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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아빠 소리

나를 ‘막둥이‘라고 불러주면 좋았어.

by 김보영

할 일이 없다던 아빠는 날마다 찾아왔다. 마당을 쓸고 나무들을 만지고 기계에 기름을 칠했다. 별 말도 없이 보내는 그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나는 아빠가 있을 때와 없을 때, 이곳 표정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마당에 심긴 나무들은 아빠 발소리에 잎 싹을 부풀린다. 단단한 기계들과 갈라진 벽돌들은 슬쩍 물렁물렁하게 힘을 뺀다. 새들과 떠돌이 짐승들, 벌레들이 곳곳에 숨어서 밝은 회색빛 마당에 자국을 남기려고 기회를 엿본다.


아는지 모르는지 아빠는 그저 묵묵히 할 일을 한다. 마치 구름처럼 한자리에 있는 것 같다가도 잠깐 눈을 돌리면 저만치에 가 있다. 그러다 보면 파란 하늘과 반짝이는 나무들과 아빠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 지우거나 고칠 게 하나도 없는 그림이다.


어쩌면 아빠도 나를 좋아하는 것 같다. 내 앞에서는 유난히 느리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대빗자루를 들어서 내 눈앞을 가린 거미줄을 살살 걷어주기도 한다. “막둥아” 하면서. 그럴 때 아빠 목소리는 나뭇잎이 연기가 될 때를 닮았다. 연기는 소리 없이 피어오르지만, 보고 있으면 오히려 주변 소리를 잠재운다. 아빠 목소리가 그렇다.


한 번은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에 맞춰 아빠가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소리가 나오다 말다 했다. 엄마가 은근슬쩍 끊어진 노랫말들을 채워주긴 했지만, 아빠의 빈 목소리는 너무나 컸다.


“당신이 짝다리 짚고 서서 <고장 난 벽시계> 부르면, 아줌마들이 나훈아라고 아주 환장했는데.”


엄마가 주먹 쥔 한 손을 입에 대고 마저 노래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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