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글자 ‘-의(の)’, 이것만이라도 쓰지 말자

by 김보영

내 글에는 내가 있는가


우리말에 한자말과 한자말투가 많다는 건, 일본말과 일본말투를 많이 쓴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일본이 나라말을 만들 때, 중국글자말(한자말)을 가져다 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자만 알면 일본 여행이 어렵지 않다고도 합니다.


역사에서 우리나라는 중국 다음으로 일본 영향을 오래 받았습니다. 1910년 8월 29일부터 1945년 8월 15일에 걸쳐 이 땅에서 우리말은 없어져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중국글자(한자)를 쓰고 일본 말법으로 읽는 나라가 되었죠.


빼앗긴 나라를 되찾았어도 우리는 여전히 일본말법을 따라 말하고 씁니다. 덩달아 서양말투까지 섞여서 깨끗한 글을 찾기 어렵습니다. 이 나라의 마음을 담은 글은 갈수록 찾기 어렵고 어지러운 내 마음 추스르는 법이나 빠르게 바뀌는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 사람 간에 관계를 정리하거나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글만 쏟아지고 있습니다.


내 글에는 내가 있는가. 내 목소리가 담겨 있는가. 우리는 고민해야 합니다. 글에 내가 없다는 것은 내가 없는 삶을 살고 있다는 뜻. 이렇게 살아야 한다 저렇게 살아야 한다고 하는 글과 영상을 찾을 것이 아니라, 타고났지만 잊고 있던 내 목소리를 찾아 글 한 줄을 써보는 것이 더 나은 삶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부터는 중국말투에 이어 쓰지 말아야 할 일본말투 여섯 가지를 소개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일본말투 ‘-의(の)’, 이건 제발 좀 쓰지 말자


원래 우리말에서 토씨 ‘-의’는 잘 안 썼습니다. 그나마 "이건 나의 가방이다"처럼 어떤 물건이 내 것이다는 뜻으로나 썼습니다. 이것도 "이건 가방이다"하고 쓰는 게 보통입니다.


그런데《표준국어대사전》에는 '의'의 쓰임을 스물한 가지나 들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대부분은 일본말투나 다름없는데, 우리나라 표준어로 삼은 것입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16번 항입니다.


조사 '의'

(16) ‘에’, ‘에서’, ‘에게’, ‘로’, ‘에로’, ‘에게로’와 같은 조사나 다른 보조사 뒤에 붙어, 뒤에 오는 체언을 수식하게 하는 관형격 조사.


'에의', '에서의', '에게의', '로의', '에로의', '에게로의'처럼 써도 된다는 뜻인데, 이것은 내가 절대 쓰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일본말투입니다.


다른 본보기를 들 것도 없을 것 같습니다. 사전에 올라있는 예문(보기글)에서 ‘-의’를 없애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드리겠습니다.



예문


ㄱ. 너희들은 우리 학교의 학생으로서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학교)

ㄴ. 백합의 아름다움 (→아름다운 백합)

ㄷ. 커피의 향기로움이 입안에 감돈다. (→커피 향기가 입안에 감돈다.)


예문 ㄷ에서는 ‘-움’을 접미사 ‘-음’과 같이 써놓았습니다. 앞에 ‘-의’를 썼기에 이리 어설프게 글을 짓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탓에 예문 ㄴ에서 알맹이는 ‘백합’인데 ‘아름다움’이라는 명사에 더 힘이 실리고, 예문 ㄷ은 ‘커피’보다 ‘향기로움’이 문장 중심에 있어 보입니다. ‘-의’ 하나 때문에 글이 이렇게 흐려집니다.


덧붙여 우리글에서 ‘-음’은 일부 동사의 어간에 붙어 ‘물음, 걸음, 졸음, 울음, 깨달음, 애달픔, 고달픔, 슬픔, 울음, 묶음, 닮음, 수줍음’처럼 명사를 만드는 말입니다.


또는 ‘-었-, -겠-’ 뒤에 붙어 ‘했음 좋겠다, 그랬음 싶다, 살아있음을 알고 있다, 남아있지 않음을 보았다’처럼 앞말이 명사 노릇을 하게 만들 때 씁니다.


이어서 계속 ‘-의’를 우리 말법에 따라 고쳐보겠습니다.




ㄹ. 악습의 타파는 우리의 과제이다. (→악습을 타파하는 건)

ㅁ. 당신들은 작업 능률의 제고가 필요하다. (→작업 능률을 높여야 한다.)

ㅂ. 날씨의 예측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날씨 예측은, 날씨를 예측하는 건)

ㅅ. 동정의 눈물은 필요 없다. (→동정하는)

ㅇ. 그는 아직까지도 사고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사고)

ㅈ. 강의 상류에는 무너진 다리의 교각이 서 있다. (→강)


지난 시간에 나는 중국글자말을 쓰지 말아야 하는 까닭으로 ‘겹말’을 들었습니다. 교각은 ‘다리의 기둥’을 뜻하는 중국글자입니다. ‘무너진 다리의 기둥’이라 하면 될 것을 ‘교각’을 덧붙이면 한 말을 또 하는 꼴이 됩니다.


ㅊ. 그 강의에 참석한 사람의 절반이 졸고 있었다. (→사람)

ㅋ. 그녀의 현장의 소식을 전해 주었다. (→그녀가 있는 현장, 그녀가 처한 현장)

ㅌ. 겨울의 한라산만큼 아름다운 건 없다. (→겨울)

ㅍ. 철민아, 밥이 먹기 싫으면 탁자 위의 빵이라도 먹어. (→위)

ㅎ. 백의의 천사 (→백의)


예문 ㅎ을 보면 뜻은 달라도 ‘의’를 연달아 쓰니 발음하기도 어렵습니다. ‘백의 천사’는 ‘간호사’를 꾸며 쓴 말인데, 딱히 곱다는 느낌도 안 듭니다.




ㅏ. 성인으로서의 성숙함을 (→성인(으로서, 다운))

ㅓ. 직업 현장에서의 수요와 공급이 불일치하면서 (→현장에서)

ㅗ. 거창할 것도 없이 인식의 전환일 뿐인데 말이죠! (→ 생각을 바꿨을)


‘에로의, 에서의, 로의’ 모두 일본 말투에서 비롯했습니다. 대부분 ‘-의’를 빼도 말이 됩니다. 예로부터 우리 글에는 ‘-에’라면 모를까 토 ‘-의’를 잘 쓰지 않았습니다. 발음하기 어렵고 알아듣기도 어려우며, 우리말은 토 ‘-의’를 쓰지 않을수록 뜻이 살아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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