위험이있으니 주의부탁드립니다
1) 서양말 쓰면 안 돼요?
됩니다. 우리 말에 없는 것들은 그 나라 말을 빌려 쓸 수밖에 없죠.
그러나 수도꼭지 ‘레버’를 대신할 우리 말이 없다고 한다면, ‘진실의 방’으로 따라오세요.
[보기] 레버를 왼쪽으로 돌리실경우(...)
[고침 1] 손잡이를 왼쪽으로 돌리실경우(...)
2) 쓸데없는데도 굳이 한자말을 쓰는 심리
한자말을 쓰면 점잖아 보인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그런 사람이 벽창호로 보일 수 있다고는 잘 생각하지 않죠.
한자말은 긴 내용을 함축시켜 준다며 쓰임이 좋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한자말을 우리 말과 함께 쓰면 같은 소리를 되풀이하게 되고, 그러니 문장도 길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고침 1] 손잡이를 왼쪽으로 돌리실경우 화상위험이있으니 주의부탁드립니다
[고침 2] 손잡이를 왼쪽으로 돌리면 델 수 있으니 조심하세요.
・돌리실경우
여기서 ‘-경우’는 아주 쓸데없습니다. 왼쪽이든 오른쪽으로든 ‘돌리면’ 될 일이죠.
덧붙여 많은 문장에서 ‘-경우’는 ‘-때’라고 고쳐 쓰면 더 자연스럽습니다.
그리고 ‘돌리실 (띄고) 경우’입니다.
・화상위험이 있으니
‘화상 위험’이라고 띄어 써야 합니다. 그런데 한자말을 쓰다 버릇하면 무슨 표어 제목처럼 글자들을 붙여 쓰는 일이 많습니다. 낱말과 낱말을 붙여서 아주 명사 꼴로 만들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말에서 낱말과 낱말은 띄어 쓰는 것이 기본입니다.
화상을 입는 건 ‘위험’하다고 말 안 해도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굳이 ‘위험’을 쓰는 건 왜일까요?
앞에 쓴 ‘화상’ 때문입니다. ‘화상을 입을 수 있으니’하고 적으면 글자 수가 늘어나니까, ‘위험’을 쓰게 되는 거죠.
그러나 ‘화상’도 ‘위험’도 쓸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말 ‘데다’, 이 두 음절만으로 글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델 수 있으니’하고 말이죠.
・주의부탁드립니다
예전에는 ‘주의해 주세요.’ 하고 쓰는 일이 많았는데, 요즘은 한 술 더 얹어서 ‘주의 부탁드립니다.’라고 합니다. 제 생각에 이런 말투는 서비스 직업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입니다.
한참 “손님이 왕이다.” 하고 가르치고 배우던 때가 있었죠. 지나친 친절함은 이상한 높임 말투를 만들어냈습니다.
ㄱ. 고객님, 주문하신 커피 나오셨습니다.
(→ 나왔습니다.)
ㄴ.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나실게요.
(→ 물러나세요.)
ㄷ. 배송이 하루이틀 지연되실 수 있으십니다.
(→ 지연될 수 있습니다.)
‘주의 부탁드립니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은 ‘조심하라’는 말이면서 더 과한 표현을 썼죠. 이 정도로 하지 않으면 손님에게 친절하다는 느낌을 주지 못하는 걸까요?
우리는 누구나 무리에서 위에 있을 때가 있고 아래일 때도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죠.
그러니까 나부터 올바른 말로 예의를 차려야겠죠. 그래야 또 어디서 우스꽝스러운 말이 진지한 말투로 돌지 않을 테니까요.
손잡이를 왼쪽으로 돌리면 델 수 있으니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