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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굴과 마시멜로

불에 데일 듯이 가까이

by 김보영

엄마는 둥근 은쟁반에 수저와 그릇들을 챙기고, 지난번에 김장한 김치도 접시에 썰어 담았다. 작은 배춧잎을 날름 입에 넣더니 짭짭 소리 내며 히죽 웃는다. 아빠는 슬렁슬렁 돌아다니다가 기름 난로를 비닐하우스 안으로 옮겨 놓고 낙엽을 치웠다. 괜히 엄마 뒤에 대고 돼지고기라도 삶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다가 핀잔을 듣기도 했다.


조금 있자 용태와 막둥이가 왔다. 뒤이어 도착한 앙증맞은 자동차에서는 보라와 웬 남자, 그리고 남자를 꼭 닮은 사내아이가 내렸다. 아이는 대뜸 엄마 아빠한테 뛰어가더니 “할머니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하고 꾸벅 인사를 한다. 동글동글 부드러운 살구같이 생겼다.


“아이고, 우리 지성이 왔니!”


엄마 아빠가 하던 일을 멈추고 반기기에 나는 ‘지성이’하고 그 이름을 곱씹었다.


막둥이 차에서도 한 사람이 더 내렸다. 마늘 심는 날에 달걀을 맛있게 먹던 남자다. 참빛이라고 했던 것 같다. 오늘은 뭐가 잔뜩 든 망태기를 들고 왔다.


“장인어른, 실한 놈으로만 몽땅 따왔습니다.”


“물이 겁나게 찼을 것인데, 고생했네.”


아빠가 입꼬리를 올리며 맞장구를 친다.


망태기는 비닐하우스 앞에, 아빠가 손수 만든 불판 옆에 놓였다. 용태가 망태기를 열어 볼 때 나도 슬쩍 들여다봤지만, 뭘 봤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깨진 돌멩이?


저마다 뭘 해야 하는지 잘 알았다. 보라와 남자는 하우스 안에 천막 같은 걸 뚝딱 펼쳐서 작은 집을 만들었고, 접고 펼 수 있는 의자도 놓았다. 막둥이는 핸드폰으로 노래를 켰다. 그리고 엄마가 미리 준비한 음식들을 장판 위에 보기 좋게 놓고, 서로 손이 닿을 만한 자리에 김치를 나눴다.


장작에 불을 피우는 건 용태의 몫이었다. 불쏘시개가 필요하다고 하자, 지성이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나뭇가지들을 주워 왔다. 참빛은 이 사람 저 사람 옆으로 가 인사 나누기를 좋아했고, 배가 고픈지 자꾸 봉지들을 뒤지며 입맛을 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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