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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영 Oct 21. 2024

나를 담은 그릇

가짜가 될 것인가, 진짜로 채울 것인가.

말은 그 나라의 문화가 담긴 그릇입니다. 중국의 한자말은 일이나 느낌을 부풀리는 성질이 두드러지죠. 넓은 땅과 많은 사람, 전쟁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럴 만도 합니다.


한편 우리 문화에는 한(恨)이 서려있다고 합니다. 힘없고 가난한 이 나라 사람들에게, 응어리는 남이 멋대로 주무르고 태우거나 부술 수 없는 재산과도 같았겠죠. 논과 밭, 밥숟가락, 글, 사람마저도 빼앗기는 나라였으니까요.  


아랫사람에게 물려줄 거라고는 응어리뿐. 눈에 보이고 맛보거나 잡을 수도 없지만 그것마저도 아주 몰래 키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나라에 한자말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전쟁을 좋아한 나라가 아니었고, 이기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지키기 위해 싸웠으니까요.  


알다시피 우리는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 영향도 많이 받았습니다. 일본말도 한자말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식민지였던 우리는 일본식 한자말도 익히게 됐죠. 


억센 소리에도 정이 담겨있고 순수했던 우리 말은 군대에서나 쓸 법한 말들로 빠르게 바뀌었습니다. 명령과 복종, 체계와 규범에 어울리는 말과 태도, 정신을 길러야 했죠. 이런 속에서 살고자 선택한 길이 저마다 다를 때도 가슴에 응어리는 채 사라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라 경제며 문화가 꾸준히 성장하면서, 이제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일본을 꺼리지 않고 가볍게 드나듭니다. 지난날의 응어리가 대물림 되는 일이 줄고 있는 거겠죠. 


역사를 잊었다며 마냥 나쁘게 볼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도 주눅 들거나 속 끓지 않고 떳떳하게 그 나라를 즐겨도 되는 사람들이니까요. 오히려 다양한 문화와 사람을 자연스럽게 만나는 사람들이 돋보이는 때입니다. 


더군다나 한 사람이 역사를 바로 알기는 어렵습니다. 지금껏 학교나 학원에서 배운 것들을 모두 옳다 할 수도 없거니와 하나하나 되짚어보기에는 이밖에도 할 일이 너무 많으니까요. 


그럼에도 계속 고민할 것은, 한 나라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가 나로서 바로 서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내가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다른 사람 말에서 옳고 그름을 가려듣는지… 스스로 알고 있는가, 고민하는 것입니다.  


“말은 그 나라의 문화가 담긴 그릇”


말은 그 사람의 바탕을 보여줍니다. 어떤 사람들 속에서 자랐고 무엇을 쫓는지, 보이지 않지만 명확하게 보여주는 단서라고 할 수 있죠. 하물며 ‘나라’는 어떨까요?


요즘 한국말을 배우는 외국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 모습을 유튜브나 텔레비전으로 보면서 아찔할 때가 참 많습니다. ‘집약적’, ‘갈등’, ‘심약’, ‘합의’ 따위 말을 배우고 있으니까요. “한국말 너무 어려워요.” 하는 외국 사람을 보면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 


우리 말이 아닌 것을 가르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중국말, 일본말을 가르치면서 우리 말이라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스스로 중국을 떠받들었고, 일본에 짓밟혀서 우리 말에는 이것저것이 다 섞였다고 하는 것 같으니까요.


우리 말과 글은 소리를 담았습니다. 자연에서 나는 소리를 글자로 만들었으니, 지금 우리가 몇 광년 전에 빛난 별을 보는 건지 계산하는 것처럼 자연에 가까우면서도 과학이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참된 우리 말로 쓴 글을 볼 때면 아름답다는 생각이 절로 들고 속도 편합니다.  


오늘 나는 어떤 말을 나누고, 어떤 글을 썼던가.

듣는 사람, 읽는 사람은 나한테서 무엇을 보았을까.


돌이켜 봅니다.

말과 글에 담은 진짜였나.

허울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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