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뒤에야 알았어.
여기 창고 마당은 세 마리 고양이가 함께 쓰는 곳이기도 하다. 덩치가 크고 머리통이 까만 녀석은 아빠한테 들킬지언정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있길 좋아한다. 다음으로 자주 오는 녀석은 하얀 몸뚱이에 크고 작은 점박이 무늬가 몇 개 있다. 몸이 가벼워서 이런저런 기계나 쌓아놓은 멍석 위에 있을 때가 많다.
그리고 아주 가끔 이 고양이가 온다. 엄마 아빠는 이 고양이를 진흙탕에서 뒹군 것처럼 생겼다며 얼룩이라고 부른다. 가뜩이나 그렇게 생긴 녀석이 기름때가 묻은 선반에만 있다 가니까 아무도 모를 때가 많다. 그나마도 아빠가 물고기 머리라도 그릇에 주면 눈을 반짝이지만, 망설이는 사이에 다른 고양이들이 채간다. 얼룩이는 그런 고양이다. 벽면과 맞닿은 바닥이 그늘지지 않으면 이쪽으로 오지 않는 고양이다. 어디로 어떻게 다녀야 눈에 띄지 않는지 너무나 잘 아는 고양이다.
그런데 엊저녁 얼룩 고양이는 달랐다. 마당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와서는 멍석 위에 자리를 잡았다. 거기는 점박이 고양이 자리인데 말이다. 주변을 둘러봤지만, 다른 고양이는 안 보였다. 점점 하얘지는 세상에 얼룩 고양이와 나, 둘 뿐이었다.
얼룩이는 퍽 지쳐 보였다. 물기를 머금은 몸은 더 거무튀튀하고 앙상했다. 그래서 눈을 보며 새의 깃털보다는 고양이가 뱉은 털 뭉치 같다고 한 걸 곧바로 뉘우쳤다. 엊저녁에 내리기 시작한 눈은 지금도 멈출 기미가 안 보인다. 바람은 어디 부딪히면 소리라도 내지, 눈은 참 께름칙하다. 조용히 내가 알던 모든 것들을 싹 없애버리러 오는 것 같다. 하얀 세상에 나만 덩그러니 남겨놓으려고 말이다. 그래서였나 보다. 여기 마당에 얼룩 고양이가 발자국을 남기며 다가올 때, 나는 소리내어 울고 싶었다. 하얀 세상에 얼룩 고양이와 내가, 둘이 있다는 사실에 뱃속에 물이 가득찬 것 같았다. 그 사실을 잊고 싶지 않아서 조그마한 발자국들을 뱃속에 꾹꾹 담았다.
막상 얼룩이는 별 뜻이 없어 보였다. 멍석에 앉아 끈질기게 뒷발을 핥더니 깊이 잠들었다. 이틀째 몸을 동그랗게 말아 자기 품에 고개를 처박고는 가만히 있다. 나는 애써 눈을 보지 않는다. 얼룩이를 본다. 눈이 지우지 못하는 내 사실을 본다. 오르락내리락. 얼룩덜룩한 몸통이 얕게 부풀다가 줄어든다. 그렇게 움직이는 품에, 동그랗게 오므린 몸 가운데에 있어 보고 싶다. 숨이 드나드는 길목에 폭 담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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