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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발자국을 따라가고 싶어

나한테도 발이 있다면

by 김보영

한두 번이겠지 했는데 계속 그냥 지나갔다. 아빠가 운전하는 하얀색 화물차 말이다. 옆자리에 앉은 엄마가 창문을 내리고 이쪽을 보기도 하지만 그뿐이었다. 창고를 지나 골목으로 사라졌고, 다시 골목에서 나타나 왔던 길로 돌아갔다. 나도 모르게 또 “삐용삐용” 소리가 났지만, 엄마 아빠는 그대로 가버렸다. 대문 바로 안쪽에 자리한 키 작은 야자수만도 못하게 된 기분이었다.


다시 며칠 만에 하얀색 화물차 머리통이 보였을 때는 나도 애써 딴 곳을 봤다. 기대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차가 멈추고 엄마가 대문을 열고, 아빠가 차를 몰고 들어왔다.


“잘 지키고 있었냐? 안 얼었지?”


아빠가 빗자루를 들어 처마 밑과 내 몸 구석구석을 쓸었다. 고드름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간 내 뱃속에도 뾰족한 고드름 같은 게 길게 자랐는데, 아빠는 괜한 거 만들지 말라는 듯 쓱 쓸어버린다.


아빠는 벽에 기대놓은 삽을 들었다. 바닥이 네모지고 넓은 삽이었다. 아빠는 그걸로 대문부터 마당을 지나 정원까지, 그리고 정원 옆에 있는 작은 하우스 문 앞까지 눈을 밀고 다녔다. 내릴 때는 가벼워 보였는데, 쌓이면 무거워지는지 아빠는 재차 숨을 몰아쉬었다.


“올 사람도 없는데 웬 길을 내요. 성가시게.”


엄마가 방금 끓인 차를 아빠에게 건넸다.


“당신 미끄러지지 말라고.”


“이거, 막둥이가 사준 부츠 안 보여요? 하나도 안 미끄러워.”


엄마가 한쪽 발을 살짝 내밀었다. 목이 길고 연한 분홍색 신발이었다.


“자꾸 애들 돈 쓰게 하지 말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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