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었던 시간이 살아서 걸어 나왔다.
낮에는 처마에 맺힌 고드름이 똑똑 녹아내렸다. 바닥에 쌓인 눈이 동그랗게 파이면 마당이 그 안에 있었다. 그것은 하염없이 눈이 퍼부을 때도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걸 가르쳐줬다. 날마다 해는 떠오른다. 한동안 구름이 가렸을 뿐이다. 이런 이치를 스스로 깨치고 나니, 조금 편해졌다. 몸이 없는 내 모습이나 얼룩이를 돌보지 못한 일만 떠올라서 내가 두 쪽이 나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복숭아나무속에서 박새 한 마리가 포르르 날았다. 자동차 들어오는 소리에 놀란 것이다. 진한 회색에 뒤통수가 불룩한 걸 보니 용태의 자동차다.
용태와 아빠가 내렸다. 지난번 김장할 때 왔던 보민이도 내렸는데 울고 있다. 용태가 차 안에서 손잡이가 달린 연두색 가방을 조심스레 꺼냈다. 아빠는 머리가 얄팍한 삽 한 자루를 들었고 셋은 정원으로 갔다.
뽀득 뽀드득
셋이 지나간 자리마다 크기와 모양이 다른 구멍들이 생겼다. 얼룩 고양이 발자국만큼 재밌는 모양은 아니고 밋밋하다.
정원에 들어선 아빠는 둘레에 있는 동백나무 아래를 손으로 가리켰다. 그러나 용태는 동백나무에서 몇 걸음 물러나 햇빛에 반짝이는 쪽을 가리켰다.
“그래라.”
아빠 목소리가 나지막이 들렸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